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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에서 세잔까지
서양회화사
양정무
시공아트 200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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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2. 북유럽 르네상스
3.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
4. 17세기 회화
5. 로코코에서 고야까지
6. 낭만주의에서 세잔까지

저자 소개 1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원장.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발견한 백과사전의 삽화에 마음을 빼앗긴 후 미술을 운명이라 믿게 됐다. 유학시절 도서관보다 박물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미술관, 박물관 가이드를 가장 재미있게 하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탔다.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 지금도 여러 단체와 기관에서 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 인기 강사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술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원장이다. 한국예술연구소 소장과 19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원장.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발견한 백과사전의 삽화에 마음을 빼앗긴 후 미술을 운명이라 믿게 됐다. 유학시절 도서관보다 박물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미술관, 박물관 가이드를 가장 재미있게 하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탔다.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 지금도 여러 단체와 기관에서 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 인기 강사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술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원장이다. 한국예술연구소 소장과 19대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 한국미술경영학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와 메릴랜드 미술대학에서 방문교수로 미술사를 연구하는 등 학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양미술의 발전을 상업주의와 연결시킨 연구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문학의 꽃’으로 불리는 미술사를 우리 사회에 알리는 데 관심이 많다. 국립중앙박물관 강의를 비롯해 다양한 대중강연과 학술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네이버, 매경이코노미, 중앙일보 등 여러 매체에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8권,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내셔널 갤러리 특별판』,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렌체』, 『상인과 미술』, 『그림값의 비밀』, 『벌거벗은 미술관』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는 『신미술사학』, 『조토에서 세잔까지-서양회화사』, 『그리스 미술』이 있다.

미디어
KBS 〈예썰의 전당〉(2022~2023년), tvN 〈금요일, 금요일 밤에〉 ‘신기한 미술나라’(2020년), jtbc 〈차이나는 클라스〉(2018년 12월, 2019년 8월, 2020년 6월, 2022년 5월), tvN 〈어쩌다 어른〉(2017년), EBS 특별기획 〈통찰〉(2016년)

양정무의 다른 상품

저자 : 마이클 리비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화가의 초상화』『로코코에서 프랑스 혁명까지-18세기 회화의 주요 경향』『오스만 제국의 미술』등 많은 저서를 냈다. 1968년에는 『초기 르네상스 미술사』로 호손든 상을 수상하였다. 1963-1964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 1994-1995년에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미술사 석좌교수를 지냈고 이때 뉴욕의 라이츠먼 강연회에서 강연을 하였는데, 이 원고는 『궁정 미술』로 출간되었다. 1973-1986년에는 런던 국립미술관의 관장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저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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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8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31쪽 | 637g | 148*210*30mm
ISBN13
9788952710161

책 속으로

보나르나 비야르, 그 밖의 다른 나비파 화가들은 신인상주의 양식을 발전시키기 전에 다른 심미주의자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폴 고갱의 '상징주의'에 적지 아니 영향받았다. 원래 고갱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으로서 인상파들을 후원하고 35세까지는 아마추어 화가였지만, 회사를 사직하고 난 후 전업 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그간 알려졌듯이 가족과 사업으로부터 무책임하게 벗어나려고 내린 것은 아니었다. 고갱은 그림을 그려 가족들을 부양하려고 계속 노력하였고, 이러한 노력이 실패하자 다른 직업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의 화풍은 처음에는 인상주의였다가 (반 고흐와 친구로 지내던 동안은) 표현주의적 종교화로, 다음에는 상징주의 시로 변모했다.

고갱도 거대한 업적을 이루어 낸 다른 천재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천재적 창의성이 샘솟는 초기에는 지나치게 섬세한 화풍에 몰두했었다. 고갱은 1891년에 비로소 타히티로 탈출하여 그곳에서 자신의 양식을 발견했는데, 그의 화풍은 사망 후에 근대 회화의 초석으로 인정받았다. 중간에 파리에 잠시 머무른 시간을 빼면 그는 남태평양 타히티와 후에는 마르케사스 섬에서 살았으며, 가난과 매독으로 고생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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