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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 4
해제 『한경지략』, 19세기 경화인(京華人)의 자기 기록 17 서문 51 권 1 01 천문(天文) 59 02 연혁(沿革) 63 03 형승(形勝) 69 04 성곽(城廓) 75 05 궁궐(宮闕) 85 06 단유(壇?) 137 07 묘전궁(廟殿宮) 155 08 사묘(祠廟) 173 09 원유(苑?) 199 10 궁실(宮室) 205 11 궐내각사(闕內各司) 233 권2 12 궐외각사(闕外各司) 295 13 역원(驛院) 411 14 교량(橋梁) 413 15 고적(古跡) 427 16 산천(山川) 441 17 여러 우물과 약샘(附諸井藥泉) 471 18 명승(名勝) 479 19 각동(各洞)[동下也 通街] 509 20 시전(?廛) 579 『한경지략』에서 인용한 책 소개 599 참고문헌 605 찾아보기 609 |
柳本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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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방에 이르러서는 신라와 고려 이래로 모두 기록이 부족하지만, 고려 때 성과 궁궐의 제도는 서긍(徐兢, 1091~1153)의 『고려도경』에서 그나마 찾아볼 수 있고, 우리 조정 궁전의 제도는 동월(董越, 1430~1502)의 「조선부」에서 대략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신 하나가 한때 잠깐 보고 들은 것이 그 땅에서 살아온 원주민보다 낫겠는가? 지금은 작은 현 하나도 반드시 읍지가 있는데 하물며 당당한 왕경이 오래도록 지리지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 까닭을 궁구해 보자면 책을 쓴 것이 있는가 없는가에 있을 뿐이니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
--- 「서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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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서울의 역사와 건물, 명소, 풍속 등을 그려낸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서울 지리지 『한경지략』은 19세기 전반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유본예가 수도 한성의 인문지리를 저술한 책이다. 당대 서울 주민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서술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이후 한성만을 다룬 지리지가 새로 편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그 사료적 가치를 평가받았다. 『한경지략』은 지리지로서 다루어야 하는 서울의 여러 장소를 주제별로 다루면서도, 서울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놀이문화와 여러 유명인의 사적을 간직한 동네, 크고 작은 물길과 맛있는 우물 같은 구체적인 정보들을 담았다. 한양 곳곳의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묘사적인 전개방식과 미시적인 정보는 이 책의 현장성과 당대성을 잘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서울의 옛 모습을 추적할 때면 어디서나 가장 기본적인 자료로 활용해 왔다. 한편 『한경지략』은 지극히 유본예 개인의 관심에 편중된 개인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선대에 대한 기억과 서울 사람이라는 유본예의 정체성은 이 책을 저술한 근간이었다.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한양은 19세기의 한양 전체가 아니라, 유본예가 취사선택한 한양이었다. 그러나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당대의 현실에 한발 더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사료적 가치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잘 알려진 것에 비해 번역본은 1970년대 나온 한 종뿐이었다. (최근에 아카넷 출판본의 출간 직전에 규장각 영인본을 덧붙인 역주본이 민속원에서 새로 출간되었다.) 70년대에 출간된 번역본은 예스럽고 유려한 한국어를 보여주지만, 한계 역시 분명하였다. 『한경지략』 원문 자체가 필사본이어서 오탈자나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장지연 교수의 역주본에서는 풍부한 해설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필사본과 인용서의 원문을 최대한 비교하여 이러한 오류를 많이 잡았다. 『한경지략』의 체계는 대상의 좌표를 먼저 설명하고(천문), 간략한 역사와 한성의 지역적 범위를 설명한(연혁) 후에 서울의 전체적인 자연지세를 설명하는 형승이 이어지고, 그다음으로 성곽, 궁궐, 단유 등의 인문 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형승 이후는 도시의 곳곳을 주제별로 훑고 가는 셈이다. 공간을 상상하며, 혹은 공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묘사적인 전개방식과 장소별로 일상의 풍속을 소개한다. 가령 서울은 이곳을 거쳐 간 위대한 인물들의 후손이 대대로 거주하는 장소로 소개된다. 이정귀(李廷龜)의 후손이 거주하는 관동, 조말생(趙末生)의 후손이 사는 타락동, 이경여(李敬輿)의 봉사손이 거주하는 남산동, 한명회(韓明澮)의 자손이 거주하는 난정리문동, 김장생(金長生)의 후손이 거주하는 누국동, 서성(徐?)의 후손이 거주하는 약전현, 이재(李縡)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아현 등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유본예는 한양을 더욱 세분화하여 타락동은 동촌 사람들이 노니는 곳이라든가 인왕산 아래 누국동은 여항 서리들이 주로 사는 곳이라는 설명처럼 지역별로 거주하는 사람의 특성을 꼽기도 하였으며, 훈련원 배추와 왕십리 미나리, 북둔의 복숭아, 시전 편목에서 남쪽은 술을 잘 빚고 북쪽은 떡을 잘 만들어 ‘남주북병’이라고 한다는 등의 특산물을 언급한다. 이는 그가 한양이라는 지역을 세분하고 그 특색을 구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미시적이며 생활에 밀착된 지식은 서문에서 유본예가 강조했던, 원주민이어야 제대로 기술할 수 있다고 자부한, 바로 그 정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