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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Aude Mu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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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처음에는 컴퍼스로 했어요. 5학년 때였죠. 팔에 선을 그렸어요. 친구와 경쟁을 했거든요. 피가 나게 하려고요. 그리고 서로 피를 섞자고 했죠. 피를 나눈 의자매 말이에요.”
마르고는 마치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 친구는 지금도 만나니?” “아니요, 죽었어요.” 소뵈르의 표정을 본 마르고가 다시 이죽거렸다. “아, 농담이에요. 이사 갔어요.” --- p.17, 「소뵈르 박사의 상담 일지」 중에서 “뭐가 불가능하지?” “여자아이가 아니게 되는 거요.” “여자아이가 아니었으면 한다는 거로구나.” “남자아이가 되는 게 낫지 않아요?” 엘라는 확인을 기다리듯이 소뵈르를 바라보았다. “남자아이가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상상 속에서 전 남자아이가 돼요.” --- p.37 「소뵈르 박사의 상담 일지」 중에서 일요일 저녁, 소뵈르는 가뱅이 노트북을 껐는지 확인하고 돌아와 협탁 서랍을 열어 크라프트 봉투에서 결혼식 사진을 꺼냈다. 가끔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언젠가 라자르가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에 그럴 수가 없었다. 라자르가 사진을 보고도 에블린에 대한 질문 말고는 통 말이 없어 놀라긴 했다. 뒤틀린 몸으로 전동 휠체어에 앉은 불행한 젊은 여성, 술 때문에 망가진 신부 아버지의 얼굴, 다운증후군 화동, 사진에서 사라지고 싶어 하는 알비노 청년을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 p.200, 「소뵈르 박사의 상담 일지」 중에서 “복잡하네요.” “삶이?” “사람들이요.” “너는 복잡하지 않고, 엘라-엘리오트?” “복잡하지요. 하지만 도와주실 거잖아요.” “네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한.” 엘라가 다시 책을 꼭 안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오면 정말 편해요. 정말 제가 될 수 있어요.” --- p.214, 「소뵈르 박사의 상담 일지」 중에서 “여기서는…….” 엘라가 한 마디 한 마디를 힘겹게 뱉어 냈다. “여기서는요…… 혹시…… 여기서만이라도…… 저를 엘리오트라고 불러 주실 수 있나요?” 아이의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요청을 수락하는 것은 성별정체성을 바꾸고 싶어 하는 아이의 환상을 부추기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마. 다음 월요일 오후 여섯 시에 볼까?” 엘라는 고개를 들더니 깊은 물속에서 빠져나온 양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네!” 소뵈르는 정문까지 이 사춘기 아이를 배웅했다. 대개는 환자 혼자 복도로 내보냈으니 드문 일이었다. 문고리에 손을 올린 채, 소뵈르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다음 주에 보자, 엘리오트.” --- pp.16-17, 「소뵈르 박사의 주말」 중에서 “엄마 눈에 비단원숭이를 어깨에 얹은 남자가 보인대요.” “플뢰리에서 어머니를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와 얘기해 봤어. 환각 증상을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환각이라는 자각은 있으시대. 그 남자를 보긴 해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계셔.” “어쩌면 존재하는지도 모르죠.” “아니야.” “다른 차원에서라면요?” “아니야.” “전에 어디서 읽었는데, 평행 세계가 여러 개 있대요. 똑같은 세계가 수십억 개나 되는데, 딱 한 가지씩만 다른 거죠. 어쩌면 사람들이 전부 어깨에 비단원숭이를 얹고 다니는 세계가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가뱅, 좀.” 소뵈르가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 pp.34-35, 「소뵈르 박사의 주말」 중에서 “라자, 정말 무서웠겠구나.” 소뵈르가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 힐랄 삼촌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하지만 총을 든 그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었단다. 테러리스트라는 말, 무슨 뜻인지 알겠니?” 아이는 엄마 옆구리에 파고들어, 어쩌면 엄마 배 속으로라도 되돌아가고 싶은 듯했다. 수줍음이 많은 거라고? 아니, 아이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사례를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은 소뵈르는 아이를 도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 pp.117-118, 「소뵈르 박사의 주말」 중에서 “눈치챘겠지만 나도 정상이 아니란다. 여기선 모두가 미쳐 있거든…….” “맞아요, 다들 미쳤어요. 어른들은 더 미쳤죠……. 사실 전 별로 어른이 되고 싶지도 않아요.” “그건 앨리스가 아니라 피터팬인데? 평생 중학교에 다니면서 플루트를 불겠다고?” “아, 제발, 절대 싫어요!” 블랑딘이 질색하며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는 게 제일 낫다는 거야.” “아니면 마르고처럼 하든가요.” “어떻게 한다는 거지?” 아이는 손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하하, 우리 선생님, 겁먹으셨네! 걱정 마세요, 죽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으니까. 전 젤리가 너무 좋거든요.” --- p.271, 「소뵈르 박사의 주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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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학교공포증, 성정체성 혼란, 망상장애, 야뇨증……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쉽게 절망하지 않는 이유 『소뵈르 박사의 상담 일지』에서는 2015년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배경으로 소뵈르가 내담자들을 만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담자 중에는 자해, 학교공포증, 야뇨증, 성정체성 혼란 등 갖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 곁에는 언제나 또다른 문제를 겪고 있는 어른들이 있다. 어른들은 배우자와 다투고 이혼하고 또다른 파트너를 만나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강압적인 훈육, 가스라이팅을 통해 아이를 문제 상황으로 내몬다. 때로는 단지 너무 고단하거나 나약해서, 혹은 그 자신의 정신적 문제 때문에 아이들을 충분히 돌봐줄 수 없는 부모들도 있다. 다양한 내담자들의 사연과 상담 과정이 하나하나 풀려 나가는 동시에, 소뵈르의 집을 어른거리는 수상쩍은 그림자에 대한 미스터리도 다루어진다. 마르티니크에서 부유한 백인 부부의 양자로 자란 소뵈르는 피부색 검은 백인으로 자라는 과정에서 어떤 사연을 갖게 되었을까?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고통스러운 기억은 과연 무엇일까? 어린 라자르는 이 모든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마침내 소뵈르가 마르티니크에 가서 라자르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아들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고 기꺼이 믿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불신과 억압, 배제만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마음을 앓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한 소뵈르 박사의 치료는 계속된다 후속작 『소뵈르 박사의 주말』에서도 상담소는 여전히 성황 중이다. 성정체성 혼란을 겪는 엘라는 정기적으로 상담 중이고 자살 시도를 감행했던 마르고 대신 여동생 블랑딘이 과잉 행동과 주의력 결핍으로 새로운 고객이 된 참이다. 전작에서 로맨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루이즈는 이제 어엿한 여자 친구가 되어 소뵈르와 살림을 합치고 가족이 되는 문제로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새로운 가족을 맺는 일은 소뵈르에게 일종의 과제로 다가온다. 어머니의 조현병으로 무기력한 청소년 가뱅이 소뵈르의 집 다락방에 아예 눌러앉고, 외인부대 출신의 노숙자 조바노비크가 합류하면서 소뵈르의 집은 뜻하지 않게 유사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게 된다. 반려 햄스터의 번식이 그러하듯 새로 맺어진 관계들은 근심과 짜증을 불러일으키지만 반대로 타인 사이의 애정과 돌봄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일깨워주기도 한다. 안데르센상 수상 작가 뮈라이유는 따뜻한 인공조명에 비친 세계를 그리면서도 결코 비극적 현실을 잊지 않는다. 이번에는 이라크에서 탈출한 하다드 가족을 등장시켜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려는 가족 개개인의 어려움을 그려낸다. 소뵈르는 하다드 가족에게 손을 내밀어 흑백의 세상에 갖혀 지내던 어린 라자를 빛의 세계로 이끌어내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가는 젊은 엄마 디나에게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한편, 디지털 문화의 부상으로 빚어지는 갖가지 혼란도 중요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소뵈르가 찾은 해결책은 결코 뻔하지 않다. 소뵈르는 비록 지금은 문제상황에 처해 있지만 창의적인 어린 내담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극복해 나갈 것이며 언젠가 근사한 창작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어딘가 상처 입고 슬픈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과 이혼이나 재결합 문제로 혼란스러워하는 가족들, 스스로 초래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 늘상 존재하면서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소뵈르 앞에서 비로소 이름을 얻고 출구를 찾는다. 부서진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짊어진 '구원자'의 역할에 대해 고뇌하면서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곁을 내주는 소뵈르는 여전히 상담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