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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논리학 : 달콤한 고통의 열매 지성 :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수한 정신의 낙원 사물의 본질과 현상 : 존재의 진정한 의미 옮기고 나서 |
Arthur Schopenha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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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대중은 무조건 먼저 습득되는 정보를 진실로 인정해버린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은 두 배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자신의 힘으로 발견해내려는 의지야말로 철학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와 효용성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인생의 눈높이를 결정한다; 만두 속 같은 세상, 복잡다단한 시간의 틈바구니에서 누구나 제 키만큼의 눈높이를 가늠하며 살아남기를 소망한다. 글로벌 시대에 초일류가 판을 치고, 수백억 부자 아빠는 여기저기에서 강연을 하고 책까지 내 한 번 더 가난함을 다그친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은 폭포수를 뛰쳐오르는 연어처럼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못나서가 아니라 모질지 못해서이고,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만하면 충분히 내멋 부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이것은 철학이다. 철학이 뭐 대순가. 단맛 쓴맛 다 본 끝에 얻은 ‘불멸의 정신과 불굴의 의지’ 같은 것이지. 그런데 문제는 그 전(前)에 있다. 그러니까 불멸의 정신과 불굴의 의지 이전의 인간을 말함이다. 희망을 잃고 절망 앞에 선 인간, 무릎 꺾인 의지에 굴복된 인간일 때이다. 이때는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희망과 용기가 증발한 고립무원의 자리에서 고통에 떨고 있는 한 인간만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이 사람은 말한다. “철학에 요구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이다. 첫째, 어떤 문제도 마음에 깊이 새겨두지 말고, 어떤 대상을 향해서라도 과감히 질문할 수 있는 용기이다. 둘째, 아무리 자명한 이치일지라도 외부에서 주어진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점으로 파악하여 분명하게 의식할 수 있는 결단이다. 마지막으로 철학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신은 무엇보다도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다. 정신은 그 어떤 목적에도 구애받아서는 안 되며, 목표를 뒤쫓아서도 안 되고, 욕망을 향한 의지와 어깨를 나란히 해서도 안 된다. 인생은 개인의 내면에서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고유한 직관이며, 그 같은 직관에서 도출된 계시는 어떤 경우이든 받아들여야만 한다.”(13쪽) 바로 이 책『쇼펜하우어 철학에세이』의 저자인 쇼펜하우어의 말이다.『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잘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염세주의 철학, 또는 생의 철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같이 규정하기에는 좀 성급하지 않은가 싶다. 왜냐하면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표상과 세계의 표상, 인간의 의지와 세계의 의지’를 비관과 절망, 그리고 고통을 초월하는 진정한 ‘의지와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삶의 본질이고 세계의 본질이기도 하다. 서로가 승리자가 되기 위한 토론과 논쟁의 방법; 요즘 우리는 미디어를 통한 ‘토론과 논쟁’의 장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이른바 “계급장 떼고 해보자”는 토론과 논쟁의 시대다. 특히 TV 방송사마다 당면하고 시급한 현실의 주제를 놓고 매주 판을 벌이는 TV 토론은 민주주의의 함의를 한눈에 보는 것 같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시각과 소리, 표정을 읽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바라는 ‘토론과 논쟁의 진검승부’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있었다면 말들의 찌꺼기가 남긴, 서로가 민망스러운 표정들뿐이다. 이럴 때 역시 쇼펜하우어는 한마디 거든다. “이론적 문제에 대한 토론과 논쟁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상을 정정할 수도 있고, 확정할 수도 있으며, 혹은 애초에 계획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상으로 발전하는 등 매우 유익하다. 말하자면 두 명 이상의 두뇌가 마찰 및 충돌을 통해 필요한 불꽃을 튀기는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런 상처 없이 참가자 전원이 승리자로 기억될 수도 있고, 충돌을 이겨내지 못한 채 패배의 쓴잔에 취해버리는 탈락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논쟁은 물체의 충돌과 거의 유사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참가자들에겐 재치 있는 말솜씨나 주제에 대한 다양한 지식보다는 이 같은 특징을 미리 숙지해놓는 편이 훨씬 더 유용할 것이다. 어쨌든 정상적인 토론을 위해서는 쌍방의 지적 능력이 엇비슷하다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만약 참가자 중 한 명의 지적 능력에 결함이 있다면 수준 미달로 인해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복서가 링 밖에서 서성대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지적 능력 중에서도 판단력이 부족한 경우 토론이 시작된 지 한 시간도 채 안 돼 주제의 본질을 잃고,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 분노를 터뜨리며, 난장판을 만들 수도 있다.” (72~73쪽)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제시하는 것은 인간의 삶과 세계가 특정한 원리나 전제에 의해서 쉽게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삶의 본질과 세계의 현상에 대한 보다 심각한 성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자신의 순수의지로 오늘의 삶을 조명하고 세계를 지향하는 독자라면 쇼펜하우어의 진정성을 충분히 공감할 것이며, 그에 따르는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이 책『쇼펜하우어 철학에세이』라는 제목은 원래 쇼펜하우어의 저작 목록에는 없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노년에 보다 이해하기 쉽게 쓴 철학적 단편 모음인『여록과 보유Parerga und Paralipomena』(1851) 중 철학, 논리학, 지성에 관한 부분을 옮겨 붙인 제목이다. 그리고 이것을 4개의 장으로 나누고, 1장을 철학-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2장을 논리학-달콤한 고통의 열매, 3장을 지성-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수한 정신의 낙원, 4장을 사물의 본질과 현상-존재의 진정한 의미로 정한 후 꾸며낸 책이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출판사의 고민과 독자의 선택이 쇼펜하우어와 함께 즐거워지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