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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현존 최대 통일신라 금동불
허형욱
틈새책방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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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

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Ⅰ. 백률사라는 절
Ⅱ. 사진으로 보는 백률사 상의 변화
Ⅲ. 백률사 상의 이름과 약사여래 신앙
Ⅳ. 백률사 상의 조형적 특징과 제작 시기
V. 백률사 상의 제작 방법과 성분

·나가는 말

·용어 해설
·참고 문헌
·주석
·사진 출처

저자 소개 1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논문은 〈한국 고대의 약사여래 신앙과 도상 연구〉이고, 전공 분야는 한국 불교조각사다. 2002년부터 국립박물관에서 학예연구직으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인체로 나타낸 진리의 가르침 ? 불교 조각》, 《박물관의 글쓰기》(이상 공저)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50g | 120*188*8mm
ISBN13
9791188949823

책 속으로

“높이 20~30센티미터 크기의 금동불조차 만들기 어렵고, 한 번의 실수로 실패할 수도 있는데 하물며 사람보다 더 큰 금동불은 어떻겠습니까?”
--- 「들어가는 말」 중에서

“몸체 뒷면에는 주조할 때 만들어진 네모난 구멍이 4개가 뚫려 있는데, 이 중 맨 위쪽의 구멍 옆에 작게 쓰인 ‘栢栗(백률)’이란 붉은색 글씨가 유일한 문자 기록입니다.”
--- 「백률사라는 절」 중에서

“1919년 야스이 세이이쓰가 다시 촬영한 백률사 상의 상반신 사진을 보면 콧수염, 턱수염, 눈썹이 흰색으로 그려졌고, 머리와 노출된 가슴, 손과 발을 제외한 몸 전체는 하얗게 회칠이 됐습니다.”

“백률사 상의 나무 손은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 당시가 아니라 후대에 제작하여 끼워 넣었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다만 손에 약그릇과 같은 물건을 든 형태로 만든 점은 20세기 초 또는 그 이전의 사람들이 이 상을 약사여래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 「사진으로 보는 백률사 상의 변화」 중에서

“정수리에는 여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肉髻)가 봉긋이 솟았고, 머리에는 소라처럼 생긴 곱슬곱슬한 머리칼인 나발(螺髮)이 촘촘히 표현됐습니다. 얼굴은 근엄한 표정을 지은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반쯤 뜬 눈에 눈동자가 새겨졌고, 입가에는 살짝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 「백률사 상의 조형적 특징과 제작 시기」 중에서

“최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백률사 상의 무게를 측정해 보니 535킬로그램이 나왔습니다. 제작 당시에 따로 주조해서 끼웠을 두 손까지 포함하면 애초에는 더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535킬로그램은 통일신라 당시의 도량형으로 얼마였을까요?”

“백률사 상은 전반적으로 주물의 두께도 고르고 나중에 보수한 흔적도 거의 없어서 통일신라 중공식 실랍법의 우수성을 증명해 줍니다. 실제 사람 키와 같은 대형 금동불인데도 많은 수의 틀잡이를 사용한 덕분에 완성도가 높아졌습니다.”

--- 「백률사 상의 제작 방법과 성분」 중에서

출판사 리뷰

· 현존 최대 금동불에 투영된 신라인들의 치유 염원
· 통일신라 최전성기의 막강한 경제력과 주조 기술의 비밀

-흑백 사진 속에 감춰진 불상의 여정

1919년 촬영한 흑백 사진 속 불상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몸 전체가 하얗게 회칠되어 있고, 심지어 콧수염과 턱수염까지 그려져 있었다. 그 이후 어느 시점에 칠은 벗겨졌고, 두 손은 경주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전시되고 있다. 불과 100년 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습도 이토록 지금과 다르다면, 그 10배가 넘는 천 년의 시간 동안 백률사 상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독특하고 정교한 옷차림과 근엄하면서도 따뜻한 미소

양 어깨를 덮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천을 겹쳐 입었다. 가슴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속옷과 띠 매듭, 연속된 U자형 옷 주름 등 통일신라 불상 특유의 정교한 옷차림을 같은 시기 다른 불상과 비교하여 살펴본다. 다소 근엄해 보이지만 입가에는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반듯하고 잘생긴 얼굴에서 만든 이들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통일신라 최전성기의 막강한 자본력과 경이로운 주조 기술

무게 535킬로그램, 높이 179.8센티미터의 금동불을 만들려면 값비싼 구리와 주석, 전문 시설과 설비, 숙련된 장인과 노동력, 이 모두를 뒷받침할 경제력이 한꺼번에 갖춰져야 했다. 중공식 실랍법이라는 주조 방식과 제작할 때 사용한 틀잡이의 위치, 보수 흔적 등을 살펴 통일신라 주조 기술의 수준을 알아본다. 또한 최신 비파괴분석 결과에서 알아낸 주조 성분까지 정리한다.

-1500년 전 신라인들의 절박하고 간절한 치유의 기도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 질병은 생존을 위협하는 무서운 적이었다. 신라인들은 병을 낫게 하고 현세의 고난을 없애 준다는 약사여래에게 의지했고, 그 신앙은 신라 사회 전반에 넓고 깊게 퍼져 있었다. 신라시대의 약사여래 신앙과, 두 손이 없는 백률사 상을 약사여래로 부르는 근거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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