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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로 말린 구루메
쓰키지시장의 노상 라멘 마루노우치의 엔터프라이즈 꿈의 낫토밥 벤치에서 대기하는 쓰케모노 비프스테이크 위원회 가끔은 프랑스 가이세키 자이언트 VS 딤섬 껌을 주는 요리점 피부를 찌르는 구루메 굴전골에는 야쿠자를 빼놓을 수 없지 가나자와 미식 공화국 복어에 게까지 북극을 도는 기내식 아사쿠사에 풍기는 사쿠라 고기로구나 회전초밥의 겐로쿠 우주 산나물 인류학 타코야키의 과학 경건한 모리소바 구사야균의 기적 먼 곳을 바라보게 되는 차 해설 · 아카세가와 겐페이 씨와 음식 이야기 |
Genpei Akasegawa,あかせがわ げんぺい,赤瀨川 原平,필명 : 오쓰지 가쓰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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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루메를 좋아한다. 특히 통째로 말린 구루메를 좋아한다. 씹으면 식감이 살짝 딱딱하고 오돌오돌하면서 독특한 쓴맛이 느껴진다. 그러던 게 씹을수록 부드러워지면서 단맛이 감돈다. 단맛이라고 했지만, 설탕의 맛이 아니다. 시금치를 데친 듯한 맛인데 입안 점막에 저항하는 듯하면서도 잘 섞인다고 할까. 가령 중화요리의 삭힌 오리알인 피탄과 맛이 좀 비슷하다.
--- p.13, 본문「통째로 말린 구루메」에서 그릇 안에서 잘 섞인 낫토를 드디어 내 밥그릇에 옮겨 담으면 여기에서부터 이 식품의 성가신 기질이 드러난다. 섞을 때부터 이미 낫토의 실이 살짝 손끝에 묻어 끈적거리고 밥 위에 담을 때도 그릇 테두리에서부터 실이 늘어져 끈적거린다. 게다가 그것을 입으로 집어넣을 때도 입술 주변이 끈적거린다. 그걸 말끔하게 닦아내기가 아주 힘들다. 아무리 닦아도 끈적거린다. 그래서 급할 때는 먹기 힘들다. 특히 관리 사회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결벽형 인간은 일개 식품인 주제에 주변이 어떻게 되든 아랑곳 하지 않고 끈적거리게 만드는 그 성질을 참을 수 없다. --- p.55, 본문「꿈의 낫토밥」에서 여기에서 가이세키요리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 미학의 정점이다. 그 미학이 요리에까지 파고들었다는 점이 대단하다. 요리에 ‘여백’이 도입되어 식탁 위에 있는 그릇 안이 대부분 비어 있다. 정식 가이세키요리 풀코스를 전부 모으면 겨우 밥그릇 하나 채울 정도의 양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일본의 식생활도 서구화되어 나는 정식 가이세키요리는 먹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종전 직후는 가정요리가 늘 가이세키요리의 연속이었다. 커다란 그릇에 쓰쿠다니가 조금, 쓰케모노가 아주 조금 담겨 나왔고, 흰밥도 밥그릇 바닥에 아주 조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식탁에는 공허함이 가득했다. 근데 그건 가이세키요리라기보다는 수행을 위한 요리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 p.90-91, 본문「가끔은 프랑스 가이세키」에서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한국 요리는 맛있다. 야키니쿠는 물론이고 비빔밥, 곰탕, 국밥, 나물, 찌개, 김치 등 다 맛있다. 이 김치가 아무래도 일본에는 없는 발명품으로 여름에 제격이다. 너무 더워서 식욕이 없으면 몸이 약해진다. 이러면 안 된다고 머리로 생각하며 야키니쿠를 먹을 때 김치를 조금 먹으면 식욕이 완전히 돌아와 머리는 고사하고 위장이 달려들어 야키니쿠를 먹어 버리니 거의 여름의 필수품이다. 한국 가정에서는 이 김치를 만들 때 배추 속으로 일본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다양한 재료를 넣는다고 한다. 그래서 익으면 경이로운 맛이 된다고 하니 이런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부럽다. --- p.117, 본문「껌을 주는 요리점」에서 옛날에 복어회를 처음 먹었을 때 예의 바르게 이 얇은 살을 한 장만 떠서 폰즈에 찍어 먹었다. 그런데 동석한 선배가 젓가락 끝으로 서너 장을 한꺼번에 떠서 폰즈에 찍어 먹어 깜짝 놀랐다. 그렇구나, 이렇게 먹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방식으로 먹어도 되는 듯했다. 그렇지만 역시 한 번에 서너 장을 아무렇지 않게 집기에는 무언가 버릇이 없다고 할까, 조금 더 겸허했으면 좋겠다. 즉 조심성 있게 젓가락 끝으로 겸허하게 한 장만 뜨려다가 우연히 옆에 있던 두세 장이 딸려 와서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먹어야겠다는 분위기를 풍기며 폰즈에 찍어 입으로 직진. 이게 복어회를 먹는 방법으로는 흠 잡을 데 없다고 생각한다. --- p.170-171, 본문「복어에 게까지」에서 어딘가에서 사쿠라 고기로 연결되겠지 싶어 계속 썼는데 좀처럼 연결되지 않고 꽃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다. 옛날에는 꽃구경을 하면서 말고기 회를 먹으며 한잔 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논리가 없는 편이 낫다. 말고기는 분명 사쿠라 고기라고 불린다. 벚꽃 구경이라고 해서 말고기 회를 먹자는 논리로 생각한 조합이다. 그렇게 무슨 일이든 조잡한 논리로 정리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음울하기 그지없다. 이건 이제 한물 간 논리의 시대 속으로 던져 버려도 되지 않을까? --- p.194-195, 본문「아사쿠사에 풍기는 사쿠라 고기로구나」에서 그런데 도대체 스시를 얼마나 많이 봤을까? 눈앞에서 끊임없이 흘러가는 색색의 스시를 오로지 먹고 말겠다는 집념 가득한 눈으로 하나하나 바라보게 되는데 너무 우유부단하게 바라보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온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한 번 본 듯한 스시가 다시 한번 눈앞을 지나간다. 같은 참치여도 잘 보면 개성이 있다. 40억 인류의 지문이 전부 다르듯이, 스시의 표정도 전부 다르다. 참치의 단면, 밥알이 배열된 모습, 그 둘이 엇갈린 방법, 접시 위의 위치 등이 무의식적으로 뇌리에 박히니 “아, 저거 또 왔네.” 하는 식으로 고유의 스시와 아는 사이가 된다. 그러면 그걸 차마 덥석 집어 먹지 못하고 “망설이지 말고 다시 돌아와.” 하고 뒷모습을 배웅한다. --- p.206-207, 본문「회전초밥의 겐로쿠 우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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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에 쓰케모노, 소바에 낫토, 김치에 야키니쿠…
입안의 점막과 혀끝이 기억하는 일상의 맛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을 틀어도 동영상 매체를 보아도 SNS를 열어도 온갖 맛있는 음식과 그것을 즐기는 모습이 일상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마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듯이 수많은 음식이 생겨났다 사라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그러한 유행을 타는 구루메들과는 거리가 멀다. 책 속에서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예찬하는 최고의 맛은 화려하고 값비싼 고급 요리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으면서 없으면 왠지 허전한 그런 음식들이다. 종교로까지 칭송하는 하얗게 부풀어 오른 통통한 쌀밥, 그리고 그 맛을 한껏 추켜 세워주는 일본식 채소절임 쓰케모노, 주변을 온통 끈적거리게 만들어도 가쓰오부시를 듬뿍 넘어 휘휘 저어 먹는 낫토, 메밀의 풍미가 그대로 느껴지는 소바, 식사 후 저절로 먼 곳을 바라보며 마시게 되는 진한 녹차 한 잔. 여기에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한국의 음식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다. 감기에 걸리면 반드시 한국식 고기구이인 야키니쿠를 먹으며 기운을 차린다. 또 김치를 두고는 일본에는 없는 발명품이라면서 경이로운 맛이라고 한껏 칭송한다. 이처럼 지은이는 우리 삶의 점막과 혀끝이 기억하는 진짜 물리적 맛들을 좇아 진정한 맛은 호화로운 것이 아닌 우리 식탁 위에 늘 올라와 없으면 허전한 일상의 음식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들려주는 생생한 음식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오늘도 무심코 먹은 소박한 음식이 문득 그리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디로 튈지 몰라 예측 불가능한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맛있는 화법 이 책은 첫 장부터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구루메 현상이 만연한 세상을 비꼬기 위해 남미 고지대 계곡에 살며 통째로 말려 먹는 가상의 포유류 ‘구루메 잠파리오’라는 기상천외한 존재를 창조해내 현대인들의 허영심을 아주 능청스럽고 유쾌하게 비튼다. 이뿐만이 아니다. 회전스시의 원조인 겐로쿠스시에 찾아가서는 우주로까지 사고가 뻗어나가며 메인 회전 라인에서 서브 회전 라인으로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또한 굴전골을 먹기 위한 조건으로는 야쿠자까지 등장한다.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사고는 절대로 똑바로 가는 법이 없다. 마치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나아가듯이 꼬고 또 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면서도 가야 할 곳에 제대로 착지한다는 게 신기하다. 단순히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행위’를 넘어 익숙하다 못해 지루해진 외식 산업 그리고 우리네의 밥상 풍경을 전혀 새로운 예술적 탐험지로 탈바꿈시키는 이 책은 맛있는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분 좋게 배반한다. 길거리에서 예술을 뛰어넘은 초예술을 발견했듯이, 음식에서 고급 요리의 맛있음을 뛰어넘는 일상의 초맛있음을 발견해 가는 아카세가와 겐페이 월드에 푹 빠질 수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