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움직이는 시인, 살아 있는 언어
김신정
사계절 2026.05.29.
베스트
인문/교양 top100 1주
가격
26,000
10 23,400
YES포인트?
1,3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이벤트1

이 분야의 이벤트

이 상품의 태그

카드뉴스로 보는 책

카드뉴스0
카드뉴스1
카드뉴스2
카드뉴스3
카드뉴스4
카드뉴스5
카드뉴스6

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1장 중학 시절과 비밀 노트

첫 시집을 읽다

비밀 노트를 쓰는 사람들
비밀 노트를 쓰다 글쓰기의 스승 옮겨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기 습작 노트-독자에게 가는 길목

날짜와 서명, 그리고 장소
시를 쓰는 ‘오늘’의 기록 평양이라는 장소 경계 너머의 그리움-평양에서 바라본 고국과 고향 낯선 고향 윤동주가 바라본 ‘고향’ 만주

국경을 넘는 여행
윤동주의 연고를 찾아가는 여행 ‘시인윤동주지묘’의 발견 다시, 묘비 앞에서 간도를 떠난 간도 사람

2장 모어의 힘, ‘작은 언어’의 가능성

이방에서 만난 윤동주의 시
낯선 모어의 감각 모어를 잃어버린 아이들 윤동주의 모어

오래된 노트를 읽다
시인의 퇴고 과정을 따라 드러내기와 감추기-시적 형상화의 과정 뜻밖의 시어들-방언, 한자, 외국어

명동의 말, 육진의 말
명동, 낯선 땅의 모어 공동체 육진 방언에 새겨진 월경과 이주의 역사 부드럽고 은근하며 아름다운 명동의 말 고향의 방언과 윤동주 시의 구어 감각

만주의 ‘작은 언어’
만주, 이동을 매개하는 경계지대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 ‘틈새’의 언어 공간 윤동주의 언어 환경 ‘작은 언어’의 가능성-소리 감각과 노래의 힘 음악적 모어의 기억, ‘열린 모어’의 운동

3장 움직이는 시인, 움직이는 언어

신체의 이동, 다시 고국으로
‘새로운 길’ 위에서 연희전문 시절과 기숙사 기숙사에서 아픈 세상-세속과 구원 사이에서 기숙사 밖으로-세상을 향해

이동과 언어
일제 말기의 조선어 시험 두 개의 언어-국어와 모어 움직이는 모어 어떤 조선어로 시를 쓸 것인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모어의 소리 공간
『문우』에 실린 윤동주 시 두 편 활자의 이면, 우리말 소리를 새기다 한자와 방언을 활용한 모어의 소리 공간 연애 없는 연애 시와 ‘순이’ ‘황혼’의 시간, 모어의 권리를 노래하다

4장 시인의 여정, 조응의 글쓰기

생명의 조응, 모어의 약동
한 장의 엽서 “모든 죽어가는 것”에 대한 슬픔과 사랑

출발과 도착 사이의 장소들-시인의 방, 거리, 정거장
백석의 집과 고향 윤동주의 방-‘나’에게로 돌아오는 길 “육첩방은 남의 나라” 기차와 정거장-비장소에서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향하여 ‘고향’이라는 질문

이동과 계절
사계절이 없는 나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 신체의 이동과 계절의 변화 겨울을 살다 봄이 되다

5장 오늘, 시인의 노트를 읽는 사람들

죽은 자와 산 자
감옥의 시간 폭력의 체제, 죽음의 시간 책의 생명, 이야기의 끈 지금, 우리 곁의 윤동주

시비에 새겨진 원고 노트-재일코리안, 윤동주 시비를 세우다
일본에서 만난 ‘코리아의 시인’ 윤동주 동창회와 윤동주 시비 ‘귀향하지 못한’ 조선 유학생과 ‘코리아’의 시인 윤동주 추모 70주기, 노년의 동창생들

영화로 상상하는 윤동주의 교토 시절-손장희와 친구들, 시인의 마지막 장소를 담다
교토에서 찍은 영화 〈타카하라高原〉 처음 만나는 윤동주, 새로 만나는 윤동주 ‘타카하라’라는 장소 상상 속의 만남-윤동주와 교토의 조선인 장소에 새겨진 시간의 지층

사진으로 읽는 간도의 시간-도다 이쿠코의 경계를 넘는 모험
도다 이쿠코와 윤동주 당신은 일제 시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남조선’ 아가씨, 중국에서 조선족을 만나다 변경에서 본 개인과 역사 첫 만남-윤동주의 고향에서 마지막 정착지

연루된 삶, 사랑과 책임의 방법-윤동주 시를 번역하는 사제 이다 이즈미의 이야기
2019년 5월, 뜻밖의 만남 이웃집 조선인 가족과 한국(어) 사랑 사제의 길, 한국 기독교사 연구와 전쟁 책임 선언 윤동주에 대한 사랑과 책임 번역, 사랑의 방식 ‘연루’된 삶 이어지는 이야기들

나오며
감사의 말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Kim Shin Jung,金信貞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 『정지용 문학의 현대성』, 『풍경과 시선』, 『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공저), 『동아시아 기억의 장』(공저) 외 다수

김신정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710g | 152*215*26mm
ISBN13
9791169814447

책 속으로

오래된 노트가 잇는 시와 시인 그리고 독자의 여정
북간도 이주민의 후예였던 윤동주는 짧은 생애 동안 여러 지역을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이동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에 그치지 않았다. 경계를 넘는 이동, 곧 지역과 민족, 국가와 언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여정이었다. 경계를 넘는 이동의 과정은 경계의 안과 밖에서 차이와 긴장, 갈등을 겪는 경험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를 다른 세상과 연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겪은 문화적 경험, 정체성의 상대적인 위치 변화는 시인에게 중요한 창작의 동력을 제공했다. 고향과 고국과 제국의 교차점에서 길을 묻는 윤동주의 시는 그 시대에 그어진 경계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오늘 각자의 자리에서 그의 시를 읽는 독자들의 정체성을 되묻게 하며, 경계 너머에 대한 상상과 모험을 이끌어낸다.
--- p.10

‘시인윤동주지묘’의 발견이 남긴 질문들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1985년이 되어서야 중국 땅에서 일본인이 윤동주의 묘비를 발견한 일은 윤동주의 삶과 정체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라, 윤동주의 삶이 가로질렀던 경계들이 뒤늦게 가시화된 순간이었다. (……) 그의 묘지가 대한민국의 경계 밖, 아니 한반도 바깥에 있다는 것, 그리고 냉전 시대를 거치는 동안 오랜 세월 한국인이 방문할 수 없었던 금기의 장소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생애 내내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했던 그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한국인이 그의 묘지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냉전 체제나 그 상황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렸던 부지런한 일본인 탓이 아니다.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한반도 ‘밖’에 뿌리를 둔 윤동주의 삶-“이역에서 나고” 죽음을 맞이한 그의 삶, 한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이동해야 했던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 p.84~85

낙서와 메모에 담긴 시인의 목소리
1942년 1월 24일, 그가 연희전문에 창씨개명 허가서를 제출하기 5일 전에 쓴 「참회록」에는 그의 복잡한 상황과 번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자필로 쓴 작품 하단에 “도渡”, “증명証明”, “도항渡航”, “항航”, “상급上級, 힘, 생生, 생존生存, 생활生活, 문학文學”, “시詩란? 부지도不知道”, “낙서落書き”, “비애 금물悲哀 禁物”, “시인詩人의 고백告白” 등의 글자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 원고 용지 여백에 윤동주가 끼적거린 낙서에서도 그가 처한 혼란스러운 처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모어인 조선어, 그가 태어나 성장한 지역의 언어인 중국어, 그리고 강력한 지배어인 일본어가 혼재하는 언어 공간은 복잡하고 모호한 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단면일 것이다. 그는 복수의 언어 공간에 걸쳐 있으면서 어떤 하나의 언어 공동체에도 온전히 귀속될 수 없는 모호한 존재였고, 이러한 경계적 위치로 인해 어디서나 이방인으로 존재했다.
--- p.92~93

언어 순수주의 너머, 뜻밖의 시어들
한국 사회에서 윤동주는 일제 말기 ‘모국어’가 위기에 놓였던 시대, ‘모국어’를 수호하고 ‘민족어’ 완성을 위해 노력했던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 그의 우리말 시어에 대한 학계와 평단, 일반 독자들의 평가는 공통적으로 ‘아름다운 우리말’, ‘순정한 모국어’의 이상을 보여준 시인이라는 데 다다른다. 방언과 한자를 지워낸 현대 표준어 판본을 통해 형성된 이 이미지는 실제 자필 원고의 결과 과연 얼마나 일치할까? (모)국어가 ‘순정’하고 ‘순수’하다거나 ‘순화’되었다고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외래적 요소를 배제한 토박이말, 규범적으로 정확한 표준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윤동주의 원고 노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한 단어, 한 문장이 만들어지고 변화하며 소멸하는 과정을 천천히 더듬어가는 동안, 나는 그의 자필 시고에서 우리가 믿어온 ‘순수’라는 개념의 범위에 포함되기 어려운 한자어, 외래어, 외국어와 방언 어휘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 p.134~135

다른 언어와 연결되고 부딪치고 확장되는 ‘열린 모어’의 운동
윤동주 시가 보여주는 모어 음성의 예리함은 무엇보다 만주라는 경계지대에서, 경계를 가로지르는 그의 ‘경계 경험’에서 얻어진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윤동주 시의 모어성은 ‘고립된 모어’가 아니라 다른 언어와 연결되고 부딪치고 확장되는 ‘열린 모어’의 운동에서 비롯된다. 만주의 조선어는 중국어와 일본어, 그 밖의 여러 언어 사이에서 낮고 약한 ‘작은 언어’에 불과했지만, 명동 사람들과 윤동주는 ‘작은 언어’인 그들의 모어를 결코 사적인 언어, 집 ‘안’에서 쓰는 언어로 제한하지 않았다. 그들은 명동의 학교와 교회, 공동체에서 또한 해외 조선인 이민자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위해 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집 ‘밖’의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작은 언어’를 확장해갔다. 윤동주의 시 쓰기도 자신의 모어를 능동적으로 사용하고 움직이며 확장해가는 창조적 행위의 일환이었다.
--- p.186~187

1938년의 「새로운 길」과 1941년의 「새로운 길」
1938년 윤동주의 원고 노트에 적힌 「새로운 길」은 만주에서 경성으로의 물리적 이동과 ‘입학’이라는 시간의 마디 앞에 선 한 청년의 술회에 가까웠다. 1941년 폐간을 알리는 『문우』에 인쇄된 「새로운 길」은 역사의 ‘새로운 시간’ 앞에 선 그 시대 청년들, 어쩌면 모든 이들의 삶의 자세를 생각하게 만든다. 윤동주가 제안하는 ‘새로운 길’은 끊임없는 움직임의 길이자 또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 독자적인 길, 고유한 “나의 길”이다. 전쟁을 향해 치닫는 전체주의적 체제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단 한 사람의 방관자”도 없이 ‘신체제 운동’과 ‘신동아 건설’에 참여할 것을 강조하는 상황 속에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라는 윤동주 시의 과감한 선언은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 그가 말하려는 ‘새로운 길’은 ‘아타라시이あたらしい’나 ‘신新’, ‘싱しん’이 아닌 반드시 ‘새로운’이라는 조선어로 발음되고 표기되는 것이어야 했다.
--- p.242~243

“잃어버린 역사”와 “순이”
이 시[「눈 오는 지도」]에서 윤동주는 “홀홀이”라는 방언 어휘를 활용해, 떠나는 “순이”의 모습과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담아낸다. (……) 여기에 더해 “홀홀이”라는 부사어 앞에 먼저 다가오는 “잃어버린 역사처럼”이라는 비유는 “순이”를 떠나보내는 ‘나’의 상실감을 더욱 짙게 만든다. 은유가 주로 두 개체 사이의 비교를 함축한다면, 직유는 두 개체 사이의 동일시를 산출한다. 「눈 오는 지도」에서는 “잃어버린 역사”와 떠나가는 “순이”가 “홀홀이”를 통해 연결되며, 두 대상이 서로 닮아가는 것이다. 윤동주에게 “순이”는 “잃어버린 역사” 같은 존재로, 또한 “잃어버린 역사”는 떠나가는 “순이”와 같은 막막함을 전하는 존재로 다가왔던 것일까. 「눈 오는 지도」가 전하는 상실감은 이미 “잃어버린” 과거를 향해, 또한 “순이”를 기다리는 미래의 시간을 향해 한없이 뻗어 있다.
--- p.253~254

‘황혼’의 시간, 모어의 권리를 노래하다
시인이 자필로 적은 원고 노트의 흔적은 시어에 새겨진 이동과 접촉의 역사, 그리고 시를 짓는 매 순간 그가 겪었을 고민과 선택의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조선의 변두리말에 기원을 둔 만주국의 소수언어, 식민지 조선의 하층어였던 조선어-모어로 시 쓰기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그는 여러 언어와 문자들(모방언과 타 지역 방언, 표준어와 사투리, 모어와 다른 언어, 한글과 한자), 소리와 의미 사이의 대립과 긴장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조심스레 시어를 선택하고 수정과 대체, 퇴고의 과정을 지속했다. 수백 년 전 고향을 떠나 육진으로, 다시 육진에서 간도로 길을 떠난 말, 그렇게 간도로 모이고 다시 사방으로 흩어진 말의 여정 위에서, 또한 동아시아 옛 제국과 신제국의 언어, 그 밖의 여러 언어들과 부딪치고 스며들면서, 윤동주의 시는 ‘움직이는 모어’의 한순간을 원고 노트에 기록하고 있다. 집을 떠난 말, 길을 떠나는 말에서 시작된 그의 시어는 한 지역, 민족, 국가의 경계 안에 갇히지 않은 언어, 경계를 넘어 이동하며 다른 언어와 부딪치고 벼려진 언어, 그러면서 제국 언어의 위세에 꺾이거나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은 모어의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 p.266

「나무」와 「서시」 사이, 생명을 향한 연대와 위로
「나무」는 『나의 습작기』 맨 마지막 페이지에 낙서처럼 남아 있는 작품이다. 『나의 습작기』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원고지 노트의 네모 칸 안에 한 자 한 자 정갈한 필체로 적혀 있는 반면에, 「나무」는 누런 원고지가 아닌 붉은 기가 도는 빈 페이지에 휘갈기듯 적혀 있다. (……) 「나무」에는 ‘먼저’ 움직이는 나무가, 「서시」에는 “잎새에 이는 바람”이, 그러니까 연약한 생명체를 흔드는 ‘바깥’의 힘이 출현한다. 두 편의 작품 사이에는 약 4년의 시차가 있다. 4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윤동주 시에서 나무의 생명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1937년 봄의 나무가 ‘먼저’ 춤을 추는 활달한 움직임을 보여준다면, 1941년 겨울의 나무는 바람에 움직이는 “잎새” 하나로 축소되어 있다. 시인은 나무 전체가 아니라 작은 부분,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의 연약함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 연약한 생명체에 흐르는 힘을 함께 느낀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는 연약한 생명체를 흔드는 ‘힘’ 앞에 선 괴로움을(“나는 괴로워했다.”), 그리고 조금씩 생명력을 소진해가는 약하디약한 존재들을 향한 너른 사랑을(“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야기한다.
--- p.285~290

윤동주의 (비)장소-기차와 정거장과 거리
윤동주가 그린 ‘기차’와 ‘정거장’, 도시의 ‘거리’는 시인이 수차례 지나치고 머물렀던 경험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근대화와 식민 지배가 만들어낸 새로운 공간 형식이기도 했다. 그가 시 쓰기에 몰두했던 1930년대 중반에서 1940년대 초반은 동아시아 곳곳에 제국의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되고 전쟁이 확대되던 시기였다. 그 가운데서도 철도는 일제의 대륙 침략과 식민 지배를 위한 핵심 수단이었다. 철도가 마련한 연결점과 통로를 따라 제국의 군대와 통치자들, 땅을 잃은 사람들과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했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이처럼 누구나 지나치지만 누구의 것도 아닌 공간, 익명의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머물다 떠나갈 뿐 지속적인 정서적 유대가 형성되지 않는 공간을 ‘비장소non-place’라 불렀다. 윤동주가 그린 ‘기차’, ‘거리’, ‘정거장’은 출발지와 목적지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통과하고 머무르는, 즉 끊임없는 이행과 미결정의 상황을 상징하는 비장소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 p.308

재일코리안, 윤동주 시비를 세우다
시비 건립 과정을 자세히 살피고 취의문을 다시 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코리아의 시인”이라는 문구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 그들이 택한 ‘코리아’라는 이름은 자신들이 겪은 ‘분쟁적 코리아’의 현실과 구체적인 삶의 경험을 환기하는 용어인 동시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안팎의 복잡한 역사 속에 놓였던 윤동주와 그들의 삶을 잇는 연결 고리였다. 윤동주 역시 그 어떤 단일한 이름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생애를 살았기 때문이다.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울퉁불퉁한 이름들을 구불구불 연결하는 명칭이 그들에게는 ‘한국’도 ‘조선’도 아닌 ‘코리아’였던 셈이다. “윤동주는 코리아의 시인”이라는 글귀에는 이처럼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분열된 역사를 넘어서려는 역사적 염원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
--- p.362~363

손장희와 친구들, 시인의 마지막 장소를 영화로 담다
영화 〈타카하라〉는 윤동주가 교토에서 하숙했던 집터의 지명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 ‘교토시 사쿄구 다나카 타카하라초 27번지’. 1944년 3월 31일에 진행된 윤동주의 재판 판결문에 적힌 그의 주소이다. 이 주소에 있었던 그의 하숙집 다케다 아파트는 화재로 사라졌지만 같은 자리에 현재 교토예술대 캠퍼스 건물이 들어섰고 시인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먼 시간을 뛰어넘어 시인과 ‘우리’가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 착안한 손장희와 친구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기’에 머물렀던 사람, 그리고 그가 ‘여기’에 살았던 과거의 시간으로 관심을 확장해나갔다.
--- p.374

도다 이쿠코의 경계를 넘는 모험
『동주의 시절』은 윤동주가 발 딛고 있던 땅의 역사를,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호흡을 느끼게 했다. 짐을 이고 지고 아이를 등에 업고 두만강을 건너 간도로 이주하는 조선 이민의 현장, 화전민과 농민들의 모습, 그리고 청나라 사람의 옷과 머리 모양을 한 조선인들의 모습, 또한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용정에 설치된 간도 총영사관 건물, 일제에게 매수된 마적의 습격으로 초토화된 조선인 마을, 1930년대 후반 일제의 정책으로 시행된 집단 이민의 현장 등을 기록한 사진들은 어느 한 국가, 민족 단위로 말끔히 정리할 수 없이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 간도 조선인 이민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이 책을 만든 도다 이쿠코의 삶과 그녀가 바라보는 윤동주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졌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경계를 넘으며 살아온 그녀의 삶과 작업이 역시 짧은 생애 내내 ‘월경’과 ‘이동’의 삶을 지속했던 윤동주와 그의 시대를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지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 p.408

윤동주 시를 번역하는 사제 이다 이즈미의 이야기
이다 이즈미는 ‘안타까운 희생자’라는 모호한 수사 안에 윤동주를 가두지 않는다. ‘피해자성’을 반복하거나 섣부른 ‘평화’와 ‘화해’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가 먼저 꺼내는 말은 ‘책임’이다. 인터뷰 내내 반복해 강조했던 이 단어는 윤동주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한층 단호해졌다. “윤동주의 죽음에 대해 일본, 일본인, 일본 정부가 책임이 있습니다. 일본이 사죄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엄정하고 명료한 어조였다. 키보드를 두드려 그의 말을 옮겨 적다가 나는 문득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본인으로서 꺼내기 쉽지 않았을 그 한마디의 무게가 묵직하게 전해졌다.
--- p.426

윤동주와 불화하며 윤동주를 기억하기
윤동주를 만날 때 우리는 가끔 시인을 잊은 채 저마다의 영토 안에 박제된 ‘우리만의 윤동주’를 대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윤동주의 독자인 ‘우리’는 이제 윤동주를 만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윤동주와 불화하기’를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불화’란 윤동주를 부정하거나 거부한다는 뜻이 아니라, 교과서와 기념사업, 각종 서사 속에서 완강하게 굳어진 역사적·정치적·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윤동주’와 잠시 거리를 두고, 윤동주의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위치했는지, 그의 글쓰기의 동력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다시 질문하는 일을 가리킨다.

--- p.449~450

출판사 리뷰

윤동주의 원고 노트에 담긴 시와 낙서, 메모와 퇴고의 흔적들,
그 속에 기록된 시와 시인의 여정

민족 시인, 저항 시인, 국민 시인이라는 초상 너머
‘경계에 선 시인’ 윤동주를 만나다

생전에 ‘무명 시인’이었던 윤동주는 오래된 노트들을 세상에 남겼다. 만주 중학 시절이던 1934년 12월 24일, 「초 한 대」라는 시를 처음 적어 넣으며 시작한 첫 번째 원고 노트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와 두 번째 원고 노트 『창』, 끝내 출간의 꿈을 이루지 못한 자필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낱장 원고들에는 그가 일본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시를 쓰고, 고치고, 덧붙이며 한 편 한 편 지어나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트에 남은 치열한 퇴고의 흔적과 성실하게 기록된 창작 일자들은 그가 시를 쓴 정확한 시점, 시인이 머무른 공간의 변화,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세밀하게 시어를 선택하고 교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트 위에 펼쳐지는 전체 창작 과정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 낯익은 ‘순수한 우리말’뿐 아니라 옛말과 방언, 한자와 한자어, 외국어와 외래어로 된 ‘낯선’ 시어들도 발견하게 된다. 노트 곳곳의 여백에는 일본어와 중국어로 쓰인 낙서, 일본어로 된 메모와 인용도 남아 있다.

이처럼 원고 노트에 기록된 복잡다단한 퇴고의 과정과 여러 언어·문자의 흔적은 약 110년 전 만주에서 태어나 80여 년 전 일본에서 짧은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경계를 넘나들었던 시인의 삶의 궤적과 겹쳐진다. 이 책은 윤동주가 고향 만주와 고국 조선, 제국 일본의 교차점에서 한 편 한 편 시를 적어 넣은 원고 노트를 통해 그의 삶과 시가 생동하는 과정을 직접 들여다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시인이 자필로 시를 써나간 원고 노트는 그의 시에 흔적을 남긴 ‘이동’과 ‘월경越境’의 역사, 그리고 시를 짓는 매 순간 그가 겪었을 고민과 선택의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그 시간을 헤아리며 우리는 한국문학의 확고한 ‘정전’으로 자리 잡은 윤동주 시와 그의 서사, 그를 끌어당기는 민족과 국가의 완고한 테두리를 넘어 경계 위에서 “몸으로서 일일히 헤아려” “겨우 몇 줄의 글”(「화원에 꽃이 핀다」)을 써나갔다는 시인의 몸짓과, 노트 위에 적히고 지워지고 고쳐지고 다시 쓰인 시의 역사를 마주한다.

고향 만주와 고국 조선, 제국 일본의
‘틈새’에서 피어난 윤동주의 삶과 시

이역에서 태어난 윤동주가 또 다른 이역에서 생을 마친 때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오늘, 한국 사회에서 윤동주는 “일제 치하 민족의 수난기, 순정한 모국어를 수호한 민족·저항 시인”으로 기억·기념되고 있다. 그런데 언어가 ‘순정’하다거나, ‘순수’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언어가 순정하고 순수하다고 할 때, 우리는 흔히 한자어와 외래어 등 외래적 요소를 배제하고 규범적으로 정확한 표준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막상 윤동주의 원고 노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한 단어, 한 문장이 만들어지고 변화하며 소멸하는 과정을 살피면, 우리가 믿어온 ‘순수’라는 개념의 범위에 포함되기 어려운 한자어, 외래어, 외국어와 방언 어휘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의도적으로 한자를 병기하거나 한자만으로 표기를 하기도 했고, “뽈”, “쩨네레슌[제너레이션]”, “포시슌[포지션]”처럼 영어 단어를 한글로 음차한 단어나 “간즈매통”, “도락구” 등의 일본어 단어, 일본식 한자와 중국식 간체자, 육진과 함경도·평안도·중부 지역의 방언 어휘들을 시에 담아냈다(「별 헤는 밤」의 너무나 익숙한 구절,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의 ‘헤다’도 ‘세다’를 뜻하는 함경도 방언이다). 「참회록」 시고 여백의 여러 언어로 된 “낙서落書き”들(“도항渡航”, “증명証明”, 힘, 생존生存, 문학文學”, “시詩란? 부지도不知道” 등)도 당시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과 ‘도항 증명’이 필요했던 시인의 번민과 복잡한 상황을 드러낸다. 이처럼 원고 노트 속 윤동주 시의 민낯을 응시할 때 마주하는 ‘낯선 언어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윤동주의 삶은 여러 국가, 여러 장소에 걸쳐 있었다. 1917년 옛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이주민의 후예로 태어난 윤동주의 생은 이동의 연속이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중학 시절부터 평양 유학을 떠났다가 간도로 돌아왔고, 이후 다시 고향을 떠나 식민지 조선의 경성으로 향했다. 연희전문 졸업 후에는 식민 본국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와 교토로 다시금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교토에서 체포된 시인은 결국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쳤다. 시인은 오늘날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 일본 열도 곳곳에 자취를 남겼다. 각각의 시간과 장소에서 윤동주는 만주에 온 조선인, 평양에 온 간도 사람, 경성에 온 간도 사람으로 존재했으며, 만주국에서는 ‘선계鮮係’이자 ‘일본 신민’으로 강제되었고, 일본 ‘내지’에서는 ‘외지인’으로 분류되었다.

시인은 매번 발화 위치가 달라지고 장소와 정체성이 어긋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저자는 이처럼 한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으며, 어느 한편의 경계 내부에 속하지 못하고 이편과 저편의 ‘사이’에 위치해왔던 윤동주를 ‘경계에 선 시인’이라 표현한다. 시인의 발화 위치와 고향과의 머나먼 거리를 드러내는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게십니다.”(「별 헤는 밤」), 시인이 “남의 나라” 일본에 머무르고 있음을 가리키는 “육첩방은 남의 나라”(「쉽게 씨워진 시」)와 같은 시구들, 그의 시에 거듭 등장하는 ‘기차’, ‘거리’, ‘정거장’과 같은 ‘이동’의 표상들은 짧은 생애 동안 고향과 타향, 고국과 이국 사이를 오가며 길을 물은 시인의 경험을 체감하게 한다.

봄이 오든 아츰,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시 「사랑스런 추억」 중에서

이제 나는 곧 종시를 박궈야 한다. 하나 내 차에도 신경행, 북경행, 남경행을 달고 싶다. 세계일주행이라고 달고 싶다. 아니 그보다 진정한 내 고향이 있다면 고향행을 달겟다. 다음 도착하여야 할 시대의 정거장이 있다면 더 좋다.
-산문 「종시」 중에서

윤동주의 이동은 비단 물리적 공간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이동은 지역과 민족, 국가,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여정이었다. 저자가 원고 노트의 퇴고 기록을 통해 시인의 언어 환경과 시어에 담긴 역사와 토양, 그리고 시어가 변화하는 과정을 깊이 탐색하는 이유이다. 윤동주는 조선인 이민자들이 북간도에 세운 명동마을에서 나고 자라며 함경북도 끝자락 육진 방언의 한 갈래인 명동의 말을 모어로 익혔다. 또한 이 시기 만주는 현지어인 중국어와 제국의 언어인 일본어가 공존하는 다중언어 공간이기도 했다. 이윽고 윤동주는 고국 조선의 평양과 경성에서 유학하지만, 식민지기 고국은 제국의 국어인 일본어와 식민지의 언어인 조선어가 명확한 위계를 이룬 양층어 체제가 고착되어 있었다.

당시 동아시아는 국제 질서의 격변과 더불어 영어를 비롯한 서양어와 그 사용자의 유입도 늘어나고 있었다. 이렇듯 여러 언어가 공존하는 가운데, 조선어라는 ‘소수언어’를 모어로 사용한 윤동주는 나라와 지역을 이동하며 매번 다른 언어 환경을 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의 시어 역시 다양한 언어·문자와 접촉하고 길항하며 변화를 겪었다. ‘움직이는 시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 있는 언어’의 한순간을 붙잡아 원고 노트에 새겨 넣으며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렇게 완성된 그의 시들은 모어와 다른 언어들, 방언과 표준어, 한글과 한자, 입말과 글말 사이를 오가며 거듭된 조율의 결과였다.

어디로 가야 하느냐 동이 어디냐 서가 어디냐 남이 어디냐 북이 어디냐 아라! 저 별이 번쩍 흐른다. 별똥 떨어진 데가 내가 갈 곳인가 보다. 하면 별똥아! 꼭 떨어저야 할 곳에 떨어저야 한다.
-산문 「별똥 떨어진 데」 중에서

조선어와 조선문학의 위기를 직면한 당대의 문학인들 모두에게 ‘언어’는 절박한 문제였다. 조선어와 조선문학이 소멸해가는 ‘황혼’의 시간, ‘어떤 조선어로, 어떤 조선어 문장으로 시를 쓸 것인가.’ 선배 시인이었던 정지용은 당대의 복잡한 언어 현실을 시적 자양분으로 삼아 시어를 발굴하고 다듬으며 예술성을 추구했고, 백석은 토속어와 방언을 적극 활용하며 고향과 공동체의 문화를 시에 담아내고자 했다. 예비 시인 윤동주도 선배 시인들의 시를 따라 읽고 적으며 자신의 언어를 정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윤동주가 찾은 “새로운 길”이 바로 일상의 어휘와 입말(구어), 방언과 한자(어)의 활용, 자연스러운 운율감 등이 한데 어우러진 ‘쉬운 조선어-모어로 시 쓰기’였다.

조선어와 조선어 문학의 공간이 극히 위축되어 가는 상황에서 윤동주는 가능한 한 많은 조선어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언어, 간도와 조선, 용정과 평양과 경성의 조선인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로 시를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쉬운 시어’라는 외피 아래에는 모어와 국어, 한글과 한자, 표준어와 방언이라는 이질적 언어·문자 사이를 넘나들며 섬세하게 조율해낸 시인의 치열한 고민이 숨어 있다. 그렇게 윤동주는 일제 말기 그가 마주한 삶과 문학, 신앙과 시대, 생명의 문제를 시 속에 새겨 넣었다. 일제 말기 윤동주의 언어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21세기 독자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읽히며 마치 ‘오늘’의 언어처럼 생생하게 와닿을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윤동주와 함께 경계를 넘는 독자들의 모험
오늘, 동아시아의 독자들과 호흡하는 ‘지금-여기’의 윤동주

두 개의 지면, 땅 위地面와 원고 노트 위紙面에서 펼쳐지는 윤동주의 삶과 시의 궤적을 따라 마지막 5장에 이르면, 80여 년 전 멈춰 선 시인의 시간은 오늘, 각자의 자리에서 그의 시를 읽는 ‘우리’의 시간과 연결된다. 우리에게 윤동주는 무엇인가. 8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무명의 시인은 지금 우리 곁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윤동주가 어떤 존재인가를 묻기 위해, 저자는 먼저 윤동주를 기억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질문한다. 윤동주의 독자들은 시인의 생이 그러했듯, 여러 국가와 장소에 걸쳐 있다. 즉, 윤동주를 기억하는 ‘우리’의 범위는 한국인을 넘어 일본인, 재일조선인, 중국 조선족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렇듯 그의 독자들이 한 나라의 국경을 넘어 확대되는 양상은 생애 내내 경계를 넘어 이동했던 시인의 삶에서 연원하며, 한민족 이산의 역사와도 맞닿는다. 그리하여 생전의 시인은 한곳에 정주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을 살았으나, 사후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서 있는 경계선 안쪽에서 시인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윤동주를 오랫동안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으로, 이제는 ‘국민 시인’으로 호명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 한국문학의 ‘정전’으로 기리고 있다.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는 윤동주를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이민과 개척의 역사를 대변하는 ‘고향의 시인’, ‘중국 조선족 시인’, ‘애국 시인’으로 기억한다. 일본에서는 윤동주를 ‘평화의 시인’, ‘화해의 시인’으로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과거사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놓지 않은 채 ‘평화’와 ‘화해’를 논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한편, 윤동주는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되비추는 역사적 표상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윤동주 시의 독자이자 연구자로서 저자는 20여 년간 시인의 자취가 남은 동아시아의 여러 장소들, 서울과 연길, 용정, 도쿄, 교토, 나라, 후쿠오카 등지에서 윤동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시인과 그들의 삶에 대해 듣고 기록해왔다. 그 가운데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생전의 시인과 마찬가지로 지역·국가·민족·언어의 경계를 넘는 모험에 참여하는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윤동주를 기억하며 윤동주와 함께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일본 도시샤대학에 일본 최초의 윤동주 시비를 세운 ‘코리아 동창회’ 사람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고향을 떠나 생계를 위해 식민 종주국 일본으로 이동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대개 재일조선인 2세인 그들은 시비 건립을 비롯하여 윤동주를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 일본 사회 내부의 경계를 넘고, 또한 재일조선인 사회 내부의 경계를 넘었다. 그들이 택한 ‘코리아’라는 이름에는 특정 국가의 이름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재일조선인의 복잡다단한 역사적 경험, 남과 북, 총련과 민단으로 찢긴 그들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강한 염원이 담겨 있다. 한국인 유학생 손장희 감독은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시인의 마지막 장소를 비추는 다큐멘터리 영화 〈타카하라高原〉를 제작했다. 이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윤동주 시의 ‘소리 공간’을 주조해내고, 자료 화면과 인터뷰, 현재 교토의 풍경을 겹쳐놓으며 시인이 머무른 과거의 시공간을 현재와 연결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인천관동갤러리 관장인 도다 이쿠코는 젊은 시절 열혈 역사학도였음에도 ‘일제 시대’라는 말을 몰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한국으로, 다시 중국으로 경계를 넘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윤동주를 만났다. 간도 조선인 이민자들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진들, 묻혀 있는 역사의 흔적을 발굴·소개하며 도다 이쿠코는 자신의 조국 일본의 역사가 드리운 그림자를 마주했다. 일본 성공회 교단의 전쟁 책임 선언과 사죄를 이끌어낸 사제 이다 이즈미는 ‘피해자성’을 반복하거나 섣부른 ‘평화’와 ‘화해’로 귀결되지 않는 ‘책임’을 힘주어 말한다. 윤동주의 시를 한글 원문으로 직접 읽고 일본어로 번역하며 ‘윤동주 알리기’를 계속하는 그의 작업은 점차 우경화하며 전쟁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움직임이 발호하는 일본의 상황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이자, 그 내부의 ‘연루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행위이다.

80여 년 전 시인이 남긴 오래된 노트는 오늘의 독자들을 통해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기념비와 영화, 사진 등의 매체로 다시금 해석·창조되고 있다.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를 매개로 펼쳐지는 이 시대 독자들의 여정은 윤동주 시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복수의 ‘우리’, ‘지금-여기’에 가닿으며 반향을 일으키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는 서로 연결된 여러 겹의 의미를 품게 된다. 즉, 시인이 몸을 움직여 손으로 써 내려간 원고 노트이자, 20여 년에 걸쳐 시인에 관해 읽고 듣고 써온 저자의 기록이며, 또한 시인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의 시를 이어나간 노트인 것이다.

리뷰/한줄평28

리뷰

10.0 리뷰 총점

한줄평

10.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23,400
1 23,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