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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원효의 무애아 진여의 세계
2. 대각 국사의 선교일치
3. 진각의 개안의 세계
4. 무학 대사와 석왕사기
5. 보우의 불교 중흥의 열망
6. 나옹의 격외정신
7. 서산의 돈오와 직관
8. 진묵의 미완의 전설
9. 소요태능의 선시의 미학
10. 경허, 그는 걸림없는 초인인가
11. 만공의 초월적 자기 만남
12. 혜월의 천진과 부처
13. 남전 전통선의 재현
14. 운봉의 살불살조의 정신
15. 효봉의 삶과 죽음의 완성
16. 금오의 오도적 삶과 자유
17. 고봉의 파격의 자유와 해탈
18. 지월 선사의 고행과 견성
19. 향곡의 자기회귀

저자 소개 1

194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1963년 밀양 표충사로 출가했다. 그 후 용주사, 청암사, 범어사에서 수행하며 한역경전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였으며 10년 동안 직지사, 동화사, 법주사, 불국사 승가대학에서 한역경전을 강의하였다. 불교신문ㆍ법보신문 편집국장 및 주필을 지냈으며 불교방송 상무,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동국학원 감사, 치악산 구룡사 주지, 불교신문 사장을 역임했다.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선사들의 삶과 사상을 다룬 글들을 선보였다.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가?’라는 불교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 『열반제』를 비롯해, 해
194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1963년 밀양 표충사로 출가했다. 그 후 용주사, 청암사, 범어사에서 수행하며 한역경전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였으며 10년 동안 직지사, 동화사, 법주사, 불국사 승가대학에서 한역경전을 강의하였다. 불교신문ㆍ법보신문 편집국장 및 주필을 지냈으며 불교방송 상무,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동국학원 감사, 치악산 구룡사 주지, 불교신문 사장을 역임했다.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선사들의 삶과 사상을 다룬 글들을 선보였다.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가?’라는 불교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 『열반제』를 비롯해, 해탈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경허스님의 생애를 다룬 장편소설 『슬플 때마다 우리 곁에 오는 초인』을 발표하였다.
그 밖의 저서로는 『깨친 사람을 찾아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가』, 『선재의 천수천안』, 역대종정법어집인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나』 , 『걸레중광평전』 등이 있다.
현재는 만행의 삶을 살기 위해 호압사의 운수(雲水)로 있으며 오랫동안 그려 온 기다림의 시간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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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86쪽 | 442g | 148*210*20mm
ISBN13
9788975611360

책 속으로

고려 불교사에 있어 가장 화려한 배경을 가지고 출가한 사문이 누구냐면 누구나 서슴없이 의천(義天) 대각국사(大覺國師)를 든다. 그는 고려 문종(文宗)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왕조의 후예로서 출가한 삶을 영위한 사람인 동시에 송(宋)나라 문물과 불교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은 유학승이며, 교를 중심하여 선교(禪敎) 통일을 주장한 이론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각(大覺)은 고려 불교사에 있어 선종의 선지식으로 남지 않고, 송나라 천태종(天台宗)의 교의를 수입하여 사분 오열이 된 우리 나라 불교에 또 하나 종파불교를 심어 놓은 장본인으로 남고 있다.
특히 그가 외친 교관쌍수(敎觀雙修)는 선교의 많은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드디어 왕실 불교로 다른 세력들을 강제하는 흔적만 남기고 있는데, 그는 이러한 회한으로 인해 말년에 가서 원효(元曉)를 흠모하여 구경(究竟) 귀의하고 있다.
그러나 대각과 원효 사이에는 서로 닮을 수 없는 개성이 있고 자성에 도달한 지혜에 차이가 있었다. 원효가 귀족 출신으로 출가하여 오직 독창적으로 신라불교의 지성으로 자기 개안을 획득하여 민중의 고통과 절망을 실험하고 구제한 구도자라면, 대각(大覺)은 왕족의 배경과 왕자의 신분으로 출가하여 스스로 송나라에 들어가 외래 불교를 익힌 유학승이다.

대각의 행장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그는 고려 속에서 구도자의 개오를 얻지 못하고 오직 송나라의 불교만이 자기를 구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곳이 자신의 정각을 성취할 피안지라고 자각하였지만, 원효는 이와 반대로 당나라 유학길에서 구도의 실재적 목적이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일체를 요의(了義)한 해동(海東)의 성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원효의 수행 행장은 불타의 구도 행각과 일치하고 있다. 불타가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수행하고 정각을 성취하여 다시 길에서 열반에 든 것을 볼 때에 길은 불타에게 있어 해탈의 고향이었고 현장이었다.

길은 곧 사회이고 사회는 고통이라는 것을 불타 자신이 철저히 체험하여 해탈의 의미를 고통받는 중생에게서 찾은 것이다. 그래서 원효는 왕조 불교에 귀의하는 귀성객이 되지 않고 민중의 고통 속에서 자기를 실현하였던 것이다. 그는 고통과 절망을 안고 민중을 볼 때마다 '고통을 확인하지 않는 부처와 보리(普提) 그리고 선지식이 필요 있겠는가?'하고 안일에 빠져 있는 구도자를 질타하였다.

---pp.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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