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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트햄프턴, 1991년 가을
2. 까마귀 섬, 1990년 여름 3. 멕시코, 1992년 여름 4. 노몬한, 1994년 여름 5. 아메리카, 1995년 여름 6. 고베, 1997년 봄 |
Haruki Murakami,むらかみ はるき,村上春樹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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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7/16 고흥준(coju@hitel.net)
개인적인 취향 탓이겠지만 나는 '광적으로' 사진집을 좋아한다. 호흡이 긴 장편소설을 며칠에 걸쳐 읽을 때보다 단 한 장의 사진을 잠시 들여다 보면서 더 큰 감동을 받는다. 분명 사진과 글은 다른 문법을 지니고 독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일 테지만 사진만이 지니는 장점, 즉 정지된 침묵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그들이 전해주는 잔잔한 수근거림은 그 어떤 명문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루키가 쓴 여행산문이 사진집과 함께 발간되었음을 잘 알면서도 굳이 사진집을 선택한 것은 글이 주는 감정의 일방적 습득보다, 사진이 주는 상상력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진집을 펼쳐놓고 있을 때 마침 아내는 출산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나는 병실을 지키며 아내의 몸과 연결된 피틀 모니터 (Fetal- Monitor)가 쏟아내는 두 개의 렉탱글 속에 하루키의 사진집이 교차하는 것을 느끼곤 했다. 여행은 삶으로부터의 일탈이나 회피가 아니라 돌아옴을 목적으로 한다. 떠난다는 말 속에 약간의 유희가 숨어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온다는 것은 다시 떠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완벽한 떠남이 없듯 완벽한 돌아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고독은 그 불완전성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 아내와 내가 아이를 만나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바로 그 불완전성을 체험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여행기록 사진들 속에서 찾아낸 것은 (흡족해 했던 것은) 하루키가 유타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찍은 사진이다.(127p)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것은 정형화된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 중 일부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거나 기분대로 찡그리고 있기도 하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행복한 결속력을 다지거나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의 사진 속에는 밝고 맑은 표정의 획일화를 통해 행복의 과장을 얻은 대신, 잃어버린 자유로움이 붙박혀 있다. 그것은 광활한 대지와 신비로운 자연의 풍광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다. 하물며 그 구속 안에서조차 자유로운 아이들만의 표정을 만나는 것에 이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또는 하얼빈과 하이랄 사이를 오가는 침대열차를 담아낸 흑백사진(67p)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어지럽게 놓여있는 맥주병과 음식들 사이에서 느긋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두 사람의 시선에는 여행의 들뜸이나 피로가 보이지 않는다. 자못 진지하면서도 낙천적인 표정은 기이하고 이국적인 냄새로 가득찬 풍광보다 여행의 본질에 더 근접해 있는 것이 아닐까? 다소 억지스러운 귀착이 될 수도 있겠으나 병실에서 피틀 모니터가 쏟아내던 디지털 신호를 지켜보던 느낌이 바로 그러했다. 급격한 그래프의 산출과 렉탱글의 세계. 거기에는 하루키의 사진이 전해주는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여행에 동반한 자가 느끼는 인간의 모습이 들어있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경영하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격리될 수밖에 없는 실존의 체험. <하루키의 여행법>을 바라보던 시각은 그래서 다분히 개인적이다. 어차피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추상화된 개념을 도입하더라도 독선적인 체험에 불과한 것처럼.... ps. 피틀 모니터의 그래프로 표현되던 아이가 첫 울음을 터뜨리던 순간, 나는 아주 긴 여행에서 돌아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아이의 잉태와 출산에 대한 책임 끝에 비로소 다가오던 피로의 소진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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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 가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130엔을 내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아도 진짜 호랑이 새끼를 안아 볼수있으니 대단한 일이다.. 과연 중국답다..하지만 막상 사육 담당자가 데리고온 호랑이 새끼를 보고 나는 약간 당황했다.(하하하 순진한 하루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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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담긴 사진들은,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한 여행의 기록인 셈인데, 단지 '고베'지역만 따로 행동했다. 나는 내 고향인 니시노미야로부터 고베까지의 길을 혼자서 걸어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이조 군은 그로부터 반 년쯤 후, 내가 걸었던 길을 혼자서 걸어가며 여기에 담긴 사진들을 찍어 주었다.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똑같은 풍경을 똑같은 각도에서 봤는데도 우리는 정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구나 하고 새삼스레 감탄하게 된다.
글에는 글만의 개성이 있고, 사진에는 사진만의 개성이 있다. 글과 사진엔 각각 독자적인 시선이 있고, 독자적인 문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서로 밀어내거나 혹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삼켜 버리지 않는 것을 나로서는 기쁘게 생각한다. 물론 공존 관계라는 것은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거기서는, 에이조 군의 손도끼가 쪼개어 내는 장작 크기가 고르지 않은 진지한 점이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이 든다. --- p.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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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망각한 공식적인 역사와는 별도로, 그들의 눈을 통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역사'가 거기에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또 하나의 역사'는, 눈에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는 장소에, 명확한 형태를 갖지 않는 사물 속에, 아마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맥박치고 있으리라. 시나칸탄 마을의 광장에 앉아서 멍하니 주위 풍경을 바라보고, 축제의 불꽃이 솟아오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나는 문득 그런 생각에 빠져든다.
--- p.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