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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8
1부 공예배의 우선성 1장 하나님은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 16 2장 하나님이 개인 예배보다 공예배를 선호하시는 이유 27 3장 공예배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 65 4장 두 가지 오류에 대한 책망 87 5장 공예배를 우선시하기 위한 영적인 도움들 100 2부 공예배에서 유익을 얻기 6장 지켜야 할 실천들 122 7장 피해야 할 함정들 152 3부 말씀 듣기 8장 듣기와 잘 듣기 168 9장 잘 듣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들 198 10장 잘 듣기 위한 지침들 226 |
David Clar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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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까(시 87:2)? 주님이 친히 밝히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신 12:5). 시온의 문들은 주님이 그분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 즉 그분의 예배 처소였습니다. 성전이 시온산 위나 그 근처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p.16 주님은 바로 그 공적 규례들 안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친히 함께하겠다고 가장 많이 약속하신 곳에 가장 많이 계시며, 자기 백성이 가장 많이 모인 곳에 가장 많이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은 모든 개별 성도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개별 성도들이 공예배를 위해 함께 모일 때, 그곳에는 주님의 모든 약속이 하나로 연합됩니다. 주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위로와 생명을 주는 임재의 시냇물을 흘려보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이 각각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함께 모일 때, 이 여러 시냇물은 하나로 합쳐져 큰 물을 이룹니다. 개인적으로 누리는 하나님의 임재는 단 하나의 시냇물에 불과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누리는 임재는 강, 곧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하는 강이 됩니다. ---p.30 하나님은 공예배에서 통상적으로 개인적인 방편을 통해 행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게 역사하십니다. 공적 규례가 일상적이고 영적인 성격을 띠기에 때로 덜 놀랍게 보일지라도,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는 가장 경이로운 일들은 바로 공적 규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회심과 중생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지만, 그것들은 기적이라 불리지 않는 모든 일 가운데 기적에 가장 가까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서 마른 뼈들을 향해 생명을 선포하시며, 수년 동안 죄의 무덤에서 부패해가던 죽은 영혼들을 일으키십니다. ---pp.42-43 주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동일하게 사랑하는 자들은 주님을 닮은 자들입니다. 주님과 뜻을 같이하고 그분을 닮으며 그분의 형상을 조금이라도 지니는 것이야말로, 천사나 인간이 갈망할 수 있는 최상의 탁월함입니다. 공예배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 길입니다. 우리가 공예배를 사랑할 때, 주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우리 안에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사랑받는 자녀처럼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pp.86-87 어떤 이들은 게으름과 공예배를 향한 멸시가 너무나 커서, 때로는 이 복된 자유를 누리려 문밖으로 나서는 것조차 꺼립니다. 약간의 비나 추위 등 무엇이든 예배에 빠질 수 있는 충분한 구실로 삼으려 합니다. 과거 하나님의 백 성은 비와 추위를 뚫고 고된 여행을 해서라도 공적 규례에 나아갈 수 있음을 큰 행복으로 여겼습니다(시 84편). 그러나 지금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이러한 열심은 어디에 있습니까?…심지어 믿지 않는 유대인들조차 일어나 이 세대의 게으름을 심판하고 정죄할 것입니다. ---pp.75-76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시 107:20). 말씀에는 모든 영혼의 질병을 고치는 연고가 있으나, 그 연고가 효력을 발하려면 다 나을 때까지 환부에 잘 남아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는 그 연고를 영혼의 상처 부위에 얹어줄 수 있지만, 묵상 없이는 연고가 곧 씻겨 나가고 맙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시 119:103)라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말씀의 단맛이 그토록 지속될 수 있었습니까?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말씀을 되새기고 읊조림으로써 그 맛을 계속 입안에 머물게 했기에, 말씀의 풍미가 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p.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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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슨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공예배와 개인 예배, 회중적 경건과 개인적 경건 가운데 무엇이 우선인가? 더 현대적인 표현으로 묻는다면, 교회에 직접 모여 예배하는 것과 집에서 실시간 방송으로 예배를 시청하는 것 가운데 무엇이 우선인가? 청교도 특유의 철저함과 실천적 안목을 겸비한 클락슨은, 안수받은 목회자가 집례하는 은혜의 방편 아래 공적으로 모이는 교회의 탁월함을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테리 L. 존슨 (조지아주 서배나 독립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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