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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들 뒤편 벌새가 사는 법 머금다 맴돌다 무소유 저 모습 짧은 심사평 매미 노래와 시 저항 실패의 힘 눈 아우성 비 오는 날 다음 제2부 너에게 쓴다 그믐달 마들에서 광화문까지 일년 외가리 구멍 교감 완창 악수 자화상 운명 좋은 날 그림자 천사의 시 마음아 제3부 밥 오래된 미래 나는 누구인가 얼굴 중년 벽 나의 기원 단 한번 바위 지독한 사랑 결론 반딧불 차이 자연 동행 제4부 하루 꽃점 손 침묵 우두커니 허기 축복 어둠 부재(不在) 아비 여행 기차 나의 숟가락 하루살이 붉은머리오목눈이 후기(後記) 발문|김기택 시인의 말 작품 출전 |
千良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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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 「뒤편」 중에서 벌새는 일초에 아흔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칠십만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번이나 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 --- 「벌새가 사는 법」 중에서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生) 풍화되었다 --- 「너에게 쓴다」 중에서 절망만 한 절정이 어디 있으랴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 희망이 완창이다 --- 「완창」 중에서 내가 시를 받아주는 줄 알았는데 요즈음은 시가 날 받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가 날 받아줄 때 시인인 게 행복하고 시가 시답지 않을 때 시인인 게 부끄럽다 그러니 시여, 날마다 내 손을 잡아다오 --- 「악수」 중에서 고통이 바뀌면 축복이 된다기에 그 축복 받으려고 내가 평생이 되었습니다 절망을 씹다 뱉고 희망을 폈다 접는 그것이 고통이었습니다 그 고통 누가 외면할 수 있을까요 외면할 수 없는 삶 그것이 바로 축복이었습니다 --- 「축복」 중에서 시(詩)는 내 자작(自作)나무 네가 내 전 집〔全集〕이다 그러니 시여, 제발 날 좀 덮어다오 --- 「후기(後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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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삶을 머금고 끝끝내 살려내는 우뚝한 마음
‘짧은 시’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시선집은 절망의 바닥에서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고독한 영혼의 비망록이자 눈물 머금은 침묵의 언어로 써내려간 독백의 자서전이라 하겠다. 시인의 삶의 궤적과 시적 고뇌가 “짧은 시의 침묵과 여백”(발문) 속에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에게 쓴 마음이/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마침내는 내 생(生) 풍화되었다”(「너에게 쓴다」)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시인이 시력 60년의 세월을 오로지 시로써 살아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세월은 “나는 죽을 때까지/평생 시를 찾으려고/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아야 하나”(「맴돌다」), “나는 하루에 몇번이나/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벌새가 사는 법」)라는 고백처럼 실존적 고민과 부단한 성찰이 불꽃처럼 번뜩이는 시간들이었다. 그 모든 번뇌의 세월 속에서 “오래된 실패의 힘”(「실패의 힘」)을 일으켜 세우며 평생 시를 좇아 살아온 시인의 고독한 삶이 실로 뭉클한 한편 한없이 담대하다. 아득한 어둠의 밑바닥에서도 시의 길을 잃지 않고 몇번이고 바로설 수 있었던 것은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남다른 시선 때문이다. 시인의 눈길은 늘 ‘뒤편’을 향한다. “성당의 종소리” 뒤편에 박혀 있는 “무수한 기도문”과 “마네킹 앞모습” 뒤편에 꽂혀 있는 “무수한 시침”(「뒤편」)을 꿰뚫어본다. 겉모습 너머를 응시하며 존재의 내력을 살피고 삶의 진실을 찾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인은 “바람 소리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어둠 속을 더 잘 보려고 눈을 감는다”(「눈」). 세상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실체를 감각하기 위해 오히려 눈을 감고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다. 어두운 세상을, 가슴을 에는 듯 아픈 삶을 머금고 감싸 안으며 나아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직관하는 새로운 눈”(발문)으로 “사는 것”과 “사람인 것”(「눈」)에게 끊임없이 다가가기에, 시인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나아간다. 그 빛의 길로 우리 모두를 이끈다. 절창으로 터져 나오는 실존의 희로애락 시인은 불화와 갈등의 끝없는 절망 앞에서 삶의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려는 굳은 심지를 가다듬고 “궁지에 몰린 마음”(「밥」)을 다독인다. 그렇게 눈물로 단련한 감성과 성찰의 언어로 ‘운명’이라는 “잔인한 자서전”(「운명」)을 기록해왔다. “우울을 우물처럼 마시고 불안을 벗 삼아”(「구멍」) 살아온 인생의 황혼녘에 이르러 마침내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완창」)는 선득한 깨달음에 이른다. 그리하여 “외면할 수 없는 삶/그것이 바로 축복”(「축복」)이었다는 시인의 말에 우리는 자연 숙연해진다. 삶의 고통과 좌절 속에서 세상을 향한 간절한 ‘시 쓰기’가 온전히 한 생이 되어버린 시인의 내밀한 고백록인 이 시선집은 “어둠으로 빚은 빛”(발문)으로 충만하다. 짧지만 단단한 시로 엮인 이 선집이 오랫동안 천양희의 시를 사랑해온 이들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며 따듯한 위로와 평온의 빛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시인의 말 일상에서 일생까지 울음에서 웃음까지 슬픔에서 기쁨까지 머리에서 가슴까지 먼 길 돌아와 자연이 새봄을 펼쳐 보이듯 참으로 한 순간을 눈부시게 하는 것이 짧은 시였으면 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짧은 시에 겹친다 나는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쓰지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눈물을 보탠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나에게 남은 유일한 위안은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짧지만 긴 여운을 보내는 것이다 2025년 여름 천양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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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말하지 않은 말, 침묵의 말을 듣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말하지 않은 말을 듣는 능력이 있다. 시의 침묵과 여백과 행간에는 말하지 않은 말, 말이 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말, 말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반죽 상태로 있는 말, 자극을 받으면 깨어날 수 있는 말이 풍부하다. 우리의 내면에도 그런 말들이 있다. 시를 읽으면서 깊이 공감할 때 그 시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이유는 시 속의 말과 내 안의 말이 서로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가 나의 말을 꺼내준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말이 시가 되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60년간 농축된 시인의 삶과 시적 고뇌와 희열이 짧은 시의 침묵과 여백 속에 어떤 모습으로 쟁여져 있을까. 어떻게 그 말들은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말들을 흔들어 깨워서 움직이게 할까.
짧은 시 안으로 들어가 말하지 않은 말을 엿들어보니 왜 이 시선집이 짧은 시들로 묶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문장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가 얼마나 풍부한지, 읽으면 읽을수록 짧은 시가 어떻게 큰 시가 되는지 체험하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천양희의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시선집은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 같은 경험을 주는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 「발문」에서 - 김기택 (시인,동화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