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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독자를 위한 안내 1장. 서론 삶의 큰 질문들 비관과 낙관 인간의 비참과 동물의 비참 말할 것인가, 말하지 않을 것인가? 2장. 의미 서론 질문을 이해하기 (다소) 좋은 소식 · 개인의 관점에서의 의미 · 공동체의 관점에서의 의미 · 인류의 관점에서의 의미 결론 3장. 무의미 나쁜 소식 유신론적 대응 자연의 ‘목적’ 희소 가치 우주적 관점의 비중 낮추기 지상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기 신 포도와 바람직한 종류의 의미 결론 4장. 삶의 질 삶의 의미와 삶의 질 삶의 질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 인간 삶의 열악한 질 왜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많은가 비종교적 낙관주의적 신정론 결론 5장. 죽음 서론 죽음은 나쁜 것인가? · 쾌락주의(와 그 불만) · 박탈설 · 소멸 · 죽음은 죽는 사람에게 언제 나쁜가? · 대칭성 논증 · 에피쿠로스 학파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죽음은 상황에 따라 얼마나 나쁜가?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살기 6장. 불멸 불멸에 대한 망상과 환상 신 포도 결론 7장. 자살 서론 자살에 대한 흔한 논증에 대한 반박 · 살인으로서의 자살 · 비합리적인 자살 · 부자연스러운 자살 · 비겁한 행위로서의 자살 · 다른 사람들의 이익 · 죽음의 최종성 자살에 대한 논거 확장 · 삶의 질에 대한 보다 정확한 평가 · 삶의 무의미함은 자살을 정당화하는가? · 개인의 통제권 회복 결론 8장. 결론 인간의 비참을 요약하자면 (다시) 비관주의와 낙관주의 인간의 비참에 대한 대응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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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큰 질문들은 중대하다는 점에서 큰 질문들이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답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크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답은 대체로 불쾌할 뿐이다. 그 안에 거대한 미스터리는 없지만 넘쳐흐르는 공포가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인간의 조건’을 ‘인간의 비참’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비참 속으로 내던져진 사람들은 그 공포를 피할 수도 없다. 때때로 제한적인 개선이 가능하지만, 그것은 실존적 차원에서의 완화치료에 해당한다. 몇몇 증상들을 다루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며, 그마저도 대가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 「1장 서론」 중에서 또한 개별적인 삶이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 것과 모든 (인간의) 삶이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 것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때로는 그 답이 함께 성립하거나 함께 무너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마도 우주적 관점에서는 어떤 인간의 삶도 의미가 없거나, 아니면 모든 인간의 삶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이 우주적 관점에서 의미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는 (불가능하지 않더라도) 어렵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의미를 묻는 경우, 답은 개인마다 달라질 수 있다. 보다 제한된 관점에서는 어떤 사람의 삶이 무의미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사람의 삶은 (어느 정도의 혹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 「2장 의미」 중에서 삶은 무의미하지만 동시에 의미를, 더 정확히 말하면 여러 의미들을 갖는다. 단 하나의 삶의 의미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많은 의미들이 가능하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이들의 삶에 긍정적인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여기에는 아이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일, 병자를 돌보는 일, 고통받는 이에게 위안을 주는 일, 사회를 개선하는 일, 위대한 예술이나 문학을 창작하는 일, 지식을 발전시키는 일이 포함된다. --- 「3장 무의미」 중에서 ‘죽음’과 ‘소멸’이라는 두 용어는 모두 모호하다. 이 모호함을 해명하면 왜 어떤 사람들은 소멸설에 따라 죽음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가 드러난다. 어떤 해석에서는, 그리고 어떤 존재에 적용될 때는, 두 용어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한 사람의 소멸은 곧 그 사람의 죽음이다. 그러나 다른 해석에서는 죽음이 일어나지 않아도 소멸이 발생할 수 있다. 59 치매 같은 질병이나 영구적 식물인간 상태와 같은 조건은 (생물학적 의미에서) 죽기 전에 (심리적 의미에서) 한 사람을 소멸시킬 수 있다. 이렇게 소멸과 죽음을 구분한다면 어떤 경우에는 (생물학적) 죽음이 소멸을 초래하지 않기도 한다. 이는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치매나 영구적 식물인간 상태로 인해 이미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소멸설에 따르면 죽음은 나쁘지 않다. --- 「5장 죽음」 중에서 이 결론에 동의하지 않고 여전히 불멸이 나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견해에서 위안을 구해서는 안 된다. 설령 불멸이 나쁘다고 해도 더 오래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결론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불멸이 나쁠 수는 있지만 실제보다 훨씬 더 오래 사는 것은 더 나을 수 도 있다. 또한 필멸성이 좋다는 결론도 따라오지 않는다. 우리는 죽어도 저주받고, 그리고 죽지 않아도 저주받는 상황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곤경은 그 정도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어쩌면 내가 믿는 바와 같이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았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태어나지 않은 자는 어떠한 곤경은 고사하고 어떠한 상태에도 처해 있지 않다. 그는 죽을 운명에 놓이지 않는다. --- 「6장 불멸」 중에서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우주적 의미의 부재와 관련된 불안을 덜어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 자신의 삶에 어떤 우주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무의미함을 느낄 때 취할 수 있는 유일하거나 최선의 대응은 자살이 아니다. 적어도 자살과 관련해서 더 바람직한 대안은, 우주적 무의미함이라는 사실에 대한 주관적 반응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죽음 외에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 「7장 자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