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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외롭지 않았으면
중앙아시아 고선지, 서역을 호령한 고구려인 “머니! 머니!” 억울한 누명 이주 실험 혼란의 전야 9.11 모욕당한 품위 1장.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서문 곡으로 시작하는 하루 흉물 토굴을 찾아 고려극장 홍범도를 살려낸 태장춘 고려극장의 ‘별’을 찾다 광복 80주년 숙제 계수나무 할머니 우리의 자세 인민배우 김진이 남긴 미스터리 100년의 기억 보물창고에서 찾은 애달픔 계봉우의 마지막 독립운동 외면한 현장 홍범도의 말할 수 없던 죽음 저명한 조선 빨치산 대장 설레발의 최후 전설이 된 ‘쌀’ 제3인터내셔널 채정학 ‘벼농사꾼의 어버이’ 김만삼 상처 입은 영웅 서쪽으로 서쪽으로, 아랄로 악마의 목구멍 일본의 원투 펀치 군신으로 불린 사나이 김경천 경천아일록 2장.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 서문 가짜 후손 사건 운수 좋은 날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아 카라콜로 ‘객관적 우연’ 왕산 허위 의병장 허위 가문 사람들 애절한 죽음 외롭더라, 사람이더라 흩어진 시선 설전 오시로 간 이유 3장.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서문 안디잔과 광주 인민의 적 조금 다른 독립운동 실천적 역사가 초인 불온한 민족에서 소비에트 영웅으로 북극성 콜호스 덕장 김병화의 마지막 모습 고본질 황당한 자료, 허술한 관리 한성걸 후손 한 블라디슬라브 그렇게 한 장 추석 풍경 완성된 삶의 문장 퍼즐 한 조각을 맞추다 쓰러진 한 천도교인 묘비 ‘고려 냄새’를 기록한 안 빅토르 내가 있다, 또 없다 고향 땅 한 줌 흙이 소원이었던 사람 화투, 조금 다른 초상 기억의 연결 책을 나오며 | 날 움직이는 힘 참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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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 파란 하늘 아래 한인들 삶은 바람을 가르며 피어난 한 송이 야생화처럼 숭고하다. 그 모습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사라짐 앞에서 기억을 읊조리는 풍경이었다. 죽음 앞에서 삶을 찬양한 그 흔적을 찾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한동안 길을 헤맸다. 내가 보고자 한 건 망각의 강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기억의 파편이었다. 자세히 톺아보면 드넓은 광야에는 반짝이는 뭉우리돌이 여럿 박혀 있다. 사실 그것들은 어디로 가지도, 숨지도 않은 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단지 우리가 보려 하지 않았을 뿐.
---p.71 조국과 분리된 한인들에게 무대는 정체성과 역사를 되뇌는 대체 공간이었다. 다시 말해 한인 극단이 무대에 올린 작품은 흩어진 공동체 기억을 하나로 묶고 역사를 생생한 경험으로 전환시키는 강력한 의례였을지 모른다. 국가는 부재했고, 영웅들은 무덤에 들어가 버렸다. 이 모든 걸 고려 극장은 다시 무대 위로 끌고 나와 사람들 가슴속에 살게 만들었다.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일을 해낸 셈이다. ---p.108 “어이!” 바람을 타고 언덕 밑에서 희미한 소리가 나부꼈다. 고개를 들어 비탈을 타고 들릴 듯 말 듯 전해지는 목소리 위치를 찾았다. “뭐라고요? 어디 계세요?” “아저씨! 여기요!” 저 멀리서 조 여사님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목소리에서 심마니의 흥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바람에 나부끼는 다급한 외침이 점점 또렷해졌다. 예감이 좋았다. 부리나케 비탈을 뛰어 내려갔다. “찾았소, 찾았소, 태장춘! 여기 보소.” 조 여사님이 함박웃음으로 날 바라봤다. 묘비에 적힌 이름과 생몰 연도가 정확했다. “어…. 맞네요! 와!” 나는 조 여사님을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었다. 그리고 선교사님을 부르러 차로 뛰어갔다. “선교사님! 찾았어요, 찾았어!” 차 문을 세차게 열며 상기된 표정으로 기쁜 소식을 알렸다. “어머머, 벌써! 어머머, 가봐요, 가봐!” ‘태장춘 묘지 발굴단’은 출범과 동시에 천운을 등에 업고 카자흐스탄 현지 시각으로 2024년 10월 28일 오후 3시 40분경 태장춘 묘지를 발견하는 쾌거를 거뒀다. 그가 눈을 감은 지 정확히 64년 만의 일이었다. ---p.116 기쁨도 잠시 묘지 상태는 처참했다. 그간 눈, 비, 바람, 햇빛이 콘크리트 묘지를 산산조각 내버렸고, 그 모습은 마치 깨져버린 거북이 등껍질 같았다. 무덤 주변 철제 울타리는 녹으로 만든 두꺼운 갑옷을 입은 듯 붉게 산화해 있었다. 안타깝게도 무덤에는 영정이 그려진 흔한 비석조차 없었다. 그는 살아서 황무지에 내팽개쳐진 이주자였고, 죽어서는 광야에 내버려진 사람이었다. 꼴사나운 살풍경은 영원토록 외로움을 느끼란 어떤 형벌 같았다. 정작 벌을 받아야 하는 건 그를 이 지경으로 만든 우리 모두인데 말이다. ---p.117 우슈토베에 살던 젊은 한인 후손들은 돈을 벌러 도시로, 한국으로 떠났다. 남겨진 노인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 이제 1세대 강제 이주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기가 도래했다. 그래도 아직 몇몇 한인 후손들은 강제 이주 직후 태어나 옛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마음이 바쁜 건 증발해버린 기억과 인정받지 못한 역사 그리고 다 듣지 못한 이야기가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일찍 길을 나섰더라면, 조금 더 부지런히 길을 다녔더라면, 기록하지 못한 날들을 조금 더 위로할 수 있었을 텐데. ---p.134 김: 그 총탄은 팔에 맞은 거예요, 어깨에 맞은 거예요? 최: 팔이 아니고 오른쪽 등 뒤 어깨 날갯죽지야(최봉설의 손녀가 검지로 내 오른쪽 등 뒤에 정확한 위치를 짚어주었다). 어디서는 다리라고 하는 데도 있었어. 분명히 오른쪽 등 뒤 어깨 아래야. 총을 맞고 일경들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신한촌에서) 바닷가 쪽으로 도망갔어. 그러다 친구 집에 숨어 들어갔지. 일경들이 두 번이나 개를 대동해 수색을 나왔는데, 그 집 딸이 핏자국을 다 치워주었지. 그때 도와준 그 집 딸들 나이가 스무 살, 열여덟 살이었다지. 거기서 ‘최계립’이란 가명을 만들었지. 왜냐하면 그 집 자식들이 ‘계’자 돌림이었거든. 친척이라 속여야 하니까. 그 사람들 덕분에 74세까지 사셨지. ---p.150 “할머니가 증조할아버지(최재형)와 함께 연해주에 살 때 집에 귀족들이 쓰는 큰 식탁이 있었대요. 은수저도 많았고요. 굉장히 좋은 음식을 많이 드셨다네요. 증조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참 행복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모든 게 변해버린 거죠. 증조할머니가 자식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어렵게 사셨다고 했어요. 사람들 눈을 피해 모스크바까지 가야 했대요. 그때 자매 다섯 명이 신발 한 켤레를 나눠 신었다고 해요. 집 밖에는 한 명밖에 못 나가는 거죠.” 최재형 서거 후 집안은 몰락했고 남겨진 자식들은 부르주아 출신이란 손가락질을 받으며 소련 전역에 흩어져 살게 된다. 그 팍팍했을 삶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대략 상상이 되는 이야기였다. ---p.270 우리에게 우즈베키스탄은 한인들 눈물이 스민 땅으로 각별하다. 1937년 강제 이주 열차는 카자흐스탄을 지나 우즈베키스탄 황무지에도 멈춰 섰다. 이주자들은 낯선 기후와 풍토, 알 수 없는 언어와 문화 속에 내던져졌다. 다행히 대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정직했으며 순리를 따랐다. 땅은 한인들의 신앙이었다. 그 믿음은 실의와 절망 속에서 무력감을 딛고 다시 일터로 나가는 힘이었다. 무지렁이같이 버려진 땅과 갈대밭에 전에 없던 손길이 닿기 시작한다. 거기 스민 땀방울은 해마다 대지 위에 황금빛 물결을 출렁이게 한다. 장쾌한 풍경을 만든 사람들은 이 땅을 스쳐간 영웅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위대하다. 그 이야기는 철길에 내던져진 수많은 뭉우리돌처럼 어디선가 소리 없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 ---p.311 안디잔에서 이인섭이 살았다는 집을 찾아다녔다. 거기 살고 있는 현지인들은 독립기념관에서 몇 해 전 조사 나왔던 일을 기억하며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과 차를 마시며 예전 모습을 떠올려 봤다. 어딘가에서 한 노인이 종이 위에 만년필을 눌러쓰다 손님을 맞으러 나타날 것 같은 몽환에 사로잡혔다. 역사를 생명처럼 아낀 한 초인이 살던 집, 연민 가득한 따뜻한 볕이 쏟아지는 안디잔의 오후였다. ---p.331 제사를 지내던 한인 후손들에게 한국에서 왔다며 조심스레 촬영을 부탁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흔쾌히 곁을 내주었다. 그리고 촬영을 마칠 때쯤이면 어김없이 투박한 한마디가 날아왔다. “입질 좀 하오?” 그들은 내게 보드카와 음식을 권했다. 한인 후손들이 차린 추석 성묘 상은 오랜 세월, 문화가 뒤섞이는 와중에도 억척스럽게 지켜낸 결과물이다. 이 모습을 보고 누가 감히 한국식으로 해야 한다며 어깃장을 놓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애틋하고 고마운 풍경 아닌가. 음식을 받아 입속에 넣었다. 한국도, 러시아도, 우즈베키스탄 것도 아닌 묘한 맛이 번져간다. 보드카를 넙죽 받아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소주보다 독하고 쓴 액체가 국적 불명 맛을 쓸고 내려간다. 얼얼한 목 넘김에 “캬” 하는 외마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_376쪽, 추석 풍경 잠시 뒤 최재형 며느리 무덤도 찾아냈다. 그 모습은 마치 폐허를 연상시켰다. 쇠 울타리는 붉게 녹슬어 바스러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외로운 긴 세월 앞에 한쪽으로 기울어진 십자가는 애도조차 포기한 듯했다. 최재형 가문의 몰락을 압축해 보여주는 을씨년스런 풍경이었다. 이들을 추모하는 건 이제 이름 모를 잡초와 가시덩굴뿐이었다. 풍경만 놓고 보면 끊어진 기억의 사슬을 온전히 잇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비탄 섞인 한숨이 절로 올라왔다. 무심한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건조한 바람이 마른 풀잎을 쓸고 지나갔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돌아서는 길 송곳 같은 가시들이 자꾸 살을 파고든다. 왜 이제 왔냐며, 왜 이렇게 늦었냐며 질책하듯. 최재형이 남긴 퍼즐 한 조각이 맞춰지는 날 풍경. ---p.388 중앙아시아의 국외독립운동사적지는 망각에 점령당한 곳이 많다. 지금 이 순간도 망각은 그곳에 외로움의 씨를 뿌려 현장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불행하게도 돌보는 이 없는 이들 공간은 역사를 잊어가는 우리가 얻은 결과물이다. 우리는 그동안 치열하게 망각해 왔다. 그 잊어버림은 우리가 과거에 진 빚을 더욱 키울 뿐이다. 그렇다고 누구도 빚을 갚으라 강요하지 않는다. 원하는 건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는 빚이 있음을 자각하는 일이다. 이는 느슨한 기억을 다시 단단히 연결하는 출발점이다. 과거가 현재를 돕게 하는 방법은 이 길이 유일해 보인다. 이 책으로 대단한 무엇인가를 이뤄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 속에 묻혀 있던 몇 개 뭉우리돌에 다시 빛을 비추었을 뿐이다. 독자들에게 부탁이 있다면, 이 책이 제시한 몇 개 좌표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그 좌표를 따라 여행해보길 권한다. 그 행위 자체가 기억의 연결고리를 공고히 하는 일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건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건은 순간이지만 비극은 길다. 추모의 행렬은 비극의 길이만큼이어야 한다. ---p.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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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작가 세 번째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중앙아시아 편, 『뭉우리돌의 광야』
“망각에 점령당한 그곳에는 외로움이 가득했다…” 우리 독립운동의 흔적을 오늘의 기억으로 아로새기다 “자세히 톺아보면 드넓은 광야에는 반짝이는 뭉우리돌이 여럿 박혀 있다. 사실 그것들은 어디로 가지도, 숨지도 않은 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단지 우리가 보려 하지 않았을 뿐.” 일제강점기 국외독립운동 중심지 중 하나였던 연해주에서 일순간 한인들이 사라진다. 날벼락 같던 소련의 강제 이주 명령, 열차는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멈춰 선다. 지금은 무덤만이 마을을 이루는 그 광야에서 김동우 작가는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독립운동가와 한인 디아스포라의 흔적을 하나씩 주워 담았다. 김동우 작가는 2017년부터 국내외 여러 나라에 산재한 독립운동사적지와 독립운동가 후손을 취재하는 ‘뭉우리돌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로, 김구의 『백범일지』에서 비롯됐다. 김구가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을 때 일본 순사가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라고 말하며 그를 고문했다. 그 말에 김구는 오히려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답했다. 작가는 김구의 말에서 착안하여 세계 곳곳에 뭉우리돌처럼 굳건히 박혀 독립운동에 생을 바친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국내 등 11개국 현장을 수만 장의 사진으로 기록했으며,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뭉우리돌의 바다』, 『뭉우리돌의 들녘』으로 이어져 온 국외독립운동사적지 기록 프로젝트는 이번 『뭉우리돌의 광야』 중앙아시아 편으로 연결된다. 밀도 있는 취재를 위해 여러 차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스물세 개 이상의 도시를 발로 뛰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중앙아시아 취재는 장장 8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절절하고 생생한 인터뷰를 실었으며, 독립운동사적지 및 중앙아시아 현장 사진 183컷을 엄선해 책에 담았다. 취재는 독립기념관 정보를 기본으로 했으며, 단행본과 논문, 국내외 기사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해 역사적 사실 관계를 촘촘히 검증했다. “개인 짐은 1인당 30킬로그램, 그것이 그들에게 허락된 삶의 무게였다.” 애도받지 못한 비극의 한인 강제 이주 역사,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 1863년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정착한 한인들은 70여 년 뒤인 1937년, 영문도 모른 채 열차에 실려 이곳 중앙아시로 강제 이주 당한다. 허락된 것은 개인 짐 1인당 30킬로그램뿐. 집과 살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빈털터리로 쫓기듯 열차에 올라야 했다. 병원에 누워 있던 환자까지 강제 퇴원시켜 합류시킨다. 조상 묘를 두고 갈 수 없어 흙 한 줌 챙겨 담는 이도 있었다. 흔히 ‘고려인’으로 불리는 이들을 저자는 ‘한인’이라 고쳐 부른다. 중앙아시아에 내던져진 사람들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지를 오가며 같은 역사를 써 내려간 우리 조상들이라는 뜻에서다. 하루아침에 무너진 독립운동의 성지 연해주, 급변한 소련의 민족 정책과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 같은 시기 정점에 달했던 대숙청으로 희생된 독립투사들과 한인 지도자들, 그럼에도 낯설고 척박한 중앙아시아 땅에서 고려극장과 콜호스(집단농장) 등 예술과 농업으로 기적처럼 역사를 지키고 생을 이어간 한인의 삶을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잇는다. 특히 이 책은 단순히 역사의 흐름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붙든다. 왜 우리는 제대로 된 강제 이주 추모관조차 아직 세우지 못했을까. 맨손으로 일궈낸 고려극장과 콜호스의 영광, 청산리 영웅 홍범도 장군의 마지막 생, 3대에 걸쳐 싸운 가문의 최후, 벌판에 버려진 수많은 한인 옛 무덤터… 다 듣지 못한 이야기, 광야에 남겨진 뭉우리돌을 찾아서 김동우 작가의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그 세 번째 책 『뭉우리돌의 광야』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독립운동사를 마주할 수 있다. ‘독립전쟁의 첫 승리’, ‘최대 승리’로 일컬어지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이끌었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우리는 쉽게 이 전설적인 독립영웅의 영광 가득한 말년을 짐작하지만 사실 그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아는 이는 거의 없다. 홍범도는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어 병원 경비, 고려극장 수위, 정미소 근로자 등을 전전하다 크즐오르다에서 생을 마친다. 그의 사망설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책에는 그의 마지막 생에 대한 이야기와 처음 묻힌 묘소에서 행방불명되었던 철비를 되찾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3대에 걸쳐 열네 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해 ‘독립운동 명문가’로 칭해지는 허위 가문 또한 대부분 키르기스스탄에서 쓸쓸한 말년을 맞았다. 독립운동가 후손 지원을 요청하고자 한국을 방문했던 80세 노구의 허위 가문 후손은 종로 낙원상가 어느 여관방에서 지내다 빈손으로 우즈베키스탄에 돌아가야 했다. 원하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후손은 그저 단 하나를 바랐을 뿐이다.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하고 가르쳐달라.”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1995년 후손을 자처한 이가 후손 행세를 한 사기꾼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가짜 후손 문제가 터지자 현충원은 기존 묘역을 없애고 이 사실을 직계 후손에게 알리지 않았다. 뒤늦게 사실을 알고 묘소를 만들려고 했으나 국립묘지법상 순국선열의 유해 없이는 불가했다. 그러나 최재형은 러시아 소비에트 스카야 언덕에서 일본군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추정될 뿐 현재까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결국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국립묘지법을 개정해 묘소가 정비된다. 우리 역사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소련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지들을 수소문해 찾아다니며 회고록과 자서전을 수집하고 작성한 이인섭도 빼놓을 수 없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다 해도 스스로 부여한 과업을 꿋꿋이 이행한 그는 70여 종의 귀중한 기록물을 남겼다. 홍범도와 함께 싸운 전우들의 스토리를 무대에서 되살려 오늘에 이르게 한 고려극장의 태장춘도 중앙아시아에 있다. 모두 펜으로 행한 저항과 실천이었으며, 또 다른 독립운동이었다. “마음이 바쁜 건 증발해버린 기억과 인정받지 못한 역사 그리고 다 듣지 못한 이야기가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일찍 길을 나섰더라면, 조금 더 부지런히 길을 다녔더라면, 기록하지 못한 날들을 조금 더 위로할 수 있었을 텐데.” _본문 중에서 거대한 세계 지도 한가운데, 중앙아시아. 우리에게 생경하기만 한 그곳에 같은 얼굴을 한 한인의 역사가 있다. 항일 의병장 민긍호, 15만 원 탈취 의거 최봉설과 후손, 『십오만 원 사건』 작가 김준, 한글학자이자 역자학자 계봉우와 후손, 벼농사의 기적을 일군 채정학, 김만삼, 김병화, 군신(軍神)이라 불린 김경천… 이 밖에도 책 속에는 수많은 뭉우리돌의 이야기가 있다. 또 하나 이 책이 다른 역사서와 다른 지점은, 저자가 답사 과정에서 마주친 오늘의 중앙아시아를 함께 담아낸다는 데 있다. 우즈베키스탄 안디잔에서 2005년 정부군의 발포로 최소 187명(인권단체 추산 최대 1,500명)이 희생된 ‘안디잔 학살’을 다루며 이를 한국의 5·18 광주와 나란히 놓는다. 독립운동사적지를 좇는 여정이 자연스럽게 국가 폭력과 기억 투쟁이라는 더 넓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고려극장을 지켜낸 배우들의 이야기, 명절마다 다시 꺼내 드는 화투와 추석 풍경 같은 문화·정체성의 기록도 함께 실려, 이 책이 단순한 독립운동사적지 안내서가 아니라 한인 디아스포라 삶 전체를 향한 기록임을 보여준다. “이 어두컴컴한 곳을 누가 알며, 여기 깃든 역사를 누가 전하랴.”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은 몇이나 될까 광야에 버려진 이름을 다시 부르다 『뭉우리돌의 광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미지는 비석이다. 저자는 중앙아시아의 공동묘지를 헤집고 다닌다. 대한독립을 위해 생을 바친 뭉우리돌은 이제 비석이 되어 광야에 우두커니 서 있다. 우거진 수풀 속에 가려져 있거나, 깨어져 있거나 녹슬어 있는 비석들. 저자는 비석을 바라보며 말한다. “망자들과 눈을 맞추며 깨달은 내 해석이 맞다면 그들은 기억되고 싶을 뿐이다.” 저자는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그들을 발굴하고, 행여 다시 흩어질까 가슴을 졸인다. 사라짐의 끝에서 겨우 채집해낸 역사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심어져 되살아나길 소원하며, 오늘도 방랑자처럼 길을 헤맨다. ‘뭉우리돌을 찾아서’는 역사가 사라진 곳에서 다시 기억을 이어붙이는 작업, 기억되지 못한 이름들을 다시 현재로 불러오는 작업이다. 이번 책에는 특별히 독자가 사적지를 탐방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현지답사를 바탕으로 확인한 GPS 좌표를 실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소리 없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찾아와 다시 이름 불러지길 소망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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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 책은 정말 눈물겨운 책이었다. 텍스트와 사진 속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구소련 한인 디아스포라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은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투쟁이었다. 일제와의 투쟁은 물론, 고된 노동과 정치적 탄압과 배제에 맞서 견뎌내야 했고, 또 이겨내야 했다. 그들은 결국 이러한 고난을 이겨내고 구소련의 여러 사회에서 경제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헌을 해왔다. 이제 많은 구소련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역이민하여, 새로운 조건 속에서 광주와 인천, 김해와 경주 등지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어 가고 있다. 나는 이 책이 이들과 이들의 조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해를 크게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리라고 확신한다. 책에서 인용된 밀란 쿤데라의 말대로 “인간의 권력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다.” 이 책은 그 투쟁에 크게 보탬이 될 것이다. 감추어지고 여태까지 빛을 보지 못했던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 그리고 국외독립운동의 역사에 관심 있는 모든 분께 이 책을 추천한다.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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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나라 없는 시인은 하늘이 열리고 큰 강물이 길을 연 광야에서 ‘노래의 씨’를 뿌리고, 초인을 기다렸다. 서럽게도,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뭉우리돌의 광야》에는 낯선 영웅들의 무덤이 비쩍 마른 엉덩이를 틀고 앉아 있다. 작가는 스러져 간 뭉우리돌의 역사를 앵글에 담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광야를 헤맨다. 미쳤다는 건, 책갈피를 두어 장만 넘겨도 알 수 있다. 크즐오르다에서 계봉우의 묘비를 끌어안고, 작가는 통곡했다. “이토록 초라하단 말인가. 초연하게 목숨을 내건 독립운동가 부부가 중앙아시아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이주자로 살다 죽어간 마지막 모습이란 게….” 역사는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작가가 셔터를 누르는 까닭이다. - 정재환 (역사학자, 방송인,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