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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남 인테리어 / 김영주
리셋 / 소향 장막의 자매들 / 신조하 전화 / 장세아 48시간 / 정명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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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한참을 바르작대던 써니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흠칫 굳었다. 도망갈까? 헛웃음이 났다. 지금의 자기를 언니가 본다면 뭐라고 할까. 비웃겠지? 기껏 제 곁에서 도망쳐서는 또 다른 지옥으로 뛰어들었다고 한껏 고소해하겠지. 그럴 수는 없다. 한국을, 언니 곁을 떠나온 걸 써니는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써니는 툭 터진 입술에서 흐른 피를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썩은 내가 어디서 나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어쩌면 데이빗의 화가 누그러질 만한 일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그 덕에 오늘은 뺨 몇 대로 마무리될지도 몰랐다.
--- p.13 “누, 누구세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다가와 지현을 밀치고는 후문 쪽으로 내달렸다. 균형을 잃고 벽에 부딪힌 지현의 귓가에 복도를 따라 점점 스러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지현은 간신히 비상벨을 누르고 환자를 살폈다. 박상훈의 눈은 공포로 크게 열려 있었다. 고개는 옆으로 꺾여 있었고, 왼쪽 목에 깊은 상처가 패여 있었다. 베개 옆에는 병원용 가위가 핏자국으로 얼룩진 채 보란 듯이 놓여 있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숨만 더욱 가빠질 뿐이었다. --- p.52 “깨끗해지고 싶어서요.” 어떻게 교회에 자기 발로 찾아왔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혜진은 이렇게 대답했다. 혜진은 자신을 깨끗하게 해 줄 교회를 찾아 떠돌아다녔다. 꼭 마음에 차는 교회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룩한, 신성한, 순결한, 흠 없는, 티 없는 자. 그런 자만을 사랑하는 위대한 종교. 그 오랜 옛날 사막 부족민들의 신은 자신에게 바쳐질 제물로 오로지 흠 없는 정한 숫양을 요구했다고 한다. 어떤 얼룩도 점도 없는, 흉하고 일그러진 부분이 전혀 없는 그런 아름답고 눈부신 번제물만이 신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혜진은 그 이야기가 사무치게 좋았다. 신 역시 아름답고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하지만 자신들의 말씀에 걸맞은 교회는 순결한 한 사람을 찾는 것처럼 어려웠다. --- p.98 대책 없는 여자. 역시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다. 낯선 남자에게 덥석 말을 걸지 않나, 겁도 없이 차에 타겠다고 우기지를 않나. 이러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전부 내 탓으로 돌리겠지. 괜한 의심만 받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게 덫일지도 몰라. 배후에 공범이 있어서 멍청하게 걸려드는 남자를 노리고 일을 꾸며 한탕 하려는 수작이 아닐까? 어느 쪽이든 느닷없이 잠적해 버린 여자 친구를 데리러 가는 길에 동반하기에는 최악의 파트너다. --- p.167 정신을 잃었던 강윤지는 귀에서 들리는 웅웅거리는 소리에 서서히 깨어났다. 온몸이 몽둥이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축 늘어진 채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주변을 살짝 돌아보니 달리는 자동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눈에 안대나 복면 같은 게 씌워지지는 않았지만 손과 발은 하얀색 케이블 타이로 묶여 있었고, 안전벨트가 채워져 있었다. 차츰 정신이 돌아오자 웅웅거리던 소리가 명확하게 들렸다. 자동차의 라디오 소리였다. --- p.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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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폭력 앞에 무력했던 여성들이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돌아오다.
『푸른 수염의 딸들』은 각기 다른 장르에서 독창적인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들이 모여 완성한 여성 중심 범죄 스릴러 앤솔러지다. 이 소설집은 ‘복수하는 여성’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각자의 색깔을 극명하게 드러낸 5편의 단편을 선보인다.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여성 대상 폭력의 민낯을 파헤친 이 작품집은 기존의 범죄 소설과는 차별화된 접근을 보여 주며, 정교한 심리 묘사와 예측 불가능한 반전을 통해 독자에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소설집이 특별한 이유는 여성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능동적 복수자로 그려 내며, 선악의 경계를 과감히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탐구하되, 전통적인 여성 서사가 주로 집중했던 고통의 승화나 용서를 통한 치유와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대신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는 여성들의 가장 극단적이고도 솔직한 선택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소설 속 여성들은 세상이 주지 않은 정의를 스스로 쟁취하기 위해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독특한 문체와 서사 기법을 통해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는 극단적 선택을 냉정하게 탐구한다. 복수와 폭력을 통한 해결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대안을 외면하지 않고 솔직하게 들여다본다. 서로 다른 개성과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만나 완성한 이 독특한 앤솔러지는 독자들로 하여금 정의와 복수, 그리고 여성의 선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섬뜩한 반전과 치밀한 심리 묘사, 현실감 넘치는 사회 문제 의식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작품집은 강렬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깊은 사유를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