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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하열아(河熱兒)
불량 교사 사랑 방정식 또라이 열전(列傳) 또라이 열전 2 소녀 수학여행 로리타 증후군 우연 호밀밭의 파수꾼 에버그린 교사의 날 그들의 장난 왕따의 추억 노을이 머물다 간 곳 마법의 성 비열한 거리 소원 수리 아직 그곳에는 노을을 밟은 소녀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에필로그 작가의 말 - 리턴, 에이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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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도, 억지스레 뜬 눈으로 하루를 맞이하는 아침나절의 곤란함이 학창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어린 시절의 게으름이 이젠 사회생활의 피곤함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 놈의 돈이 뭔지, 이제는 지각 한 번 하지 않는 성실한 태도로 교육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어른이 되어 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내면의 소리는 그 시절과 같다. ‘아~! 학교 가기 싫다.’
--- p.19 60이 가까워 오는 나이, 이순(耳順)의 경지는 공자와 같은 성인(聖人)에게만 해당하는 경우인 줄 알았는데, 이부장 같은 성인(成人)도 곧잘 구현해낸다. 자기 귀에는 다 순하게 들리는지, 남의 귀에 역겹게 들리는 이야기들만을 골라 내뱉는다. 나이를 항문으로 처자시는 꼰대의 전형은, 항상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한다. --- p.57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맥락에 닿지 않는 말들만 지껄일 수가 있을까? 아무래도 뇌의 작용은 아닌 것 같다. 말 같지 않기로는 입에서 나오는 트림과도 별반 차이가 없으니, 내장의 독자적인 작용으로 봐야 할 것 같다. --- p.66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위해, 선생이란 놈은 술을 마시러 가기 위해 올라탄 버스. 함께 딛고 있는 일상의 작은 순간에도 삶과 삶은 그렇게 나뉜다. 각자의 차이를 담지한 채 다음 순간을 향해 있다. --- p.109 설희에게는 모든 게 현실이다.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언제나 변함없이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엔 세상은 꿈을 꿀 수 있는 깊은 밤이 되어주지 않는다. 언제나 현실을 직시하고 깨어있어야 하는 낮, 낮, 낮이다. 그래서 설희는 학교의 낮에서나마 꿈을 꾸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 잠을 청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109 인생이 그렇다. 세상이 그렇다. 힘든 사람에게 힘든 일이 겹치는 힘든 세상이다. --- p.130 졸리지도 않은데,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은데, 눈을 감고 엎드린 책상에 거친 숨으로 맺히는 습기만이 나와 함께했다. 점심시간이 그렇게 길었는지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 p.164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정말일까? 아니다. 사랑의 반대는 때론 철저히 미움이기도 하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저 새끼가 그냥 싫다. 교사도 사람이다. 나는 진정한 교사는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사람이고 싶다. --- p.170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가기 보단,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기억조차도 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 학창시절도 미처 다 알지 못한 나이에, 세상을 먼저 알게 된 아이들.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어느 곳을 둘러봐도 벽, 벽, 벽이다. --- p.183 잠깐의 우연을 뒤로 한 채 다시 추억 속으로 멀어지는, 녀석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주책맞은 감성에 젖는다. 내겐 교복과 체육복을 입은 모습이 전부였던 학생, 녀석에겐 내가 아련한 학창시절로 기억되고 있을까? --- p.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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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와 빅뱅, 그 세월의 극간에서
하늘 가득히 울려 퍼지는 〈붉은 노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 적길, 역사는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반면, 문학은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시 현대철학자 들뢰즈의 표현으로 잇대자면, 역사란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고증으로 뒤돌아보는 과거라면, 문학은 ‘무엇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되는 미래의 성격이다. 거의 모든 이가 겪는, 기관으로서의, 시절로의 학교. 그 안에서 느낀 인간에 대한 환멸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교직에서 겪은 과거를, 그곳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미래로 각색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열아’라는 캐릭터는 그런 다른 경우의 수이며 후회의 상징이다. 했어야 했지만, 알량한 현실의 문제에 치여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결정적 순간에 대한 가책.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허구적 각색으로나마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 가정의 미래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해보고자 하는 열망의 방향성이 바로 ‘하여라!’라는 정언(定言)의 명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