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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도서관 : 오토 폰 비스마르크
십진분류법으로 보는 통일의 설계자 비스마르크의 모든 것
김현정
구텐베르크 202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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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문화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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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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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연대표

000 총류
100 철학
200 종교
300 사회과학
400 자연과학
500 기술과학
600 예술
700 언어
800 문학
900 역사

비스마르크의 영향력 평가

저자 소개 1

어린 시절부터 ‘나라 밖 이야기’에 끌렸던 그는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세계사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역사 교육에 15년 넘게 몸담으며, 학생들이 역사를 자신들의 삶과 연결해 해석하도록 돕는 참여형 수업을 꾸준히 개발했다. 현재는 저술가이자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역사는 오늘의 언어로 계속 쓰이는 인류의 경험 이라는 신념으로 역사의 오래된 장면을 새로운 질문과 통찰로 불러내는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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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10쪽 | 120*170*20mm
ISBN13
9791199653665

책 속으로

오토 폰 비스마르크. 1815년 4월 1일 프로이센 왕국 알트마르크 쇤하우젠에서 융커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오토 에두아르트 레오폴트 폰 비스마르크. 1862년 9월 프로이센 수상에 임명된 뒤 1871년 통일 독일제국 초대 재상으로 취임하여 1890년 사임까지 약 19년간 재임했다. 별명은 「철혈재상」과 「백색 혁명가」. 1898년 7월 30일 프리드리히스루에서 향년 83세로 사망했다.
--- 「000 총류」 중에서

비스마르크의 정치관을 압축하는 말로 "정치는 가능한 것에 관한 학문이다"(Die Politik ist die Lehre vom Möglichen)가 자주 인용된다. 그는 추상적 이상보다 실현 가능한 조건을 먼저 보았다. 시대가 허락하는 힘의 범위, 군주의 의지, 의회의 한계, 군사력과 외교 관계를 동시에 계산했고, 그 계산을 통해 독일의 통일과 정치, 외교 질서를 설계했다. 후일 '현실정치(Realpolitik)'라는 말로 설명되는 그의 태도는 19세기 후반 유럽 권력정치의 대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 「100 철학 일반」 중에서

비스마르크가 보기에 가톨릭 교회는 새 제국의 통합을 위협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었다. 첫째는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선언된 "교황 무류성" 교리였다. 둘째는 독일 중앙당의 정치 세력화였다. 1871년부터 1878년까지 이어진 문화투쟁은 이 두 위협에 대한 비스마르크의 대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설이었다. 가톨릭 사제 다수가 5월법을 거부했고, 1874년 제국의회 선거에서 중앙당은 91석을 얻어 제국의회 제2당으로 부상했다. 비스마르크의 봉쇄 시도가 가톨릭 정치 세력을 더 강하게 결집시킨 셈이다.
--- 「200 종교 일반」 중에서

비스마르크는 바로 그 공백으로 들어가, 시대가 요구한 답을 자신의 방식으로 만들어 낸 인물이었다. 그가 정치의 전면에 떠오른 19세기 중반 독일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해 낡은 질서를 흔들고, 산업 성장과 함께 시민층과 노동 대중이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며, 전통적 지주 귀족인 융커의 영향력이 서서히 약해지던 시기였다. 그가 만든 정치는 자유주의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그 요구가 끌어올린 독일 통일의 에너지를 프로이센 국가의 방향 안으로 끌어들여 재편한 해법이었다.
--- 「300 사회과학 일반」 중에서

비스마르크가 활동한 19세기 중후반은 근대 자연과학의 기본 구도가 한꺼번에 바뀌던 때였다. 열의 연구는 열역학으로 정리되었고, 전기와 자기는 하나의 전자기학으로 묶였으며, 생물학에서는 진화론, 세포론, 세균론이 잇달아 등장했다. 비스마르크 개인은 자연과학 이론을 논하는 인물이 아니었지만, 그가 이끈 시대의 독일은 국가와 대학, 실험실이 결합한 새로운 과학 강국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1901년 첫 노벨 물리학상은 뮌헨 대학의 뢴트겐에게, 첫 생리의학상은 베링에게, 이듬해 화학상은 베를린 대학의 에밀 피셔에게 돌아갔다.
--- 「400 자연과학 일반」 중에서

비스마르크의 통일 전쟁을 뒷받침한 동력은 1860년대 프로이센이 선점한 군사 기술의 우위였다. 무기 혁신의 핵심은 후장식 소총과 강선포였다. 프로이센군이 확보한 보병과 포병 전력의 우세는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1870~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타국과의 화력 격차를 고스란히 증명했다. 비스마르크는 기술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알았다. 후장식 소총과 강철 후장포, 철도 동원 체계와 참모본부식 작전 운영이 명확한 목적 의식과 결합했을 때, 19세기 유럽의 지도는 다시 그려졌다.
--- 「500 기술과학 일반」 중에서

비스마르크는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자주 시각화된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큰 체구와 두툼한 콧수염, 흰 제식 군복과 뾰족투구는 반복되는 초상과 역사화 속에서 하나의 표준적 외형으로 굳어졌다. 가장 유명한 풍자 만화는 1890년 영국 『펀치』에 실린 존 테니얼의 「Dropping the Pilot」이다. 그가 해임된 직후 발표된 이 그림은 비스마르크를 국가라는 배에서 내려가는 숙련된 도선사로, 갑판 위의 젊은 빌헬름 2세를 그를 내려다보는 자세로 그렸다. 한 시대의 종언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이 작품은 이후 정치 풍자의 고전이 되었다.
--- 「600 예술 일반」 중에서

"시대의 큰 문제는 연설과 다수결로 해결되지 않는다. 철과 피로 결정될 것이다." 1862년 9월 30일,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 총리에 취임한 지 8일째였다. 군제 개편과 군사 예산 증액을 둘러싸고 국왕과 의회가 정면으로 충돌하자, 그는 의회 예산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했다. 이 한 마디는 훗날 그를 따라다닐 별명 '철혈재상'의 핵심 이미지를 형성했다. 자유주의 언론은 그를 강하게 비판했고, '철과 피'라는 두 단어가 그의 정치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 「700 언어」 중에서

『회상록』의 성격은 비스마르크의 자기 변호다. 가장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1862년 9월 30일의 '철혈 연설'이다. 비스마르크는 회고록 1권에서 이 발언을 다시 꺼내며 그것을 "많이 왜곡된" 말로 규정했다. 회고록 속 '철과 피'는 무모한 전쟁 선동의 표어라기보다, 프로이센의 힘과 독일 통일을 하나의 문제로 묶어 해석한 자신의 오래된 논리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자리한다. 그러나 그 표현 자체의 강렬함이 모든 해명을 압도했고, 1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철혈재상'이라는 별명은 비스마르크를 설명하는 대표 표지로 남아 있다.
--- 「800 문학」 중에서

비스마르크는 19세기 후반 유럽의 정치 질서를 바꾼 통일 독일의 설계자이자, 사회보험 제도의 초기 형태를 만든 보수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통일 이후 그는 독일제국 초대 재상으로 재임하며 문화투쟁과 사회주의자 진압법을 통해 가톨릭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을 견제했고, 동시에 질병보험법, 산재보험법, 노령·장애보험법을 통해 사회보험 제도의 초기 형태를 마련했다. 그래서 그는 통일의 설계자, 사회보험의 창시자, 권위주의적 국가 운영자, 강대국 균형 외교가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 「900 역사 일반」 중에서

출판사 리뷰

'철혈'의 신화와 이면
130년간 실체를 덮어버린 비스마르크의 수식어

철혈재상이라는 낙인은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잉태되었다. 1862년 9월 30일, 프로이센 총리 취임 8일째를 맞은 비스마르크는 의회 예산위원회의 비좁은 회의실에 서 있었다. 군 예산 증액안 부결 위기 직전, 준비된 원고 없이 즉흥적인 발언이 터져 나왔다. "시대의 중대한 문제는 연설과 다수결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직 철과 피로 결정될 것이다." 익일 자유주의 언론은 그를 '피의 재상'이라 호명했고, 곧이어 '철혈재상'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후 그는 『회상록』을 통해 발언의 진의를 거듭 해명한다. 1848년 자유주의 의회의 무기력을 꼬집기 위해 발화한 수사라며, 스스로 억울하게 곡해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비서 로타르 부허가 구술을 받아 적은 기록은 1898년 출간되어 향후 130년간 이어질 비스마르크 평전의 기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수많은 변명에도 '철혈' 두 글자는 숱한 이면을 덮어버리는 맹렬한 표식으로 군림했다.

『인물도서관』 비스마르크 편은 철혈이라는 수식어에 가려진 다층적 면모를 지면 위로 직접 끌어올린다. 종교적 회심, 47년에 이르는 결혼 생활, 폭발적인 식욕과 만성 위장병, 슈베닝거 박사의 엄격한 식이요법, 괴테와 셰익스피어와 하이네를 곁에 둔 독서광의 행보, 사임 후 8년에 걸쳐 구술한 회상록의 기록들이 낱낱이 불려 나온다. 책은 이 이질적인 요소들을 나란히 병치하며 대상을 동시대 맥락 안에서 다시 해부한다. 십진분류법의 열 개 영역은 이러한 서술의 뼈대를 이룬다.

19세기 유럽을 투영하는
모순의 정치인, 비스마르크

19세기 후반 유럽은 다종다양한 에너지가 충돌하며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빈 체제의 보수 질서는 내부로부터 균열을 일으켰고,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결속은 낡은 체제를 붕괴 직전으로 몰아붙였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전은 노동 계급을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탈바꿈시켰다. 동시대 자연과학은 다윈, 코흐, 멘델레예프, 헬름홀츠, 뢴트겐을 필두로 근대 학문의 진용을 갖췄으며, 화학공업과 철도, 전신은 사회 작동 원리를 근본부터 개편했다. 이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던 비스마르크는 소속된 보수 융커 계층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동시에, 새로이 부상하는 시대적 흐름을 국가 운영 체계 내부로 흡수했다.

정치는 태생부터 모순의 형태로 구동되었다. 무력으로 제국 통일을 쟁취한 정치가가 통일 직후 19년에 걸쳐 유럽 대륙의 세력 균형을 치밀하게 조율했다. 체제 밖의 사회주의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한편, 1883년부터 사회보험 3법을 차례로 통과시키며 인류 최초의 강제 사회보험 체계를 구축했다. 가톨릭 세력을 향한 문화투쟁의 칼날을 세우다가도, 1880년대 들어 교황 레오 13세와의 타협을 끌어내며 정책의 단계적 후퇴를 모색했다. 1866년 오스트리아를 굴복시킨 직후 영토 병합을 포기한 차가운 절제, 1870년 보불전쟁 승리 이후 강대국들이 뭉치지 못하도록 직조해 낸 복잡다단한 동맹 구조. 이는 평생을 지배한 '현실정치' 사고의 냉철한 발현을 입증한다.

모순은 정치의 영역을 거쳐 신체와 심연의 자아까지 파고들었다. 굳건한 결단가의 외피 밑바닥에는 쉼 없이 번뇌하는 자아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1866년 보오전쟁 직전의 봄날, 확신을 얻지 못한 채 며칠 밤낮을 베를린 집무실에 칩거했다. 1870년 7월, 위경련으로 관저 침대에 쓰러진 상태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 엠스 전보의 문구 일부를 교열했다. 미세한 내용의 수정이 보불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폭발적인 식욕과 만성 위장병, 불면의 고통을 짊어진 권력자는 정작 본인의 신체를 제어하지 못한 채 시대를 호령했다. 단호함과 망설임, 결단과 숙고, 종교적 신앙과 정치적 계산이 온전히 공존했다. 대상이 품은 모순은 동시대 유럽이 앓고 있던 모순을 체화하며 당대의 양상을 고스란히 증언한다.

십진분류법의 방법론으로
인물이라는 도서관을 읽다

전기물은 통상 생애를 연대기순으로 나열하거나 정치사·사상사·심리사 등 특정 분야의 프레임으로 가공한다. 『인물도서관』 시리즈는 인물의 삶을 장서가 꽂힌 도서관에 비유하며 대안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한국십진분류법의 열 개 영역(000 총류~900 역사)을 뼈대 삼아 생애를 직조하며, 연대기적 서술을 배제하고 분류 체계 자체가 서사를 이끌어간다.

시대의 복합성을 온몸으로 흡수한 비스마르크를 다룰 때 이 방법론은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며, 분류 기호를 넘나드는 내내 대상의 이질적인 얼굴을 거침없이 교차시킨다. 정치인과 신앙인, 외교가와 폭식가, 제국을 기획한 권력자와 의사의 처방에 순응한 환자가 꼬리를 물고 등장해 서로의 영역을 쉴 새 없이 침범한다. 대상을 뿔뿔이 흩어버릴 듯한 해체 작업은 도리어 갈라진 조각들을 생동하는 인격체로 맞붙이고, 활자 밑바닥에 숨 쉬고 있던 짙은 체취를 감각적으로 복원해 낸다.

비스마르크가
21세기의 우리에게 남긴 것

비스마르크가 구축한 외교 체제는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직후 빠르게 붕괴했다. 1890년 빌헬름 2세 치하의 카프리비 내각은 러시아와의 재보장조약 갱신을 거부했다. 이 결정은 러시아와 프랑스의 밀착을 초래했고, 1894년 러프동맹, 1904년 영프협상, 1907년 영러협정을 거치며 '삼국협상' 체제를 낳았다. 평생토록 기피했던 양면 전쟁의 포위망은 세력 균형이 파열되는 틈을 타 새롭게 직조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은 이 급격한 외교 지형의 변화에 기인한다. 제국의 외교망이 설계자의 개인기에 철저히 의존했음을 방증하는 징후로 해석된다.

반면 그가 입안한 사회보험 제도는 제1차 세계대전,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치하, 전후 독일연방공화국의 격변을 거치며 끈질기게 생존했다. 질병보험법(1883), 산재보험법(1884), 노령·장애보험법(1889)으로 완성된 사회보험 3법은 '비스마르크형 사회보험 모델'로 명명되며 OECD 사회보장 분류의 표준으로 확립되었다. 1922년 일본의 건강보험법을 거쳐, 1977년 의료보험과 2000년 국민건강보험으로 이어지는 한국 복지 제도의 간접적 계보 역시 이 체계에 빚을 지고 있다. 체제 전복 세력을 봉쇄하려던 정치적 술수가 기획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현대 복지국가의 뼈대를 형성했다. '현실정치', '철혈', '정직한 중개인', '영원한 적도 동맹도 없다'는 수사 역시 21세기 외교사 및 국제관계학의 핵심 용어로 생명력을 유지한다. 고안된 제도와 언어는 초기의 목적을 이탈해 150년의 시간을 뚫고 살아남았다.

유산의 양가성은 대상을 끊임없이 복기해야 할 당위성을 부여한다. 제국 통일의 기획자이자 사회보험의 창시자는, 권위주의적 통치와 시민권 억압의 주동자라는 굴레를 나란히 짊어진다. 1918년 이후 불붙은 독일 특수경로 논쟁, 1980년 로타르 갈의 평전 『백색 혁명가』, 21세기에 속출하는 재해석 작업은 인물에 대한 평가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유동적으로 변전함을 증명한다. 당대의 모순을 고스란히 껴안은 인격이기에 평가 잣대 또한 고정될 수 없다. 『인물도서관』 비스마르크 편은 이 끝없이 파생되는 담론을 독자 앞에 생생하게 펼쳐낸다. 십진분류법의 촘촘한 그물망으로 대상을 건져 올리는 행위는, 권력과 제도의 본질이 현대 사회에 남긴 묵직한 과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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