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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안녕, 소녀
02 어른들의 사정 03 그럼에도 불구하고 04 옛 사람이 돌아오다 05 5월 12일 06 그의 이름은 전나무 07 우리 내일 결혼할까? 08 남매 09 여름밤의 미소 10 뒤바뀐 두 아이 11 당신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요 12 머무는 사람, 떠나는 사람 13 휴양지에서 생긴 일 14 보고 있어도 그리운 얼굴 15 서툰 노랫소리 16 너희들은 모른다 17 엄마 18 리처드 3세 에필로그_정원이 있는 집 후기_이 소설은 나의 빛이었다 |
笛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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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망설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났니?” 엄마의 첫마디였다. “아까 만났어요.” “그럼 됐다.” 늘 이런 식이다. 엄마는 내 전화를 받을 때 이름을 부르는 법이 없고, 나도 ‘엄마’라는 호칭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우리는 꽤 오래전부터 서로를 부르지 않는다. 작은어머니 앞에서 ‘우리 엄마’라고 말하다가 혀가 꼬일 뻔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몸조심하세요” 따위의 말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대로가 좋다. 내가 그 여자에게 “몸조심하세요” 따위의 뻔한 거짓말을 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 p.26~27 “할 말이 있어.” 움켜쥔 그의 주먹이 가늘게 떨렸다. “여기서 말하고 싶진 않지만 여길 와야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아들을 데리고 가겠어.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야.” “쫓겨났지?” 나는 그의 눈을 노려보며 피식 웃었다. “당신, 연구소에서 잘린 거야. 이제야 아들 생각이 났겠지. 장애아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게 아니면 먹고살 일이 막막하니까, 안 그래?” 한때 살 부비고 산 전처이므로 나는 어떻게 하면 그를 격노시킬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p.84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그렇다, 나는 지금 살아 있다. 혼자 텅 빈 카페에 앉아 맥주캔을 힘껏 땄다. 눈처럼 흰 거품이 흘러넘치기 직전에 캔을 입에 가져다 댔다. 거품이 혀끝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런 아릿한 파멸이 바로 살아 있는 것이다. 방금 전 내가 나만의 공간으로 숨어들어 구석 자리의 스탠드를 켰을 때 장이가 선물한 낡은 피아노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냈다. 마치 이곳에서 나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이를 윽물고 그것을 노려보다가 문득 웃었다. 그렇게 시리고 쓰릴 만큼 팽팽히 당겨진 시선이 바로 살아 있는 것이다. 방금 전, 그러니까 방금 전보다 조금 더 전에 총구에서 튕겨 나간 총알처럼 작은아버지 댁을 뛰쳐나와 차를 몰고 달리는 동안, 피곤에 찌들어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차들을 차례로 앞지르면서 내가 얼마나 핸들을 옆으로 비틀어버리고 싶었는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그렇게 맹렬하고 통제 불가능한, 죽고 싶다는 욕망이 바로 살아 있는 것이다. --- p.158~159 “그날 오래 기다렸는데 오지 않더구나.” 그가 조용히 말했다. 그의 장례식을 두고 하는 말이란 걸 알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죽은 후의 모습이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고, 적어도 존엄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고 느꼈을 뿐이다. 내 반응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그가 피식 웃었다. “하긴 그게 뭐 어때서, 오기 싫으면 안 오는 거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도 아니고 말이야.” 놀랍게도 그의 표정에 부끄러운 빛이 어렸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내가 마침내 고개를 들고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얼마든지.”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두 손을 주머니에 꽂고 천천히 계단참에 걸터앉았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걸까? 계단참은 또 어디서 나타난 걸까? 모르겠다. 어차피 꿈이니까. “사실대로 대답하겠다고 약속해요. 또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 나는 고개를 외로 꼬고 멀리 있는 잿빛 하늘 가장자리로 시선을 던졌다. “내가 어렸을 때 나를 목 졸라 죽이려 한 적이 있나요? 정말로 그런 적 있어요?”--- p.230 부드럽게, 나긋나긋하게, 조금 더 여리게. 겁낼 거 없어. 나를 제일 예쁘게 보이는 데만 몰입해. 아무도 나를 천하다고 무시하지 않아. 당신, 당신 아내가 이 순간 당신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본다면 분명히 귀를 비틀어버릴 거야. 당신, 음악에만 집중할 순 없겠어? 자꾸만 내 엉덩이를 흘끔거리지 말고 말이야. 나를 존중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그건 메이옌팡의 노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그리고 너, 이 음흉한 자식. 작작해라. 점잔 좀 작작 떨란 말이야. 피부색이니 인종이니 종교니 다 소용없어. 세상 남자들은 전부 속이 시커멓다는 걸 누가 모를까 봐. 마지막으로 너. 그래, 너 어린 놈. 아까부터 테이블에 꽂혀 있는 장미를 내게 건넬까 말까 망설이고 있지? 너 몇 살이야? 열 살은 넘었어? 좋아, 이리 와. 네 꽃을 내게 줘. 나는 네 꽃만 받겠어. --- p.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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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그렇게 한마디도 안 져?!”
신이시여, 이 못난 가족에게 축복을! 『개처럼 싸우고 꽃처럼 아끼고』는 섬세한 문체와 매력적인 등장인물을 통해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가족의 민낯을 이야기하는 장편소설로, 이미 ‘중국여성문학상’ ‘중국소설격년장’ ‘화어문학전매대장 신인상’ 등을 수상하며 1980년대에 출생한 중국의 작가 세대를 지칭하는 ‘파링허우(80後)’의 선두에 서 있는 작가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해준 작품이다. “오랜만에 만난 소설다운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쑤퉁의 찬사처럼 디안의 글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예리하게 조명하며, 치밀한 심리 묘사로 독자들을 흡입력 있게 이야기 속으로 안내한다. 디안은 평단의 극찬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2011년 국내에 출간된 『시줴의 겨울』을 포함해 100만 부 이상의 작품 누적 판매고를 올리며 대중의 입맛까지 만족시키는 ‘중국문학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개처럼 싸우고 꽃처럼 아끼고』에는 쉴 새 없이 떠드는 가족들의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함께 만두를 빚고는 있지만 가치관도 다르고 속마음도 다르다. 남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못난 심경을 표현하기도 하고,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해 상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또 고맙다는 말에는 유난히 야박하기만 하다. 이런 일상적인 모습을 작가는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마음이 철렁할 정도로 날 서게 표현하는데,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세상 모든 사연 있는 집’의 이야기가 있고, 바로 ‘우리 집’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면에는 단순히 사랑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다면적인 감정이 존재하며 ‘애증’과 ‘진저리침’ 사이에 리듬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작가가 정의하는 ‘가족’이 아닐까. 이 소설은 소소한 하루하루가 쌓이는 가운데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중국문학이 보여주는 ‘말의 맛’을 제대로 전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둥니를 찾아온 베일에 싸인 소녀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에서 일상성이 비일상성으로 전환되며 드라마틱한 흐름이 최고조에 이르러, 독자들이 소설이 끝난 이후에도 이어질 정씨 가족 일가의 안부를 궁금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살을 부비고 사는 가족, 그리고 그 안에서의 각자의 존재를 새롭게 느끼고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