빈의 모더니스트들은 전통적인 태도와 가치에 새로운 사고 방식과 정서로 맞섰고,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겉으로 보이는 사람과 사물과 사건의 아래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겉모습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을 탐구함으로써, 빈 모더니즘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특징짓는 태도를 제시했다. --- p.20

클림트는 생물학 기호를 자신의 작품에 통합하기 시작했다. 직사각형은 정자, 타원은 난자를 상징했다. 〈다나에〉에서 이 기호들을 볼 수 있다. 부친에게 감금되고 황금 빗줄기의 형태로 제우스를 통해 잉태를 하는 그리스 공주의 초상화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황금 빗방울 속에서 직사각형들을 볼 수 있다. 다나에의 맞은편에는 타원형들이 보인다. 배아, 수정된 난자다. 클림트는 다나에가 생식력을 통해서 정자를 생명의 최초 단계로 전환시키는 것을 보여준다. --- p.38

곰브리치는 크리스의 모호성 개념을 시지각 자체에까지 확장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뇌가 단순히 카메라가 아니라, 창의성 장치임을 깨닫게 되었다. 뇌는 바깥 세계로부터 불완전한 정보를 받아서 완성한다. 우리 뇌는 그렇게 하도록 진화했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많은 것들은 진화를 통해 우리 뇌에 새겨진 것이다. 예를 들어 뇌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간에 태양이 언제나 머리 위에 있을 것임을 알아차린다. 따라서 우리는 빛이 위에서 온다고 예상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뇌는 속을 수 있다. 착시 같은 사례가 그렇다. --- p.43

우리 뇌는 얼굴을 처리하는 능력이 유달리 뛰어나다. 다윈은 얼굴과 얼굴이 전달하는 감정이 모든 인간 상호작용의 열쇠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어느 정도는 남과 상호작용할 때 남이 보여주는 얼굴 표정을 보고서 남을 믿을지 꺼려할지를 판단한다. 또한 겉모습과 얼굴 표정을 보고 동성과 이성의 사람들을 가까이할지 멀리할지 판단한다. --- p.52

얼굴 인식은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수백 명의 얼굴을 수월하게 알아볼 수 있다. 만화로 그리면 더욱 잘 알아본다. 우리 뇌는 특징을 과장한 얼굴에 특히 잘 반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나리자의 원래 그림보다 모나리자의 만화를 훨씬 더 쉽게 알아볼 가능성이 높다. 만화가 모나리자의 특징을 과장하기 때문이다. --- p.52

하시드 설화에 담긴 기적 같은 사건들 중에는 동물들이 하늘을 나는 것도 있는데, 이런 광경은 샤갈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며, 화가 자신이 날고 있는 모습도 보이곤 한다. 사실 샤갈을 묘사할 때 루프트멘슈라는 단어가 종종 쓰이는데, 허공을 걷거나 마음이 딴 세상에 가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 p.87

수틴은 작품에서 유대인의 삶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례가 거의 없다. 게다가 샤갈과 달리 유대 사상의 신비주의와 마법을 묘사한 경우도 전혀 없었다. 대신에 수틴은 유대 이념 스펙트럼의 정반대쪽 끝에서부터 미술에 접근했다. 유럽에서 유대인의 존재 자체를 특징짓고 20세기 초에 특히 더 명백해지고 있던 근본적인 불확실성과 존재론적 불안에 집착했다. --- p.91

정점 이동 원리라는 개념에 따르면, 화가는 개인의 본질을 포착할 뿐 아니라 적절한 과장을 통해 그것을 증폭하려고, 그럼으로써 실제 현실에서 그 사람을 통해 촉발되었을 바로 그 신경 메커니즘을 더욱 강하게 활성화하려고 시도한다. (중략) 우리는 수틴의 작품에서 원근법 부재를 통해 깊이감이 과장되고, 그가 묘사하는 얼굴의 색깔이 증폭되어 있는 것을 명확히 알아볼 수 있다. 게다가 반 고흐의 선례를 따라서, 수틴은 자신이 그린 얼굴의 질감 속성을 과장함으로써 이 원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 p.103

과학자들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뇌를 조사해서 얼굴 표상에 관한 많은 것을 알아냈다. 이 증상은 1883년 장 마르탱 샤르코가 처음으로 알렸고, 1947년 요아힘 보다머가 현대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얼굴인식불능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장애는 아래 관자 겉질이 손상된 결과다. 선천적으로 손상될 수도 있고, 머리 부상이나 질병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인구의 약 10퍼센트는 선천적으로 어느 정도 얼굴인식불능증을 지닌다. --- p.109

시각의 계산론적 모델은 몇몇 얼굴 특징이 대비를 통해 정의됨을 시사한다. 눈과 이마의 영역이 한 예다. 조명 조건에 상관없이, 눈은 이마보다 더 어두운 경향이 있다. 계산론적 모델은 그런 대비 특징들이 뇌에 신호를 보내 얼굴이 있음을 알린다고 주장한다. (중략) 그러자 세포가 얼굴 특징들 사이의 대비에 반응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게다가 대부분의 세포는 특정한 특징 쌍 사이의 대비에 맞추어져 있으며, 어느 한쪽 눈보다 코가 더 밝은지를 비교하는 세포들이 가장 많았다. --- p.111

현대 뇌과학은 시각 정보 처리를 전담한다고 여겨지던 겉질의 몇몇 영역이 촉각을 통해서도 활성을 띤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중에 가쪽 뒤통수 복합체는 특히 중요하다. 이 겉질 영역은 대상의 시각과 촉각 양쪽에 반응한다. 대상의 질감은 이웃 영역인 중앙 뒤통수 겉질의 뉴런도 활성화한다. 대상이 눈이나 손으로 지각될 때다. 우리가 피부, 옷, 나무, 금속 등 다양한 물질을 쉽게 식별하고 구별할 수 있으며, 심지어 흘깃 보고서도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p.115

오늘날 뇌과학자는 프로이트가 남성에게서 관찰했고 클림트가 〈유디트〉에서 묘사한 ‘공격성과 성의 융합’을 연구하고 있다. (중략) 앤더슨은 시상하부에 두 뉴런 집단을 포함하고 있는 핵, 즉 뉴런 덩어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공격성을 담당하는 집단과 성교를 조절하는 집단이다. 두 집단 사이의 경계에 놓인 뉴런의 약 20퍼센트는 성교나 공격 때 활성을 띨 수 있다. --- p.139

입체주의 덕분에 화가들은 미술이 무의식적 마음에 존재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자연, 시간, 공간과 독립적으로―캔버스나 종이라는 이차원 표면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 새로운 관점은 화가가 자기 눈앞의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을 영구히 바꾸었다. 또한 관람자가 이미지를 감상하는 방식도 바꾸었는데, 이를테면 대상의 윤곽, 관련 대상이나 단어, 제목 등의 단서들에 반응하여 자유 연상을 하는 식이었다. --- p.176

피카소는 파피에 콜레 작품들에서 원근법과 전체 묘사를 제거함으로써 상향 시각 처리 과정의 구성요소들을 해체했을 뿐 아니라, 상향 처리 과정의 토대가 되는 전제 자체를 무효화했다. 우리는 잘린 선들 사이를 연결하는 게슈탈트 심리학자로서 알아볼 수 있는 윤곽과 대상이 있는지 살피면서 입체파 그림을 훑는다. 그러나 잘린 선들이 난무하는 대다수 작품들에서 우리의 노력은 좌절된다. 그런 작품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때가 많은 새로운 상향 처리 규칙을 요구하며, 창의적이면서 폭넓은 하향 처리 과정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 p.194

미술의 한 가지 목적은 평소에 접하지 못했을 삶의 측면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감정이입을 통해서다. 감정이입은 뇌에서 강하게 표현된다. 우리는 메저슈미트의 머리를 볼 때 그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 그의 두상은 우리 뇌의 생물학적 운동 체계와 모방을 담당하는 거울 뉴런 체계도 활성화한다. 따라서 메저슈미트의 두상을 볼 때, 우리는 그가 묘사하고 있는 감정을 내면에서 경험한다. 우리 뇌는 그의 표정을 모사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감정을 경험한다. --- p.221

해석 수준 이론은 심리적 거리와 추상화 사이에 쌍방향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심리적으로 거리가 먼 대상과 사건이 우리 뇌에서 더 추상적으로 표현될 뿐 아니라, 대상과 사건의 추상적 해석물은 심리적으로 더 거리가 있다고 느껴진다. 이 관계는 심리적 거리를 사용하여 미술 감상자의 주관적 해석에 있는 경험적 차이를 측정할 수 있음은 물론, 미술이 불러일으키는 표상의 수준 차이를 정량화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