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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고려 사회의 시대정신을 담은 주몽의 건국 드라마
동명왕편 병서 동명왕편 부록 『세종실록지리지』(평안도, 평양부)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
李奎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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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년 이규보는 고구려 건국 영웅의 이야기를 시로 썼을까? 이규보는 서문에서 그 동기를 스스로 밝힌다. 동명왕 주몽의 신비한 이야기는 무식한 사람들도 다 알고 떠들 정도로 유명한데 처음에는 뜯고도 무시했다고 고백한다. 어릴 때부터 익혀온 공자의 말씀, 곧 ‘공자님께서는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논어의 금과옥조를 따랐기 때문이다. ‘무지한 촌놈들의 허황된 옛날이야기일 뿐!’
--- 「해제」 중에서 스물여섯 이규보가 사학사와 문학사의 호평처럼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동명왕편을 썼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예민한 시인은 무의식 가운데 직관적으로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작품 속에 담는 법이다. 이규보는 관직을 얻으려면 무신정권의 마음에 들어야 했기 때문에 말을 탄 무사 주몽의 신이한 건국 이야기를 시로 표현하려고 했다. --- 「해제」 중에서 원기가 혼돈을 나누어/ 천황씨 자황씨가 되었네/ 머리가 열셋 머리가 열하나/ 그 모습 너무나 기이했네. --- 「1수」 중에서 처음에 공중에서 내려오니/ 다섯 용이 이끄는 수레 타고/ 따르는 백여 명들은/ 깃옷 휘날리며 고니 탔네/ 맑은 음악 금옥 울려 찰랑찰랑/ 채색 구름 두둥실 떠다니네. --- 「12수」 중에서 맏딸의 이름은 유화/ 유화는 왕에게 붙들렸네/ 하백이 진노하여/ 사신 보내 급히 달려가/ 고하기를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경솔하고 방자하게 구는가? / 답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 귀한 집안과 서로 맺어지기를 청하오/ 하늘을 가리키니 용수레 내려와/ 곧바로 바다 궁전 깊숙이 이르렀네. --- 「18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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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는 왜?
고구려 건국 영웅의 이야기, 동명왕 신화에는 신이한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공자는 ‘괴력난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는 논어의 금과옥조를 따르자면 거들떠볼 이야기가 아니다. 이규보는 두세 번 읽고 나서야 마음을 고쳐먹는다. 신성한 이야기로 느꼈기 때문이다. 다만 공자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자신을 변호할 필요가 있었기에 서사시 첫머리를 요임금이나 신농씨 이야기 등 공자의 나라에 이미 존재하는 건국의 신성한 이야기로 장식하고 동명왕의 신령함을 드러냄으로써 고구려가 성인의 나라임을 찬양하고자 했다. 그러나 역해자에 따르면 이규보의 실질적인 서사시 집필 동기는 달리 찾을 수 있다. 즉 아버지를 여의고 정치적 학문적 후원자마저 사망하여 정치적으로 기댈 언덕을 잃은 상황에서 첫딸까지 태어나 구직의 길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 그렇다. 동명왕편은 이렇게 생활인 이규보가 구관시(求官詩)의 하나로 지은 작품이다.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 사회에서, 무신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운 고주몽의 이야기야말로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기에 적절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시대의 산물이다. 따라서 역해자는 동명왕편에 ‘소중화의 나라’이자 ‘문물과 예악이 있는 나라’라는 고려 사회의 문화적 자부심과 시대정신이 표현되었다고 말한다. 동명왕편의 구성과 이규보의 서사 전략 이규보는 1193년 『구삼국사』의 「동명왕본기」를 읽은 뒤 동명왕편을 썼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본기」와 서사시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규보가 어떻게 동명왕을 형상화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선 이규보는 282구의 오언고체시 형식으로 동명왕을 노래함으로써 당대 한시의 주류로 인식되어 있던 근체시의 규범을 벗어나 자유롭게 필치를 펼치려고 했다. 또한 서사-본사-결사의 형식으로 시편을 구성하여 서사에는 공자를 받들어 신화를 도외시하는 문인지식인들을 향해 창작의 정당성을 공표한다. 중국의 역사서에도 신화가 역사처럼 기록되어 있는데 고구려 동명왕의 위대한 사적을 읊는 데 문제가 없다는 취지이다. 서사의 이러한 구성은 결사에서 반복되지만 결사에서 끌어들인 중국의 사례는 신화나 전설이 아닌, 한고조 유방과 후한의 창업자 광무제 유수에 얽힌, 역사시대의 것으로 바꿔놓아 주몽의 역사적 실재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한편 본사에서는 『구삼국사』와 「동명왕본기」를 인용 형식으로 활용하여 시와 이야기가 상보적으로 작용하도록 구성함으로써 동명왕편이 구전 서사시의 전통을 계승하도록 했다. 또한 역사서를 시의 근거로 제시하여 시의 진실성과 사실성을 고양시켰다. 역해자는 이규보가 동명왕 서사를 시로 형상화하면서 「본기」가 표현할 수 없는 효과를 창출한다는 데 주목한다. 즉 「본기」의 건조한 산문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감정의 토로를 통한 정서의 환기 효과다. 예컨대 해모수가 유화를 만나는 대목에서 「본기」에서는 “비로 삼으면 후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좌우에 말했다”고 노래한 반면 시에서는 “곱고 화려한 것 좋아함이 아니라/ 참으로 뒤 이을 아들이 급하였네”라고 노래한다. 사관이 사실의 서술에 집중하고 있다면 시인은 해모수의 감정 속으로 들어가 해모수가 되는 것이다. 동명왕편의 문학사 및 사학사, 신화사적 평가 동명왕편은 구관(求官)이라는 사적 동기에서 비롯된 작품이지만 한국 고전문학사와 사학사에 일획을 긋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동명왕편은 문자로 기록된, 가장 이른 시기에 창작된 본격적인 서사시이자 영사시(詠史詩)이기 때문이다. 사학사적으로는 동명왕편이 무신란 이후의 혼란상에 대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무신란의 원인이 된 문신귀족들의 부패나 정치문화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고 고려의 국제적 지위가 약화되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힘을 찾으려는 의식이 배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구비문학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신화·서사시를 주로 연구한 역해자는 동명왕편의 신화사적 의의 역시 주목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규보가 시를 통해 새로 덧붙인 신화소는 없지만 『삼국사기』가 지운 신화소들을 풍부하게 복원시켰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해모수의 천강(天降)과 유화와의 결혼, 결혼을 둘러싼 하백과의 변신 경쟁, 용궁에서의 음주와 승천, 영아 주몽의 활쏘기, 사냥대회의 승리와 나무 뽑기, 유화의 준마 고르기와 주몽의 양마(養馬), 비둘기 편에 보낸 유화의 오곡종자, 비류국 송양왕과의 대결, 주몽의 승천 등이 대표적인 신화소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