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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행장을 떠나
2. 낯선 세상 3. 초원 4. 검은 눈 5. 초원 깊숙한 곳 6. 유목민 취락지 7. 진정한 겨울 8. 학교에 동반한 대형견 9. 초원은 역시 초원 10. 푸른 목초지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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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 작가 거르러치무거 헤이허의 《초원의 맹견》
한때 원나라를 통해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몽골인들은 오늘날 중국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소수 민족이다. 물론 중앙아시아의 독립 국가 몽골이 존재하고 있으나 1952년 중국 공산당의 소수민족 자치구 정책에 의해 세워진 내몽고 자치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중국 내 몽골인의 존재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거르러치무치 헤이허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몽골인 작가로 몽골인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작품을 써 왔으며 《초원의 맹견》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마스티프와 셰퍼드 사이에서 인위적으로 교배, 생산된 개 ‘귀신’의 일생을 통해 생명과 자연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때 그 바탕을 굳건히 지지하고 있는 것은 초원 지대 유목인들의 자연 친화적이고 평화로운 삶과 세계관이다. 몽골인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유목민의 세계관이 이 작품의 토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원의 맹견》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앞부분은 주인공 귀신이 투견으로 훈련되어 ‘귀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칠고 잔인한 살육 기계로 살아가는 이야기로 끔찍하고 적나라한 묘사가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그에 반해 뒷부분은 초원으로 흘러들어간 귀신이 유목민 가족의 곁에서 난생 처음 따뜻한 애정을 느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두 부분은 뚜렷하게 대비되며 투견장과 초원, 인공과 자연, 전투와 돌봄 등 정반대되는 개념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당연히 작가가 후자의 세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귀신이 마스티프와 셰퍼드 사이에서 태어난 까닭은 애초에 대형 전투견을 길러내려는 프로젝트 때문이었으므로 자연스럽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귀신은 예민하고 사나운 자신이 본성에 충실한 탓에 번번히 원래 있던 곳에서 쫓겨나고 점점 더 나쁜 처지에 몰리게 된다. 전투견이나 경비견이 되려면 사람들에게 고분고분해야 하지만 귀신이 사전에 복종이나 순응이란 없었던 것. 여러 번 주인이 바뀐 뒤 어딘가 수상쩍은 흑인 남자에게 팔려 백전백승의 투견이 되기까지 귀신은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마음을 주지 않는다. 언제나 마음속 뜨거운 피가 인도하는 대로 본성에 충실할 뿐이다. 철저하게 귀신의 시점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작품 속에서 귀신이 바라보는 세계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곳이다. 동물이 생존본능에 충실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귀신의 본능을 투견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귀신은 점점 괴물이 되어 간다. 그리고 그 과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특히 귀신이 투견으로 훈련받는 과정과 투견장에서 상대 개를 물어뜯어 죽이는 장면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귀신이 투견 생활을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은 투견장을 방문했던 관광객들이 그 잔인한 관광 상품에 의의를 제기하며 소동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귀신을 처참한 지경으로 몰고 가는 투견 행위를 비판하지만 인간성을 깡그리 부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냉혹한 투견꾼인 흑인마저도 뭔가 처연한 사연이 있을 법하게 그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나운 개 ‘귀신’은 어떻게 양치기 개가 되었나 전반부는 귀신의 투견 생활에 대한 묘사가 워낙 잔인해서 한편으로는 아동문학으로서 괜찮은 걸까 싶은 우려가 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귀신이 투견장을 탈출해 초원으로 가면서 이야기는 백팔십도로 달라진다. 귀신이 유능한 유목민인 바이바오인거투에게 생포되었다가 그 아들인 알스렁과 종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게 되는 것. 바이바오인거투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귀신과 알스렁의 첫 만남은 무척이나 신비롭다. 절대 길들여지지 않을 것 같던 크고 새하얀 개가 여섯 살짜리 사내아이의 손길에 고분고분해지는 광경은 바이바오인거투 부부를 묘하게 감동시키며 이후에 귀신을 한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남은 여생 동안 귀신은 알스렁을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 사람과 더불어 살게 되었다고 해서 귀신의 본성이 단박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귀신은 자신을 ‘멍’이라 불러주는 알스렁에게는 무한한 사랑과 충성을 보이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여전히 적대시하며 사나운 모습을 보인다. 귀신이 양치기 개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도둑까지 잡는 것도 순전히 알스렁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후반부의 클라이맥스는 눈보라가 휘몰아친 가운데 귀신이 눈속에 파묻혀 알스렁을 보호하는 장면이다. 어린아이가 죽음을 면치 못했을 상황에서 귀신은 영리한 두뇌와 풍성한 털을 이용해 알스렁을 지켜내고 그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낸다. 이제 귀신은 다른 생명을 물어 죽이는 대신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을 지켜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초원의 맹견》은 잭 런던의 작품을 떠올리게 할 만큼 원시적인 생명력을 뛰어나게 그려 보인다. 투견장의 풍경과 투견의 생활에 대해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직설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 그 속에서 귀신이 갖는 혼란스러움과 저항 의지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면 이 작품이 좋은 아동문학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귀신이 초원으로 가서 알스렁을 만나고 알스렁의 가족으로부터 귀중한 존재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앞에서 귀신이 겪었던 고통과 외로움을 충분히 치유해 주고도 남는다. 그리고 이때 독자들도 함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태어나 자신을 복종시키려는 시도에 끝없이 저항하면서 살던 귀신은 초원에 이르러 비로소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삶을 찾을 수 있었던 셈이다. 《초원의 맹견》은 중국에서 쓰여진 몽골인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지만 작품 그 자체의 예술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감탄할 만하다. 하나의 작품을 통해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맛보고 끝에 가서 먹먹한 감동을 느끼는 일은 흔치 않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