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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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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nne Shap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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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근본적인 것. 우리를 구성하지만 그 안에선 살 수 없고 그 없이도 살 수 없는. 내게 수영의 의미를 설명한다는 건 맑고 잔잔한 물속 깊은 곳에 놓인 조개껍데기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저기, 선명하게 존재하지만 손을 뻗어 수면을 건드리는 순간, 잔물결에 굴절되고 마는. 조개껍데기는 다섯 개였다가 스물다섯 개가 되고, 나는 크고 작게 일렁이는 그것들 사이에서 몹시도 또렷하게 보였던 그 조개껍데기를 찾아 더듬거린다.
--- p.13 개인적으로 그리고 관념적으로도 나는 스스로를 운동선수, 그러니까 수영 선수였던 짧고도 강렬한 시절을 토대로 정의했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주 6일을 훈련하고 그 사이에는 최대한 많이 먹고 자려고 애썼던 나날들. 주말은 훈련이나 경기로 흘러갔다. 나는 비교적 빠른 선수였을 뿐, 최고는 아니었다. 전국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먹고, 여행하고, 샤워했지만 나는 최고가 아니었다. 꽤 괜찮았을 뿐. --- pp.17-18 수영 선수들의 목표는 오로지 시간에 맞춰진다. 적수와 대적한다거나 검투사처럼 대결한다기보다는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에 가깝다. 이 스포츠는 무심한 시계로 판정된다. 수영을 하던 시절, 나는 예선에서 늘 익숙한 얼굴들을 보았지만 그들을 이름만큼이나 시간 기록으로 기억했다. 10분의 1초, 100분의 1초 단위로. --- pp.38-39 문득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던 순간이 기억난다. 열네 살이었다. 아침 5시 30분, 훈련의 4분의 1이 지난 시점이다. 어설프게 수영을 하면서 바닥의 줄무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아직 워밍업 중인데도 이미 뼛속까지 지쳤다. 팔이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폐가 아프다. 울적하게 묻는다. 뭘 위한 건데? 가시지 않는 통증이, 들이쉬고-당기고-당기고-들이쉬고-당기고-당기는 기계적인 사이클이, 출렁거리는 물의 둔탁한 소음이 지긋지긋하다. 그 순간 섬광처럼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는 올림픽에 가지 않을 거야. 안 갈 거야. 나는 아니야. --- pp.52-53 트렌드를 따라가다 보면(실리콘 팔찌, 형광색 라이크라 등등) 덜컥 불안해진다. 형광 노란색 스웻셔츠에는 모기와 말벌이 꼬인다. 7학년 내내 나는 잘못된 옷들로, 프레피 스타일(너무 짙거나 밝은 색상의 저렴한 면 셔츠, 인조 가죽 페니 로퍼, 아크릴 소재의 케이블 니트 스웨터 같은)을 따라 하려 애쓰며 불행한 한 해를 보낸다. 당시 사진을 보면 슬프고 뻣뻣한 남자애 같은 소녀가 있다. --- p.59 훈련에서 느린 선수가 된다는 건 엄청난 압박감을 주고, 크로스 트레이닝―근교나 수영장 근처 지선도로를 따라 달리기, 인공 언덕을 끝없이 오르기―은 마냥 외롭다. 나는 달리기를 못해서 따라잡을 수가 없다. 절박하게, 비참하게, 다른 사람들보다 30분은 더 뒤처진 채 달린다. 눈물이 차오르고 옆구리에 경련이 인다. 고개를 숙이고 달리면서 비죽비죽한 바랭이 잡초가 자라는 도로변의 일렁임을 눈에 담는다. 보통의 삶들이 뿜어내는 무심한 회색빛 소음이 이토비코 육교 위로 휙휙 지나간다. --- pp.115-116 나는 언제나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좋은지, 무엇을 좋아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으려고 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가 내게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리를 두려고 애썼지만, 오빠와 똑같은 컨버스화를 신고 똑같은 청바지를 입었다. 유행하던 어깨 패드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을 빼면 나는 덩치가 더 작고 양성적인 버전의 오빠였다. --- pp.131 나는 ‘휴가’라는 걸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해변에서는 어떻게 누워서 쉬어야 하는지, 손을 잡고 파도 속으로 뛰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저녁 식사 자리에는 뭘 입고 가야 하는지, 푹신한 호텔 가운을 입고 유유자적 걸어 다녀도 되는지, 마사지 예약은 어떻게 하는지 하나도 모른다. 첫날 나는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들고 부루퉁하게 침실로 향한다. 지금껏 한 번도 즐겨보지 못했던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됐다는 예감에 어쩐지 신경질이 난다. 이제는 내가 보통 사람이라는 생각, 옆 호텔에서 너바나를 듣던 그들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 pp.150-151 무심한 동물성이 모든 에로틱함을 능가한다. 예의 바른 무표정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내내 스치고 있다. 서로의 몸을, 털을, 비슷한 점들을. 나는 지금도 내가 젊은 수영 선수라고 느낀다. 탱크 수영복을 입은 원형 관처럼, 중성적이고 양성적인 운동선수라고. 그러나 스피도 수영복이 없다면 나는 물에 몸을 담근 사람, 그저 하나의 몸이다. 마흔에 가까워지며 나의 수영 자아는 결혼과 가족이라는 중력에 묶인 현실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간다. 수영은 내 몸을 떠난 젊음 그 자체이지만, 나는 빠르게 지금의 몸을 살아가고 있다. --- p.203 진료실에서 나는 평가지를 들고 의사에게 물었다. 몇 번을 더 작성해야 나아질 수 있나요. 그는 100번이라고 답했다. 나는 수영 훈련 때처럼 그 숫자를 받아들였다. 100번 할 수 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산만한 생각들을 지우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6개월 동안 150번의 평가지를 작성하고 나는 나아진다. --- pp.230 특별함에 대한 생각은 잠에 들지 못하는 어느 밤에 불쑥 떠오른다. 좋은 운동선수로서 우리는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여겼고, 지시받은 대로 순순히 정확한 루틴을 반복했다. 나는 ‘특별함’이 요하는 한계에 대해 생각한다. 특별한 단 하나가 발생하도록, 언제일지는 몰라도, 아주 오랜 뒤라 하더라도,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련의 일들을 아주 잘,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백만 번 넘게 하는 것. 그러니 특별함이란―새벽 4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흐릿한 정신으로 스스로에게 말한다―누군가에 의해 인정받은, 엄격한 종류의 평범함이다. 뜻밖의 안도감이 밀려든다. --- p.237 시간을 압축하여 생각하는 일은 매력적이다. 일요일들로 이루어진 한 달, 하루에 지나가는 사계절 같은. 아마도 그래서 바느질이나 뜨개질이라는 비유가 시간이라는 관념과 무척 잘 어울리는 건지도 모른다. 얼마나 왔나 상대적으로 가늠해보기에 적격이니까. --- p.239 어느 밤에 술집에서 블러디 메리를 두 잔째 마시다가 나는 친구들에게 묻는다. 너무 하기 싫은데 어떻게든 억지로 하는 무언가가 있느냐고. 비크람 요가 육아, 일, 수영 훈련. 우리는 테이블을 두드리며 웃는다. 하나쯤은 정말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법이라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 p.240 장례식이 끝나고, 애덤의 친구들과 가족들은 미치 호수에 모여 레드 와인을 마시며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걷는다. 눈물이 닦인 말간 얼굴로, 함께여서 다행인 마음으로. 그날 밤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우리는 생일이라도 축하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쳐 보이지만, 모든 사진 속에서 우리는 웃고 있다. --- p.252 탈의실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시선을 피하는 왈츠를 추는 셈이다. 나는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 다른 여자들은 전부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몸을 단장하는 법부터 저마다의 몸으로 살아가는 법, 내가 수영하느라 전혀 배우지 못했던 모든 것들. --- p.256 여기, 이토록 많은 어른의 몸들이 드러나는 곳에서 나는 가장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한다. […] 날씬해 보이게 하는 검정 옷이나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세로무늬 따위가 없는 이곳에서는 분석하고 판단할 정보는 더 적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여지는 더 많다. 여기서 내 마음은 그저 ‘플러스 원’일 뿐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이나 잡지를 들고 올걸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경기를 지켜보며 조용히 앉아 있다. 오랜만에 가장 편안한 기분. --- pp.270-271 나는 수영장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오픈 워터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그리고 고독 속에서의 만족스러운 감각과 타인이 곁에 있을 때의 불안감을 비교해본다. 한계에 대해 생각한다. 한계가 있을 때 삶이란 얼마나 수월해지는지, 다루기 쉬워지는지. 통제하려는 나의 기질에 한계 개념은 잘 맞는다. --- p.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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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는 건 쉬웠어”
한때 삶의 전부였던 것과 이별하는 법 미처 닫지 못한 시간에 건네는 고요한 인사 이제는 예술가로 널리 각인되었기에, 수영 선수였던 섀프턴의 과거는 ‘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 나갈 정도였다’는 약간의 놀라움과 흥미가 섞인 명쾌한 문장으로 설명되곤 한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서사는 그렇게 간단히 정의되지 않는다. 새벽마다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물속으로 뛰어들던 시간이 있었다. 식단을 치밀하게 조절하고, 시간을 10분의 1초, 100분의 1초 단위로 나누어가며 묵묵히 그날치의 훈련을 해내던 날이, 뜻대로 되지 않아 새어나오는 좌절감을 겨우 틀어막던 날이 있었다. 뒤에서 무섭게 따라잡는 옆 레인 팀원을 볼 때의 철렁함, 바깥 레인으로 한 칸씩 밀려날 때의 두려움, 미친 듯이 저어대던 팔다리가 나가떨어져 더는 속도가 나지 않을 때의 울컥함이 있었다. 어느 날 물속을 나아가다 문득 올림픽에 나갈 수 없겠다고 깨달았을 때, 모든 감정이 스르르 빠져나가고 비어버린 마음 한쪽은 무엇으로도 쉽게 채울 수 없음이 당연했다. 그에게 수영은 “맑고 잔잔한 물속 깊은 곳에 놓인 조개껍데기”와 같았다. 저 앞에 선명히 보이지만,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물결에 굴절되어 흐려지는 것. 정말 잘하고 싶었고, 끝내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를 놓아주는 일을 십대에 이미 겪어낸 사람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남들보다 스스로의 감정과 세상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될까, 아니면 다시는 그 깊은 감정에 잠기지 않으려고 얕은 층위에 머무를까. 섀프턴은 전자였다. 수영을 그만둔 뒤에도 미처 끝을 맺지 못한 감정은 예술로 뻗어나가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 “분명한 것은 모든 시간의 토막이 지금의 우리를 형성한다는 것” 묵묵한 자기 단련이 데려다준 삶의 다음 층위 수영하던 시절 섀프턴의 곁에는 늘 시계가 있었다. 시계와의 경주에서 이기는 법은 그저 이를 악물고 나아가는 것이다. 가시지 않는 통증, 지겨움과 씨름하는 동안에도 시계는 제 속도로 무심히 째깍거리고, 근육은 활활 타는 종이처럼 뜨겁고 아프게 구부러진다. 그런 한편 물은 지상에서 따라다니던 만성적 고통이 잦아드는 유일한 공간이자, 따라가고 되짚을 수 있는 완벽함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섀프턴은 그 어디보다도 물속에서 몸을 가장 선연하게 느낀다. 수영을 그만둔 뒤 삶은 막연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네 벽과 바닥이 없고, 방향도 레일도 없는 물 밖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 그에게 새로 주어진 과제는 하나였다. “내가 잘하지만 더는 쓸 일이 없는 무언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알아내기.” 섀프턴은 답을 찾는다. 익숙한 수평의 자세를 떠나 수직으로 땅에 선 그를 지탱해준 것은 수영에서 배운 반복과 단련의 습관이었다. 수영장을 100바퀴 돌듯 100장의 드로잉을 그리는 동안 자기 단련의 힘은 무섭게 속도가 붙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섀프턴을 더 높은 층위로 끌어올린다. 수영에서 번져간 그의 작품들은 물을 머금은 듯 푸르게 빛난다. 글로 다 담아내지 못한 감정은 그림으로 얽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묘한 여운을 남긴다. 물 내음, 훈련하던 팀원들의 체취가 묻어나는 듯한 묘사들, 한 단락만 읽어도 곧바로 지난 시절이 밀려오는 듯한 섀프턴의 서술적 성취를 소설가 이주혜는 이렇게 설명한다. 평생 물에 이끌려 산 사람이 자신이 경험한 물에 대해 말할 때 느낄 수밖에 없는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열망과 성에 차지 않는 언어의 갈급함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결국 작가는 공감각의 파도처럼 몰려왔을 기억을 포착하기 위해 이미지로 곧장 환원되는 표현적 문장을 쓰고 긴 묘사를 대신하는 이미지를 한데 엮어 전달한다. 덕분에 우리는 텍스트에서 선명한 푸른 물을 차갑게 감각하고 얼룩 같은 색채에서 수영장의 염소 냄새와 양털 장갑, 말라붙은 케첩 냄새를 맡는다. “수영은 내 몸을 떠난 젊음 그 자체이지만, 나는 빠르게 지금의 몸을 살아가고 있다” 인내와 지속, 사랑을 멈추지 않는 법에 관하여 지금도 섀프턴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면 “오르기 시작하려면 무시해야 하는 잿빛 시시포스의 언덕”을 떠올린다. 수영에서 배운 것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그런 언덕을 묵묵히 올라가는 인내와 반복의 태도였다. 그것은 수영 이후의 삶으로 고스란히 넘어온다. 이 책에서 섀프턴은 소설과 영화, 예술작품 등을 가져와 삶을 살아내는 데 필요한 집중력과 인내를 빗댄다. 그중에서도 피터 벤츨리의 『죠스』는 그에게 특별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가 인간과 괴물의 극적인 대결을 그렸다면, 원작 소설 속 상어는 불륜, 탐욕, 강박, 폭력 같은 인간 내면의 충동을 은유하는 존재다. 상어는 평온한 일상을 습격해 우리가 애써 지키고자 하는 것을 흔들고 유혹한다. 예술가이자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섀프턴 역시 그 유혹들을 마주한다. 창작을 멈추고 싶어지는 순간들,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은 감정을 애써 누르며 섀프턴은 마음을 유지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수영을 사랑했던 방식으로, 온몸을 던져 반복하고 인내하며 사랑을 지키는 법을. 이제 섀프턴의 삶에서 수영은 점점 과거의 물웅덩이로 멀어지지만 그 안에서 익힌 사랑하고 인내하는 기억은 예술과 삶을 살아가는 그의 방식에 지금도 깊이 새겨져 있다. 수영을 사랑하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비슷하다. 키스가 일어나는 방식처럼, 중력처럼 자연스러운 일. 타협과 희생, 이별도 찾아온다. 마음은 그저 몇 번의 아쉬움 그 이상인 고통을 겪을 수 있고, 타이밍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제치고 갈 수도 있고, 불안해서 미칠 것 같을 수도 있고,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다. […] 왜 수영을 그만두었을까, 왜 토론토를, 캐나다를 떠났을까 생각해본다. 두 개의 면, 두 개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선연하게 느낀다. 운동선수와 보통의 성인이라는 분류 말고, 몸의 삶과 마음의 삶 말이다. 해외 언론 리뷰 『수영 그만두기』는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어떻게 따라다니는지, 그리고 현재 속에서 그 인물이 어떻게 살아 있는지 탐색한다. 섀프턴은 호기심과 회한, 지성, 그리고 우아함을 담아 글을 쓴다. 운동선수로서의 훈련이 예술을 창작하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또 예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내가 또 다른 종류의 인내-배우자가 되는 인내, 사랑을 지속하는 인내-를 어떻게 길러내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것에 하나라도 마음을 쏟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보기 드문 선물이 될 것이다. - 실라 헤티, 『어떻게 살아야 할까(How Should a Person Be)?』 저자 『수영 그만두기』는 단어와 그림을 결합해 씁쓸하면서도 아름다운 과거의 한 부분을 마치 병 속에 가둬놓은 향기처럼 완전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이야기로도, 하나의 오브제로도 아름답다. 무언가에서 대단함의 경지에 다다르고 싶을 때, 무언가를 정말 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나는 이 책에 깊이 감동받았다. 반은 예상했고 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 존 제레미아 설리번, 『펄프헤드(Pulphead)』 저자 물속에 잠긴 채 조용히 흘러간 시간들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이 책은 글로도 아름답고 시각적으로도 눈부시다. 『수영 그만두기』는 단순히 수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경쟁 스포츠에서 훈련하는 것이 어떻게 루틴과 인내심, 좋은 습관을 길러내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예술, 소통, 심지어 사랑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 니콜라 조이스,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타고난 일러스트레이터인 린 섀프턴의 점묘화처럼 섬세하고 조용히 깊은 울림을 주는 회고록. 그는 그림을 그릴 때만큼이나 확고한 자신감으로 글을 쓰면서 수영이 지닌 강렬함과 원초적 고독함 속에 피어나는 쾌감을 인상적으로 불러낸다. 밀도 높은 시와 같은 그의 산문은 지극히 영리하고 매력적이다. 주변에 수영을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건네고 싶어질 것이다. - 드와이트 가너,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섀프턴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통찰을 통해 이 책이 사실 수영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낸다. 『수영 그만두기』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성공에 얽힌 부끄럽고도 말하지 못했던 불안에 대한 다정하고 아름다운 명상록이다. - 스테이시 메이 폴스, 『내셔널 포스트(The National Post)』 탁월하고, 독특하며, 감동적인 책이다. 한 사람의 삶에 깊이 잠수하는 듯한 경험을 준다. 섀프턴은 사소한 것에 깃든 향수를 포착하는 소설가의 본능을 지녔으며, 그의 언어는 그가 묘사하는 가을날처럼 청명하고 또렷하다. - 케이트 캘러웨이, 『옵저버(The Observer)』 경쟁 수영에 관한 서늘한 회고록이자, 차라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 불러도 좋을 책. 섀프턴은 결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며, 물속이라는 삶의 신화적 묘약을 독창적으로 제시한다. -『뉴스위크(Newswe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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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수영을 할 때면 무심코 흉터를 만지듯 물에 몸을 담근다’는 문장에서 우리는 기억이 한 시절에 대한 경의이자 애도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프게 짐작한다. 기억이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도래한다는 점에서 기억을 통한 애도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작가가 소환해낸 물의 기억이 ‘몸의 내장만큼이나 내밀한’ 우리 저마다의 기억을 불러와 그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익숙한 푸른 물에 턱끝까지 잠겨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수영장 100바퀴를 돌듯, 스케치북 100장을 채우듯 어떤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갈 때 그중 어느 토막이 훗날 기억이 되어 돌아올지 우리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시간의 토막이 지금의 우리를 형성한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와 같으면서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섀프턴의 기억술(memoir)은 기억이 애도가 되고 애도가 새로운 현재를 구성한다는 더없이 산뜻하고 조금은 서글픈 증거다. - 이주혜 (번역가,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