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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2. 축간사 3. 결편(結編) |
朴永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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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이 방학이 되어 서울에 오면 김교신의 집에 묵거나 스승 류영모의 집에 머물렀다. 류영모는 제자 함석헌이 온다면 스스로 집안 청소를 할 만큼 귀한 손님으로 맞았다. 함석헌은 류영모에게 육친의 자녀보다 더 귀한 정신의 아들이었다.
짐승인 제나(自我)의 사람들에게는 피(血)를 잇는 자녀가 소중하지만 하느님 아들인 얼나(靈我)의 사람에게는 얼(靈)을 잇는 제자가 귀중하다. 류영모는 성령으로 거듭난 얼나(靈我)를 주체로 하는 정신인이다. 그러므로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이 아버지가 되어도 좋으나 정신의 아들(제자)을 많이 두는 것이 역시 육신의 아들보다 더 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함석헌은 스승 류영모에게만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다. 동갑 나이의 김교신에게도 경애함을 받았다.「성서조선」의 동인의 한 사람인 송두용(宋斗用)은 "김교신이 왜 그렇게 함석헌을 받드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 1934년 동계 성서연구회에서 함석헌의 모습을 류달영은 이렇게 그렸다. "함 선생의 세계역사 연구의 강의가 시작되다. 함 선생의 역사는 독보(獨步)로서 산 역사를 들려 주심은「성조」지에 실리는 한국역사를 통하여 이미 아는 바이다. 오랫동안 사모하던 선생을 처음 뵈오니 기쁜 마음이 가슴에 충만함을 느낀다. 초면이면서도 오랫동안 아침저녁으로 만나던 분같이 여겨짐은 기이하다. 그 빡빡 깎은 머리에 거칠은 수염과 찢어진 눈은 위엄 속에도 인자함이 가득한 선생에게 누구나 다 친숙함을 느꼈다. 평안도의 사투리가 간간이 섞인 세계역사의 서언(緖言)이 약 1시간 반에 걸쳐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류달영, 1934년 12월 29일.「성서조선」73호 1935년 2월호) 예수,석가,공자처럼 몸 생명에서 얼 생명으로 거듭난 이는 몸의 어버이보다 얼의 스승을 더 귀하게 여기며, 몸의 자녀보다 얼의 제자를 더 귀하게 여긴다. 이것이 얼나로 거듭난 사람의 실증이다. --- pp.128-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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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의 생애와 사상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1890-1981)는 온 생애에 걸쳐 진리를 추구하여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이다.
그는 민족교육의 요람인 정주 오산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철학, 불경, 유교, 동양경전, 주역, 성경, 천문, 지리에 통달한 당대의 천재였다.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여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한 것과 YMCA 연경반에서 강의한 것 외의 공적인 활동은 없으며 농사짓기 위해 구기리에 들어가 은둔하며 살았다. 그리하여 그의 이름보다는 함석헌의 스승으로 세상에 더 알려져 있다. 다석은 16세에 기독교에 입신(入信)하였지만 그 후 불교와 노장(老莊), 그리고 공맹(孔孟)사상을 두루 탐구하여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 동안 묻혀 있었던 보화와 같은 다석사상이 다시 드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으며 마하트마 간디처럼 드높은 경지에 이른 한국이 낳은 위대한 정신적 스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생 동안 진리의 구도자로 살아왔고 또한 일상의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여 몸소 그 본보기를 보여 주었기에 다석의 생애와 사상은 삶의 지침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깨우침과 용기를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