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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
텍스티(TXTY)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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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D-day / D-364 교차로 / D-312 승계 / D-310 각본 / D-308 카피캣 / D-256 고3 2회차 / D-241 대명고 / D-210 시선들 / D-203 의심 / D-196 익명 / D-190 비밀의 조각 / D-183 역제안 / D-181 흉터 / D-175 오발 / D-144 제물 / D-132 정체 / D-121 불청객 / D-099 배후 / D-068 파열 / D-029 균열 / D-018 각성 / D-001 전야 / D-day / D+014 이사회 / D+015 가면극 / D+089 졸업 / D+157 모방소녀

부록
대담_모방된 꿈과 잃어버린 목소리(정용주 X 소향)
작가 에세이_완벽한 타인이 되려는 사람들(소향)
사이드 뷰_신분제 이후 부모의 계급은 어떻게 대물림되는가(노명우)

저자 소개 1

2022년 김유정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같은 해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진 스토리작가 공모전에 선정되어 첫 장편소설 『화원귀 문구』를 출간했다. SF 소설집 『모르페우스의 문』, 장편 동화 『간판 없는 문구점의 기묘한 이야기』, 『또 정다운』 을 썼으며 『촉법소년』, 『빌런은 바로 너』, 『엔딩은 있는가요』, 『1945: 이 세계가 사라지기 전에』 등 여러 앤솔러지에 작품을 실었다. 『화원귀 문구』는 해외 출간되었고,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에 실은 단편소설 「포틀랜드 오피스텔」은 드라마 판권 계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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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384g | 124*205*20mm
ISBN13
9791193190647

책 속으로

영리는 사람이 숨을 쉬는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돈이 이렇게 많다는 걸 몰랐다.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 출신 아빠가 간신히 혼자 먹고살 정도로 버는 돈으로 둘이 살아왔으니 어찌 보면 간단한 계산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아프거나 해고당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렇게 되는 순간 안전장치 없는 삶은 곧장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추락하며 영리는 알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이란 당연한 일이 아닌 축복이고, 축복에는 저마다 가격표가 있다는 것을.
--- p.43

둘은 잠시간 아무 말이 없었다. 초롬이 다시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뭐?”
“너 지금 하는 거 말이야, 왜 이렇게까지 해?”
영리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스스로 이미 여러 번 물은 것이었으니까.
“예전처럼, 그리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그런데 평범하게 산다는 건 적어도 나에게는 전부를 걸어야 하는 일이더라고.”
집안이 물속처럼 고요해졌다. 공기조차 둘의 말을 숨죽여 듣는 듯했다.
--- p.100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이것은 초롬의 부계정이 아니었다. 계정을 만든 것도, 몰래 찍은 초롬의 사진을 올린 것도 전부 민들레였다. 팔로워들의 환호가 초롬이 아닌 자신을 향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런 순간, 민들레는 비로소 살아 있는 기분을 느꼈다. 가짜라도 좋았다. 하트 하나가 한 번 더 미소 짓게 했다. 영혼이 빈곤해질 때마다 민들레는 그렇게 온라인 셀프 숭배로 수혈을 하곤 했다.
민들레가 핸드폰을 닫고 웅크려 앉았다. 그리고는 헤어핀 금속 틀을 교실 시멘트 바닥에 썩썩 소리가 나도록 갈기 시작했다. 칼처럼 날카로운 핀이 언젠가 초롬의 모찌 같은 피부에 붉은 상처를 내주길 바라면서. 조용한 교실 구석에서 신경을 긁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한동안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 p.106

함초롬은 명실상부 국내 1위 식품회사다. 송나희 회장의 성공 신화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윤 관장에게는 그저 수라간 무수리 같은 존재였다. 윤 관장은 바닥부터 아득바득 올라온 사람이 싫었다. 근본이 다른 사람이 주제넘게 구는 건 더더욱 싫었다. 윤 관장 특유의 말투는 왕자를 엄히 훈육하는 사극 속 중전 같았다. 콕 선생 앞인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콕 선생을 소개해 준 한 그룹 사모는 콕 선생이 학생이나 그 집안의 사생활에는 전혀 관심 없다고, 듣는 대로 모두 흘려보낸다고 했다. 그가 원하는 건 오로지 맡은 학생의 합격과 성공보수뿐이라고, 진정 최고의 과외 선생이자 코치라고 칭송했다.
--- p.115

영리가 핸드폰의 고양이 인형을 움켜쥐었다. 다경이 자주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가 너무 좋아. 네 모든 걸 닮고 싶어.”
다경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다경을 돕겠다고 했던 모든 행동이 도리어 다경의 마음에 욕망을 심은 것은 아니었을까. 잘난 친구를 넘어서고 싶다는 욕망을. 다경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은 그 일을 신고한 자신일지도 몰랐다.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정말로 그게 전부였을지 이제 영리는 스스로가 의심스러워졌다. 거짓의 한복 판에 서 있는 지금은 더욱 그랬다. 그래서 다경이 자꾸 꿈에 나타나는 걸지도 몰랐다. 너도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
--- pp.182-183

“비서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그래.”
“왜 그렇게까지 회장님한테 충성하세요? 솔직히 이해가 안 가요. 가끔은 막 대하기도 하잖아요.”
공 비서가 창밖의 땅거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든 인연은 길든 짧든 다 시절 인연이야.”
시절 인연. 영리는 그 말을 낮게 읊조렸다.
“난 그저 회장님과의 시절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 거다. 언젠가 우리의 시절도 끝나겠지만, 아직은 아니니까.”
공 비서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영리는 이미 지나간 인연과 아직 끝나지 않은 인연을 떠올렸다. 초롬도, 송 회장도 언젠가는 끝날 시절 인연일 것이다. 그리고 아빠도.

--- p.203

출판사 리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인 모방소녀.
[학벌 지상주의]에 관하여

『모방소녀』는 학벌 지상주의와 능력주의 신화가 결합된 한국 사회의 민낯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텍스티의 시사 소설 시리즈 ‘사이드미러’는 우리가 목격했지만 쉽게 잊어버리는 사회적 문제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작품은 ‘입시’라는 가장 공정해 보이는 제도가 실제로는 어떻게 계급과 자본의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의 벼랑 끝에 서게 되는지를 묻는다.

사고 이후, 영리는 병원비와 생계를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수능 미응시로 수시와 정시 모두 자동 불합격 처리되었고, 3년간 쌓아 올린 성취는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그때, 아버지가 모시던 송 회장의 비서가 영리를 찾아온 것이다. 송 회장의 딸 초롬과 똑 닮은 얼굴을 가졌고 서울대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었던 영리는 대리 수능이라는 위험한 프로젝트를 수행해 낼, 유일한 적임자였으므로.

무단 횡단조차 해 본 적 없던 영리는 단칼에 거절하지만 현실은 점점 그녀를 몰아세운다. 쌓여가는 치료비,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 주인의 요구, 아버지의 응급 상황. 결국 영리는 다른 이름으로 시험장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송 회장은 수능 고득점은 물론, 초롬의 상류 사회 진입을 위해 딸이 다니는 대명고 수제들의 스터디 그룹인 ‘하늘’에 들어가 유력 집안 자제들과 교분을 쌓을 것 또한 요구한다. 그렇게 영리의 ‘카피캣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모방의 여정을 통해 영리와 초롬, 두 소녀의 삶은 점점 얽히고, 권력 내부의 균열이 드러나며, 선택의 대가는 예상보다 깊고 무겁게 다가온다. 『모방소녀』는 대리 수능이라는 자극적 설정을 넘어, “(모방의) 기회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심리 스릴러이자 사회파 미스터리다. 그러면서 우리의 주체적 객체성은 안녕한지, 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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