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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우동선 (17대 회장)
건축역사학은 건축설계를 잘하기 위해서 연구하는 것이다 김봉렬 (11대 회장) 중국건축 답사와 한샘 건축기행, 한국건축역사학회로 김동욱 (6대 회장) 건축역사 연구의 강한 추진력, 실측 조사 임충신 (3대 회장) 문화재 보수와 수리 현장에 답이 있다 장순용 (9대 회장) 왜 연구를 하는가. 건축역사학의 철학적 성찰 김성우 (7대 회장) 김일진 교수연구실과 영남건축사연구회의 경험과 그 전개 이호열 (13대 회장) 역사는 현재를 보기 위한 보물창고이다 이상해(6대 회장) 건축의 기원과 전파경로를 찾아서 천득염 (12대 회장) 기대와 열정으로 이룬 한국건축역사학회의 창립 김동욱 한국건축역사학회 창립 이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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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쓰는 것이 적절할 것만 같다. 아직도 일부 회원은 이 시기를 “요순시대(堯舜時代)”라고 추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건축역사학회의 “황금시대”는 학문적으로는 건축학에서 건축역사학이 전문화를 위해서 분화하여 자립을 모색하는 시기에 해당할 것이다.
--- p.011 건축역사학의 첫째 목적은 건축가를 교육하는 것 같아. 나는 건축역사학자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건축가를 교육해서 건축의 방향을 정말 좀 진지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이런 데에 기여해야 하는 게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에 문화재학으로 빠지는 거는 하나의 분과인 것 같고. --- p.038 이론이라는 것을 현대 기술에서도 할 수 있고 물리학에서도 끌어올 수 있겠지만, 그건 아직은 실험이 안 돼 있는 상태, 가설들이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 부담이 있겠죠. 역사는 이미 실험을 거쳐 나온 것이니 이론을 만들어내는 근거라고 그럴까, 그걸 정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거예요. --- p.039 1980년대 후반에 대학이 많이 신설되면서 건축과도 많이 생겼잖아요. 그때 교수가 한 과에 서너 명밖에 안 될 때인데도 한국건축을 연구하는 전공자를 채용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았어요. 그래서 80년대 말에 가면 한국건축을 연구하는 교수 인력이 많이 늘어나고 공부하려는 인력도 좀 늘어났고, 또 사회적으로나 건축계에서 한국건축에 갖는 기대도 좀 있었고. --- p.057 건축계에서도 디자인하는 “한국 걸 좀 살리고 싶은데 뭐 좀 답을 내놔야지, 무슨 옛날얘기만 자꾸 하고 있지 말고 답을 좀 내놔라.” 그런 요구들이 쭉 있었지요. 학회를 만들 때 그런 건축계의 주문에 대해서도 굉장히 의식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 p.077 공포 등은 초기에는 좀 심플하던 것이 후기로 가면 좀 세련되게 바뀌는 그런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역시 여러 번 경험하게 되면 조금 이전보다는 좀 세련되게 만들어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 p.146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얘기하면 무심코 나오는 얘기도 귀담아듣게 되고, 또 좀 자극받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좋았어요. 세미나 때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또 새롭게 느껴지고, 그런 것들이 세미나 하면서 재미있었어요. 오늘은 또 어떤 발표가 나올까 기대가 됐고. --- p.149 학회라는 거가 학술지하고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하다못해 교수를 뽑는 정보를 주고 뭐 천거하고 그러는 것도 학회에서 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런 거를 한국에서도 해야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 p.181 그때 우리나라가 중국하고 수교 전이어서 중앙정보부에서 하는 교육을 받아야 했어요. 그리고 비자도 중국에서 바로 받지 못하고 홍콩 가서 받고. 홍콩 신화통신사에서 받아서 북경으로 들어갔는데, 여름이었고 저녁 어스름할 때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좀 묘하더라고. --- p.196 학회가 존립하려면 일정하게 후학이 계속 양성되고 학회로 들어와야 하는데, 이게 후학이 없으니 10년이 지나고 나면 진짜 규모가 많이 줄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 지방에 일할 사람이 없어요. --- p.222 사실은 건축역사라는 것이 건축역사뿐만 아니라 흔히들 역사학을 하는 사람들이, 현재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현재 뭘 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기 위해서 역사를 보는데. 그렇지 않은 시각으로 뭐 꼭 그것만 하고 다른 걸 안 보려고 하는 것 때문에 내가 하는 이야기야. --- p.239 현재에 관련된, 인간의 삶과 관련된 상당히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분야 중 하나가 건축이거든. 그래서 건축은 항상 살아가는 바로 동시대, 당대를 보는 눈이 필요하고. 과거를 볼 때도 ‘동시대의 언어로 혹은 우리 현대의 언어로, 과거가 어떻게 번안이 될까’ 이걸 보는 시각이 중요한데. --- p.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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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학회가 조금 쇠락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1991년 6월 15일 경복궁 영추문 안 문화재관리국 별관 지하 강당에 20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한국건축역사학회 창립총회, 발기인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17번째(2024~2025)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이었던 우동선 교수가 여덟 분의 한국건축역사학회 역대 회장을 만났다. ‘2026년 6월 창립 35주년을 맞이하지만 역사학회는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점차 쇠락하고 있는 학회의 황금기를 되돌아보고 향후 방향성 모색의 토대롤 마련하기 위해서. 역대 회장들은 한국건축역사학회의 창립을 결심하게 된 이유부터 오늘의 역사학회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세세히 들려준다. 더해서 당시 건축계의 주요 이슈도 거침없이 풀어낸다. 불과 30여 년 전의 일임에도 어떤 이야기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또 어떤 이야기는 저렇게까지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만 했을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해 경건해지기도 한다. 기반을 다져주신 선배들의 노고 덕분에 한국건축역사학회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우동선 교수와 대화를 나눈 역대 회장들은 정체된 한국건축역사학회의 활성화 방안으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한다. 건축역사학은 건축을 위해서 존재하는 학문으로, 첫 번째 목적은 건축가를 교육하는 것이다. 건축가와 더욱 활발히 교류하며 건축의 방향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김봉렬). 안일하게 글로벌 시대를 맞이한 감이 있는데 초심으로 돌아가 조금 더 치열하게 연구해야 하지 않겠나(김동욱). 어느 특정 분야로 치우치지 말고 연구의 폭을 넓혀 다양한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김성우). 역사는 현재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현재 뭘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수단이니 역사 자체만 보려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이상해) 등. 여덟 분의 역대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우동선 교수는 건축학에서 건축역사학이 전문화를 위해서 분화하여 자립을 모색하는 시기를 ‘화양연화(花樣年華)’로 표현하는 게 적절하겠다고 말한다. “한국건축을 구체화해서 그것이 어떤 집을 짓거나 뭘 하는 데에 바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건축역사학회 창립에 큰 역할을 한 김동욱 교수는 한국건축역사학회 창립 계기로 88 서울올림픽을 주요하게 꼽는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적인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고 올림픽 이후 1990년대에 건설 경기가 폭주하면서 ‘한국적인 건축’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하지만 한국건축에 대한 연구는 이에 대한 답을 줄 만큼 축적되어 있지 못했다. 폭증하는 한국건축에 대한 열망만큼 연구자도 대폭 늘었지만 이들을 수용할 만한, 연구자들이 교류하며 의견을 나눌 만한 자리가 충분치 않았다. 연구자들은 이런 문제점을 공유하게 되었고 별도의 학회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학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연구모임을 먼저 갖는다. ‘한국건축역사연구회’라는 이름으로 1990년 11월 24일부터 매달 5~6차례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 해인 1991년 6월 한국건축역사학회 창립 발기인 총회를 개최한다. 기존 학회와 관계를 우려한 선배 연구자들의 소극적 태도로 총회 몇 시간 전까지 회장을 선임하지 못한 채 총회를 진행할 뻔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발기인 총회는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발기인 총회 이후 열린 첫 번째 이사회에서 ‘한국건축을 중심으로 하되 동양, 서양, 현재, 이론 등 넓은 분야가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활동 규정을 명시하고 연2회 전국 규모 학술대회 개최, 월례연구발표회, 연2회 논문집 발간, 뉴스레터를 통한 학회 소식 공유를 주요 활동 내용으로 정했다. 한국건축에 대한 목마름은 ‘한샘 건축기행’이라는 한국 현대건축에 큰 영향을 미친 기행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샘의 후원으로 건축사학자와 건축가가 매달 1박 2일 동안 전국의 주요 건축물을 답사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으로 연구자와 건축가의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 다르게 해석되는 건축 용어 등 두 그룹의 차이를 실감하고 토론을 통해 차이를 좁혀 나가는 자리가 되어 주었다. 한국건축역사학회 창립에 적극 참여한 연구자들에게는 한샘 건축기행 이외에 중요한 이벤트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중국건축 답사이다. 김성우 교수가 교류하던 베이징대학 건축과의 교수 초청 형식으로 13명의 연구자가 중국건축 답사를 다녀왔다. 당시는 한중수교 이전이어서 비행기 직항은 물론 비자조차 국내에서 할 수 없는 상황. 더구나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 가려면 중앙정보부에서 실시하는 안보 교육을 받아야 했다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절차가 있었다. 베이징 직항이 없어서 홍콩으로 가서 홍콩에서 비자를 받고 북경으로 들어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는 전설처럼 들린다. 책에서는 한국건축역사학회 창립 당시 이야기와 함께 건축계의 주요 이슈도 엿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 대형 설계사무실이 왜 아틀리에 사무실만큼 건축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지, 석굴암 바로 앞에 석굴암 모형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의 전말, 2000년대 초반 5, 6년 정도 세계유산 등재 목록이 비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 북한에 있는 고구려 고분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남북 공조 작전 등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