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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 꽃을 발견하는 계절 호화로운 취미생활 닭의장풀 땅에서 솟아난 별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 고사리 꺾던 날 여우구슬 분홍 꽃 제라늄 엉겅퀴 능소화예요, 여름이에요 삶에 진심인 식물들 2 나를 이루는 한 장면 파도타기 좋은 날 무제 구도심 어딘가에서 찾은 선 꽃병에 꽂아진 그물 조각 일단 오늘도 한 발 내디뎌 본다 9월의 작업실 점ㆍ선ㆍ면 찾기 쉼 말이 필요 없는 퇴근 시간 불안은 파도 같은 것 옥돔미역국 그림이 안 그려지고 막막하던 날 내 그물 속 선 바다는 늘 거기에 새들의 우정 3 새단장협동조합 감탄의 순간-'그물' 그림의 시작 가을이 남긴 것 멜 해초의 왈츠 그물로 끓인 차 바다에서 만난 이상한 친구들 광치기해변 원래 함께였다 그물 조각이 나를 기억하더라 반갑다, 친구들 정해놓지 않은 쌓임 밤의 해변에서 줌바 왜 여기까지 흘러왔느냐 길고 긴 해초 둥지 그러니 버리지 말지어다 바다는 너무 위대하여 우리는 바다를 지키는 새들입니다 이제 쉬자 추천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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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진심인 식물들은 온 힘을 다해 뿌리를 내리고 주어진 자리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햇빛이 닿지 않아도, 바람이 막혀도 그들은 묵묵히 그 자리를 살아낸다.
나는 종종 말라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힘이 빠지고, 마음이 꺾일 때마다 내가 끝나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어쩌면 나도 다시 뿌리를 내리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 p.49 「삶에 진심인 식물들」 중에서 바람이 적당히 불어서 오늘은 파도타기 좋은 날이에요. 어떤 날은 너무 잔잔해서 내 안의 파도도 잠들고, 어떤 날은 세상이 너무 거세서 서 있기조차 버겁고. 그런데 오늘은, 바람이 적당히 불어요. 넘어질 수도 있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날. 오늘은 파도타기 좋은 그런 날이에요. --- p.55 「파도타기 좋은 날」 중에서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점, 허물어진 벽에 남은 자국, 비 오는 날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 낡은 철문에 스민 녹빛, 유리에 붙였던 시트지가 낡아가며 만들어낸 선, 커피 얼룩이 남긴 작은 무늬까지. 자꾸 들여다보고, 멈춰 서서 오래 바라본다. 세상이 온통 점과 선과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작은 세계가 열리며 나의 상상력이 눈을 뜨게 되었다. 결국 ‘발견’에서 시작된 그림에 내 생각이 더해져 기록으로 남는다. --- pp.71-72 「점?선?면 찾기」 중에서 아주 가는 선들이 모여 처음에는 굵은 선이 되고 서로 얽히고설키어 마침내 단단한 그물이 된다. 조직적인 짜임과 질서, 반복되는 리듬.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그 견고함이 조형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코 한 코 선을 긋는다. --- p.91 「내 그물 속 선」 중에서 오늘 아침, 바다를 걷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엉켜 있는 해초 두 줄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모양이 왈츠를 추는 것 같았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물살에 맞춰 발을 맞추는 모습이라니. 사랑일까. 아니면 살다 보니 얽힌 운명일까. 그 둘의 춤사위에 나도 잠시 발끝이 간질거렸다. --- p.115 「해초의 왈츠」 중에서 바다에서 떠밀려온 그물 조각들을 주워다가 차를 끓인다. 해초와 플라스틱, 부서진 꿈 그리고 약간의 아침햇살을 넣고 조심스럽게 우려낸다. 차는 쓰지만, 따뜻하다. 세상은 여전히 버거울 때가 많지만, 같이 마시는 이가 있다면 조금 괜찮아진다. --- p.117 「그물로 끓인 차」 중에서 바다에서 오래 떠돌다, 해지고 해져서 세상에 거절당한 것들. 누군가는 피하려고만 했고, 누군가는 아예 못 본 척했던 그 조각들. 그걸 가지고 나는 둥지를 만들었다. 나만의 안식을 지었다. 엉켜 있었지만, 따뜻했다.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건 나를 지탱해 주는 형태가 되었으니까. --- p.141 「둥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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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상상을 더해 ‘지금─이곳’을 놀라운 예술의 공간으로 바꾸다.
‘여우구슬’이라는 풀이름에서 [여우 구슬을 삼킨 소년]이라는 제주 설화를 떠올리고는 여우가 꼬리 아래 구슬을 숨기는 생각에 킥킥대는 작가. 그는 일상에 상상을 더해 ‘지금―이곳’을 놀라운 예술의 공간으로 바꾼다. 그가 좋아하는 “삶에 진심인 식물들”(p.49)처럼 삶에 진심인 한 사람으로서, 그림과 글을 통해 우리의 관심이 조금이라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자연으로 향하기를 꿈꾼다. 이른 아침 해변을, 숲을, 길가를 걸으면서 발견한 작은 조각들을 모아 그림과 글로 우려낸 이 책은, 예술이란 거창한 표현이 아니라 지금 이곳을 사랑하는 태도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하루에 5분,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좋다. 책을 열면, 시나브로 영원한 찰나가 흐를 것이니.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바다는 날마다 새로운 경이를 품고 요동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