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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1장. 시간의 예술2장. 음악으로 생각하기3장. 과거의 현존4장. 음악 2.0 5장. 지구촌 시대의 음악글을 마치며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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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holas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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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에서 함께 반응하는 예술로서의 음악악보 그 너머의 음악을 탐구하다음악은 무엇일까? 니컬러스 쿡은 음악이 ‘어떤’ 예술인지, 그 성격을 펼쳐 보이려는 시도로 이 작은 책의 개정판을 연다. 물론 음악은 문화적 산물이자 실천이며, 재현이기도 하고 수행이기도 하다. 다만 그는 “음악은 모든 문화 활동을 통틀어 시간과 가장 본질적으로 얽힌 예술일 것”이라면서 음악이 ‘실시간’ 연주로서 갖는 의미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탐구한다. “우리는 다가오는 매 순간을 산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 일어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반응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마치 즉흥연주처럼.” (16~17쪽)서로를 면밀히 듣고 곧장 반응해야 하므로 역동적이고 유연하고 상황적인 즉흥연주의 시간은 “사회적·문화적 삶을 이루는” 창조성과 연결되며, 전통과 규칙에 속한 기존 음악 및 사고와 구분되기도 그러한 구분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니컬러스 쿡은 개인이 음악으로 경험하는 횡적 시간에서 인생의 시간, 사회의 시간, 음악의 역사라는 종적 시간을 능숙하게 오가며 음악이라는 옷감을 짜낸다. 음악사의 치열한 역사적 진정성 논쟁, 경전을 만들기 위해 작동하는 ‘게이트키핑’, 악보와 악기를 통해 음악으로 사고하는 음악가들, 젠더와 인종 문제, 정체성의 표식으로 기능하는 음악, 베토벤에서 밥 딜런으로 이어지는 영웅적 천재들에 대한 선망 등등 흥미로운 논의들이 그 옷감의 선명한 무늬를 이룬다. 소리로 들리도록 만든 ‘사회’음악은 우리를 어떻게 연결하는가음악을 사람들이 만드는 ‘산물’로만 보지 않고 현재 행하는 ‘활동’으로 보는 관점에서 음악은 사회의 다른 곳에서 일어난 변화를 그저 반영하는 존재가 아니다. 니컬러스 쿡은 말한다. “소리와 사회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음악은 사회를 반영하지 않는다. 음악은 그 자체로 사회다. 소리로 들리도록 만든 사회.” 예를 들어 아파르트헤이트의 잔해 속에서 새로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탄생하는 과정의 사회적 긴장과 협의는 당시 음악 스튜디오 안에서도 그대로 일어났고, 확실한 서열과 관리 체제를 갖는 오케스트라 조직은 현대 산업사회의 폭넓은 특징을 보인다. 즉 음악과 사회에서 변화는 어느 방향에서든 동등하게 올 수 있다. 음악은 음악 너머로까지 효과가 미치는 일들이 벌어지는 장이다. 사실, 그 과정을 21세기의 우리는 몸으로 겪어왔다. LP에서 CD로, 다시 디지털 파일과 스트리밍으로 이어진 매체의 변화는 음악을 점점 더 우리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음악은 특정 장소와 시간을 정해 감상하는 대상에서 일상에 스며든 ‘생활양식’이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재설정하는 디지털 기술은 음악 생산자와 청자 간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보컬로이드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가 지원하는 가상의 여학생 캐릭터 하츠네 미쿠에게서 음악은 완결된 작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공동 활동이다. 이러한 음악 2.0 시대의 특성은 엘리트적 권위와 단일한 해석에 기대던 고전음악 시대와 분명히 구별된다. 음악을 읽어내는 힘이 필요한 시대지금 우리가 음악을 다시 배워야 하는 이유이러한 모든 변화를 짚어낸 뒤 니컬러스 쿡이 향하는 곳은 낙관보다는 우려다. 그는 초판과 개정판 모두에서 광고 음악을 통해 음악의 힘을 설명하는데, 우리는 광고업자의 메시지를 듣지만 여기서 음악의 힘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는 깨닫지 못한다. 음악은 이런 것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행하며, 인위적인 것이면서도 ‘자연’처럼 행세해 감시망을 빠져나간다.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한 힘이 음악에 있다. 피리 연주로 아이들을 유인하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세계 곳곳에서 전해오는 인어 이야기,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 이야기 등을 생각해보라. 식민지 개척에 음악을 이용했던 제국주의자들은 어떤가. 근래 세계 여러 지역에서 새로운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서로 다른 문화적·인종적 집단이 생산적으로 공존하기 힘들어진 상황을 음악 역시 벗어나지 못하는 점도 우려스럽다. 더 복잡한 사정도 있다.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파는 스포티파이 등 웹2.0 서비스들 말이다. 내밀한 감정에, 가장 깊숙하고 가장 진정한 자아에 친밀하게 접근하는 음악을 당신이 언제 어떻게 골라 듣는지 아는 것은 음악 앱들이다. 사반세기 전에 뉴미디어 평론가 하워드 라인골드는 놀라운 예지력으로 “미디어가 앞장서서 욕망을 조종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 지구적인 상업주의가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도 있다고 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욕망 조종의 선봉에 음악이 있다. 음악의 힘을 이해하는 미디어 문해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점인 만큼 새로 쓴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은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유효하게 다가간다. 이 책을 계속 번역해온 음악 전문 번역가 장호연의 소회를 여기에 소개한다. “한 번도 음악을 문해력의 대상으로 본 적이 없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태초에 음악과 말은 하나였다. 음악은 감정을, 말은 의사소통을 나눠 맡으면서 점차 분화한 것이다. 말을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음악이라고 다를까? 음악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사용하고 즐기려면 음악도 배워야 한다. 이 책은 이 시대에 필요한 바로 그 배움을, 독자들에게 줄 수 있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서로 인간임을 나누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이 책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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