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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미술의 상징 코드
상징으로 읽는 옛사람들의 마음
허균
돌베개 2025.09.09.
베스트
미술 98위 예술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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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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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펴내며

1 삶의 안녕과 행복을 빌다: 길상·벽사의 미술

삼신선도와 자라 돌 - 선계를 꿈꾸다
봉황과 용 - 하늘의 칭송과 상서를 기대하며
윤리문자도 - 천복을 받을 만한 이유
세화 - 탈 없고 행복한 한 해를 기원하다
벽사의 미술 - 귀신과 사기를 물리치다

2 망자를 위로하고 배웅하다: 장송과 명계의 미술

묘장 벽화 - 사후 거처를 장식하다
부장품 - 죽은 이를 위한 물품
상여 장식 - 떠나는 길을 장식하다
능역 조형물 - 선왕을 기리고 지키다
감모여재도 - 조상 신이 머무는 곳
불교의 장송 미술 - 극락왕생과 무상·무아를 표상하다

3 방위와 향방에 질서를 담다: 삶을 둘러싼 공간의 미술

방위의 인문학 - 동서남북의 상징체계
향배와 좌향 - 바라보는 방향에 담긴 질서
좌우와 내외 - 공간을 설정하는 원칙
질서를 거스른 공간들

4 우주의 원리를 형상화하다: 천문과 상수의 미술

우주 모형 - 인문 제도에 천문을 본뜨다
해와 달 - 우주의 음양을 드러내다
별 - 인간의 수명과 길흉을 관장하다
상수 - 수에 담긴 우주의 이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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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1

許鈞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미술사학을 전공해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편수연구원, 우리문화연구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국립문화재연구소 외 부용역과제 평가자문위원,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KBS [TV쇼 진품명품]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과 한국민화학회 고문이다.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 『사찰 100美 100選』 『한국의 서원, 넓고 깊은 사색의 세계』 및 공저로 『전북문화 찾아가기』 『충남문화 찾아가기』 『전남문화 찾아가기』 등을 비롯해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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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9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464g | 135*210*19mm
ISBN13
9791194442509

책 속으로

사람은 신화와 전설을 만들고, 신화와 전설은 다시 사람의 관념과 정신세계를 지배한다. 자라는 본래 자연 생태계에 서식하는 현생 동물이지만, 고대인들의 관념 속에서는 삼신선도를 떠받치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돌로 만든 조형물일지라도 자라가 놓인 그 공간은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한 해도의 선계로 변모하게 된다. --- p.18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 중에 ‘화(禍)를 부른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어떤 화를 입었을 때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인식이 잠재돼 있다. 복(福) 역시 마찬가지다. 옛사람들은 복이란 스스로 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 믿었다. 한국인에게 있어 화복은 결국 사람의 선악에 호응하여 하늘이 내리는 것이었다. --- p.32

세화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이 앞서 말한 대문과 중문에 붙이는 문배(門排) 그림이다. 대문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잡인의 출입을 금하고 악귀와 부정을 막기 위해 금줄을 치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입춘방(立春榜)을 붙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문과 관련된 민속과 풍속이 많은 것은, 대문이 사람뿐만 아니라 사기(邪氣)나 귀신이 드나드는 통로로 여겨졌고, 길흉화복의 출입이 모두 이 문에 달려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 p.49

개를 주인공으로 한 벽사화 가운데는 눈이 셋 달린 개가 등장하는 그림도 있다. ‘당삼목구’(唐三目狗)라 하는데, 눈을 세 개로 표현한 것은 사귀를 수색하는 벽사의 영력(靈力)을 배가시키기 위한 묘책이다. 장례나 나례 때 귀신을 쫓기 위해 쓰는 방상시 가면의 눈이 세 개인 것과 같은 이치다. 매를 함께 그린 것도 있는데, 이 역시 벽사의 영력을 높이기 위한 술책이다. --- p.63

사람이 죽어 저승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자칫 길을 잃으면 망자는 원령이 되어 이승을 떠돌며 산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다. 강과 바다를 건너는 데는 배를 이용하면 되지만, 멀고 험한 육로를 갈 때는 도중에 헤매지 않고 바른길을 따라 저승으로 편히 갈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수레다. ‘발인’(發?)이란 수레바퀴의 굄목[?]을 제거하고 저승을 향해 떠나는 것을 뜻한다. 저승 가는 길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 샛길로 빠지거나 엉뚱한 갈림길에서 방황할 일도 없고, 지름길을 가다가 가시덤불을 만날 위험이나 중도에 포기할 걱정도 없다. ‘명계의 지남거’로 여겨지는 수레 모양 토기를 무덤 속에 껴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94~95

그렇다면 귀신은 무엇인가? 선한 존재 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이 물음에 대해 명확하게 답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귀신은 그 본체가 은미(隱微)해서 실제로 보거나 겪어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귀’라는 단어 속에 그 정체가 은근히 드러나 있다. ‘귀신도 모른다’, ‘귀신조차 넘보지 못한다’, ‘귀신처럼 맞춘다’라는 표현에서 귀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귀신이 도왔다’라고 했을 때의 귀신은 수호자가 된다. ‘귀신이 울고 간다’라고 할 경우의 귀신은 감성적 존재이고, ‘귀신 나오겠다’라고 할 때의 귀신은 어지럽고 음습한 곳에 사는 사악한 존재가 된다. 또 어떤 사람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귀신처럼 군다’라고 말했다면 이 귀신은 해를 끼치는 사납고 악독한 존재가 된다. ‘귀신을 쫓는다’라는 말에서 귀신은 쫓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그 귀신을 쫓는 일도 다른 귀신이 한다. 이처럼 귀신에 관한 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정사이원론(正邪二元論)이 자연스럽게 깃들어 있다. --- p.133

사람이 죽어 시신을 입관할 때 그 밑에 까는 판자를 칠성판이라고 한다. 한 조각의 판자에 북두칠성 모양을 본뜬 일곱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칠성판은 나무판에 북두칠성을 결합해 신체화(神體化)한 것으로 일종의 무구(巫具)와 같은 성격을 띤다. 북두칠성을 신체로 삼은 이유는 남두육성(南斗六星)이 양(陽)을 주관하고 생(生)을 상징하는 데 반해, 북두칠성은 음을 주관하고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칠성판 위에 시신을 안치하는 것은 망자를 음(陰)의 자리, 즉 생명의 근원으로 되돌린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 애초에 북극성과 북두칠성은 불교 교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삼성각 등 북극성과 북두칠성 신을 모신 전각이 사찰 경내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사찰 경영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숭유억불을 건국 이념으로 삼고 출발한 조선 사회에서 왕족과 관련된 원찰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사찰은 경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해결책으로 절에 재(齊), 불공 등의 기복 의식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무교의 성수 신앙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 p.255~257

출판사 리뷰

삶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던 옛사람들의 마음

옛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쁜 기운과 귀신이 삶을 위협한다고 믿었다. 이를 막고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궁궐과 절, 서민들의 집안까지 다양한 상징적 장치가 곳곳에 마련되었다. 대문에는 호랑이나 문신(門神)을 그린 문배 그림을 붙였고, 절의 법당은 무서운 얼굴의 귀면 기와로 지붕을 장식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민간에서는 마을 수호신당에 솔가지, 붉은 고추, 숯을 꿰어 만든 금줄을 걸어 잡귀의 출입을 막았다. 왕릉에는 돌로 만든 석수(石獸)가 서서 망자의 안식을 지켰다. 그림·조형물·건축물 등 삶을 둘러싼 모든 공간에 동원된 이 상징들은 재앙을 막고 복을 불러들이고자 하는 길상(吉祥)·벽사(?邪)의 장치였다.

복과 화는 결국 사람의 행실에서 비롯되며, 그 행실이 하늘의 감응으로 이어진다고 여겨졌다. 즉, 길상은 단순한 미신이나 장식이 아니라, 인간의 바람직한 삶을 하늘의 뜻과 잇는 질서였다. 효(孝)·충(忠)·예(禮) 같은 덕목을 글씨로 담아낸 윤리문자도 병풍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생각은 매해 정초에 그려 붙이던 세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세화는 단순한 장식용 그림이라기보다, 질병과 재난 없는 한 해를 기원하는 벽사진경의 장치였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글귀나, 까치호랑이를 그린 호작도에는 행복과 무탈함을 빌던 소망이 담겨 있었다.

길상은 화려한 예술적 성취보다도 삶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옛사람들은 하늘의 이치에 따르는 삶을 바람직하게 여겼고, 그 속에서 평안과 행복을 구했다. 궁궐의 현판, 절의 장식, 집안의 작은 부적까지, 삶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던 옛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하나의 코드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런 흔적은 오늘날에도 새해 덕담이나 집안에 두는 작은 장식들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길상이란 결국 삶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보편적 열망인 것이다.

귀신은 어떤 존재였을까?
글로벌 대중문화 코드가 된 한국적 상징 코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성공은 한국적 무속 전통이 어떻게 세계적 문화 코드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중요한 설정으로 등장하는 ‘혼문’은 앞서 설명한 길상·벽사의 개념과도 닮아있다.

그렇다면 ‘데몬’, 즉 귀(鬼)는 어떤 존재였을까? ‘케데헌’의 주인공 루미는 귀신을 잡는 존재이기도 하며, 그녀 자신이 귀신이기도 하다. 귀신은 선한 존재일까, 아니면 악한 존재일까? 『전통 미술의 상징 코드』에 따르면 “귀신은 그 본체가 은미(隱微)하여 실제로 볼 수 없는 존재”로서 한마디로 답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표현을 통해 그 복합적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귀신도 모른다’, ‘귀신조차 넘보지 못한다’, ‘귀신처럼 맞춘다’라는 표현에서 귀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귀신이 도왔다’라고 했을 때의 귀신은 수호자가 된다. ‘귀신이 울고 간다’라고 할 경우의 귀신은 감성적 존재이고, ‘귀신 나오겠다’라고 할 때의 귀신은 어지럽고 음습한 곳에 사는 사악한 존재가 된다. 또 어떤 사람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귀신처럼 군다’라고 말했다면 이 귀신은 해를 끼치는 사납고 악독한 존재가 된다. ‘귀신을 쫓는다’라는 말에서 귀신은 쫓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그 귀신을 쫓는 일도 다른 귀신이 한다.”(133쪽)

이처럼 귀신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양가적 존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신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삶에 깊이 관여하는 존재로 받아들였다. 오늘날 ‘케데헌’이 세계인에게 어필하는 이유 역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삶의 의미와 질서를 찾으려는 보편적 욕망이 작품 속 한국적 상징과 잘 이어져 있기 때문 아닐까?

‘발인’은 본래 수레바퀴의 굄목을 뺀다는 뜻,
죽음을 대하는 옛사람들의 마음


수레가 굴러가려면 바퀴 앞의 굄목을 빼야 한다. ‘발인’(發?)은 본래 수레바퀴의 굄목[?]을 제거하는 일을 뜻한다. 그런데 이 행위가 장례 절차의 용어로 쓰이게 된 것은 옛사람들의 사생관과 관련이 있다. 우리 선조들은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는 길이 멀고 험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망자가 길을 잃지 않고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무덤 속에 수레바퀴 모양의 토기를 함께 묻어주었다.

조선의 실학자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위학지방도』(爲學之方圖)에서 “명계(冥界)의 지남거(指南車)”라는 표현을 썼다. ‘지남거’는 ‘정방향을 가리키는 수레’라는 뜻이다. 태곳적에 황제가 치우와 싸울 때, 치우가 피운 짙은 안개로 병사들이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자, 황제가 병사들을 인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전설 속의 물건이 바로 지남거다. 진(晉)나라 이후로 황제의 행차에도 이 수레가 앞길을 바로잡는 도구로 쓰였다고 한다.

이 발상이 장례 의례에 옮겨와, ‘발인’은 장례를 마치고 망자가 저승으로 떠나는 길이 곧고 평안하게 인도하기를 기원하는 말이 되었다. 죽음은 산자에게는 이별이지만, 망자에게는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라는 전통적 사고가 엿보인다.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바른길로 안내하고자 했던 마음, 그 속에 옛사람들의 사생관과 삶과 죽음을 잇는 상징적 철학이 담겨 있다.

일제가 옮겨 단 창덕궁·창경궁 문액, 아직 그대로…
문화재 복원과정에서 놓친 것들


전통 건축에서 ‘內’와 ‘外’는 단순한 안팎이 아니라 주체와 질서를 드러내는 중요한 개념이었다. 왕의 거처나 정치 공간은 ‘內’로, 그 주변은 자연스레 ‘外’로 규정되었는데, 이 질서에 따라 문의 현판인 문액은 밖[外]에서 안[內]으로 진입하는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바깥에 달렸다.

1827년(순조 27년)에 제작된 〈동궐도〉(東闕圖)를 보면, 창덕궁 숙장문은 원래 인정전으로 진입하는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동쪽에 문액이 달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숙장문의 편액은 서쪽에 달려 있다. 어쩌다가 문액의 위치가 바뀌었을까? “구한말 순종이 왕권을 잃고 창덕궁에 칩거하게 되면서 희정당은 내전(內殿)이 된다. 1908년쯤 일제는 순종의 편익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어차(御車)가 돈화문에서부터 진선문과 숙정문을 거쳐 희정당까지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신작로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돈화문 앞 월대가 철거되고 숙장문은 희정당으로 진입하는 문처럼 기능하게 된다. 이때 일제가 희정당 진입 방향에 맞추어 편액을 문의 서쪽에 옮겨 단 것으로 추정”된다.(202~204쪽) 창덕궁 복원 사업에서 순종 때의 상태 그대로 편액이 걸린 채 숙장문이 복원된 것이다.

창경궁 빈양문 역시 동쪽에 달려 있어야 할 문액이 현재 서쪽에 달려 있다. 『궁궐지』에 따르면 이 일대 방위의 중심, 즉 ‘內’로 설정된 곳은 함인정이었다. ‘빈양’(賓陽)이라는 이름은 『서경』에서 ‘인빈출일’(寅賓出日)이라는 구절의 의미를 따온 것인데, 이는 해가 뜨고 생명의 기운이 시작되는 방위인 ‘동’쪽을 상징하는 것으로, 빈양문이 동문임을 암시한다. 전통적 내외 질서와 방위의 상징체계에 비추어 볼 때, 빈양문 문액은 함인정으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치, 즉 명정전 쪽에 걸려 있는 것이 옳다. 이는 단순히 현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 건축이 지녔던 내외의 질서와 방위 개념을 거스르는 왜곡이다.

해와 달, 북두칠성과 북극성…
그림·조형물·의례 속으로 내려온 하늘


옛사람들에게 해·달·별은 단순한 천체가 아니었다. 삼광(三光)이라 불린 이 하늘의 빛은 우주의 음양과 영원성,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상징이었다. 특히 북극성과 북두칠성은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별로 여겨졌으며, 무덤 속에 묻힌 칠성판과 칠성도는 망자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장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원래 불교와 무관했던 칠성 신앙이 조선시대에 사찰 안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 아래 재정난을 겪던 사찰들이 현실적 해법으로 무속 신앙을 수용하면서, 북극성과 북두칠성은 불교적 도상으로 변모했다. 그렇게 치성광여래와 칠여래는 대중이 장수와 복을 빌 수 있는 친근한 신앙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별은 정치와도 맞닿아 있었다. 공자는 『논어』에서 북극성을 임금에 빗대며 “(임금이) 덕정을 펴게 되면 북극성이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뭇별들이 옹위하는 것처럼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비롯된 ‘공북’(拱北)이라는 개념은 임금이 바른 정치를 하면 신하와 백성도 자연스레 군주를 잘 따르게 됨을 뜻하게 되었다. 고창읍성의 공북루, 공주 공산성의 공북루, 진주성의 공북문루 등 우리나라 곳곳에 ‘공북’이라는 액호를 가진 문루나 정자의 수가 적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서양이 별에서 과학을 읽었다면, 우리 조상들은 별에서 삶의 질서를 읽었다. 옛사람들에게 별을 본다는 건 곧 세상의 질서와 사람의 길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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