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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Pe′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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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쁘게 생각하는 건 이런 것들이다. 원하는 대로 올라가는 차단기, 녹색 불로 바뀌는 신호등, 내 생각을 한다며 전화하는 친구, 자연스럽게 한 몸이 되어 잠든 두 개의 몸 등, 삶의 모든 사소한 기적들.
--- p.14 커피잔을 카운터에 올려놓을 때 나던 쨍 하는 맑고도 단호한 소리 때문이었는지, 내 몸에 퍼진 카페인의 효과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새로운 힘이 몸에 퍼지는 걸 느꼈다.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기쁨이 내 안에 퍼지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을 정도였다. --- pp.22-23 우리는 관 앞에 모여 있었고 모든 과정이 나무랄 데 없이 흘러갔다. 통유리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주철로 된 관의 손잡이 부분에 내려앉아 빛나고 있었다. 추도사를 들으며 모두들 과거로 훌쩍 날아갔다. 미리 생각해 둔 소개의 말들이 식을 잘 이끌어주는 것 같아 기쁜 심정이었다. --- p.60 내가 총을 손에 쥐었을 때 주위가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내 안의 뭔가가 어두워진 걸까? 아니면 하늘이 어두워진 걸까? 내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서 레두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걸까? (중략) 나는 소동을 잠재우려고 방아쇠를 당겼고, 이제 더 이상 고요함은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 p.74 나는 후회하고 있었을까? 물론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사태가 다른 식으로 흘러갔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내 관심 밖이었다. 후회한들 뭐가 바뀐단 말인가? --- p.116 “바로 이러한 수용, 거의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볼 수 있는 그 태도야말로 가장 용납할 수 없는 겁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어쩌면 폭력보다 더 위험한 겁니다. 사회와 질서, 시민의 평화에 한없는 위협을 가하는 일종의 협박이라고 도 볼 수 있습니다. 폭력에 대해서는 맞설 수 있고, 통제할 수 있고, 막으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141 레온은 미치지 않았지만 미친 것처럼 연기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미친 것과 미친 듯 연기하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뚜렷한가 ? 남자든 여자든 성질을 낼 때 항상 어느 정도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닌가? 질투로 고통받을 때, 눈물과 경련을 일으키며 소리를 지를 때는 어떤가? --- p.177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느냐고, 내가 말했던 그것을 한 단어로 부를 수 있느냐고 그가 내게 묻는다. 뱃속으로부터, 목구멍으로부터 차오르는, 가끔은 내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솟아오르는 그것에 대해서. 기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게 떠오른 단어는 그것이다. --- p.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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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행복 대신
찰나의 기쁨에 바치는 철학자의 찬가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철학자, 샤를 페팽 20세기의 《이방인》을 21세기에 되살려내다! 어디에선가 들어본 이야기 같을 것이다. 어머니가 위독한 상황에서도 기이할 만큼 담담하게 체념한 채, 삶의 달콤한 면만을 바라보려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그는 어머니가 죽음을 맞은 슬픔 속에서도 애인과 밤을 보내고, 장례식에 내리쬐는 햇볕을 음미하며,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 달걀을 깨는 행위에서 기쁨을 느낀다. 그의 이런 단순한 면은 한 아랍인의 공격을 받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자 권총을 빼앗은 주인공은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서’ 자신을 공격했던 아랍인을 향해 여러 방 쏜다. 그 사건으로 그는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 갇힌다. 하지만 인생의 작은 기쁨들을 알고 있는 그는 슬픔이나 우울함에 빠지지 않는다. 얼핏 보기에 늘 기쁨에 차 있는 상태가 바람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불행이나 슬픔의 감정이 배제된 듯 보이는 그는 오히려 이 사회에서 무척이나 전복적이며 위험한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한눈에 알아차렸겠지만, 이 소설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름을 직접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작가는 《이방인》의 플롯을 가져와 재해석한다. 샤를 페팽은 카뮈의 작품이 다양한 해석의 재료가 된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카뮈의 작품이 우리 모두가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오래된 신화라도 되는 듯이. 기쁨은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솟아나는 것 행복과 기쁨은 어떻게 다를까? 작가는 행복이란 고요한 만족감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상태라고 본다. 반면에 기쁨은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성과가 좋지 않아 불만족스러운 상태에서도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길을 가다가 서서 마시는 커피 한 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좋아하는 노래, 그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 주인공 솔라로는 현재에 집중하는 인물이고 단지 자신이 존재한다는 기쁨에 만족하며 보도블럭 틈에 자란 한 송이 꽃에도 기분이 좋아지고,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의 움직임에, 그리고 바에 서서 마시는 커피 한 잔에 기쁨이 솟는다. 그는 재정 상황으로 보면 절망해야 마땅하지만 어쨌든 기꺼이 이를 감당하려고 하고, 애인인 루이즈와 미래에 대한 기약 없이 육체적인 기쁨에 빠져들고, 죽어가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 병원에 들른다. 그러나 우연찮게 흥분 상태에서 일어난 난동에 휘말려 마약밀매인 한 명을 죽이고 만다. 사회의 규범에 무감각한 그는 사회에서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고통을 표출하지 않는 아들을 사회는 어떻게 냉혈한으로 몰고 가는가? 철학자인 저자는 현재를 음미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한편, 한계상황에 처한 인물을 역설적인 우화로 보여준다. 이 세계와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하는 철학소설 《기쁨》은 철학적 명제를 담은 철학소설이다. 샤를 페팽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기쁨이라는 것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다. 우선, 미래에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 ‘내가 직업만 바꾼다면, 여자만 있다면……’ 하는 식의 생각을 멈추라는 것이다. 흔히 희망이 우리를 살게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가는 주인공 솔라로의 입을 통해 희망으로 인해 우리가 죽게 된다는 메시지를 들려준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지금, 여기 존재하는 실재이며 현실이다. 우리의 존재가 하나의 기적임을 깨닫고, 지금 살아있다는 것의 기쁨을 음미해야 한다. 기쁨을 새로이 느끼기 위해서는 기쁨이라는 자원을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기쁨은 우리가 누릴수록 점점 더 우리 안에 샘솟는 속성이 있다. 이러한 기쁨은 우리 인간성의 정수를 보여준다. 샤를 페팽은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스토아학파가 지향하던 바를 드러낸다. 흔히 스토아학파를 그저 금욕주의로만 이해하기 쉬운데, 철학자인 샤를 페팽은 그 해석을 조금 달리하는 것 같다. 스토아학파의 주장 가운데 외적인 어느 것에도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없이 주어진 운명을 감수하며, 내적으로 자유롭고 명랑하고 조용하고 경건하게 죽음의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태도 부분이 주인공 솔라로의 특징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솔라로를 가벼운 얼간이로 치부할 수도 있고 그의 이야기와 자신은 관계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의사들이 등장하거나 과학의 틀로 솔라로의 케이스를 연구하는 장면에서 절망적인 우스꽝스러움이 표현된다. 어머니를 담당하는 의사, 정신과 의사, 상담가, 간호사…… 과학은 어떤 이유로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그의 생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쓰는가? 우리는 아무 대답에도 이르지 못한다. 작품은 유려하게 흐르고 어떤 철학 사상을 가르치려고 직접 인용하지 않는다. 샤를 페팽은 자신이 탐색해온 바를 작품에 자연스레 녹여냈고 이를 통해 독자는 이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페펭은 이런 질문에 철학자다운 답을 내린다. 삶은 지금 여기에서 순간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내는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