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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아침도 있단다
김재진
수오서재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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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내며

1장.

진주 / 곧 불어올 계절의 바람 / 더 늦기 전에 / 우리는 왜 꼭 지나고 나서 후회할까? / 끝 / 테라로사에 앉아 / 여우가 보고 싶다 /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 꿈을 꾸었다고 말하고 싶어 / 그때는 왜 몰랐을까? / 시인의 별 / 우리는 통과객일 뿐 / 군자란 / 여름에 보낸 편지 / 마지막 대화 / 하늘나라 / 패배의 증거 / 인생 / 비록 / 왕릉 가는 길 / 이 별에 다시 오면

2장.

가을의 완성 / 기차 소리가 들렸어 / 코끼리의 좌절 / 어떤 별똥별 / 에고와 신기루 / 원수의 이름 기억하듯 / 말벌에 대한 명상 / 세상의 알레르기 / 상사화 질 무렵 / 천국에서 온 편지 / 천사 /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 백조의 노래 / 은발 / 별이 빛나는 밤 / 가을과 겨울 사이 / 우리 살던 옛집에 / 아다지오 칸타빌레 /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3장.

소유의 언어와 존재의 언어 / 첫눈과 옛 생각 / 새들의 저녁 식사 / 망각 / 옛 친구 / 내 안의 실크로드 / 가위눌림 / 푸른 코끼리 / 형용사의 저녁 / 만월의 꿈 / 내 앞의 생이 끝나갈 때 / 벼랑의 노래 / 울컥 / 비어 있는 방 / 그냥 / 꽃의 배경 / 끝과 시작 / 이별을 향해 / 풍금

책 끝에 드리는 글

저자 소개 1

젊은 시절 우연히 만난 첼로 소리에 끌려 음대에 입학했다. 21세 되던 해 쓴 시가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그 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방송사 음악 피디로 일하며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받는 등 바쁜 젊은 시절을 보냈다. 40대 초, 홀연 직장을 떠나 바람처럼 떠돌며 인생의 신산辛酸을 겪었고, 명상과 마음공부에 빠져 여러 가지 수행법과 프로그램을 찾아다녔다. 온종일 벽만 바라보고 누워 지내던 병상의 노모가 빈 벽에 입을 그려 달라고 한 것을 계기로 배운 적 없는 그림을 시작해 지금
젊은 시절 우연히 만난 첼로 소리에 끌려 음대에 입학했다. 21세 되던 해 쓴 시가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그 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방송사 음악 피디로 일하며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받는 등 바쁜 젊은 시절을 보냈다.

40대 초, 홀연 직장을 떠나 바람처럼 떠돌며 인생의 신산辛酸을 겪었고, 명상과 마음공부에 빠져 여러 가지 수행법과 프로그램을 찾아다녔다. 온종일 벽만 바라보고 누워 지내던 병상의 노모가 빈 벽에 입을 그려 달라고 한 것을 계기로 배운 적 없는 그림을 시작해 지금까지 열 번의 개인전을 했다. ‘황혼이면 붓끝에 묻은 물감을 닦아내고, 새벽이면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떠올린다’는 그는 이제 파주의 작은 작업실에서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황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헤어지기 좋은 시간》, 에세이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장편소설 《달세뇨》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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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54쪽 | 298g | 125*215*17mm
ISBN13
9791193238837

책 속으로

삶에는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고,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결정은 신중해야 하고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물론 포기는 신중해야 하고 결정은 빠른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다 옳은 말이기도 하고 그른 말이기도 하다.
삶에 어떤 원칙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각자의 진실이 다르듯 원칙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잡초 우거진 바닥도 자꾸 걷다 보면 길이 되듯, 원칙 또한 잘 닦여 뻥 뚫린 탄탄대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 p.17 「진주」 중에서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뜻인지 황혼과 일몰에 대해 생각이 깊어진다. 나이를 먹으면 젊은 시절엔 몰랐던 것을 다시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깨달음이나 헤어짐 같은 것이다. 무심했던 것들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웬만한 헤어짐은 받아들이게 된다.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해될 때가 있고, 외면하며 지나쳤던 것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나를 불러 그 자리에 세워놓기도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고민보다 어떻게 떠나야 할까? 하는 고민이 더 커지고 있다.
--- p.20 「곧 불어올 계절의 바람」 중에서

더 늦기 전에 사진 하나 찍어둬야겠다.
어머니 가신 지 많은 세월 지났지만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할머니 이름을 가르쳐줘야겠다.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엄마도, 할머니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더 늦기 전에 알려줘야겠다.
더 늦기 전에 어릴 적 살던 집을 찾아
그 집 기둥에 금 그어둔
키 자란 흔적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더 늦기 전에
정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더 늦기 전에 쑥스러워 말 못 했던
사랑한다는 한마디를
사랑하는 사람들께 들려줘야겠다.
더 늦기 전에 용서 못 한 사람을 용서하고
더 늦기 전에 읽다가 접어둔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꽃이 피면 꽃이 핀다고
울먹이듯 전화하던 옛 친구 무덤을
더 늦기 전에 꽃 들고 찾아가 봐야겠다.
--- p.23 「더 늦기 전에」 중에서

여우고개를 넘자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졌지만 끝내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이 세상엔 있다. 여우가 사라지듯 기억 밖으로 사라져도 남기고 간 글 한 줄을 지울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이별이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이 두려워 숨 쉬지 않는 것과 같다.’
한 줄의 그 문장이 체로키 인디언의 격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훨씬 더 세월이 지난 뒤였다. 그때 나는 뭔가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그 두려움이 이별을 재촉했고 여우가 사라지듯 누군가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언젠가 우린 모두 사라져갈 존재다. 꼬리 감춘 여우처럼 사라져갈 존재다.
--- p.36 「여우가 보고 싶다」 중에서

가을이면 떨어지는 저 꽃들의 낙화는 결코 추락이 아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고 싶을 뿐 젊은 날의 짧았던 환희 또한 결코 추락이 아니다. 힘을 다해 개화했던 꽃들의 낙화는 소멸이 아니라 해탈이니 각고의 정진 끝에 찾아오는 대자유처럼 그것은 끈질긴 세속으로부터 홀연 벗어난 각성覺性과 같다.
--- p.48 「꿈을 꾸었다고 말하고 싶어」 중에서

언젠가부터 마음의 움직임이 생기면 즉시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 머뭇거리고 미루고 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며 행복이란 지금 이 순간 누려야 하는 것이라 깨달은 것이다. 행복하려면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 과거에 행복했던 일은 지나간 사건일 뿐 다시 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 또한 마찬가지다. 오지 않은 행복은 오다가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 살다 보면 그때가 행복했던 때였구나, 뒤늦게 깨달을 때가 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행복인 줄 모르고 그냥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 p.52 「그때는 왜 몰랐을까?」 중에서

자리도 마찬가지다. 옮기면 그 자리는 그 자리가 아니다. 자리는 당신이 잠깐 앉아 있는 의자와 같다. 자리가 당신이 아닌 것이다. 자리는 당신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줄 뿐 진정한 구원이 아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행복을 뜻한다. 이때의 행복은 소유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이 자리이건 물질이건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느끼는 행복이 구원이다. 그 외엔 신기루일 뿐이다.
--- p.115 「에고와 신기루」 중에서

친구와 달리 나는 건반을 볼 때마다 걸어온 인생을 생각한다. 반음만 낮출 수 있었다면 편했을 텐데 반음을 낮추지 못해 어렵게 왔다. 도와 레, 그리고 솔과 라 사이에 있는 반음 키를 누르듯 조금만 숙였어도 쉬웠을 건데. 그러고 보니 직장을 여섯 번이나 옮겼다. 퇴직을 여섯 번이나 했다는 말이다. 내 인생엔 아예 반음을 연주할 수 있는 검은 건반이 없는 것 같다. 도와 레 사이에 있는 반음 대신 실직과 실직 사이에 낀 채 나는 가끔씩 직장을 가지며 살아왔다. 반음 없이 뭔가를 연주하려고 했으니 실직이 체질에 맞는 것이다.
--- p.118 「원수의 이름 기억하듯」 중에서

자기 몸무게의 3백 배나 되는 큰 짐을 옮길 수 있는 힘센 꿀벌도 말벌에게 잡아먹힌다. 그러나 그런 말벌 집을 제거하는 힘을 가진 인간이 자신이 주인공인 드라마에서 행인A나 행인B 같은 엑스트라에 불과한 인간 말벌 때문에 불행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무대 위의 소품도 아니며 무대장치도 아니다. 각자의 드라마에서 우린 모두 감독이며 동시에 주연배우다. 인생은 기적이기도 하고 우연이기도 하지만 한낱 소품처럼 자신을 대우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예정된 불행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벌집을 제거하자 안식처를 잃은 말벌들은 처마 밑에 붙어 있거나 근처를 날아다니다가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지고 보이지를 않는다.
--- p.125 「말벌에 대한 명상」 중에서

마치 세상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미지일 때가 많다. 아는 것을 기지旣知라 하고, 모르는 것을 미지未知라고 하지만 우리는 사실 미지의 세계에 대해 동경보다 두려움을 품는 경우가 많다. 죽음도 그런 것 아닐까? 기지의 세계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앞서는 건 아닐까? 가보지 않은 곳,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마음을 위축시키고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 서는 것을 망설이게 하지만 모든 미지는 언제나 기지와 이어져 있다. 살아가는 매 순간 우리는 기지에서 미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 p.145 「백조의 노래」 중에서

이제 걸어가던 세월은 뛰어서 가고, 뛰어가던 세월은 날아서 간다. 어디가 목표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은 무섭게 속도를 낸다. 때로 그것은 폭주 기관차 같거나 초음속 스텔스기 같다. 미쳐버린 저 시간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가속도 붙은 시간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나 스스로 멈추는 것밖에 없다.
내 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분주함에서 고요함으로 바꾼다. 그것은 내 앞에 놓여 있는 많은 현실 속에서 고요함과 정지된 현실을 선택한다는 말이다. 눈앞에 수많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의식 상태에 걸맞은 현실만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자신의 의식 상태, 의식 수준에 맞춰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 p.153 「별이 빛나는 밤」 중에서

이대로 잠들어 아침이 와도 눈뜨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 또한 했던 날이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이대로 눈감아버리면 모든 게 끝나지 않을까 절망하는 날은 슈베르트 같은 천재가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아침이 오면 우리는 다시 눈을 뜨고, 막막함과 부대끼며 또 살아가야 한다. 죽을 것 같지만 인생은 여전히 슬픔 뒤에 기쁨이 오고, 절망 뒤에 희망이 싹튼다. 과거는 이미 사라진 시간이고,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는 시간이다. 다음 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생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 p.156 「가을과 겨울 사이」 중에서

행복이란 단순한 것이며 진정한 행복은 소유로부터 일어나지 않는다. 소유는 끝없는 갈망을 품고 있어 끝없이 더 가지려는 욕망으로 이어질 뿐 행복과는 멀다. 행복하길 원하지만 우리의 움직임은 늘 행복과는 다른 궤도에 있다. 행복하길 원하면서도 그것마저 소유의 차원에서 얻으려 한다. 움직이는 자로부터 나오는 진실한 움직임을 망각한 채 스스로 행복을 거부하기까지 한다. 행복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시 또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고통과 갈등과 슬픔의 과잉된 언어로 시는 세상살이의 신산辛酸을 기록한다. 그러나 기록은 시가 아니다. 시는 노래다. 노래는 결코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느끼고 공유될 뿐이다.
--- p.176 「소유의 언어와 존재의 언어」 중에서

잎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모든 것의 배경에 있는 그늘 같은 풍경들이 눈에 밟힌다. 진실은 중심이 아니라 배경에 있을 때가 많다. 한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 쌓인 바닥에 물감이 묻어 있다. 저 물감이 언제 묻었는지 기억이 없다. 중심에만 꽂혀 있어 배경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명상을 하다 보면 내가 ‘나’라고 믿고 있는 그 중심의 배경에 따로 존재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가 있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중심만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아집과 독선이 깨어져 나가는 순간이다.
꽃 떨어진 뒤 비로소 잎의 아름다움을 깨닫듯 더 큰 존재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단수인 줄 알았던 ‘내’가 수많은 존재들과 연결된 복수라는 사실을 덩달아 알아차리게 된다. 꽃은 지고, 멀리 있는 사람들이 그리운 계절이다. 언제나 배경이 되어주던 그들의 존재가 고맙고 또 그립다.

--- p.238 「꽃의 배경」 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리는 왜 꼭 지나고 나서 후회할까?”
삶을 성찰하는 작가 김재진의
느리게 노래하듯 흐르는 글들


“이제 걸어가던 세월은 뛰어서 가고, 뛰어가던 세월은 날아서 간다. 어디가 목표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은 무섭게 속도를 낸다. 미쳐버린 저 시간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나 스스로 멈추는 것밖에 없다. 내 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분주함에서 고요함으로 바꾼다.” 대학 시절 첼로를 전공했으나 스물한 살 때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고, 이후 단편소설, 중편소설이 당선되며 문단을 놀라게 했던 작가. 생업의 방편으로 방송사 피디로 더없이 바쁜 삶을 살다 돌연 직장을 떠나 명상과 마음공부에 빠져 여러 수행법을 찾아 세상을 방랑한 작가. 온종일 벽만 바라보고 누워 지내던 병상의 노모가 빈 벽에 입을 그려 달라고 한 것을 계기로 배운 적 없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껏 붓을 놓지 않고 있는 작가. 우리 삶도 사계절로 나눌 수 있다면, 김재진 작가는 5년 만에 선보이는 에세이에서 생의 늦가을을 깊고 진하게 그리고 있다.

그의 시구에서 빌려온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아침도 있단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날뛰는 삶의 속도, 주체하지 못하는 내면의 격돌, 후회와 번민으로만 남을까 두려운 삶의 순간들, 참지 못한 시간, 또 너무나 참아버린 시간을 담아냈다. 인생의 황혼을 맞아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후회, 그리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축적한 삶의 내공과 작가로서의 깊이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화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시각적인 요소와 시인이자 명상가로서의 깊은 성찰, 그리고 비움의 미학이 돋보이는 에세이와 시로 이 책을 구성했다. 마치 아름다운 노을빛 아래 서 있는 듯한 색채감 있는 문체와 간결하고 시적인 문장은 에세이라는 장르에 포에틱이라는 수사를 덧붙여 포에틱 에세이라 명명할 경지를 열어놓는다.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할머니 이름을 가르쳐줘야겠다.
더 늦기 전에 용서 못 한 사람을 용서하고
더 늦기 전에 읽다가 접어둔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보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김재진 작가는 책의 말미에 크게 기뻐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기쁨도 오래가지 않고, 슬픔 또한 힘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삶에서 그는 많은 것을 경험했다. 분노도 했고 싸워도 봤다. 잊어도 봤고 그리워도 해봤다. 후회도 자책도 체념도 해봤다. 그리고 고요히 자신을 들여다봤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삶의 마디마디, 단단히 굳어진 옹이가 보인다. 그 때문인지 그의 글은 명상적이고 시적이며, 인생의 잠언으로 마음에 와 박힌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은 젊은 날엔 모른다.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이 자신에 대한 고마움이라는 것을. 누군가에 대한 비난이 알고 보면 자신에 대한 비난이라는 것을.’
‘앞이 안 보이게 쏟아진다 해도 폭설 때문에 지각하는 봄은 없다.’
‘삶이란 뭔가를 해야 할 때가 있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지금 눈부시게 반짝거리며 뭔가를 이루어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너무 나무라진 말자.’
‘장미 역시 깜깜한 새벽에 진한 향기를 내며, 슬픔을 이긴 사람들이 슬픔에 빠진 타인을 돕는다.’
‘반음만 낮출 수 있었다면 편했을 텐데 반음을 낮추지 못해 어렵게 왔다. 도와 레, 그리고 솔과 라 사이에 있는 반음 키를 누르듯 조금만 숙였어도 쉬웠을 건데.’
‘누군가 내게 꽂은 말(言)의 화살 또한 내가 반응하지 않는 한 그들의 구설(口舌)일 뿐 내 아픔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랑이다.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숨기지 않고 말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 감사하자. 기쁨은 슬픔 뒤에 숨어 있을 때가 많다. 슬픔이 옷자락 잡는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화내지 말자. 사랑도 좋지만 애착이 되기 쉬우니 너무 좋아하는 것도, 너무 싫어하는 것도 다 내려놓고 모르는 척, 없는 척 살다가 가자.’
‘마음의 송곳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삶이라는 드라마의 가장 큰 주제이며 목적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밑줄 긋게 만드는 문장을 만나고 또 만난다. 억지로 만들어낸 문장이 아니라서 힘이 세다. 붓 끝에 힘을 주고 한 번에 힘 있는 획을 긋듯, 한꺼번에 토해내듯 글을 쓰는 그는 글 속에 자신이 체득한 생의 진리를 풀어놓았다. 이 책을 펼쳐 든 순간만큼은 ‘내 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분주함에서 고요함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며, 불안이 지배하는 미쳐버린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깊은 갈망으로 쓴 나의 문장이 읽어가는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비추는 빛이 되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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