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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족
괴롭던 황제 즉위 전날 밤의 꿈 핀잔받은 사대주의자 김병시 영국 여인이 만난 황제와 황태자 러시아 공사관 시절의 고종 염탐꾼이 두려웠던 고종 덕혜옹주와 황실 유치원 황제가 구워 먹던 비원의 알밤 진주분 독이 오른 명성황후 민씨의 얼굴 총독에 대들던 어머니 엄비 또하나의 '백년한'정화당 김씨 승은 없던 처녀 후궁의 호곡 상궁의 뺨을 친 순종 족보 따지기를 작으로 삼은 순종 이제 나도 하이칼라가 되는가 잦았던 순종의 단식 레지스탕스 자식 못 낳는 황제의 남 모르는 비애 이대천자지혈과 만년영화지혈 2. 궁녀 궁녀는 이토 히로부미를 좋아했다 왕명에 못지않은 궁녀의 청탁 숙명학교에서 발탁한 개화 궁녀 나인은 '미니', 무수리는 '머슴저고리' 우상에게 시집가는 궁녀의 한 '오늘은 황제' 앞에 큰절하는 노궁녀 의녀의 쓸모는 다른 데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랑한 설도 왕의 사랑은 궁기의 비운에 비례한다 울며 추던 노궁기의 헌작무 3. 내시 쿠데타에 참여한 불만의 내시 갓난 아들의 고추를 자르는 뜻 '보'라는 이름의 재수 좋은 물건 평양에 있었던 비정의 로맨스 한국의 소년 소프라노 '천동군' 코에 모래를 넣는 내시 시험 아버지를 증오하는 내시의 생리 '자른다'를 '찌른다'고 하는 내시 용어 궁녀와의 플라토닉 러브 4. 양반 포청을 설치한 최 감찰 양반의 세 종류, 옹반. 깡반. 숫반 토지 문기에 이름을 쓰기 싫어하는 뜻 양반 좋아하던 데라우치 총감 '양반 없소'라는 노래 양반 씨족의 통계적 고찰 양반 고을의 통계적 고찰 강화도의 왕씨 대학살 양반이 되기 위한 조건 양반이 갖는 특권 양반이 부린 횡포 백경 피압박 상민들의 단치 저항 양반 세습 참봉이 된 일본 유학생 호패 이야기 '말루하'라는 천한 여자 이름 신분 제도의 쓰라린 후유증 5. 상민 '중인' 개설 개화 사상이 싹튼 청계천변 서울의 걸인 조합 상놈에게 큰절한 양반 보수 통꾼, 개화 깡꾼 파문형까지 내리는 재인청 역졸녀만큼 귀하던가 보수 세력이 이용한 천민 제3계급과 천민 6. 노비 대대로 이어 온 쓰라린 유산 노예제를 통탄한 성호 이익 율곡이 쓴 사비막덕지구 임란 때 폭발한 종들의 원한 통직이 오입이 제일이다 더부살이에로의 개화 인신매매사에 대한 고찰 김옥균 부인 유씨의 기구한 사연 성행했던 인신 브라이브 노비 해방 운동사 유명무실했던 종모법 노비를 면하는 조건 김조헌의 면천 투쟁사 가혹한 노비 형벌 처녀 수절비의 특전 노비 몸값도 세월 따라 변했으니 성의 노예 7. 백정 백정 서설 간성에 있었던 백정 상여 사건 쇠등 장가. 널빤지 시집 백정 입마개 돈 백정 집에 탁아하는 뜻 노비만도 못한 백정 신세 진주의 취학 차별 사건 피의 제전은 쇠고기 불매 운동으로 농청의 형평 반동 운동 반역자를 촌단하야 주효로 삼겠다 치마 벗긴 백정 여인 전국에서 봉기한 백정 결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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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나인과 달라 약방기생이 빈이나 후궁이 되는 예는 절대로 없었다.
기생은 끝까지 기생일 수밖에 없었다. 황제나 대작들을 가장 가까이 접하면서도 가장 서글픈 말로를 걸어야 했던 것이 약방기생이었다. 그것도 왕의 총애가 극진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가혹한 비운을 겪어야 했다. 설도는 황제의 총애를 받다가 황후가 보낸 하수인에게 무참히 죽음을 당한 옛 선배 기생들의 이야기에 결들여, 왕과 가까워지면 질수록 무덤에 가까워진다는 내용의 탄조가가 구전되어 오고 있음도 잘 알고 있었다. 쾌락의 제물로밖엔 더 뜻을 지니지 못했던 궁기! 그 궁기의 어쩔 수 없는 숙명에 설도 또한 말려들고 말았다. 즉 황후의 시샘을 사게 된 것이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음을 당해 거적에 쌓여, 북한산에 그냥 내버려지는 그런 위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닥쳐오고 말았다. 기미를 알아챈 설도는 역시 자신을 총애해 주던 황후의 오빠 엄 판서가 입궁한 기회를 타서 그에게 구원을 청했다. 설도의 신세를 가련히 여긴 엄판서는 사대부의 파티에 나간다는 명분을 세워서 어두운 밤 궁정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 후 설도는 별 쓸모도 없던 은침통과는 영원히 작별을 고하고 평가가 되었으며, 일찍이 사귀어 둔 사대부들과의 청유로 날을 보냈다. 오세창, 김구 등 손아래 지사들과도 어울려 탄세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삼청동 허영백 댁 정자에서 협기에 넘친 우국의 통탄을 쏟다 말고는 울음을 터뜨리던 김구 또한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고 했다. 그때 설도는 자신의 옷소매로 김구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고 했다. 설도는 이같이 창과 글과 활로 지사들의 메마른 마음을 녹여 주면서 그녀의 한 많은 30대를 보냈다. --- p.8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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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이건 마찬가지겠지만 개화기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도 제일 먼저 머리가 깨어나고 개명한 곳은 바로 이 중인계급이었다. 특히 대언군의 괘국정책이 풀린 이래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외세에 대해 전위적인 역할을 했고 또 그 매개체가 되었던 역관이 바로 중인 계급이었다. 그러므로 중인 계급은 말하자면 신지식과 새로운 사상의 온상이요 씨앗 구실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중략)
그 씨앗 구실을 한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사람이 오경석이다. 오경석은 역관으로서 중국에 드나들 기회가 많았다. 따라서 개명한 서양 문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기회도 많았다. 그는 자신이 복 들은 견물을 국내에 소개했을 뿐 아니라 국내에 국한디어 있던 눈을 멀리 해외에 돌리게 하는데 필요한 서적들을 많이 가지고 들어와 중인촌에서 덕망 있는 의인으로 알려져 있던 친구 대치 유기에게 개화 사상의 씨앗을 안겨 주기도 했다. --- p.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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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예속되었던 게르만 사람들은 온갖 수모와 강압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로마 문화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도덕과 정신과 문화를 끈질기게 지켜냈다. 그리하여 로마가 멸망한 뒤 우세했던 로마 문화를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절충 융합해 찬란한 유럽 문화를 이룩해 놓았다.
--- 머리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