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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나를 지은 아홉 개의 집
첫번째 집 ■ 단독주택 _ 그 시절 내 모습이 그리워질 때 아파트 대신 집장사 집을 _단독주택 / 한국적 노스탤지어의 공간 _마당 / 노란장판에서 원목마루까지 _바닥 / 종이 위에 새겨진 삶의 흔적 _벽지 / 기술의 발전이 허락한 낭만의 공간 _옥상 두번째 집 ■ 연립주택 _ 함께 서 있어 남은 집 함께 서 있어 남은 집 _연립주택 / 필요에서 필수로 _엘리베이터 / 낮은 천장과 높은 변기의 사연 _화장실 / 집과 도시가 공존하는 방법 _단지 세번째 집 ■ 빌라 _ 고급 주택의 이름을 가진 서민의 집 고급 주택의 이름을 가진 서민의 집 _빌라 / 빼앗긴 아이들의 놀이터 _골목 / 울도 담도 없는 집에 놀러 오는 것은 _담장 / 모두의, 그러나 누구의 소유도 아닌 _계단실 / 유행과 오해 사이 _드라이비트 네번째 집 ■ 임대아파트 _ 어머니의 비밀스런 집 사기 위한 것에서 살기 위한 곳으로 _임대아파트 / 숨길수록 더욱 가까워지는 공간 _지하주차장 / 남이 나를 보는 틀 _창문 / 주택법이 만든 삶의 희망 _경로당 / 떠날 사람을 위한 방 _문간방 다섯번째 집 ■ 셰어하우스 _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집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집 _셰어하우스 / 우연과 비용이 정한 이웃 _옆방 / 선택되어지는 유일한 취향 _이케아 / 열린 문 너머로 이어지는 삶 _냉장고 / 식구가 되는 공간 _식탁 여섯번째 집 ■ 원룸 _ 좁은 방에서 시작된 혼자만의 삶 좁은 방에서 시작된 혼자만의 삶 _원룸 / 불완전한 삶과 사회가 만든 공간 _반지하 / 소리를 넘어 이어지는 존재들 _벽 / 집을 대신하는 도시의 공간 _근린생활시설 / 계절과 생활이 남긴 흔적 _곰팡이 일곱번째 집 ■ 구축 아파트 _ 새것보다 더 좋은 따뜻한 기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_구축아파트 / 고립된 섬, 새로운 동네의 발견 _동네 / 삶과 사람이 스치는 공간 _복도 / 도시의 거실, 모두의 마당 _한강 / 윗집과 아랫집의 불편한 동거 _천장 여덟번째 집 ■ 신축 아파트 _ 여백과 이야기가 빠진 편리함 신도시 키즈와 도시의 미래 _신축아파트 / 1초 출근, 직주근접의 삶 _별채 / 신발장에서 도킹스테이션까지 _현관 / 아파트에 발코니를 허하라 _발코니 / 가장 도시적인 삶에서 얻은 자연의 가르침 텃밭 _텃밭 아홉번째 집 ■ 사무소 _ 고민이 쌓인 꿈꾸는 삶의 출발점 나를 지은 집에서 지어야 할 집으로 _사무실 / 손끝으로 경험하는 책과 공간 _책의 집_도서관 / 터널을 닮은 건축 _회사의 집_사옥 / ‘숲’과 ‘멍’ 사이의 ‘집’ _반려견의 집_스테이 /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서 _인공지능의 집_리모델링 에필로그 _열번째 집을 기다리며 추천글 | 집의 기억, 개인적인 혹은 집단적인 _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전봉희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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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주택에서의 생활은 짧았지만, 그 집은 30년이 넘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개별의 집이 아닌 함께 서 있는 집이었기에, 시대의 풍파를 이겨내고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 어느덧 훌쩍 커버린 내 모습과 달리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번째 집의 모습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도 묘한 위안을 준다.
--- p.48 ‘빌라Villa’는 본래 고대 로마 상류층의 교외 주택을 뜻하는 적이 더 많았다. 건축학도라면 서양건축사 시간에 꼭 배우는 ‘빌라 로툰다Villa Rotunda’가 대표적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저층 고밀 주거지역에서 지어지는 다가구, 다세대 혹은 연립주택이 한국의 빌라다. 가장 서민스러운 집에 역설적으로 고급 주택의 이름이 붙은 건 현실의 퍽퍽함을 조금이나마 잊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 p.64 하굣길에 이따금씩 한 정거장 전에 버스에서 내렸다. 첫 번째 집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비록 들어가볼 수는 없어도 그 자리에 잘 있는지 집의 안부가 늘 궁금했다. 대문 옆에 걸린 명패도 모르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물끄러미 쳐다보는 게 다였지만, 익숙했던 골목을 뒤돌아 나올 때면 늘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 p.65 신축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층고 권장 기준은 트럭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2.3m에서 2.7m로 높아졌다. 요즘은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와주세요’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훗날 지하주차장에는 배달음식과 택배 수령을 위한 별도의 현관이나 게이트를 법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 p.91 주택에 지하실이 처음 등장한 건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였다. 무장공비가 서울 한복판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에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다. 정부는 서둘러 건축법을 개정했다. ‘인구 20만 명 이상의 도시에 지상층 연면적 200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을 지으려면 지하층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 p.134 서류상으로 한 집인 것을 넷으로 나누는 유일한 경계는 가벽이었다. 불법으로 급하게 공사한 티가 역력한, 언제든 원상 복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애매하게 막아놓은 정도에 불과했다. (...) 여느 때처럼 벽 너머로 들려오는 옆방 이웃의 선곡 리스트 중에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말았다. 순간 음악 소리는 툭 끊어졌고, 이내 벽 양쪽으로 긴 침묵이 이어졌다. --- p.139 발코니는 1958년 종암아파트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높은 건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국적 풍경’으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한때는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화초를 키우고 커피 한 잔을 즐기는 여유의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세탁실, 실외기실, 대피공간과 같은 기능적인 최소한의 목적만 남긴 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 p.190 건축가로서 데뷔작이 된 사옥을 설계할 때도 그랬다. 나는 한 기업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루는 기술과 일상에 대한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이를 공간으로 옮기고자 했다. 나는 사옥의 설계로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2025 RedDot Design Award’를 수상했다. 그 상은 단순한 성취의 증거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짓는 건축이 여전히 시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작은 증명이었다. --- p.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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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이 당신을 지었는가?
사람은 집 없이 살 수 없다. 그래서 집은 마치 공공재나 생필품처럼 사회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집은 우리 삶을 담아내는 가장 사적인 무대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평범한 집들도 저마다의 사연과 흔적을 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집은 그 자체로 시대의 얼굴이기도 하다. 집은 개인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도시와 건축이 남긴 흔적을 읽는 장소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단독주택에서 빌라로, 반지하 원룸에서 셰어하우스로, 구축 아파트에서 신축 아파트로 이어지는 지은이의 삶의 변화는 그저 공간의 차이만이 아니었다. 주택 정책과 경제적 변화가 집의 모습을 바꿔놓았고, 동시에 우리가 집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지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의 한가운데를 지나온 지은이의 경험은 한 사람의 기억을 넘어, 이 시대의 건축과 도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한 사람의 기억을 넘어, 시대의 건축과 도시를 이해하는 열쇠 지은이가 거쳐 온 집들은 건축가인 그에게 중요한 참조점이 되었다. 단독주택의 마당에서는 비워진 공간의 쓸모를, 빌라의 필로티 주차장에서는 자동차가 바꾼 골목의 풍경을, 반지하 원룸 침대에서는 한 줌 빛이 주는 위로와 그 부재의 답답함을 절감하게 했고, 셰어하우스의 거실에서는 공간을 통해 삶을 나누는 지혜와 풍요로움을 익히게 만들었다. 구축 아파트의 복도에서는 모여 사는 불편함을 느끼게 했고, 신축 아파트의 텃밭에서는 도시에서 흙을 만지는 즐거움을 배우게 했다. 곁들여서, 지은이는 시대에 따라 변모해온 집짓기의 방식과 자재들의 변천을 얘기한다. 특히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가 별 의미 없이 지나쳐버린 마당이며 노란장판, 벽지, 옥상, 높은 화장실, 빌라의 계단실, 반지하 방의 탄생 과정, 복도식 아파트에 대한 얘기들은 왜 우리의 집이 이런 모양으로 생기게 되었는지, 집의 본질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고, 집에 담긴 우리의 소중한 삶의 기억을 되살린다. 나아가서 그는 날로 진화하는 지하주차장의 쓰임새, 아파트 현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며, 미래 집의 방향을 얘기한다. 서울대 건축학과 전봉희 교수는 추천글에서 ‘이 글은 철저히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도시 주택의 여러 모습을 세밀히 기록한 다큐멘터리, 건축가의 밝은 눈으로 본 주택론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집이 사람을 짓는다’고 믿는 건축가. 우리가 살았던 집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기억들은 우리의 팍팍한 삶을 지탱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