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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깨지면 깨친다
1. 껍질을 깨고 멈춰라! 생각하라! 신체의 논리 감각의 거미줄 모든 것이 해석이다. 망각의 힘 선악의 저편 무의식의 미로 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영원회귀 허무 너머로 건강한 이기심 강자의 도덕 지식의 위계 체험적 인문 미네르바의 부엉이 심연의 괴물 3. 기도하는, 사랑의 손길로 신이 죽은 이유 인간의 조건 바울의 문제 약자의 도덕 신과 함께 4. 흔들림에 관한 아주 다른 생각 비극의 탄생 호모 루덴스 동심의 철학 아폴론적, 디오니소스적 힘에의 의지 페미니즘 사랑, 그 화려한 절망 5. 우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우연의 거인 열린 체계 우연과의 대화 길 밖으로의 여정 행복에 대하여 아모르 파티(Amor fati) 지옥으로의 초대 청춘에 관하여 에필로그 - 나에게 쓰는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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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험준한 산을 오르는 듯한 과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의 글은 산 정상에 있다. 일단은 그곳까지 오른 후에야 이해도 가능하다. 산을 오르는 여러 길과 각자의 선택이 있다. 같은 산을 오르고 있지만, 각자가 보고 있는 풍경은 다 다르다. 그러나 그 모두가 니체다. 같은 이유에서 니체는 철학을 ‘해석’이라고 정의했다.
--- p.8 니체의 긍정은 절망까지 끌어안는다. 변화의 의지만 가지고서는 결코 새로운 미래가 도래하지 않는다. 변화의 의지 속에도 결코 변할 줄 모르는 관성이 남아 있기 마련, 그 관성을 주저앉히는 사건이 도래한 이후에야 어제를 폐기하며 내일로 나아간다. 그런 사건으로서 맞닥뜨리는 번개이기도 하다. --- p.20 신체를 ‘거대한 이성’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니체가 표방한 철학은 건강한 상태에서의 사유다. 니체가 신체를 부각시킨 것은 중세적 정신에 대한 반동이다. 생리학과 심리학적 지식들을 자주 언급한 이유도 삶과 괴리된 관념에 대한 비판이었다. --- p.30 니체는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진리가 있다고 믿는 사유체계를 거부한다. 오죽하면 진리를 ‘미적 취향’이라고까지 말한다. ‘거리의 파토스’, 내 취향에 가까운 것들일수록 보다 진리인 것 같다. --- p.34 니체의 큰 주제가 ‘관점’과 ‘차이’이지만, 이 ‘관점’과 ‘차이’만큼이나 이기적으로 해석되는 단어도 없다. 자신의 관점과 차이를 존중받고자 한다면, 남의 관점과 차이도 존중해야 함에도, 자신의 관점과 차이만을 끌어안은 채 그저 자기 생각만 생각이다. 무지한 자들이 신념을 지니면 무섭다는 말조차도, 이쪽이나 저쪽이나 상대에게 전가하는, 그 자체로 무지의 증상일 때가 있으니 말이다. --- p.37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 했던가. 석가모니가 ‘뗏목의 비유’라면, 니체는 ‘망치의 비유’로 대변될 수 있겠다. 니체를 만났으면 니체를 죽여야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니체주의라고 할 수 있다. --- p.44 니체의 철학은 기억의 특권을 거부한다. 기억은 인식의 토대이지만, 인식의 굴레이기도 하다. 그것이 소중하고도 의미 있는 경험일망정, 때때로 오늘을 어제로 살아가게 하는 선행의 간섭들이기에…. 니체에게 있어 ‘인간’ 자체가 하나의 인습이다. ‘초인(위버멘쉬)’ 개념은 이런 관성을 허물며 내일로 나아간다는 취지다. --- p.49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순간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삶의 양상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니체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지금 내게서 반복되고 있는 시간의 성격이 바뀌지 않는 한, 당신은 새로 부여받은 어떤 가능성 앞에서도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이다. 과거에도 이러고 있었고, 미래에도 이러고 있을, 각자의 영원회귀다. --- p.71 인간은 누구나 관습의 결과다. 물론 이게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그 필요성이 확인되어서 계승되는 관습이란 것도 있다. 그러나 시대정신에 맞지 않아도 그 이유를 따져 묻지 않고 답습하는 ‘미덕’의 명분이란 것도 있다. 니체가 강변하는 ‘이기심’이란, 그 부당한 사회성에 저항하는 개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 p.89 니체는 지식이 그의 능력을 표현한다기보단 그의 무능을 감추는 덮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앎에만 충실한 문인들의 위장을 니체는 경계한다. 삶을 말하고 있는 그들의 행간에 차고 넘치는 것은, 삶에 대한 무지다. 어떻게든 순간을 문자화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들어차 있을 뿐, 순간에 참여하는 법을 모른다. 앎으로만 배웠을 뿐, 삶으로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p.115 니체가 ‘무언가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심리학자’라고 칭송했던 문인, 그의 비판 대상은 그리스도가 아닌 기독교다. 신앙 자체에 관한 것이라기보단, 신앙을 빌미로 행해지는 부당함에 관한 것이다. 니체의 비판 역시 그 초점은, 간디의 말마따나, 그리스도와 닮지 않은 기독교인들에 관한 것이다. --- p.141 니체가 지적하는 현대인의 특징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림에도 취약하다. 그것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잉태할 수 있는 깊은 침묵’을 소유하지 못한 채, 그저 사건에만 쫓겨 다니다가 자기 자신은 닳아 없어지고 만다. --- p.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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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성으로부터의 자유!
니체가 간파한 도덕의 실체는, 역사로 전승되어 오던 중에 발생한 전도 현상이다. 그것들은 원래부터가 도덕이었던 것이 아니라, 기득권과 기성들에게 편한 가치들로 종용해 온 결과일 뿐이다. 이렇듯 도덕의 자리를 선점한 인습과 담론의 일방통행을 ‘중력’에 빗댄다. 우리는 무의식에까지 들어찬 그것의 영향권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한다. 니체가 비판하는 도덕은 그런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는 이유로 비판과 반성을 외면하는 권위적 관성과 관습적 타성을 의미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왜 그러면 안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는 대답으로 살아가는 태도는 일종의 체념이다. 니체는 병리적 현상으로까지 진단한다. 체계를 ‘고결함의 결여’라고 말했던 니체인지라, 그의 철학은 체계가 없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니체의 주제는 한결같다. 특정 가치체계의 틀에 갇히지 말 것. 자기 자신을 한계 지우지 말 것. ‘초인(위버멘쉬)’은 그런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개인을 의미하며, 그로써 ‘영원회귀’와 ‘아모르 파티(Amor fati)’ 같은 이미 많이 회자되는 자기 철학의 지표들을 설명한다. 변화에 주저하지 않는 삶의 태도,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강자의 철학이다. 스스로 삶의 입법자가 되기 위해선, 기존의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어야 한다. 그 폐허?속에?다시 지어 올리는 이들에게서나 삶과 세계를 다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입체적인 지평도 가능한 것.?니체는 그 역량을 강자의 자격으로?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