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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부친 편지
성철한용운 등저 정법안 편저
노마드북스 200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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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무소유의 꿈
토끼의 발자국/경봉 스님이 환경 스님에게//미련과 쓸쓸함/환경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난/청담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마음꽃/경봉 스님이 청담 스님에게
돌에게 물어보라/고봉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깨달음/경봉 스님이 고봉 스님에게
무소유의 꿈/한암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속세의 인연/벽안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버리지 못할 인연/경봉 스님이 벽안 스님에게//마음의 병/정시우 거사가 경봉 스님에게
탈속/모 비구니 스님이 경허 스님에게//옳고 그름에 대한 헤아림/경허 스님이 모 비구니 스님에게//마음속의 부처/성철 스님이 손규태 거사에게
마음의 여유/경봉 스님이 만해 한용운 스님에게//늦은 답신/한암 스님이 효봉 스님에게
산은 깊고 물은 차네/경봉 스님이 동산 스님에게//시름/구하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꿈/경봉 스님이 구하 스님에게

제2부 길은 너에게 있다
삼독번뇌/고봉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인연/김정헌 거사가 경봉 스님에게
무심하라/경봉 스님이 김정헌 거사에게//길은 너에게 있다/경봉 스님이 석정 스님에게
만행/석정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무념/연산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도란 본래의 마음/경봉 스님이 연산 스님에게//사는 법/야응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삶과 길/월곡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마음길/경봉 스님이 월곡 스님에게
아득한 것에 대하여/일타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소식/경봉 스님이 일타 스님에게
적멸에 대하여/경봉 스님이 제산 스님에게//마음을 다스려라/제산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석탑/경봉 스님이 탄허 스님에게//열쇠는 그대가 가지고 있네/경봉 스님이 현로 스님에게

제3부 깨닫는다는 것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열반/고봉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아, 열반/경봉 스님이 춘성 스님에게
죄와 병/추봉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불자의 법도/경봉 스님이 추봉 스님에게
동안거/구하 스님이 월하 스님에게//시/구하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모든 것은 꿈/구옹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세 가지 웃음과 세 가지 꿈/경봉 스님이 구옹 스님에게//꿈길/설봉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밤길/경봉 스님이 설봉 스님에게//업/추규영 거사가 경봉 스님에게
법이란 무엇인가/경봉 스님이 추규영 거사에게//무無/박한영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무란 무엇인가/경봉 스님이 박한영 스님에게//그리움/박한영 스님이 서병재 스님에게
허공/경봉 스님이 탄허 스님에게

제4부 만행의 끝
만행의 끝/효봉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뼈아픈 화두/효봉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마음의 공복/경봉 스님이 효봉 스님에게//쓸어버리지 못하는 향기/탄허 스님이 일장 스님에게//쓸쓸한 시간의 벽/한암 스님이 효봉 스님에게//스승의 죽음/경봉 스님이 향곡 스님에게
마음/경봉 스님이 향곡 스님에게//마음의 적賊에게/경봉 스님이 향곡 스님에게
마음의 세속을 버려라/경운 스님이 진옹 스님에게//업바람의 힘/경허 스님이 김석사 거사와 장상사 거사에게//선문답/춘성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바람벽/지월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북망산/경봉 스님이 고문평 거사에게//마음속의 독을 버려라/경봉 스님이 만공 스님에게
편지/녹원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물과 산/용성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저자 소개 3

性徹, 이영주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어릴 때부터 ‘영원에서 영원으로’라는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철학, 의학, 문학 등 동서고금의 책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그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영가대사의 『증도가』를 읽은 후 머리 긴 속인으로 화두참선을 시작했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36년 봄, 스물다섯의 나이에 당대의 선지식인 동산스님을 인사로 ‘이영주’라는 속인의 옷을 벗고 ‘성철’이라는 법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어릴 때부터 ‘영원에서 영원으로’라는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철학, 의학, 문학 등 동서고금의 책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그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영가대사의 『증도가』를 읽은 후 머리 긴 속인으로 화두참선을 시작했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36년 봄, 스물다섯의 나이에 당대의 선지식인 동산스님을 인사로 ‘이영주’라는 속인의 옷을 벗고 ‘성철’이라는 법명을 얻어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고 수행의 길에 들었다. 출가한 지 삼 년 만에 깨달음을 얻어 눈부신 법열의 세계로 들어간 스님은 마하연사, 수덕사, 정혜사, 은해사, 운부암, 도리사, 복천암 등으로 계속 발길을 옮기면서 많은 선사들을 만나 정진을 했다. 장좌불와 팔 년, 동구불출 십 년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그 독보적인 사상과 선풍으로 조계종 종정에 오르면서 이 땅의 불교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 퇴설당 자신이 처음 출가했던 그 방에서 “참선 잘 하거라”는 말을 남기신 채 법랍 58세 세수 82세로 열반에 들었다. 성철 큰스님은 속인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부처의 길을 택했다. 오직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용기, 그 결의를 평생토록 지킨 철저한 수행, 무소유와 절약의 정신은 바로 ‘우리시대 부처’의 모습이었다. “자기를 바로 보라” “남을 위해 기도하라”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르시던 그 참되고 소박한 가르침은 오늘도 가야산의 메아리가 되어 영원에서 영원으로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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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저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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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龍雲, 만해, 한유천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백담사 등지를 전전하였고, 이때를 전후해서 세계여행을 계획하였다.

1894년 동학군에 가담하여 투쟁하다 실패했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 수년 간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근대적 교양서적을 읽어 서양의 근대사상을 접했다. 1904년(26세)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목하니 노릇을 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7세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서 득도. 백담사에서 전영제사全泳濟師에 의하여 수계受戒. 백담사에서 이학암사李鶴庵師에게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수료. 29세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선안거(최초의 禪수업)를 성취하였다.

30세 강원도 유점사에서 서월화사徐月華師에게 『화엄경』을 수학하였고 4월, 일본의 시모노세키, 교토, 도쿄, 닛고 등지를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였다. 도쿄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였으며, 10월, 건봉사 이학암사에서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하였다. 31세에 강원도 표훈사 불교 강사에 취임하였고 1910년(32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1년(33세) 박한·진진웅·김종래·장금봉 등과 순천 송광사, 동래 범어사에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 조약 체결을 분쇄하였다. 1913년(35세)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하였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발행하였다.

1914년(36세) 『불교대전』을 범어사에서 발행하고 1917년(39세) 『정선강의 채근담』을 신문관에서 발행하였고 항일 투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2월 3일 밤 10시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정돈석擬情頓釋이 되어 진리를 깨치고, 오도송을 남겼다. 1918년 청년계몽운동지 [유심]지를 창간했다. 1919년(41세) 3.1운동을 주도,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고 공약삼장을 첨가하였다. 1923(45세)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지원하는 강연을 하였다.1924년 불교청년회 회장, 총재를 역임하였다.

1925년(47세)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하엿다. 1927년(49세) 1월 신간회를 발기하였으며, 5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에 뽑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931년(53세) 월간 [불교]지를 인수하였고 청년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53세) 조선불교 대표인물 투표에서 최고득점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한용운 422표, 방한암 18표, 박한영 13표, 김태흡 8표, 이혼성 6표, 백용성 4표, 송종헌 3표, 백성욱 3표, 3표 이하는 생략. 불교지 93호에 발표됨). 1933(54세) 유숙원씨와 재혼하였고, 이때를 전후하여 『유마힐소설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벽산 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몇 분의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지었으며, 이때 총독부 돌집을 마주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짓도록 하였다.

1940년(62세) 『불교』지 2월호에 『유마힐소설경』 연재를 시작하였고, 1943년(65세)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였다. 1944년(66세) 6.29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입적하였으며 유해는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용운은 불자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민중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1운동에 가담하고 독립선언서를 공개하여 낭독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는데, 기존의 시조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를 취했으며,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는 언어와 서민적인 시어 활용으로 민중정신을 반영했다. 독립을 향한 열망, 자연 등을 ‘님’으로 표현했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화법으로 검열을 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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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정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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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20대 시절 무크지 『지평』과 『전망』 『시힘』 등을 통해 시를 발표하였으며 부산일보와 동아일보에 시와 시조가 각각 당선되었다. 그는 삼십여 년 동안 출판인으로서 오직 한길만을 고집 그동안 수백 여권의 책들을 기획 출간하였다. 20대 초반에 불가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로 전국의 산사를 찾아다니며 많은 선지식을 만났다. 네팔, 캄보디아, 미얀마 등의 오지 마을에 책을 보내는 NGO 활동을 수년 동안 했으며, 현재 천호희망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특히 네팔 오지에 학교를 짓는 봉사활동을 하던 중 추락사고와 교통사고를 잇따라 겪으며 인생에 대해 더 깊이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20대 시절 무크지 『지평』과 『전망』 『시힘』 등을 통해 시를 발표하였으며 부산일보와 동아일보에 시와 시조가 각각 당선되었다. 그는 삼십여 년 동안 출판인으로서 오직 한길만을 고집 그동안 수백 여권의 책들을 기획 출간하였다.

20대 초반에 불가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로 전국의 산사를 찾아다니며 많은 선지식을 만났다. 네팔, 캄보디아, 미얀마 등의 오지 마을에 책을 보내는 NGO 활동을 수년 동안 했으며, 현재 천호희망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특히 네팔 오지에 학교를 짓는 봉사활동을 하던 중 추락사고와 교통사고를 잇따라 겪으며 인생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하게 됐다. 시집으로『겨울남도행』이 있고, 이번에 발간하는 『구운몽, 그 꿈에 대한 유폐의 시』는 등단 36년 만에 내는 첫 시조집이다. 산문집으로 『스님의 생각』 『편지』 『얼굴』 『마음꽃』 『산사에서 부친 편지』 등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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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명정스님
17살에 출가하여 근대 선지식의 선구자인 경봉 스님을 모시고 수행을 쌓았다. 스님은 현재 양산 통도사 극락선원의 선원장으로 있으면서 젊은 선승들과 화두를 참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차茶 이야기, 선禪 이야기> <삼소굴 소식> <편지> <그대 산목련 향기를 듣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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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31쪽 | 58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1794030

책 속으로

“원래 중놈은 그리움이란 헛된 망상을 버려야만 함에도 시름시름 앓는 어머님을 두고서
밤마다 이렇듯 가슴이 미어져오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나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피안彼岸행 열차를 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막 남은 어머니에
대한 죄를 사하는 길이오니 부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 p.34

“깊은 산속, 다만 홀로 앉아 미소 짓는 좌불坐佛의 생이 아니라 냄새나는 진흙땅 속에서 진리를 찾는 유불遊彿의 생이 되려 했지만 제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후회가 막심합니다.”

--- p.222

“바람벽을 하고 서서 물끄러미 석양을 보노라니 불쑥 스님 얼굴이 떠오르지 않겠소. 그래서 발우에 지는 해를 담아 훌훌 마셔버렸소.”

--- p.277

출판사 리뷰

시를 사랑하는 스님들의 선문답

“깨달음은 어디에 있는가? 저 돌에게 물어보라!”
스님의 말씀을 듣고 저는 그 돌을 수세미로 깨끗이 씻어 방 안으로 들고 온 다음
머리맡에 두고서 항상 뚫어지도록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미천한 탓인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본문 28쪽 「돌에게 물어보라」 고봉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이 책이 갖고 있는 큰 매력은 스님들이 주고받는 선문답을 있는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언뜻 보기에도 알아듣기 힘든 경봉 스님의 화두를 감상하면서 독자들은 불가에서 행하는 스님들의 생생한 선문답의 현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 큰스님인 경봉 스님과 그 제자인 고봉 스님이 주고받은 선문답은 그 좋은 예이다. 경봉 스님이 던진 ‘돌에게 물어보라’는 화두에 고봉 스님이 괴로워하며 답신을 한다. 그러자 그에 대해 경봉 스님은 또다시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괜한 운을 띄워 마음고생이 심하다니 그저 미안할 뿐이네.
아직 수행의 먼 길을 가야만 하는 자네이기에 덧없이 띄운 한 마디였네만
옛말에 ‘큰 진리를 얻으려거든 마음의 번뇌를 끊지 말라’했네.
이는 끝없이 고행을 하는 자만이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겠나.
-본문 30쪽 「깨달음」 경봉 스님이 고봉스님에게

또한 책 속 편지들에는 시를 읊고 또 즐겨 쓰기를 좋아하는 스님들의 풍류가 그대로 묻어나 한시를 감상하는 재미까지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명정 스님과 함께 이 책을 번역하고 엮은 시인 정성욱 씨의 유려하고 간결한 번역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달은 하늘에 오르고 꽃은 골짜기에 피었네.
밤은 삼경이요 향은 백천이로다.
-본문 117쪽 「마음길」 경봉 스님이 월곡 스님에게

없는 것은 있는 것보다 나으며
있는 것은 없는 것보다 오히려 좋으며
있고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
늘 비워두면 자꾸 무엇인가 채우려고 하니
그럴수록 자꾸 마음을 비워라.
-본문 210쪽 「무無」 박한영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종교를 초월한 인간적 진솔함

위 두 가지 특징과 더불어 이 책이 갖고 있는 빠질 수 없는 매력은 스님들의 인간미를 여과 없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무릇 편지란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두고 그리움을 만드는 것으로 인간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가장 진실한 마음의 표현인 듯하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는 속세를 떠나 수행중인 스님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비록 속세의 잡다한 욕망에 등을 돌리고 참선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세속적인 번뇌로 힘들어하고, 그 모든 것을 인내하고 올바른 석가의 가르침에 다가가려 애쓰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어 속세의 어머님을 간병하러 내려가는 벽안 스님의 편지에는 구도자로서의 삶이 아닌 한 어머니의 아들로서의 삶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본문 34쪽) 그런 제자의 고충을 알아보았을까. 번뇌에 휩싸인 제자의 편지에 경봉 스님은 전혀 나무라지 않은 채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중놈에게 어머니란 있을 수 없음에도 속세란 더욱 아니 그러할진대 자네의 미어지는 가슴
이 어찌 사람으로서 안타깝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본래 도는 선과 악이 따로 없으며 인과도 없으나 모두가 속세의 업을 받고 세상에 태어났
으니 이것을 어찌할 수 있겠나.
부디 이번 길을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병간호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게.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이 그대를 나무라지는 않을 걸세.
-본문 37쪽 「버리지 못할 인연」 경봉 스님이 벽안 스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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