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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22년(1822)
윤3월 16일~윤3월 26일 왕명을 받아 평안도에 들어가다 9 윤3월 27일~4월 9일 평안도 동남쪽을 돌아 평양으로 향하다 37 4월 10일~4월 21일 동북쪽 끝인 영원을 돌아 순천까지 암행하다 73 4월 22일~5월 15일 서쪽과 남쪽을 돌아보고 순안에서 처음 출도하다 109 5월 16일~6월 9일 서남과 동북, 끝에서 끝을 돌아 안주에서 출도하다 155 6월 10일~7월 13일 다시 한 바퀴 돌아 평양에서 출도하다 177 7월 14일~7월 28일 130일 되는 날에 복명하다 203 해제: 200년 전 암행어사가 밟은 5천리 평안도 길 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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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의 은밀한 걸음을 따라 살펴보는 민중의 삶
서울을 떠나 다시 돌아올 때까지 130일간 박내겸이 이동한 거리는 4,915리로, 조선후기 10리를 4.2km로 계산하면 2,064km로 경부고속도로의 5배에 이른다. 이토록 부지런히 평안도를 누비고 다니면서 박내겸은 민중들의 어떤 모습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신분 위장 평안도로 파견될 때 박내겸은 신분을 감추는 일에 매우 신중했다. 양반 복장을 포기하지는 않았으나 망가진 갓과 해진 도포로 허름한 복장을 했으며, 때로는 붓과 같은 소품을 활용해 변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암행어사에 대한 지방민의 감시와 기대 속에, 그리고 업무 추진을 위한 연락으로 인해 그 행적이 탄로나기 일쑤였다. 4월 14일 종일 비가 내리다가 저녁에 조금 갰다. 붓 수십 자루를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걸고 향청으로 들어갔다. 나는 해주에 사는 사람으로 묏자리 송사를 벌이다 자산에 귀양 갔는데 다행히 용서는 받았지만 돌아갈 길의 양식을 마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함경도로 들어가 친지나 수령에게 구걸할 계획이며 마침 붓과 먹을 얻었으므로 그것을 팔아서 여행 밑천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하였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한편으로 믿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의심도 하였다. (본문 86쪽) 전도된 현실 실감 4월 28일 듣자니 읍의 창고에서 환자 곡식을 나누어준다기에 여러 사람 중에 섞여 창고 마당으로 헤치고 들어갔다. 여기저기 돌아보는데 나누어주는 쌀이 품질이 거칠다고 몇 사람이 수령 앞에 나아가 고발하려 하였다. 해당 아전들이 함께 말리니 그 사람들이 원망하여 말하였다. “요즘 암행어사가 내려왔다고 하는데도 당신들은 이처럼 농간을 부리는가. 거친 곡식을 나누어준 데 더해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길까지 막아버리면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이오.” 아전들이 웃으며 말하였다. “작년에 거친 곡식을 바치고서 지금은 고운 곡식을 받으려 하니, 고운 곡식이 어디서 생겨나겠는가. 이것은 우리들이 농간한 것이 아닌데 당신들이 우리를 죽이려 하는가? 그리고 암행어사가 이 마당에 들어와 있지나 않은지 어떻게들 알고 이처럼 소란스럽게 구는 거요?” 그 몇 사람은 결국 말을 못하고 받은 것을 헤아려 흩어졌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호소할 곳도 없다니, 참 심하구나. (본문 121쪽) 암행어사 출도 박내겸은 성실하게 암행어사의 여정을 밟아 나갔지만, 그런 중에도 권력과 쾌락을 맛볼 수 있었다. 그는 역졸들이 암행어사 출도를 외쳤을 때 “사람들이 무리지어 놀라 피하는 것이 마치 바람이 날고 우박이 흩어지듯 하며”(5월 13일 순안), “성내가 온통 끓는 솥처럼 되어 사람과 말들이 놀라 피하는 것이 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밀려드는 듯한”(6월 30일 평양) 광경을 즐겼다. 5월 13일 역졸들이 빠른 소리로 암행어사 출도를 한 번 외치니 사람들이 무리지어 놀라 피하는 것이 마치 바람에 날려 우박이 흩어지듯 하였다. 우선 문루에 올라가 바라보니 온 성안의 등불이 모두 꺼지고 바깥문들이 빠짐없이 닫혔다. 연달아 급하게 외쳤지만 끝내 사람의 자취는 없었다. 내 수행원들이 여기저기 들어갔는데 관아 건물들이 모두 비어서 사람이 없었다. 나도 오래 서 있기가 어려워 천천히 동헌으로 들어갔는데 그곳 역시 빈 집이었다. 암행어사의 위엄과 서슬은 과연 이와 같은 것이었다. (본문 150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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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땅에 대한 향수 불러일으켜
역해자인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오수창 교수는 “북한(평안도) 지역이 우리와 관계없는 남의 땅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수천년 함께 살아온 지역이라는 점을 특히 젊은이들에게 알려 앞으로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자”는 뜻에서 『서수일기』를 소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기마다 곁들인 평설은 오수창 교수의 평설은 일기에서 서술한 사건이나 시대상황을 이해를 돕는다.
이번에 아카넷에서 출간한 『서수일기』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해동지도』, 『1872년 지방지도』처럼 군현별 정보를 상세히 담고 있는 지도들을 풍부하게 활용하여 암행어사의 이동경로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한 박내겸이 거쳐간 명승지의 풍광을 담은 회화를 수록해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땅을 밟아보는 특별한 여정을 선사한다. 암행어사의 사적인 일기는 매우 희귀해 후대에는 몇 종만 전해내려 온다. 한글로 번역되어 출간된 것은 황해도 암행어사 박만정이 남긴 『해서암행일기』(1976)와 『서수일기』뿐이다. 특히 『서수일기』는 암행어사 개인의 노정을 넘어 19세기 조선의 통치기구가 작동하던 방식과 평안도 등지에서 지방민들이 살아가던 사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