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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 신호철 주교 / 4
출간에 즈음하여 / 6 신명기 입문 / 10 신명기 둘러보기 / 14 제1과 모세의 회상(신명 1-3장) / 18 제2과 하느님과 이스라엘(신명 4,1-43) / 28 제3과 주 우리 하느님께서 주신 십계명(신명 4,44-5,33) / 38 제4과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장) / 50 제5과 광야에서의 시험과 좋은 땅의 약속(신명 7-11장) / 62 제6과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방법(신명 12,1-16,17) / 74 제7과 백성 앞에 선 이들에 대한 약속과 규정(신명 16,18-18,22) / 86 제8과 다양한 상황에 대한 규정 첫 번째: 분쟁과 관련한 규정(신명 19,1-21,14) / 98 제9과 다양한 상황에 대한 규정 두 번째: 가족과 공동체(신명 21,15-26,16) / 110 제10과 축복과 저주(신명 26,17-28,69) / 122 제11과 모세의 결론적인 설득(신명 29-30장) / 134 제12과 모세의 노래(신명 31-32장) / 146 제13과 모세의 축복과 죽음(신명 33-34장) / 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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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신명기에서 말하는 ‘너’와 ‘너희’는 바로 지금 성경을 읽고 있는 우리 자신입니다. 마음을 열고 신명기를 읽는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찾고 실천하려 노력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열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삶으로 실현된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준비시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p.17 「신명기 둘러보기」 중에서 그러므로 모세가 들려주는 정복 이야기의 목적은 ‘잔혹한 방법으로 이룬 전쟁의 승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희망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니, “두려워하지 마라.”(신명 3,22)라며 용기를 북돋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입에 담긴 이 이야기들을 들으며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되찾았을 것입니다. 막강한 제국들의 힘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를 찾았던 것입니다. --- p.24 「제1과 모세의 회상」 중에서 거대한 자연 앞에서 우리는 종종 보잘것없는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쏟아질 듯한 별들 아래에서, 타는 듯한 태양 밑에서 인간의 초라함을 마주합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의 어둠과 햇빛조차 닿지 않는 심해의 어둠을 보며 두려움을 느낍니다. 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 역시 신을 향한 이끌림을 거대한 자연과 거대한 힘 한가운데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어리석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의 우리도 그들처럼 자연 앞에서 초라하기 때문입니다. 태양과 달을 섬기며 삶에 감사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며, 먼 산을 바라보고 신을 그리워하던 그들의 마음은 어쩌면 현대의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우리 존재의 ‘피조물다움’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p.34-35 「제2과 하느님과 이스라엘(묵상1)」 중에서 하지만 신명기는 이 덕목을 뒤집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준수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백성이 임금에게 가져야 할 의무를 전하는 조약들도 있습니다. 배신하지 않고,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덕목이 백성에게 요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신명기의 ‘사랑’과는 달라 보입니다. ‘사랑(아합)’이 지닌 본질적인 성격을 고려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법적인 의무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헌신입니다. 따라서 신명기의 십계명이 전제하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는 아가의 연인 관계와 닮았습니다. 서로를 사랑하여 다른 이들을 멀리하고, 정서적으로 긴밀한 유대를 가진 사랑하는 연인들의 언어로 그 관계를 드러냅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보다는 연인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 p.44 「제3과 주 우리 하느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에서 그러므로 사랑은 나와 너가 오롯이 ‘나’와 ‘너’로 존재하기를 요구합니다. 사랑은 누군가의 간섭이나 강요 없이 오롯이 서로를 원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랑은 ‘너’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오직 너의 온전한 의지와 선택으로 나를 원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내 사랑의 대상인 너를 놓아줍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힘이 없습니다. 사랑은 강요할 수도 분노할 수도 파괴할 수도 없습니다. 이 모든 인간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부분적으로나마 반영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 행해야 할 우리의 모든 사랑은 하느님과의 사랑에서 왔고, 그 사랑 자체를 지향합니다. --- p.58-59 「제4과 이스라엘아, 들어라!(묵상1)」 중에서 따라서 모세가 전하는 축복과 저주는 영판 다른 두 개의 길이 아니라, 집으로 가는 유일한 길 위에서 서로 다른 방향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으로 통하는 길에서는 당연히 집을 향해 앞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집이 아니라 뒤를 돌아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집에서 누릴 풍요와 안식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삶에는 축복과 저주가 늘 상존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는 축복과 저주는 삶(생명)을 선택하라는 설득입니다. --- p.70 「제5과 광야에서의 시험과 좋은 땅의 약속」 중에서 이 중에서 눈에 띄는 규정은 돼지 고기의 섭식에 대한 금령입니다(신명 14,8 참조). 돼지 고기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이스라엘의 고유한 규정에 해당합니다. 되새김질하는 동물들과 달리 돼지는 그 먹이가 사람들의 양식과 많이 겹치기 때문에, 이 금령의 숨은 주제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보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처럼 잡식성인 돼지가 주된 식자재로 허락된다면, 가난한 이들은 부유한 이들이 먹기 위해 기르는 돼지와 식량을 두고 경쟁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루카 15,16 참조). --- p.79 「제6과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방법」 중에서 그렇다면 그들이 따라야 하는 ‘정의’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정의’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체덱’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넓은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대체로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데 바로 ‘행동’과 ‘연민’입니다. 옳은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 이것이 ‘정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실천은 ‘공평함’, 곧 약한 이들을 배려하고 살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네가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는 식의 기계적인 정의가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내가 억압된 상황에 놓인 그(그들)를 해방시키는 공감과 연대의 정의입니다. --- p.88 「제7과 백성 앞에 선 이들에 대한 약속과 규정」 중에서 신명기의 규정은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발로 땅을 딛고 서서 다른 이와 교류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 양식을 전제합니다. 그가 너의 가까이에서 죽었으니, 너의 양심이 외치듯 너 또한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피에 대한 책임’은 신명기의 규정이 드러내듯, 공동체가 함께 애도하고 슬퍼하며 각자 손해를 감수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누군가가 내 옆에서 생사를 달리해도 경제적 손익을 계산하는 오늘날, 우리가 정녕 놓쳐 버린 것은 인간다움입니다. 내가 직접 알지 못하는 이들의 죽음을 뉴스에서 볼 때, 나는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느끼나요? --- p.107 「제8과 다양한 상황에 대한 규정 첫 번째: 분쟁과 관련한 규정(묵상2)」 중에서 신명기에서 이 ‘기억’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주제입니다. … 그러면 이 기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해방의 기억’이 아니라 ‘억압의 기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바로 그 고통의 체험이, 사회적 약자인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의 아픔에 공명하게 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원칙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4장 17-22절의 규정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수확할 때 한 번 지나간 과일나무 가지에는 다시 손을 대지 말고(신명 24,20-21 참조), 밭에 깜빡 잊고 두고 온 곡식단은 다시 가지러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애써서 기른 것을 잘 수확해 최대의 효율을 내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도, 공감과 연민의 마음을 잃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남의 눈을 피해 떨어진 이삭을 줍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가장 효율적으로 일해야 할 바쁜 시기에도 그 연민의 끈을 놓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 p.118 「제9과 다양한 상황에 대한 규정 두 번째: 가족과 공동체」 중에서 신명기 28장 15-69절에서는 앞서 받은 축복에 대응하듯이 같은 대상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성읍 안에서도, 들에서도, 곁에 있는 가축의 새끼들까지도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 전합니다. 소출은 줄고 병은 악화될 것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맞서게 될 것이라 합니다. 사실 이러한 저주의 내용은 굳이 저주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것들입니다. 질병·기근·모략·전쟁은 인간의 삶에 항상 있습니다. ‘고통’이라는 이름의 실존적 한계들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병들어 죽음을 마주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들이 하느님의 저주일까요? --- p.130 「제10과 축복과 저주」 중에서 인간은 자신의 본능을 교육과 문화라는 이름의 숙련 과정을 통해 성숙시켰습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정신 활동을 합니다. 언어를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해석하고 희망합니다. 단순히 주어진 자극에 반응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배부름과 관계없이 더 욕심을 낼 수도 있고, 배고픔을 참으며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성찰하며 선택합니다. 이 단순한 사실에서 인간의 모든 윤리와 사상, 철학과 문화가 싹텄습니다. 그렇기에 유물론자들의 말은 절반만 옳습니다. --- p.143 「제11과 모세의 결론적 설득(묵상2)」 중에서 모세가 한 노래는 단순히 입으로 부른 음성이 아니라 말이 의미하는 바를 현실화하고 확증하는 것입니다. 빈 소리가 아니라 과거의 일을 완성하고 일어날 일을 시작하며 동시에 지금 실현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말’과 ‘일’을 같은 단어로 사용하는 성경 언어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우리가 참여하는 성사에서 매번 새롭게 확인됩니다. 사제가 성사 중에 하는 말은 공간만을 울리는 음파에 그치지 않고 은총을 완성하고 실현하는 새로운 표징이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요한 복음서 저자의 “말씀(로고스)이 사람이 되셨다.”는 고백은 이러한 성경 언어의 전통과 신학적 반성이 열매 맺은 종합적 결과입니다. --- p.153-154 「제12과 모세의 노래」 중에서 모세의 뜻은 그가 지정한 여호수아에게 이어집니다. 신명기 34장 9절이 전하듯이 여호수아는 모세의 권위를 지니고 백성을 이끌게 됩니다. 하지만 10-12절은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예언자는 다시는 없었다고 합니다. 주님을 눈으로 마주보고 이스라엘을 이끌어 탈출시키고 백성과 동반하며 많은 표징을 보여 준 이는 오직 모세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모세의 특별한 위치는 지금도 유다교 전통에서 인정되고 있습니다. --- p.165 「제13과 모세의 축복과 죽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