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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큰글자도서)
황정은 에세이
황정은
창비 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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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라이브러리

책소개

목차

그 밤에
너무 고마운 사람
만세, 하고 부르면
물 떨어지는 소리에
입에서 나오는 말
알아보고 눈치채는 마음
세상의 모든 아침

후기

저자 소개1

黃貞殷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되고, 한국일보 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아온 작가다.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 『아무도 아닌』,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계속해보겠습니다』, 연작 소설 『디디의 우산』 등을 썼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대산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젊은작가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되고, 한국일보 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아온 작가다.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 『아무도 아닌』,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계속해보겠습니다』, 연작 소설 『디디의 우산』 등을 썼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대산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젊은작가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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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45*244*16mm
ISBN13
9788936434786

책 속으로

번역서 두권을 주문하는 김에 귤을 샀다. 지난달에 백두대간수목원을 방문하고 들은 이야기도 곧 원고로 정리해야 한다. 오늘은 원고지 다섯매를 썼는데 밤에 한번 더 보면서 다듬고 싶다.

오후 열시 이십삼분
계엄.
--- p.10

우리 자매가 다 십대였을 때 우리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누가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살벌하게 다퉜고 각자 생존만으로도 버거워 서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때로 돌아가 미래에 너희가 정치인과 언론인 이름을 외워 말하고 정치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집회에 나간다고 귀띔한다면 우리 셋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삶이 이번 한번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미안한 일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바로 말하고 고마운 일이 있으면 고맙다고 바로 말한다. 대화하고 서로를 살피고 눈치를 보고 우리만 아는 농담, 상흔이기도 한 농담을 아무렇게나 나눈다.
--- pp.31-32

12월 3일,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고 새벽 네시 삼십분에 이를 때까지, 그리고 이후로 주말까지, 특수요원들을 동원한 국지전 위험이 있었다는 뉴스 보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국지전을 일으켜 계엄을 정당화하고 장기 집권으로.
2024년 12월 둘째 주, 지금으로선 이름도 붙이지 못할 이 기간의 불안과 울분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감히.
혼란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나니 이 말만 입속에 줄곧 서 있다. 감히.
--- pp.38-39

그 추운 밤을 그 자리에서 보낸 사람들도 놀랍고, 그들에게 난방 버스며 음식이며, 바람 넘는 고개에서 버티는 데 도움이 되는 물품들을 즉시 보낸 사람들도 놀랍다. 그건 나라에서 받은 것이 없어도 위기가 닥치면 들불같이 일어난다는 어느 민족의 성격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곤경과 고립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거나 차마 두고 갈 수는 없는 마음들 아닐까.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서로 돌볼 줄 아는 마음들.
--- p.58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슬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남아 밤샘 집회를 하고 있다.
눈 내린다.
파주에도 서울에도.
--- p.85

읽을 책을 고르려고 책장을 넘기다가 우연히 본 문장. “연결성이라는 사슬로 이어져 모두가 동등하다.” 나도 이런 말을 쓰고 싶다. 이런 시선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인간을 향해 돌돌 구부러드는 생각은 접어두고, 보고 듣는 것만을, 찰나의 생각만을 기록하며, 삶이 내게 주는 감각을 편견 없이 흠뻑 음미하고, 그렇게 살고, 쓰고 싶다. 그런데 자꾸 더러워진다. 산다는 건 결국 더러워진다는 것이지만, 더러운 도랑물을 마시며 사는 것이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물줄기, 다른 삶에서 내 삶으로 흘러드는 물을, 타인의 삶에서 흘러나온 피가 스며든 도랑의 물을 내 도랑의 물로 받아 마시며 사는 일이고, 그래서 내가 받아들이거나 말거나 삶이란 끊임없이 더러워지는 일이지만.
이런 오염은 싫다.

이름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이제 지귀연.
--- pp.114-115

정신없이 고양이를 북북 긁는데 선생이 말했다.
“물어요.”
“괜찮아요.”
“그러다 물어요.”
“괜찮아요.”
수업이 끝나고 그 집을 나서며 김보리가 “선생이 불안해서 자꾸 문다고 말하는데 왜 괜찮아” 하고 꾸짖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고양이는 무는데, 왜 굳이 말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국이 불안하고 울적해, 퇴근해 돌아온 김보리 앞에 앉아서 “이런 세상에 날 혼자 두지 마라” 하고 말했다.
--- p.125

내 손은 이미 더러워서, 세상을 새롭게 구축할 책무를 이어받을 수 없다는 소년의 입장이 내게는 결벽으로 보였다. 소년을 키운 경제적, 사회적 배경인 아버지의 사업이 침략전쟁에서 사용되는 군수품이며 전쟁 자체라는 걸 두고 보면 자신과 악이 이토록 연결되어 있으니 새로운 세계 구축을 이어받을 수 없다는 거절엔 납득되는 면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더러움은 세상의 조건이 될 수 없나.
그걸 품고도 아름다울 방법은 없나.
--- p.129

오늘은 투표로 그를 대통령 자리에 올리고도 주말마다 레저를 즐기고 스포츠를 관람하러 간다는 어느 부부를 속으로 원망했다.
너희가 만든 세상,
죽은 사람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거리로 나가.
밤이라도 새워.
감기에라도 걸려.
양심이 있으면 그렇게라도 병들어.

이런 생각을 하느라 종일 비참했다.
--- pp.155-156

12월부터 4월까지의 일기를 원고로 내보낼 준비를 하며 다시 보니 그간 그 선이 조금씩 오른쪽으로 이동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걸 생각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계엄과 탄핵, 그것 말고 다른 것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김보리는 이게 보였다는 것 자체가 지금은 좀 여유를 회복했다는 의미일 거라고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잘 싸워준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라고. 우리의 마지노선, 그것은 오른쪽으로 간 것이 아니고 아래로 내려간 것이라고.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도 그래도, 그래도, 하고 자꾸 말을 덧붙였다.

--- pp.184-185

출판사 리뷰

“놀라운 사람이 이렇게 많다”
사회적 격랑과 사적인 일상 안에서도 피어나는 따뜻함

12월 3일, 갑작스레 발표된 계엄령. 그와 동시에 거리로 쏟아진 사람들의 분노와 외침 속에서 작가의 일기는 시작된다. 집회 현장의 매서운 추위와 고립감을 견디며,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도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작품을 쓰고 동거인을 기다리는 마음. 『작은 일기』는 그렇게 사회적 격랑과 아주 사적인 일상이 뒤섞인 하루하루를 기록한다. 책의 첫장 「그 밤에」는 불안과 긴장 탓에 무너져 내린 일상을 다룬다. 황정은은 거리로 나가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과 함께한다. 그러나 광장은 언제나 안전한 연대의 공간만은 아니었으며, 분노한 집단 안에서 소수가 침묵을 강요받기도 한다. 작가는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상성’의 폭력을 목격하고, 그 안에서 느낀 소외와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매들과의 따뜻한 연대, 그리고 광장의 변화하는 얼굴에서 작가는 서로를 지키기 위한 책임감을 다시 새긴다. 세상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쓰고 말하며, “또 가죠 뭐”라는 말로 삶을 버틴다. 「너무 고마운 사람」에는 계엄 해제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는 분노가 담겨 있다. 말할수록 가벼워지는 현실, 말해도 소용없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 속에서, 사람들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그러나 광장에서는 여러 주체가 어우러진 새로운 연대가 태동하고, 남태령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마음들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다. 십대, 이십대, 삼십대 여성이 주축이 된 광장은 이전과는 다른 정치적 감수성과 민감함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작가는 이 격변의 시간을 끝까지 기록하며, “놀라운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만세, 하고 부르면」에서는 쏟아지는 뉴스에 소모되는 감정과 깊은 피로가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는 계엄 이후 대다수 국민이 경험한 피로감이기도 하다. 탄핵 이후에도 체포되지 않는 권력자와, 이를 지지하거나 방조하는 세력들의 ‘악의 평범함’ 앞에서 삶의 감각은 날로 무뎌진다. 그러나 ‘키세스단’으로 대표되는 시민들의 밤샘 연대는 여전히 깊고 놀랍고 고맙다. 동시에 극우 세력의 증오와 폭력이 노골적으로 분출되는 현실은 작가에게 더욱 내밀하고 개인적인 폭력처럼 다가온다. 그럼에도 작가는 매일 원고를 쓰고, “가장 빛나는 것”을 들고 다시 일어서려 애쓴다.

“내가 이 세계를 깊이 사랑한다”
말할 수 없어 쓰고, 울 수 없어 기록한 시간들

1월 중순 어느 새벽, 작가는 「물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공수처가 윤석열을 내란 혐의로 체포했지만, 서부지법 습격 사태가 벌어져 불안과 무력감은 깊어졌다. 계속되는 사건과 뉴스를 접하며, 사회가 ‘상식과 헌법의 오염’으로 망가져간다는 자각에 호흡곤란까지 겪으며 내면도 흔들린다.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탄핵 심리가 이어졌지만, 그는 초법적이고 불합리한 절차로 풀려나버린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혼돈은 극에 달했다. 식물을 돌보고 좋은 책들을 읽으며, 아름다움과 평온을 찾고자 노력해보지만 여전히 마음속의 혼란은 가라앉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안정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다. 사회적 상황은 혼탁하지만, 작가는 몸과 마음을 돌보며 삶을 붙든다. 필라테스 수업에서 ‘제대로 눕는 법’과 ‘호흡하는 법’을 배우는 동거인을 통해 스스로의 몸에 대해 생각해보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반복되는 산불과 싱크홀 사고, 그리고 탄핵 정국의 지체는 작가의 심신을 지치게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무 보러 가고 싶다’는 갈망처럼 삶을 향한 다정한 시선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알아보고 눈치 채는 마음」에서는 헌재의 탄핵 선고를 앞둔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는 이웃과의 작은 연대, 광장에서 마주한 다정한 순간들에 감응하며 버텨낸다. 광장 한복판의 방석과 추로스, 팔뚝질과 노란 깃발 같은 구체적인 장면들이 그에게 ‘냉소할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고, 끝내 함께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애정을 되새기게 한다. 독서 중인 문장들에 기대어 작가는 존중, 가능성, 조용한 감응을 붙잡는다. 탄핵심판 선고일이 발표된 날, 뜨거운 환호에 호응하며 “이제 뭐가 되든 써야지”라고 다짐해보기도 한다. 세상을 향한 감정은 매순간 요동치지만 작가는 끝내 말한다. “내가 이 세계를 깊이 사랑한다”라고. 이 고백은 가능성을 향해 밀고 나가는 글쓰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장 「세상의 모든 아침」은 대통령 탄핵 이후를 다룬다. 4월 16일 세월호참사 기억식을 다녀온 작가는 11년 전의 고통과 지금의 무력함이 겹쳐지는 시간을 지나며, 목격의 책임과 두려움을 마주한다. 팽목항에 끝내 가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작가는 관찰자의 시선과 글쓰기의 윤리에 대해 고민한다. 여전히 광장에서 이어지는 연대와 기억, 슬쩍 서로를 알아보는 시민들의 다정한 감각이야말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의 근거가 된다.

이 책은 특정한 사건을 작가의 시각에서 다룬 인상적인 정치적 논평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혼란과 상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계속되는 삶의 감각에 관한 기록이다. 또한 2024년 겨울의 광장에서, 2025년 봄의 부엌에서, 매일을 견뎌낸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려는 하나의 시도다. 드물게 에세이를 발표해온 작가인 만큼 이번 책은 독자들에게 더욱 특별한 감응을 남긴다. 사회적 현실을 정제된 언어로 사유하며, 한 사람의 일상으로부터 시작된 기록이 어떻게 모두의 감정에 가닿는지를 보여준다. 『작은 일기』는 울분의 시대를 건너온 한 작가의 조용하지만 단단한 가장 문학적인 응답이다. 이 책은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그날들의 감정,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다짐이다.

부디 이 책이 각자의 ‘작은 일기’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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