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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9
1. 왜황(倭皇)은 평소 무엇을 하는가 23 2. 대륙 출신의 조상을 가진 일본 문인들 27 3. 일본인의 성격을 살핀다 33 4. 쇠퇴하는 천황의 권력 37 5.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시대 45 6.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다시 생각하다 55 7.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61 8. 세키가하라[關原] 전쟁 67 9. 에도 성[江戶城]의 구조 71 10.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 75 11.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일화 79 12.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와 강항(姜沆) 83 13. 하야시 라잔[林羅山]과 에도 막부의 학문 89 14. 하야시 일가와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갈등 95 15. 오규 소라이[荻生?徠]와 고문사학 101 16. 일본의 신도(神道)와 불교 107 17. 천황의 도읍지 교토[京都] 113 18. 요새 도시 에도[江戶] 121 19. 항구 도시 오사카[大坂] 127 20. 차(茶)를 즐겨 마시는 일본인 133 21. 재가(再嫁)를 둘러싼 대화 139 22. 맵고 짠 조선 요리, 달고 싱거운 일본 요리 143 23. 정결한 일본인 149 24. 가마꾼들에게 말해본 일본어 153 25. 법이 엄격한 일본 157 26. 일본의 칼 161 27. 오사카[大坂]에서 본 광경 165 28. 카스텔라와 스기야키 171 29. 고구마의 재배법 175 30. 도쿠가와 막부의 군사제도 179 31. 일본에서 네덜란드 사람을 보다 183 부록 부록 1 이서구의 『청령국지』 서문 191 부록 2 유득공의 『청령국지』 서문 196 부록 3 『화한삼재도회』 목차 200 부록 4 『화국지』 목차 202 부록 5 『청령국지』 인용 목록 203 주석 217 참고문헌 237 찾아보기 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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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황은 평소 무엇을 하는가
“왜황은 매달 초하룻날부터 보름까지 신에게 제례를 올리고 염불(念佛)을 하며 소식(素食)을 하고, 여자 시종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홀로 앉아 재계(齋戒)하며 지낸다. 보름부터 그믐까지는 거처와 음식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한다. 왜황이 저잣거리에 노닐러 가면 백성들이 길을 양보한다. 궁실과 의복과 음식과 기용(器用)은 소박하고 검소하다. 궁중에서는 항상 고요하며 떠들지 않는다. 신불(神佛)로서 자처하는데, 나라 사람 모두가 그를 신으로 대우한다.” -‘왜황(倭皇)’은 일본의 ‘천황(天皇)’을 가리킨다. 『화국지』에는 ‘천황’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덕무는 『화국지』에서 인용할 때 ‘천황’이라는 말을 되도록 피하고 대신 ‘왜황’으로 바꾸어 썼다. 일본인의 성격을 살핀다 “일본 사람은 대개 유순하면서도 굳셀 줄도 아나, 굳센 것이 또한 오래가지는 못하며, 약하면서도 인내할 줄도 아나, 인내하는 것이 또한 떨쳐 일어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총명하나 앎이 편벽되고, 민첩하나 기운이 국한되어 있다. 겸손할 줄 아나 남에게 양보할 줄 모르고, 은혜를 베풀 줄 아나 남을 포용할 줄 모른다. 새것을 좋아하고 기이한 것을 숭상하며, 친하고 가까운 이를 좋아하고 소원한 이를 버려둔다. 고요한 곳에 처하기를 좋아하고 여럿이서 살기를 싫어하며, 본업을 편안히 여기고 분수를 지키는 것을 기뻐한다. 교묘한 물건과 진귀한 완구에 몰두하나 근면하여 전일(專一)하기도 하다.” -이덕무는 일본인에 대해 ‘근면하여 전일(專一)하다’라고 쓰기도 하였다. 『화국지』에는 이 말 뒤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이어진다. “온종일 똑바로 앉아 있으며, 게으름 피거나 하품하는 기색이 없다. 변고가 있으면 혹 밤이 새도록 잠을 자지 않으며 항상 정신이 뚜렷하다. 일이 생기면 힘을 하나로 합쳐 하는데 각자 자기 몫을 다하며 남에게 미루거나 질투하는 습관이 전혀 없다.” 재조지은을 다시 생각하다 “히데요시는 마침내 이해 8월에 오사카에서 죽어 대불사(大佛寺)에서 화장하였으니, 대불사는 히데요시가 지은 절이었다. 그 곁에 이총(耳塚)이 있는데 둘레가 120칸이고 높이는 다섯 칸으로 조선에서 포획해 온 사람의 귀와 코를 묻은 곳이다.…신종황제(神宗皇帝)께서 동쪽을 정벌하신 일은 조선에 있어서는 재조지은(再造之恩: 멸망에서 구해준 은혜)에 해당하고 명나라에 있어서는 천하를 다스리는 체모를 얻은 것이니, 아아, 성대하구나!”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조선에 있어서는 재조지은(再造之恩)에 해당하고 명나라에 있어서는 천하를 다스리는 체모를 얻은 것”이라는 구절이다. 원중거는 『화국지』 「수적본말」에서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보냈던 동기를 두고 날카로운 논평을 쓴 바 있다.…명나라가 일본의 조선 침략을 막은 것은 오직 조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국의 안전을 고려해서였다는 것이다. 맵고 짠 조선 요리, 달고 싱거운 일본 요리 “음식은 맛이 담박한 것이 많으니 이들은 기름진 것과 매운 것과 젓갈과 심하게 짠 것을 먹지 못하고 오로지 달거나 신 것을 좋아한다. 육축(六畜: 소, 말, 돼지, 양, 개, 닭)을 먹지 않으니 풍속에서 도살을 꺼려서 개와 말이 죽으면 모두 매장하고 혹 병자를 위해 약으로 쓰려 할 경우 소를 절벽에 세워두고 밧줄로 끌어내려 떨어뜨려 죽인 뒤 고기만 가져다 쓰고서 나머지 부분은 묻어준다.” -원중거가 일본인의 유사(儒士)들에게 조선 요리를 주었을 때의 일화를 남긴 바 있다. 그는 “유사들은 우리나라의 음식을 맛보고는, 몹시 기이하게 여겼다. 맵고 짜고 기름진 것에 이르러서는 번번이 말하기를 기름기, 소금기, 매운 기가 너무 성하다고 하였다”며 조선에서 가져온 요리는 일본인의 입에 안 맞았다고 하였다. 조선 사절에게 일본 요리는 너무 달고 싱거웠고, 일본인에게 조선 요리는 너무 짜고 매웠던 것이다. 카스텔라와 스기야키 “승기악이(勝其岳伊)는 가장 진미(珍味)이다. 도미와 숙복(熟鰒)과 달걀과 미나리와 파를 끓여서 잡탕을 만든다. 어떤 마을에서 사람들이 삼나무 아래에 모여 앉아 각자 자기 집에서 재료를 하나씩 가져와 이것을 만들어 먹었다고 해서 ‘삼자(杉煮)’가 되었다고 한다.” -‘승기악이’는 ‘스기야키[杉燒]’를 말한다. 스기야키에 대한 기록은 『화국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스키야키’와 발음이 비슷하다. ‘스키야키’의 어원에 대해서는 일찍이 일본 농민들이 농사지을 때 사용하던 호미(鋤: 일본어로 ‘스키’라고 함)를 불에 올려놓고 그 위에서 여러 음식물을 구워서(‘야키’는 굽는다는 뜻) 먹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가장 유명한 설인데, ‘스기야키[杉燒]’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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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국’이란 일본의 별칭이다. 그 나라 지형이 잠자리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일본은 후한 이래로 대방에 속해 있었고, 진수가 처음으로 그들에 대해 전(傳)을 지었다. 그러나 먼 바다 밖에 있어 중국의 정벌군이 이르지 못하였기에 아무도 그들에 대해 요체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고증이 정밀하고 상세하여 뜬소문이나 허황된 말이 없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이에 의지하면 이웃나라와 잘 지내기에 족하고, 국경을 나서는 자가 이를 이용하면 외국의 정세를 살피기에 족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이 책을 보고 패관잡기(稗官雜記)라 지목할 수 있겠는가. - 유득공, 『청령국지』서문에서 18세기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히는 이덕무가 본 일본의 실체는 어떠했을까? 이덕무의 호기심을 끌었던 에도 시대의 풍경과 특징은 무엇이었을까? 본서는 이덕무가 편찬한, 일본에 관한 백과전서 『청령국지 』 중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뽑아서 번역과 해설을 붙인 책이다. 역해자들은 『청령국지 』를 과거에 기록된 조선 사절들의 일본 견문기와 대조하여 정밀하게 독해함으로써 조선시대 사대부에게 일본은 어떠한 나라로 인식되었는지를 탐색한다. ‘청령국’이란 일본의 별칭으로 일본의 지형이 잠자리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국을 다닐 기회가 한정되어 있던 조선시대에 바다 건너편의 일본은 수수께끼가 많은 나라였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박람강기의 지식인 이덕무가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책 덕분이었다. 하나는 일본의 의사 데라지마 료안(寺島良安)이 엮은 『화한삼재도회 』(和漢三才圖會)라는 백과전서이고, 또 하나는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원중거(元重擧)가 쓴 『화국지 』(和國志)라는 일본 연구서이다. 이 두 책을 숙독한 이덕무는 실제로 일본에 가본 적이 있다고 오해받을 정도로 이웃 나라의 사정에 정통하게 되었다. 『청령국지 』는 일본의 역사, 문화, 풍속, 제도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인문지리서로 이덕무는 주로 『화한삼재도회 』와 『화국지 』를 참조하여 일본을 둘러싼 여러 의문점을 풀어간다. 『화한삼재도회』 권64에 수록된 ‘일본’이라는 항목에는 예부터 일본이 어떻게 호칭되었는지가 나열되어 있다. 그중에 ‘도요아키쓰시마[豊秋津洲]’라는 명칭이 있다. 이 명칭의 밑에 작은 글자로 “진무천황[神武天皇]이 국호(國號)로 삼은 것으로 아키쓰[秋津]란 잠자리의 일본어 명칭이다. 나라의 형체가 잠자리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름 지은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원중거도 『화국지』에서 지형이 잠자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일본을 ‘청령국(??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언급하였다. 일본인은 성격이 어떠한가? 일본의 천황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쇼군(將軍)들을 어째서 가만히 보고만 있는가? 전쟁만 일삼아 우리나라에도 쳐들어왔던 그들이 어째서 갑자기 조용해졌는가? 어떠한 인물이 나라를 다스리는가? 국가가 왜 이렇게 번영하는가? 일본에도 유학(儒學)을 배우는 이들이 있다고 하는데, 무사의 나라에서 유학자가 어떻게 학문에 종사하는가? 사찰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불교도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에도성(江戶城)은 얼마나 큰가? 교토(京都)나 오사카(大坂)는 어떠한 도시인가? 일본 백성들은 어떠한 옷을 입고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가? 일본 음식은 맛이 있는가? 일본어는 어떠한 언어인가? 일본에 네덜란드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정말인가? 이처럼 『청령국지 』에서는 다양한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가본 적도 없는 나라에 대해 이와 같이 자세히 알아보았던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평화를 유지하여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룩한 에도 시대의 일본은 이덕무의 호기심을 끌었던 것이며, 그럼으로써 이 책에는 실학의 대표적 학풍인 박학(博學)의 면모와 계몽주의적 성향이 잘 드러나 있다. 부록에는 이서구(李書九)와 유득공(柳得恭)이 각각 쓴 「『청령국지』 서문」을 번역한 글을 첨부하였으며 관련 전공자를 위하여 『화국지』의 목차, 『화한삼재도회』의 목차, 『청령국지』 인용 목록에 관한 도표를 함께 첨부함으로써 활용의 가치를 높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