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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논어 에세이 개정증보판
김영민
사회평론 202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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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도서는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2019)의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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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 『논어』 연작을 펴내며
매니페스토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1. 침묵의 함성을 들어라

왜 구태여 침묵했는가
자유주의 송편
모순과 함께 걸었다
떠나는 이유에 대해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마르크스‘도’ 읽어야지”

2. 실패를 예감하며 실패로 전진하기

신의 가호에 회의를 품게 된 시대의 사랑 仁
미워하라, 정확하게 正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 欲
해도 안 되는 줄 이미 알았던 사람 禮
우유부단함은 중용이 아니다 權
실연의 기술 習
완성을 향한 열망 敬
알다, 모르다, 모른다는 것을 알다 知

3.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점에서

자성,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고통 省
“빡센 삶, 각오는 돼 있어?” 孝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이다 無爲
부러우면 지는 거, 아니 지배당하는 거다 威
너의 존재는 거짓이 아니다 事
지구의 영정 사진 찍기 再現
돌직구와 뒷담화의 공동체 敎學

4. 성급한 혐오와 애호를 넘어

단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 가운데 있습니다”
제 가격에 자신을 판다는 것
당신 뱃속에는 성인의 마음이 있다
돈과 자유
새 술은 헌 부대에
계보란 무엇인가
‘유교’란 무엇인가

에필로그

저자 소개1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브린모어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하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중국 정치사상사 연구를 폭넓게 정리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2017)와 이 책을 저본 삼아 국내 독자를 위해 내용을 확장하고 새로운 문체로 담은 《중국정치사상사》(2021)를 출간했다. 산문집으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18),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2019), 《공부란 무엇인가》(2020),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2021), 《인생의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브린모어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하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중국 정치사상사 연구를 폭넓게 정리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2017)와 이 책을 저본 삼아 국내 독자를 위해 내용을 확장하고 새로운 문체로 담은 《중국정치사상사》(2021)를 출간했다. 산문집으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18),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2019), 《공부란 무엇인가》(2020),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2021),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2022), 《인생의 허무를 보다》(2022), 《가벼운 고백》(2024), 《한국이란 무엇인가》(2025)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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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125*190*20mm
ISBN13
9791167072191

책 속으로

사상사의 역설은 어떤 생각이 과거에 죽었다는 사실을 냉정히 인정함을 통해 비로소 무엇인가 그 무덤에서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이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생각의 무덤을 우리는 텍스트text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텍스트가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텍스트의 무덤을 우리는 콘텍스트context라고 부른다. (…) 죽은 생각이 텍스트에서 부활하는 모습을 보려면 콘텍스트를 찾아야 한다. 즉 과거에 이미 죽은 생각은 『논어』라는 텍스트에 묻혀 있고, 그 텍스트의 위상을 알려면 『논어』의 언명이 존재했던 과거의 역사적 조건과 담론의 장이라는 보다 넓은 콘텍스트로 나아가야 한다.
--- 「매니페스토: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중에서

송편에 무엇을 넣느냐 가지고 전쟁을 하느니, 아예 송편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 게 어떻소. 싸우느니, 콩이든 깨든 꿀이든 고기든 다 넣지 맙시다. 이리하여 텅 빈 송편. 우리는 이것을 송편의 침묵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침묵하는 송편이 가진 전복적인 성격은, 그것이 속이 빈 공갈떡과 구별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급기야 사람들은 침묵하는 송편과 공갈떡을 구별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 송편이라는 범주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 「자유주의 송편」 중에서

널리 알려진 바대로 인仁은 『논어』에서 자주 쓰이는, 『논어』의 세계를 대표할 만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렇지만 공자가 인이라는 개념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조방趙? 같은 학자가 지적했듯이, 인이라는 용어는 전국시대의 문헌에는 흔히 나타나지만, 그 이전 서주시대 문헌에서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 즉 인은 기원전 5세기께 이르러서야 한층 더 자주 쓰이게 된 용어이다. 공자는 바로 그 시대의 사람, 즉 인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기 시작한 세대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세대는 바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신의 가호에 의지하는 일에 회의를 품게 된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신의 무정함을 깨달은 당시 사람들이 신의 가호에 대한 대안으로, 즉 일종의 자구책으로, 인간의 사랑(仁)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 「신의 가호에 회의를 품게 된 시대의 사랑 仁」 중에서

진정 감탄스러운 것은 나이 일흔에도 여전히 공자는 욕망하는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보니 욕망이 사라진다고 말하거나, 오랜 수양 끝에 욕망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은 욕망을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해도 여전히 궤도 위에 있는 기차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공자는 영생하는 신이 아니었기에, 괴력난신怪力亂神으로부터 거리를 둔 사람이었기에, 『논어』가 전하는 이러한 공자의 페르소나는 실로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에 집착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삶이라는 이벤트에서 끝내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사람, 과잉을 찬양했던 사람, 노년에 이르러도 그치지 않는 배움이라는 긴 마라톤에 출전하기를 꺼리지 않았던 사람. 『논어』는 그렇게 분투한 사람에 대한 재현이다.
---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 慾」 중에서

중용은 단순히 산술적 중간을 의미하거나 극단적 행동을 회피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견 과한 행동처럼 보여도, 그것이 상황에 적절하기만 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중용일 수 있다. 중용이란 예상하기 어려운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도 적절성을 찾아내는, 그러기 위해서 기존 규범이나 예상으로부터 적절히 이탈할 수 있는 차원을 포함한다. (…) ‘음식 맛없게 만들기’ 매뉴얼을 따라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높은 수준의 맛없음을 구현하기 어렵듯이, 예禮의 매뉴얼을 따라 기계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이상 사회가 자동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는 변치 않는 규범에 대한 고집보다는 임기응변이나 융통성이 필요할 때가 있다.
--- 「우유부단함은 중용이 아니다 權」 중에서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했을 때, 거기에는 극복 대상이 된 3인칭의 자아뿐 아니라, 대상화된 자신을 바라보는 1인칭의 자아가 동시에 있다. 메타 시선을 장착한 사람은 대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발언을 삼가는 사람, 자신이 알 수 없는 큰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 그러나 무지를 선언한다고 해서 그가 곧 메타 시선을 장착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뭔가 배울 의지가 없는 사람일수록 질문을 하자마자, 냅다 “모르겠는데요!”라고 대꾸하고 고개를 숙여버린다. 무지를 선언하는 데는 그 나름의 쾌감이 따르므로. 그러나 과연 무엇을 모르는가?
--- 「알다, 모르다, 모른다는 것을 알다 知」 중에서

공자에 따르면, 주나라 초기 문화는 죽은 조상보다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었고, 혈통보다는 덕성을 중시했고, 과도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예를 수행하는 것을 강조했고, 허례허식보다는 진심 어린 태도를 구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찬란했던 문화로 돌아가야 한다. (…) 자신의 거친 피부를 그대로 보고하는 것이 졸업 사진의 목적이 아니듯이, 주나라 문화를 실증적으로 보고하는 것이 공자의 목적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후대의 모범이 될 만한 모델을 주나라 문화라는 이름으로 재현할 것인가가 공자의 목적이었다.
--- 「너의 존재는 거짓이 아니다 事」 중에서

저명한 사회과학자 시다 스코치폴은 “새 와인은 새 통보다는 이미 있는 통에 담는 것이 좋다”고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대개 유명하고 익숙한 와인을 마시려 들고, 유명하고 익숙한 텍스트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석을 단다. 그렇게 발전한 주석사는 단순히 고전을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생각들을 담는 매개체가 된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주석을 읽다 보면, 같은 대상도 관점에 따라 얼마나 달리 보일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관점이 당대의 편견이나 선입견으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 역시 깨닫게 된다.”

--- 「새 술은 헌 부대에」 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리가 고전을 펼쳐 드는 이유는 좀 더 넓고 깊은
생각의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삶의 미시와 거시 사이를 활강하는 글쓰기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생각거리를 차원 높은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본업인 사상사 연구자로 돌아와 〈논어 연작〉을 펴냈다. 에세이부터 번역·해설·학술연구·번역비평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논어』에 이르는 여러 경로를 직접 안내한다.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는 다섯 권의 〈논어 연작〉 중 첫 번째 권인 ‘논어 에세이’이다.

『논어』를 왜 읽는가? 고전을 왜 읽는가? 실로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노화를 막거나, 우울증을 해결하거나, 요로결석을 치유하거나, 서구 문명의 병폐를 극복하거나,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답을 찾거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거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길은 없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_「매니페스토」, 25∼26쪽

도입부에서 선언하듯이, 저자는 ‘불후의 고전’을 ‘살아 있는 지혜’로 포장해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는 세태를 경계한다. 그의 희망은 소박하다. 고전을 매개로 하여 텍스트를 공들여 읽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몸담은 삶과 세계라는 텍스트일 터, 2,500년 넘게 살아남은 『논어』에 수많은 이들이 주석을 달고 지금까지도 해설을 덧붙이는 이유이자 ‘김영민’만의 시선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고전 『논어』라는 헌 부대에 오늘의 ‘세상’이라는 새 술을 붓는다. 여기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유와 자유롭고 독창적인 문장을 더해, 고전 해설의 관습을 벗어난 새로운 글쓰기를 완성한다. “유쾌하면서도 심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온 저자의 『논어』 독법이 주는 사유의 즐거움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 침묵의 함성을 들어라
: 삶과 세계를 정밀하게 독해하려면


공자는 “나는 말을 하지 않고자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저자는 『논어』 텍스트 전체가 “발화한 것, 침묵한 것, 침묵하겠다고 발화한 것”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고 본다. 침묵을 매질로 삼은 메시지는 그에 걸맞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독해자를 요구한다. 따라서 이러한 분류를 염두에 두고 의도된 침묵마저 읽어낼 자세로 『논어』를 탐사해나가자고 제안한다. 공자는 노나라 사구(형벌이나 도난 등의 사안을 맡은 벼슬) 직책을 맡고 있다가 느닷없이 직을 관두고 떠나버린 일이 있다. 그는 왜 쓰고 있던 면류관도 벗지 않은 채 보란 듯이 예를 어기며 부랴부랴 떠났고, 왜 구태여 침묵했을까?

공자가 자신이 떠나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 침묵했으므로,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공자가 고기 때문에 떠났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공자가 내심 너무너무 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자신에게 고기를 주지 않자 그만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탓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공자가 고기에 대해 중독에 가까운 무조건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추론도 합리적이리라. 그러나 공자는 고기에 관하여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_「떠나는 이유에 대해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59∼60쪽

이어지는 글에서 저자는 공자가 고기라면 무조건 먹으려 드는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었음을 옛 문헌들을 뒤져가며 예의 진지하게 증명한다. 독자는 그 독특한 유머와 리듬에 빠져 하릴없이 키득거리다가 어느새 다음 문장에 도달한다.

만약 공자가 특정한 도덕률에 고집스럽게 매달리는 협애한 도덕가였다면, 그는 그저 특정 도덕 기준을 들어 자신의 조국을 가차 없이 매도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기에는 공자는 노나라라는 정치공동체에 무관한 인물이 아니었다. 만약 공자가 자신의 출신 지역이나 집단에 대해 무비판적인 충성을 일삼는 사람이었다면, 무조건적으로 조국의 편을 들어 어떤 흠이라도 눈감아주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조국을 사랑하되, 그 조국을 비판해야 하는 딜레마에 마주하여 그 나름의 해결책을 자신의 행동에 담고자 한 사람이었다. _「떠나는 이유에 대해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64쪽

불필요한 과장overstatement을 비판하고, 침묵 및 삼가 말하기understatement를 옹호한 공자를 통해, 단순한 침묵이나 생략으로 보이는 것들이 갖는 전복적인 성격을 간파하기. 이렇듯 김영민의 논어 에세이는 위트와 아이러니로 직조한 글쓰기로 해당 텍스트를 넘어 보다 넓은 콘텍스트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 실패를 예감하며 실패로 전진하기
: 이토록 고단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김영민 교수는 공자의 제자들이나 『논어』의 편집자가 유려한 예식의 집전자로서의 공자만큼이나 현실에서 실패한 선생의 모습을 사랑한 데 주목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허나 결함이 있더라도 자신의 결함을 인지할 수 있을 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 화해하기 어려운 모순적 열망이 공존한 인물―공자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이 생에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읽어낼 수 있진 않을까. 그가 자주 이야기한 가치들, 그 역사적 맥락, 그리고 급변하는 시대를 메타 시선으로 통찰하여 실마리를 풀어내볼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살던 시대는 만성적인 전쟁의 시대. 전국시대에 이르면 진秦나라 통일 전까지 적어도 590회의 전쟁이 일어났다는데, 공자가 그때까지 살았던들 그 추세를 되돌릴 수 있었을까. (…) 공자나 그의 제자들은 해도 안 되는 줄 이미 아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무력에 의존하여 천하통일을 추구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실패하기를 선택한다.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말했듯이, 그들은 승리하기보다는 다시 더 낫게 실패하기를 선택한다. _「해도 안 되는 줄 이미 알았던 사람 禮」, 116쪽

#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점에서
: 서로 다른 인간끼리 어울려 살기 위하여


정치학, 철학,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정치사상사를 공부한 김영민 교수는, 인간은 어떻게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지 질문을 던지는 게 정치철학이고, 과거의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어떤 답을 해왔는지를 파악하는 게 정치사상사라고 설명한 바 있다. 『논어』가 지금 여기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근심이 이 책에 스며 있는 이유이다.

공자가 더 관심을 기울인 것은 집 안에서 자기 부모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 섬길 것인가 혹은 자기 자식을 구체적으로 얼마나 효성스러운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는, 앞서 말한 삶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나누어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 일상의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위생, 교육, 복지, 육아, 노인 돌봄 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당사자, 가족, 사회, 국가 가운데 누가 어떻게 무엇을 얼마나 나누어 맡아야 하는가. 이는 공자의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인류가 고민해온 문제이며 매 시대 조건은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이 문제는 시대마다 새로운 답을 요구한다. _「“빡센 삶, 각오는 돼 있어?” 孝」, 173, 176쪽

# 성급한 혐오와 애호를 넘어
: 죽어야 사는 것들에 대한 시의적절한 질문들


공자는 “경천동지할 혜안을 가진 고독한 천재라기보다는 자신이 마주한 당대의 문제와 고투한 지성인”이었고, “국가가 설정한 위계적인 구획을 넘어, 친족 네트워크를 넘어, 타인과 비전을 함께 나눈 공동체의 카리스마 넘치는 스승”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떠들썩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은 말한다. “공자가 족보 같은 걸 만들어가며 친족을 대규모로 관리하라고 주장한 적도 없고, 조상신 덕 보라고 한 적도 없”으며, “자신의 친아들보다는 제자를 더 사랑했다”고. “유교”라는 말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도맷값으로 넘기는 데” 남용되는 세태에 대해 “좀 더 복합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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