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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에 즈음하여
일러두기 제1부 역주자 서문 국가 고시(Civil Service Examination System) 역사로서의 『과시등록(課試謄錄)』 제2부 번역 및 주해 갑술년(1634, 인조 12) 병자년(1636, 인조 14) 무인년(1638, 인조 16) 기묘년(1639, 인조 17) 경진년(1640, 인조 18) 신사년(1641, 인조 19) 임오년(1642, 인조 20) 계미년(1643, 인조 21) 갑신년(1644, 인조 22) 을유년(1645, 인조 23) 병술년(1646, 인조 24) 정해년(1647, 인조 25) 무자년(1648, 인조 26) 기축년(1649, 인조 27) 제3부 『과시등록(課試謄錄)』 정서본 제4부 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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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1634, 인조 12) 11월 27일
예조의 관문(關文)에 ‘이번에 계하하신 예조의 계목(啓目)에 대하여 이달 10일 주강(晝講) 시에 상이 이르기를 ‘근래 사우(師友)의 가르침이 모조리 폐하여졌다. 예부에서 학교(學校)와 권장(勸獎)의 일을 주관하니 법에 따라 행하라. 교관(敎官)이 동몽(童蒙)을 가르치는 것은 착실히 행해지는가?’ 하고, 신 이홍주(李弘胄)가 아뢰기를 ‘동몽을 가르치는 규례는 법에 따라 행하고 있지만 『소학(小學)』을 강하고 익히는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진실로 한심한 일입니다. 입학(入學) 후 고강(考講)할 때에는 으레 『소학』과 사서(四書) 등을 강하는데 이 일을 근래에 오래도록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특별히 더욱 신칙하여 권장하는 도리를 회복하게 하라. 비록 법전에서 언급되지 않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나에게 물어 행하라.’고 하시었습니다. 이번은 진실로 사람들을 진작시키고 교화를 흥기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신들은 법전을 살피고 여러 의견을 참고하여 행해야 할 조목(條目)을 마련하고 이를 뒤에 열거하였습니다. 심상스럽게 여기지 마시고 이에 따라 시행하여 바뀌지 말도록 중외(中外)에 공문을 보내 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p.27 기묘년(1639, 인조 17) 1월 4일 제주 목사(濟州牧使) 심연(沈演)이 아뢰기를 ‘본주(本州)에서 문풍(文風)이 진작되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는 하늘이 내린 재능에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국가에서 인재를 배양하는 방법이 미진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육지의 주목(州牧)에는 모두 제독(提督)과 교수(敎授)가 있으나 본주에는 없으니 조정에서 본주를 바라보는 것이 진실로 경중(輕重)의 차이가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인심은 오직 과거(科擧)를 중시여겨서 조정에서도 반드시 이로써 진작시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비록 양계(兩界)의 극변(極邊)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남북으로 나누어 시소(試所)를 설치하여 시취(試取)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주에는 단지 무과 몇 명만 섬 안에서 나누어 시취하고, 그 밖의 사자(士子)들은 전라도에 설치된 시소(試所)에 합하고 있는데, 본주 사자들의 힘으로 저 멀고 험한 바다길을 건너 호령(湖嶺)에서 응시하고 있는 것은 형편상 매우 어렵습니다. --- p.39 신사년(1641, 인조 19) 6월 14일 예조에서 아뢰기를 “공도회(公都會)는 비록 이미 정지되었다고 하지만, 소학고강(小學考講)은 이전대로 시취(試取)해야 합니다. 시관(試官) 3명을 해당조로 하여금 차출하게 하고, 외방(外方)도 함께 시행하도록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 p.78~79 병술년(1646, 인조 24) 1월 6일 성균관 첩정(牒呈)에 ‘이번 을유년(1644, 인조 22) 승보시(陞補試)에서 입격한 사람 가운데 성적이 우수한 10명을 성명과 그들이 응시하기를 원하는 시험을 아울러 첩정에 후록(後錄)합니다. 10분을 받은 유학 강만석(姜萬石)은 생원시를, 9분을 받은 유학 안탁(安琢)은 진사시를, 8분을 받은 유학 유면(柳冕)은 진사시를, 7분을 받은 유학 정표(鄭杓)는 진사시를, 7분을 받은 유학 한세장(韓世章)은 진사시를, 6분을 받은 유학 김경(金鏡)은 진사시를, 6분을 받은 유학 윤이건(尹以乾)은 진사시를, 6분을 받은 유학 이상덕(李尙德)은 진사시를, 6분을 받은 유학 박안의(朴安義)는 진사시를, 5분을 받은 유학 유서(柳瑞)는 진사시를 원합니다.’ 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조의 계목(啓目)에 ‘계하하신 첩정을 첨부하였습니다. 지난 을유년 승보시에서 입격한 사람 가운데 성적이 우수한 유생 10명에게 이전의 규례에 따라 감시 복시에 곧바로 응시할 자격을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윤허하였다. --- p.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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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베트남의 전통 사회에서 실시된 과거제도는 서양의 근대 사회에서 국가 고시(Civil Service Examination System)가 출현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이후 중국을 방문한 서양의 선교사들은 과거제도를 자국에 소개하는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였고, 19세기에 들어서는 과거제도와 같은 국가 고시를 서양 사회에서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식인 사이에 등장하였다. 어쩌면, 한·중·월의 과거제도는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불리는 근대 시기에 동양의 문물이 역으로 서양에 영향을 미친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과시등록(課試謄錄)』은 한·중·월의 과거제도 가운데 한국의 과거제도가 가진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중국 수대(隋代)에 출현한 과거제도는 이후 중국 사회는 물론 한국과 베트남 사회에도 전해져 각 사회의 성격에 맞게 변용되어 운영되었다. 한국의 조선 시대에 실시된 ‘과시(課試)’와 같은 제도는 동시기의 중국 사회와 베트남 사회에서는 일찍이 발달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는 한국 과거제도가 가진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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