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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이게 전부일까?1부2부3부4부5부6부맺음말감사의 말참고문헌 및 출처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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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tin Molvik Botnmark
Hwasue S. War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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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동 수출국에서 탈퇴합니다최근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화위) 3기가 발족되었다. 조사 3국을 구성할 TF팀 역시 빠른 출범으로 주목 받았는데, 조사 3국은 해외 입양 인권 침해 사례를 다룰 예정이다. 진화위 3기가 출범 12일 만인 지난 3월 10일까지 신규 조사 신청 1,309건을 접수, 이 가운데 해외 입양 사건만 2기 311건, 신규 300건 등 총 600건이 넘는다. 또한 정부에서는 29년까지 해외 입양 0건을 목표로 내세우기도 하였다.이러한 이야기들은 일견 당황스럽기도 하다. 해외 입양 과거사 청산과 종식이 여전히 국가의 목표가 될 만큼 우리가 아이들을 해외로 많이 보내고 있었던가? 물론 과거에는 그러했다.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은 해외 입양을 제도화했다. 고아가 된, 혹은 ‘혼혈아’로 태어난 아이들을 키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외 입양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어 “1990년대에는 총 2만 2천 925명의 한국 아동이 서구로 입양되었다. 그중 대부분은 혼외 출생아였”다. 그러나 해마다 하락하는 출생률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21세기, 해외 입양은 일어나지 않는 일만 같다. ‘해외 입양’이라는 단어가 낯설어진 2026년, 왜 누군가는 여전히 해외 입양과 싸울까?국제 입양 산업,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사고파는 일에 가담했다해외 입양이 우리 일상에서 낯설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해외 입양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외 입양은 계속되고 있다. 그 수가 줄어들었을 뿐. 그리고 여기, 1998년과 2002년에 한국인 아동을 입양한 노르웨이 가족이 있다. 아이들을 입양한 지 20여 년이 흐른 후, 그 아동들의 입양모는 말한다. 우리가 가담해 온 일은 “아이를 뿌리째 뽑아 옮겨 심”는 일이었다고, “그런데 그것이 안전한 일인지조차 알지 못했다”고.1998년, 서울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 오슬로를 거친 생후 8개월 된 남자아이가 일곱 시간을 거슬러 베르겐에 도착했다. 베르겐은 추운 밤을 지나는 중이었다. 아이를 막 받아든, 이 아이의 엄마가 된 저자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아이에게 겹겹이 옷을 입혔구나라고. 먼 한국의 누군가가, 네가 오슬로에 도착하는 그 순간이 한밤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렇게 세심한 돌봄을 받던 아이는 결국 뿌리 뽑힌 채 노르웨이로 오게 되었다.어른이 된 아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후로 저자는 불안에 시달린다. 자신이 초국가적으로 아이를 사고팔던 거대한 산업에 일조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입양이 자신의 선택이었다면,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회학자로서 해외 입양 산업의 구조를 추적해 나간다. 한국계 입양인들 수십 명을 인터뷰하고 때마침 제기된 국제 입양 탐사 보도를 살펴보며 저자는 입양 산업의 민낯을 깨닫는다. 저자의 추적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역시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게 된다. 한국은 왜 그렇게까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을까? 이미 해외로 입양 간 아이들의 안전조차 쉽사리 보장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그 근원에는, 입양 기관들이 있다.산업이 된 ‘선의’ 아래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조용히 무너지는가해외로 아이를 내보내는 일은 오랜 기간 ‘선의’로 여겨졌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부모를 찾아주는 일, 아이가 없는 부모들에게는 아이를 찾아주는 일 말이다. 입양이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전제로 한다는 생각 역시 그 연장선이었다. 그러나 입양 이후 아이들과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을 대처하기 위한 제도는 전무했다. 가족이 되는 과정 속에서 많은 입양인과 부모들이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얻었다.아이가 입양된다는 뜻은 곧 그 입양을 중개한 단체가 있음을 의미한다. 노르웨이에서 입양아들을 배정한 단체 ‘세계의아이들’은 “노르웨이에 입양된 6천 5백 명 이상의 한국 입양인 가운데 약 70퍼센트가 ‘출신 불명’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아이가 실제로는 확인 가능한 부모를 두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아동의 최선의 이익’은 너무나도 모호하게 정의되어 오히려 입양을 산업화하는 데 일조하는 개념이 되었다.아이를 해외로 신속하게 보내기 위해 1970~1980년대 한국에서 일어난 일 역시 가히 충격적이었다. 입양 기관의 빠른 일처리를 위해 호적은 손쉽게 조작되었고, 부모가 있는 아이가 고아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입양이 예정되어 있던 아이가 죽으면 다른 아이가 죽은 아이의 신원을 ‘물려’받기도 했다. 나이와 이름이 달라도 말이다. 그렇게 해외로 오게 된 입양인들은 저마다의 “하얀 슬픔”을 겪으면서 성장했다. 자신은 결코 이곳에 속할 수 없다는 정체성의 혼란, 각종 폭력과 학대에 너무나도 쉽게 노출되던 성장 환경, 숨 쉴 틈 없이 쏟아지던 인종 차별들. 이제 저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왜 노르웨이는 아이들을 데려오는 대신, 그 부모들을 돕지 않았을까?” “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내어 주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이 책은 아들을 입양하고 혼란과 침묵으로 가득 찬 성장기를 지켜보며, 결국 아들의 뿌리 찾기에 함께하는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와 조작과 오류로 덧칠된 입양 산업의 민낯을 드러내는 사회학자로 수행한 탐사가 엮여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이야기가 만나 해외 입양 산업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한 발 더 가까이에서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국제 입양 산업의 종착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외 입양인들과 그들의 가족에게는, 그 경험이 세대를 거쳐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문제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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