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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발행인의 서언
날짜 없는 쪽지 일기 작품 해설 옮긴이의 말 장 폴 사르트르 연보 |
Jean Paul Sar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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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젊은이들이 놀랍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말끔하고 그럴싸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제 한 일에 대해서 질문을 받더라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우리에게 간단히 알려줄 것이다. 내가 그들이라면, 나는 우물쭈물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혼자 살고 있을 때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른다. 정말처럼 보이는 것은 친구들이 없어짐과 동시에 사라져버린다.
--- p.25 이제 생각이 난다. 지난날 내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이제 잘 생각이 난다. 그것은 시큼한,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그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그 조약돌 탓이었다. 확실하다. 그것은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졌다. 그렇다.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증. --- p.32 오후 3시. 3시는 무엇을 하려고 해도 항상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각이다. 오후의 어정쩡한 시간. 오늘은 참을 수가 없다. 냉랭한 태양이 유리창의 먼지를 희게 비추고 있다. 창백한, 희게 흐린 하늘. 오늘 아침 시냇물에 얼음이 얼었다. --- pp.37-38 자기반성을 하기에 완벽한 날. 인류 위에 태양이 던지는, 가차 없는 심판과도 같은 냉랭한 빛. 그것이 눈을 통해서 내 마음속에 스며든다. 사람의 마음을 초라하게 만드는 빛에 의해서 나의 내부가 비친다. 확실히 내가 자기혐오에 떨어지려면 15분이면 충분하리라. 그건 싫다. 나는 롤르봉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체류에 관해서 어제 쓴 글을 다시 읽지 않겠다. 나는 두 팔을 늘어뜨리고 의자 위에 앉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몇 마디 힘없이 쓰고 하품을 하고 밤이 되기를 기다린다. 컴컴해지면 물체들과 나는 명계(冥界)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 p.39 그의 푸른 무명 셔츠는 초콜릿색 벽 위에 즐겁게 아로새겨져 있다. 그것도 역시 ‘구토’를 느끼게 한다. 차라리 ‘그것’이 바로 ‘구토’이다. ‘구토’는 나의 내부에 있지 않다. 나는 ‘거기에서’, 벽 위나 멜빵에서, 그리고 온갖 내 주위에서 그 ‘구토’를 느낀다. 그것은 카페와 일체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 p.48 나는 미래를 ‘본다’ - 미래는 거기에, 길 위에 놓여 있어, 현재보다 약간 희미할락 말락 할 뿐이다. 미래가 실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실현되어보았자 무엇이 더 보태질 것인가? 노파는 약간 절름거리면서, 또박또박 걸으면서 멀어진다. 그 노파는 선다. 목도리에서 삐쭉 솟은 흰 머리칼을 잡아당긴다. 노파는 걷는다. 그 노파는 저기에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에 있다……. 나는 내가 현재에 있는지 미래에 있는지 알 수 없어졌다. 나는 그 노파의 동작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 노파의 동작을 ‘예견’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나는 미래와 현재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계속된다.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노파는 쓸쓸한 거리를 전진한다. 커다란 남자 신발을 옮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간이란 것이다. --- p.69 나는 보르뒤랭 르노다 실 끝에서 끝까지 걸어갔다. 나는 돌아다봤다. 작은 그림의 성당 속에 한없이 고운 백합이여 안녕, 우리의 자존심이여, 우리의 존재 이유여 안녕, ‘더러운 자식들’이여 안녕. --- p.185 이상야릇한 순간이었다. 나는 움직이지도 않고, 얼어붙은 듯 거기에서, 무서운 절정감에 잠겨 있었다. 그 절정감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그 무엇이 막 생겨났다. 나는 ‘구토’를 알았고,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면, 나는 나의 발견을 말로 구성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것을 말로 옮기기가 쉽다고 느낀다. 본질적인 것, 그것은 우연이다. 원래, 존재는 필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존재란 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뿐이다. 존재하는 것이 나타나서 ‘만나’도록 자신을 내맡긴다. 그러나 결코 그것을 ‘연역’할 수는 없다. 내가 보기에 그것을 이해한 사람들이 있다. 다만 그들은 필연적이며 자기 원인이 됨직한 것을 발명함으로써, 이 우연성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떠한 필연적 존재도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우연성은 가장이나 지워버릴 수 있는 외관이 아니라 절대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무상인 것이다. 모든 것이 무상이다. 이 공원, 이 도시, 그리고 나 자신도 무상이다.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게 될 때가 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변하게 하고, 모든 것이 표류하기 시작한다. 요전 날 저녁때 ‘역원 회관’에서처럼 말이다. ‘구토’이다. 그것이 그 더러운 자식들 - ‘코토 베르’나 다른 곳의 그 더러운 자식들 - 이 그들의 권리를 휘둘러 숨기려고 하는 바로 그것이다. --- p.253 나는 안다. 그 도시가 먼저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는 부빌을 떠나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거기에 있지 않다. 부빌은 침묵하고 있다. 이미 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 그 도시, 오늘 저녁때나 내일, 새로 오는 사람에게 신선하게 보일 수 있도록 살림을 정돈하고 덮개로 덮고 있는 그 도시에 내가 아직 두 시간이나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버림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 p.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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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재한다. 그게 역겹다.”
실존주의 문학의 시작이자 사르트의 첫 장편소설 “이제 생각이 난다. 지난날 내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이제 잘 생각이 난다. 그것은 시큼한,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그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던가!” 실존주의 문학의 서막 《구토》는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의 장편소설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보다 2년 앞선 1938년에 발표되었다. 주인공 로캉탱은 평범한 인간 존재로, 역사 연구를 하며 생을 관찰하고 분석하던 중, 일상 속 사물과 존재들에 대한 이질감과 혐오, 즉 ‘구토’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가 겪는 내면의 혼란과 존재론적 각성은 독자에게 ‘존재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구토》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과 허무, 자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사르트르이 문학적 데뷔작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결정적인 이정표다. 실존을 자각한 순간 구토를 시작하다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평론가,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실존주의 사상을 형상화한 《구토》는 사르트르 사상의 출발점이자 실마리가 되는 문제작이다. 소설적인 플롯도 극적인 사건도 감정의 갈등도 없으며 등장인물도 한두 사람뿐, 이렇다 할 인물도 없다. 로캉탱이라는 권태에 빠진 한 지식인이 무의미하고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꿈틀대며 이어 나가는 의식의 파장을 그려나갈 뿐이다. 로캉탱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소시민적 권태와 부르주아의 위선, 나아가 무의미한 대화만 주고받는 모든 인간의 비진정성을 드러낸다. 19세기적 속박과 기존 질서와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한한 자유가 필요하지만, 그러한 자유란 생의 비극성과 인간 존재의 비극성 앞에서는 무의미하기 짝이 없다. 여기서 로캉탱은 존재는 필연이 아니며 우연히 그곳에 있게 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르트르는 이 작품에서 로캉탱의 이러한 의식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존재의 의의를 되묻고 있다. 또한 실존을 자각하는 순간 구토를 시작한 로캉탱은 철학 교사로 있으며 작가적 명성을 열망하던 사르트르의 분신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실존주의 철학의 근저를 이루는 작가의 체험이며, 작가이자 철학자인 사르트르의 첫 장편소설인 동시에 앙티로망의 선구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문체의 실험성과 사유의 밀도 사르트르는 철학적 개념을 단지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의 일기 형식을 통해 내면의 심리를 생생하게 묘사하며, 철학을 문학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일기체 형식은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독자가 마치 그의 정신세계에 직접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존재의 무의미함’이 독자의 가슴에 생생히 와닿도록 설계했다. 이렇듯 외부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 변화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은 현대 소설이 갖는 의식의 흐름, 자기 탐구, 존재론적 각성 등 내면성의 문학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만든 핵심 작품이다.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에 대한 통찰 오늘날 우리는 과잉 연결, 무의미한 일상, 정체성 혼란, 사회적 소외 등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로캉탱이 느끼는 구토는 단순히 사물에 대한 혐오가 아닌, 자신의 삶과 존재에 대한 괴리감이다. 현대 독자들은 이 감정에 깊이 공감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존재에 대한 자각과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구토》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은 존재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가?” “정말로 자유로운가?” 이는 오늘날의 자기계발이나 마음챙김 담론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으로, 삶의 진정한 주체로서 서기 위한 철학적 출발점을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