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간행사_아를레트 엘카임 사르트르 5
1 19 2 75 3 81 4 177 옮긴이의 글 189 |
Jean Paul Sartre
장 폴 사르트르의 다른 상품
윤정임의 다른 상품
|
『유대인 문제에 대한 성찰』은 유대적 진정성의 내용에 그 어떤 특권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랜 내면의 추격으로부터 의식을 해방하는 일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시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책이라는 수단을 통해 가능한 한 달성되었던 그 본질적인 목표는 유대인이 아닌 프랑스인들을 일깨우고 계몽하는 것이었다. 반유대주의자의 신화를 공개적으로 해체하고 그 동기를 밝힘으로써 그들이 거짓 영웅이며 거짓 정의의 사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반유대주의라는 말이 담고 있는 무분별한 증오, 불성실함, 그리고 위험성을 깨닫게 하려 했다. 그 목적은, 나치즘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가 단지 일시적인 동정심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반유대주의가 더 이상 ‘하나의 견해’로 취급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에 있다.
--- p.16 만일 유대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반유대주의자는 유대인을 고안해낼 것이다. --- p.26 그는 “유대인은 없고 유대인 문제도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유대인을 그의 종교, 그의 가족, 그의 윤리 공동체로부터 분리하려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유대인을 민주주의의 도가니 속으로 황급히 몰아넣으려는 것이다. 그 민주주의의 도가니로부터 유대인은 홀로 맨몸으로 개인적이고 고독하게, 모든 다른 입자들을 닮은 하나의 입자로 다시 나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에서 동화 정책이라고 불리던 것이다. 이민법은 그 정책의 실패로 기록되었고 요컨대 그것은 민주주의적 관점의 실패였다. 달리 어떤 존재 방식이 있겠는가. --- p.77 반유대주의자는 유대인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비난한다. 민주주의자는 유대인이 스스로를 유대인으로 여긴다고 비난할 것이다. 자신의 적과 변호자 사이에서 유대인의 상황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유대인으로서는 자신이 어떤 소스로 잡아먹힐지 선택하는 것 외에 달리 아무 할 일이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이제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보는 게 온당하다. 유대인은 실존하나? 실존한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우선 유대인인가 아니면 한 인간인가? 문제의 해결은 모든 이스라엘인의 절멸에 있나 혹은 그들의 온전한 동화에 있나? 아니면 그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던져보고 다른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 --- p.79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프로그램 안에 ‘대중의 급진화’를 등재할 때,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스스로를 의식해야 한다고 설명할 때, 이것이 노동자 역시 우선은 비진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유대인은 이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유대인의 진정성은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조건을 끝까지 살아가는 일이고, 그것을 부인하거나 피하려는 시도는 비진정성이다. 유대인은 분명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비진정성에 끌릴 텐데 그 이유는 그가 주장하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온전하게 순교자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 p.118~119 간행사에도 나타나지만 사르트르는 전후 프랑스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반유대주의 기운을 경고하기 위해 이 글을 서둘러 작성했다. ‘유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격한 언술의 표적은 동시대 프랑스인이다. 동시대의 프랑스인에게 자국의 유대인 동포가 스스로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든, 즉 진정한 유대인으로 살든 비진정한 유대인으로 살든 그대로 존중할 의무가 있음을 요구한 것이다. 유대인이 프랑스 공화국의 아들로 살든, 이스라엘의 아들로 살든,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든, 이 모두는 그의 자유에 속한다. 이러한 자유로운 선택의 조합들을 존중하는 것이 곧 그가 말하는 구체적 자유주의의 내용일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그 같은 저자의 의도를 강경하고 선명하게 드러낸다. “유대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온전하게 누리지 못하는 한, 어느 프랑스인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자기 생명을 걱정하는 유대인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어느 프랑스인도 안전할 수 없을 것이다.” --- p.199~200 |
|
예리한 시선을 따라 선명하게 그려진 반유대주의자의 초상
2023년 11월, 철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유럽의 지성으로 인정받았던 위르겐 하버마스는 동료들과 함께 “연대의 원칙(Grundsätze der Solidarität)”이라는 친이스라엘 성명문을 발표했다. 그 성명문의 골자는 하마스를 비판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부채감에 사로잡혀 반유대주의와 반시온주의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못한 하버마스의 행보는 세계 학계와 대중의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곧 유럽 지성의 윤리적 파산을 의미하는 듯했다. 하버마스가 봉착한 모순은 오늘날 이스라엘이 시온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반유대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어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만적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사르트르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성찰』에서 정밀하게 묘사한 반유대주의자의 초상 위로 오늘날 이스라엘의 모습이 고스란히 겹쳐진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반유대주의는 단순한 견해나 사상이나 역사에서 기인한 산물이 아니다. 반유대주의는 복잡한 세계와 마주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비합리적인 열정이다. 반유대주의자는 세상의 모든 악을 유대인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을 악에 맞서는 선으로 둔갑시킨다. 그들에게 타자는 실존하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론적 불안을 감추기 위해 발명된 악마적 형상일 뿐이다. 악을 소멸시킨다는 명분 아래 타자를 절멸시키려 드는 이 뒤틀린 심리는 반유대주의라는 비극적 유산을 학살의 방패로 삼는 이스라엘의 심리와 맞닿아 있다. 사르트르가 완성한 반유대주의자의 초상은 지금도 여전히 변주되는 차별과 혐오의 양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민주주의자의 모순, 추상적인 인권 뒤에 은밀하게 가려진 또 다른 폭력 사르트르는 타자를 증오하는 반유대주의자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친구를 자처하는 민주주의자의 한계 또한 날카롭게 지적한다. 민주주의자는 보편적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목소리에 유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유대인을 역사적 맥락과 종교, 구체적인 삶의 양식에서 분리해 보편적 시민이라는 추상적인 틀 안에 가두려 한다. 민주주의자들의 심리는 언뜻 유대인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유대인이라는 개별적 실존과 정체성을 소멸시키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사르트르는 모든 대상을 집단적 편견으로 포괄하는 반유대주의자의 종합 정신만큼이나, 모든 개별성을 원자로 분해해 고유한 색채를 지워 버리는 민주주의자의 분석 정신 역시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유대인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타자의 생명을 짓밟는 무기로 변질될 때, 혹은 인도주의라는 추상적 가치가 구체적인 현장의 고통을 외면하는 방패가 될 때, 그것은 사르트르가 경계했던 ‘비진정한 실존’의 전형이 된다. 사르트르는 유대인이 자신의 유대인성을 부정하거나 추상적인 보편성 뒤로 숨는 대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유를 선택하는 ‘진정성’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유대인 문제에 대한 성찰』은 단순히 과거의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변모하며 출몰하는 혐오의 본질을 드러내 보이며,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과 타자의 고통을 소거한 채 추상적 원칙만을 내세워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지적 기만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유대인이 자신의 권리를 온전하게 누리지 못하는 한, 어느 프랑스인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자기 생명을 걱정하는 유대인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어느 프랑스인도 안전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선언은 타자의 생명과 권리가 위협받는 현대 사회에서 그 누구도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연대의 필연성을 일깨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