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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er 1
침묵하는 사랑 · 009 화마 · 035 만화 속의 나 · 057 교차로 · 078 Layer 2 비터 스위트 셰이커 · 125 잔에 담긴 기억 · 145 강철과 불꽃 · 154 벼려진 왕관 · 178 락스타 북카페 · 188 픽셀로 그린 심장 · 201 Layer 3 공존의 심리학 · 231 용이 된 남자 · 257 폐허 위 삼중주 · 267 Layer 4 공전의 궤적 · 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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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항상 도서관 창가 네 번째 테이블에 앉았다.
--- p.1 태양광 패널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고요한 버스 안에서, 소녀와 소년은 이따금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웃었다. 버스에서 내린 둘은 좁은 우산 아래서 천천히 걸었다. 빗소리가 귓가에 리듬을 만들고, 거리의 불빛이 물웅덩이에 반사되어 흔들렸다. 그녀는 가끔 민기의 팔이 스치면 아래를 보며 수줍게 웃었다. --- p.14 「침묵하는 사랑」 중에서 그가 불 주먹을 내질렀다. 뜨겁고 강렬한 분노가 다가왔다. 피하지 않았다. 대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힘껏 끌어안았다. “뭐, 뭐 하는 짓이야! ” “딱 한 번만 안아 줘. 아버지.” 그는 나를 팔꿈치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하지만 나는 더욱 강하게 껴안았다. 우리는 그 옛날 처음처럼 하나가 되었다. 이윽고 나는, 온몸을 발화시켰다. --- p.54 「화마」 중에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투명 칸에 낡은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아내의 미소. 병실에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속삭였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여보, 늘 후회 없이 살아. 알지? 사랑해…….” ‘후회 없이……. 차라리 30초 능력 따위 없었더라면 미련이 덜할 텐데.’ --- p.118 「교차로」 중에서 사장님이 ‘아날로그 성지’라고 부르는 이곳은 2050년대 들어 멸종 위기에 처한 유사 천연기념물 공간이다. 종이 사용 제한 정책 때문에 신간은 대부분 전자책으로만 나오고, 양자 공명 기술을 통해 정보를 뇌로 이동하는 방식도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세태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가게 천장을 올려다보면 높은 층고 끝까지 빼곡히 꽂힌 책들이 사람을 압도한다. 테이블 다섯 개가 놓인 작은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책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 p.191 「락스타 북카페」 중에서 창 너머 도시의 불빛 위로 거대한 물체가 떠 있었다. 검은 광택의 디스크 형태, 둥글고 매끄러운 외형에, 축구장 열 개는 될 법한 크기. 몇 초마다 한 번씩 눈을 찌를 듯한 섬광이 번쩍였다. 건물 유리창이 미세하게 진동했고, 귀를 후벼 파는 듯한 낮은 윙윙거림이 공기를 긁어댔다. 거칠게 풍겨 오는 끝 모를 위압감 앞에서 도시의 불빛들이 마치 촛불처럼 흔들렸다. --- p.214 「픽셀로 그린 심장」 중에서 “재이야, 넌 몰라, 내가 어떤 걸 목격했는지. 글쎄, 어쩌면 네가 말한 대로 순리를 따라야 하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끝내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 사람들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해. 그리고 우월한 대상은 시기하지. 그런데 우리는 거기 둘 다 해당하네? 다시 평화가 온다고 해도, 초인들이 소수인 이상 평범한 인간들에게 사람다운 대접을 받기는 글렀어.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려면, 우위에 있는 자가 누군지 그들의 머릿속에 똑똑히 각인시켜 놓아야 해. 다시는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 p.241 「공존의 심리학」 중에서 흑백의 파도가 수평선 너머 도시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도시의 빛은 파도의 어둠을 깊이 드러낸다. 가까운 것은 먼 것을 아련하게, 먼 것은 가까운 것을 소중하게. 닿을 수 없지만 아름다운 관계가 한 프레임 안에서 조화롭다. 바다와 육지, 현재와 미래, 그녀와 그가 마주한 경계선. --- p.336 「공전의 궤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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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로 그린 심장》은 초능력을 소재로 하되,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화려한 장면과 설정보다 능력자들이 겪는 상실, 집착, 죄책감, 고립 등 인간의 심리와 감정의 층위를 정교하게 그려내며,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유지한다.
초능력이라는 장르적 장치를 표면적 소재로 삼지만, 그 이면에서는 인간의 본질적 감정과 선택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능력자 서사’가 흔히 보여주는 영웅주의나 과장된 스펙터클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오히려 능력 때문에 더 깊어진 상처와 고립을 마주한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능력은 특별함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으로부터 멀어지는 ‘불편한 선물’에 가깝고, 이 불균형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사랑과 상실, 책임과 죄책감, 회피와 용기 사이에서 미세하게 흔들린다. 작품은 총 14편의 단편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얽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연작 구조가 흥미로운 이유는, 각 단편이 독립된 서사로 완결되면서도 서로에게 서서히 영향을 주는 방식이 매우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의 작은 선택이 다른 단편에서는 커다란 변수가 되어 사건을 흔들고, 한 편에서 스쳐 지나간 캐릭터가 다른 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 연결 방식은 독자에게 단순한 읽기의 즐거움을 넘어, 이야기의 결들을 스스로 찾아 조립해 나가는 ‘능동적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능력자의 존재는 화려하지만, 그들의 삶은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30초 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는 남자는 그 짧은 시간을 붙잡아 한 사람의 죽음을 막기 위한 집착과 후회를 반복하고, 불을 다루는 소년은 자신의 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오히려 주변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죽은 연인을 AI로 재현해 곁에 두고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는 기술과 인간 감정이 충돌하는 근미래 윤리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끌어온다. 이처럼 각 단편은 초능력의 스펙터클보다 감정의 심층부에 닿는 서사적 긴장을 전면에 배치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다양한 독자층에게 매력적이다. SF 독자에게는 고전적인 능력자 설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구조적 완성도와 근미래 설정이, 드라마·영화적 서사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장면 중심 구성과 빠른 전개가, 문학 독자에게는 상실·정체성·사랑 같은 보편적 감정의 섬세한 탐구가, 웹소설·웹툰 독자에게는 매 편이 가진 장면적 강렬함과 캐릭터 중심의 연결 구조가 각각 다르게 와닿는다. 특히 작품 곳곳에 배치된 상징적 장면-프러포즈 순간 연인이 픽셀처럼 무너져 멈추는 장면, 자신의 목소리를 두려워하게 된 소녀가 침묵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 화마를 다루던 소년이 타인의 상처를 끌어안는 선택을 하는 순간 등-은 웹툰·드라마·영화 등 다매체 확장성을 고려한 콘티처럼 선명한 이미지로 기억된다. 이열 작가의 문체는 간결하지만 서정적이며, 영화적 장면 구성과 속도감 있는 전개 속에서도 인물의 내면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독립된 단편이 하나의 연대기로 연결될 때 발생하는 울림은 최근 독자들이 추구하는 빠른 읽기와 깊은 감정의 조화를 충족시키는 드문 사례이다. 《픽셀로 그린 심장》은 ‘파편화된 개인이 서로를 어떻게 다시 연결하는가’라는 현대적 질문을 능력자라는 장르적 틀에 담아 더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사회에서 인간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지를 묻는 서사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에게 깊은 잔상을 남긴다. 결국 이 작품은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 인간의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가장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구현해 낸 한국형 컨템포러리 SF의 성취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한국 SF에서 연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장르 독자뿐 아니라 일반 교양 독자에게도 강한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술과 인간, 초능력과 감정이 정교하게 결합된 새로운 한국형 SF 서사로서 의미 있는 성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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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타인과 다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 한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그것은 비록 초능력을 가진 존재일지라도 다르지 않다.
초자연적인 힘을 얻게 된 이능력자들이 느끼는 지독한 외로움은 개인에서 사회로, 다시 사회에서 개인으로 되돌아온다. 외계인이나 사이비 집단의 공격보다 더 아픈 상처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유폐해야 하는 고독이다. 이능력자들은 각자의 사연 앞에서 쉽게 균열된다. 개인과 사회가 내놓은 ‘최선’이라는 선택이 과연 그들을 외로움에서 구원할 수 있을지, 독자는 끝까지 질문하게 된다. 《픽셀로 그린 심장》은 능력의 유무를 넘어선 인간의 입을 통해 묻는다. 당신도 외로울 때가 있느냐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느냐고.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선택한 사랑의 형태가 결국 다시 나를 지탱하게 된다는 사실?그 믿음을 조용하고도 깊게 건네는 이 책을 독자에게 추천한다. - 김현비 (도서 인플루언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