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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국지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일본 인문지리학
아카넷 201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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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대우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책소개

목차

해제 9
1. 왜황(倭皇)은 평소 무엇을 하는가 23
2. 대륙 출신의 조상을 가진 일본 문인들 27
3. 일본인의 성격을 살핀다 33
4. 쇠퇴하는 천황의 권력 37
5.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시대 45
6.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다시 생각하다 55
7.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61
8. 세키가하라[關原] 전쟁 67
9. 에도 성[江戶城]의 구조 71
10.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 75
11.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일화 79
12.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와 강항(姜沆) 83
13. 하야시 라잔[林羅山]과 에도 막부의 학문 89
14. 하야시 일가와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갈등 95
15. 오규 소라이[荻生?徠]와 고문사학 101
16. 일본의 신도(神道)와 불교 107
17. 천황의 도읍지 교토[京都] 113
18. 요새 도시 에도[江戶] 121
19. 항구 도시 오사카[大坂] 127
20. 차(茶)를 즐겨 마시는 일본인 133
21. 재가(再嫁)를 둘러싼 대화 139
22. 맵고 짠 조선 요리, 달고 싱거운 일본 요리 143
23. 정결한 일본인 149
24. 가마꾼들에게 말해본 일본어 153
25. 법이 엄격한 일본 157
26. 일본의 칼 161
27. 오사카[大坂]에서 본 광경 165
28. 카스텔라와 스기야키 171
29. 고구마의 재배법 175
30. 도쿠가와 막부의 군사제도 179
31. 일본에서 네덜란드 사람을 보다 183

부록
부록 1 이서구의 『청령국지』 서문 191
부록 2 유득공의 『청령국지』 서문 196
부록 3 『화한삼재도회』 목차 200
부록 4 『화국지』 목차 202
부록 5 『청령국지』 인용 목록 203

주석 217
참고문헌 237
찾아보기 243

저자 소개 3

李德懋

영조 17년에 태어나 정조 17년까지 활약한 조선 후기 문장가이자 대표적인 북학파 실학자. 호는 청장관(靑莊館), 형암(炯菴), 아정(雅亭), 선귤헌(蟬橘軒), 영처(?處), 간서치(看書癡) 외 다수가 있다. 서얼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병약하고 가난해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가학과 독서로 학문을 갈고닦았다. 당대 최고 지성인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과 교류하면서 '위대한 백 년'이라 불리는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주도했다. 아이 같은 천진하고 순수한 감정을 중시한 독창적인 글쓰기 철학을 바탕으로 조선의 진경을 담아낸 수많은 진경 시와 산문, 동아시아 삼국
영조 17년에 태어나 정조 17년까지 활약한 조선 후기 문장가이자 대표적인 북학파 실학자. 호는 청장관(靑莊館), 형암(炯菴), 아정(雅亭), 선귤헌(蟬橘軒), 영처(?處), 간서치(看書癡) 외 다수가 있다. 서얼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병약하고 가난해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가학과 독서로 학문을 갈고닦았다. 당대 최고 지성인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과 교류하면서 '위대한 백 년'이라 불리는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주도했다. 아이 같은 천진하고 순수한 감정을 중시한 독창적인 글쓰기 철학을 바탕으로 조선의 진경을 담아낸 수많은 진경 시와 산문, 동아시아 삼국 시문을 다룬 문예비평서 『청비록(淸脾錄)』, 18세기 일본 사회 제도와 문화를 심층 연구한 『청령국지(??國志)』, 조선 고유의 풍속을 정리한 백과사전적 연구서 『앙엽기(?葉記)』, 그 밖에 『사소절(士小節)』, 「열상방언(冽上方言)」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남겼다.
특히 개성을 강조한 자유로운 문장은 멀리 중국에서까지 인정받았으며,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된 이후 국왕 정조가 열었던 시 경연에서도 여러 번 장원을 차지했다. 1792년 이덕무와 박지원을 위시한 개성적인 문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정을 휩쓴 문체반정에 휘말렸음에도, 사후 국가적 차원에서 유고집 『아정유고(雅亭遺稿)』가 간행될 만큼 대문장가로 인정받았다. 아들 이광규가 편집한 전집으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사회적 틀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데 거리낌 없던 이덕무의 문장론과 철학, 초지일관 소신을 지킨 강직한 삶의 자세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인문학적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청장(靑莊)은 해오라기의 별명이다. 이 새는 강이나 호수에 사는데, 먹이를 뒤쫓지 않고 제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 쪼아 먹는다. 그래서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한다. 이덕무가 청장을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박지원, 『연암집』, 〈형암행장〉 중에서

이덕무의 다른 상품

朴尙輝

1979년 일본 토오꾜오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이다. 토오꾜오외국어대학 중국어학과를 졸업한 후 토오꾜오대학에 학사입학해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조선통신사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국 중산대학(中山大學) 국제번역학원 특빙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일찍이 동아시아에서 생존한 사람들이 이웃나라의 문화·제도·생활환경에 어떤 위화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떻게 교류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조선후기 존황사상의 전파와 천황제 인식의 변화」 「조선 사절이 본 일본의 신분제」 등이, 옮긴 책으로 『청령국지』(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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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논문으로 「동계 조귀명 유기 연구」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52쪽 | 750g | 151*214*20mm
ISBN13
9788957335819

책 속으로

왜황은 평소 무엇을 하는가
“왜황은 매달 초하룻날부터 보름까지 신에게 제례를 올리고 염불(念佛)을 하며 소식(素食)을 하고, 여자 시종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홀로 앉아 재계(齋戒)하며 지낸다. 보름부터 그믐까지는 거처와 음식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한다. 왜황이 저잣거리에 노닐러 가면 백성들이 길을 양보한다. 궁실과 의복과 음식과 기용(器用)은 소박하고 검소하다. 궁중에서는 항상 고요하며 떠들지 않는다. 신불(神佛)로서 자처하는데, 나라 사람 모두가 그를 신으로 대우한다.”

-‘왜황(倭皇)’은 일본의 ‘천황(天皇)’을 가리킨다. 『화국지』에는 ‘천황’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덕무는 『화국지』에서 인용할 때 ‘천황’이라는 말을 되도록 피하고 대신 ‘왜황’으로 바꾸어 썼다.

일본인의 성격을 살핀다
“일본 사람은 대개 유순하면서도 굳셀 줄도 아나, 굳센 것이 또한 오래가지는 못하며, 약하면서도 인내할 줄도 아나, 인내하는 것이 또한 떨쳐 일어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총명하나 앎이 편벽되고, 민첩하나 기운이 국한되어 있다. 겸손할 줄 아나 남에게 양보할 줄 모르고,
은혜를 베풀 줄 아나 남을 포용할 줄 모른다. 새것을 좋아하고 기이한 것을 숭상하며, 친하고 가까운 이를 좋아하고 소원한 이를 버려둔다. 고요한 곳에 처하기를 좋아하고 여럿이서 살기를 싫어하며, 본업을 편안히 여기고 분수를 지키는 것을 기뻐한다. 교묘한 물건과 진귀한 완구에 몰두하나 근면하여 전일(專一)하기도 하다.”

-이덕무는 일본인에 대해 ‘근면하여 전일(專一)하다’라고 쓰기도 하였다. 『화국지』에는 이 말 뒤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이어진다. “온종일 똑바로 앉아 있으며, 게으름 피거나 하품하는 기색이 없다. 변고가 있으면 혹 밤이 새도록 잠을 자지 않으며 항상 정신이 뚜렷하다. 일이 생기면 힘을 하나로 합쳐 하는데 각자 자기 몫을 다하며 남에게 미루거나 질투하는 습관이 전혀 없다.”

재조지은을 다시 생각하다
“히데요시는 마침내 이해 8월에 오사카에서 죽어 대불사(大佛寺)에서 화장하였으니, 대불사는 히데요시가 지은 절이었다. 그 곁에 이총(耳塚)이 있는데 둘레가 120칸이고 높이는 다섯 칸으로 조선에서 포획해 온 사람의 귀와 코를 묻은 곳이다.…신종황제(神宗皇帝)께서 동쪽을 정벌하신 일은 조선에 있어서는 재조지은(再造之恩: 멸망에서 구해준 은혜)에 해당하고 명나라에 있어서는 천하를 다스리는 체모를 얻은 것이니, 아아, 성대하구나!”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조선에 있어서는 재조지은(再造之恩)에 해당하고 명나라에 있어서는 천하를 다스리는 체모를 얻은 것”이라는 구절이다. 원중거는 『화국지』 「수적본말」에서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보냈던 동기를 두고 날카로운 논평을 쓴 바 있다.…명나라가 일본의 조선 침략을 막은 것은 오직 조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국의 안전을 고려해서였다는 것이다.

맵고 짠 조선 요리, 달고 싱거운 일본 요리
“음식은 맛이 담박한 것이 많으니 이들은 기름진 것과 매운 것과 젓갈과 심하게 짠 것을 먹지 못하고 오로지 달거나 신 것을 좋아한다. 육축(六畜: 소, 말, 돼지, 양, 개, 닭)을 먹지 않으니 풍속에서 도살을 꺼려서 개와 말이 죽으면 모두 매장하고 혹 병자를 위해 약으로 쓰려 할 경우 소를 절벽에 세워두고 밧줄로 끌어내려 떨어뜨려 죽인 뒤 고기만 가져다 쓰고서 나머지 부분은 묻어준다.”

-원중거가 일본인의 유사(儒士)들에게 조선 요리를 주었을 때의 일화를 남긴 바 있다. 그는 “유사들은 우리나라의 음식을 맛보고는, 몹시 기이하게 여겼다. 맵고 짜고 기름진 것에 이르러서는 번번이 말하기를 기름기, 소금기, 매운 기가 너무 성하다고 하였다”며 조선에서 가져온 요리는 일본인의 입에 안 맞았다고 하였다. 조선 사절에게 일본 요리는 너무 달고 싱거웠고, 일본인에게 조선 요리는 너무 짜고 매웠던 것이다.

카스텔라와 스기야키
“승기악이(勝其岳伊)는 가장 진미(珍味)이다. 도미와 숙복(熟鰒)과 달걀과 미나리와 파를 끓여서 잡탕을 만든다. 어떤 마을에서 사람들이 삼나무 아래에 모여 앉아 각자 자기 집에서 재료를 하나씩 가져와 이것을 만들어 먹었다고 해서 ‘삼자(杉煮)’가 되었다고 한다.”

-‘승기악이’는 ‘스기야키[杉燒]’를 말한다. 스기야키에 대한 기록은 『화국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스키야키’와 발음이 비슷하다. ‘스키야키’의 어원에 대해서는 일찍이 일본 농민들이 농사지을 때 사용하던 호미(鋤: 일본어로 ‘스키’라고 함)를 불에 올려놓고 그 위에서 여러 음식물을 구워서(‘야키’는 굽는다는 뜻) 먹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가장 유명한 설인데, ‘스기야키[杉燒]’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청령국’이란 일본의 별칭이다. 그 나라 지형이 잠자리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일본은 후한 이래로 대방에 속해 있었고,
진수가 처음으로 그들에 대해 전(傳)을 지었다. 그러나 먼 바다 밖에 있어
중국의 정벌군이 이르지 못하였기에 아무도 그들에 대해 요체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고증이 정밀하고 상세하여 뜬소문이나 허황된 말이 없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이에 의지하면 이웃나라와 잘 지내기에 족하고, 국경을 나서는 자가 이를 이용하면
외국의 정세를 살피기에 족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이 책을 보고
패관잡기(稗官雜記)라 지목할 수 있겠는가.

- 유득공, 『청령국지』서문에서

18세기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히는 이덕무가 본 일본의 실체는 어떠했을까? 이덕무의 호기심을 끌었던 에도 시대의 풍경과 특징은 무엇이었을까? 본서는 이덕무가 편찬한, 일본에 관한 백과전서 『청령국지 』 중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뽑아서 번역과 해설을 붙인 책이다. 역해자들은 『청령국지 』를 과거에 기록된 조선 사절들의 일본 견문기와 대조하여 정밀하게 독해함으로써 조선시대 사대부에게 일본은 어떠한 나라로 인식되었는지를 탐색한다. ‘청령국’이란 일본의 별칭으로 일본의 지형이 잠자리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국을 다닐 기회가 한정되어 있던 조선시대에 바다 건너편의 일본은 수수께끼가 많은 나라였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박람강기의 지식인 이덕무가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책 덕분이었다. 하나는 일본의 의사 데라지마 료안(寺島良安)이 엮은 『화한삼재도회 』(和漢三才圖會)라는 백과전서이고, 또 하나는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원중거(元重擧)가 쓴 『화국지 』(和國志)라는 일본 연구서이다. 이 두 책을 숙독한 이덕무는 실제로 일본에 가본 적이 있다고 오해받을 정도로 이웃 나라의 사정에 정통하게 되었다.

『청령국지 』는 일본의 역사, 문화, 풍속, 제도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인문지리서로 이덕무는 주로 『화한삼재도회 』와 『화국지 』를 참조하여 일본을 둘러싼 여러 의문점을 풀어간다. 『화한삼재도회』 권64에 수록된 ‘일본’이라는 항목에는 예부터 일본이 어떻게 호칭되었는지가 나열되어 있다. 그중에 ‘도요아키쓰시마[豊秋津洲]’라는 명칭이 있다. 이 명칭의 밑에 작은 글자로 “진무천황[神武天皇]이 국호(國號)로 삼은 것으로 아키쓰[秋津]란 잠자리의 일본어 명칭이다. 나라의 형체가 잠자리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름 지은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원중거도 『화국지』에서 지형이 잠자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일본을 ‘청령국(??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언급하였다.

일본인은 성격이 어떠한가? 일본의 천황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쇼군(將軍)들을 어째서 가만히 보고만 있는가? 전쟁만 일삼아 우리나라에도 쳐들어왔던 그들이 어째서 갑자기 조용해졌는가? 어떠한 인물이 나라를 다스리는가? 국가가 왜 이렇게 번영하는가? 일본에도 유학(儒學)을 배우는 이들이 있다고 하는데, 무사의 나라에서 유학자가 어떻게 학문에 종사하는가? 사찰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불교도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에도성(江戶城)은 얼마나 큰가? 교토(京都)나 오사카(大坂)는 어떠한 도시인가? 일본 백성들은 어떠한 옷을 입고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가? 일본 음식은 맛이 있는가? 일본어는 어떠한 언어인가? 일본에 네덜란드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정말인가?

이처럼 『청령국지 』에서는 다양한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가본 적도 없는 나라에 대해 이와 같이 자세히 알아보았던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평화를 유지하여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룩한 에도 시대의 일본은 이덕무의 호기심을 끌었던 것이며, 그럼으로써 이 책에는 실학의 대표적 학풍인 박학(博學)의 면모와 계몽주의적 성향이 잘 드러나 있다.

부록에는 이서구(李書九)와 유득공(柳得恭)이 각각 쓴 「『청령국지』 서문」을 번역한 글을 첨부하였으며 관련 전공자를 위하여 『화국지』의 목차, 『화한삼재도회』의 목차, 『청령국지』 인용 목록에 관한 도표를 함께 첨부함으로써 활용의 가치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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