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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_5
제1부 허공 _12 전주천 _14 삼월 _16 봄의 깊이 _17 가난의 변주곡 _18 시간들 _20 봄날 _22 존재의 성질 _24 오늘 부는 이 바람을 _26 비가 내린다 _28 어둑한 주문呪文 _30 서광 _32 꺼지지 않는 독백 _34 어두운 노래 _36 동시에 _38 사이렌의 노래 _40 종소리 _42 기도 _44 흰뺨검둥오리 네 마을 _46 제2부 목련당 선언 _48 광야 _50 신의 흔적 _52 불면의 분열 _54 봄하늘 _56 이 제 떠날 때가 되었다 _58 가난한 존재 _75 준성 _60 수평선을 위하여 _62 형식의 기원 _64 사소한 노래 _66 오고 있는 세계 _68 사랑의 가동 _70 내부의 풍경 _72 몰락 이후 _74 바람의 말 _76 시간의 몸 _78 정오가 온다 _80 제3부 구럼비의 상상력 _84 돌아오지 않는 울음 _86 가만히 있으라는 말 _88 카이로스 _94 새로움이 우리를 가두었다 _96 전야 _98 마지막 선택 _100 밀양의 아침 _91 파도 _102 불법점거에 대한 변 _104 태초에 재료가 있었다 _106 지금은 서정시를 써야 할 시간 _108 거울 _110 불을 품은 섬 _112 숲의 진화 _114 노래의 거처 _116 길을 버리고 _118 죽이지 못해서 죽었다 _120 봉기 _122 산문 작품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_124 |
황규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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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전시와 관념의 조립으로는 시가 되지 않는다는 예민한 의식이 이 시집의 곳곳을 빛나게 한다. 사랑은 “미완성의 지속”이고 시는 “언어를 갖지 못한 설렘”인 것이다. ‘꽃 지니 잎 나고 바람 부니 다시 바람 부는’ 인간의 텅 빈 시간을 그가 마음에 받을 때, ‘사람이 새보다 더 높은 곳에 둥지를 틀어야 하’고 ‘굳센 합법이 가녀린 불법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기막힌 현실을 몸을 뒤틀며 말할 때, 우리는 이 호학 시인의 정신의 상태가 사유의 생산적 혼란을 얻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엎은 자리에서의 논공행상을 부정하고 “엎고 엎고 계속 엎자”는 어떤 ‘이행’의 정신, 요컨대 삶과 시의 영구혁명론에 다가선다. 우리 모두는 나날의 노동과 인생 번민과 쓴 소주에 시든 삭신을 일으켜 살기 위해 매일 싸우러 나간다. 답답한 우리는 때로 역설에 기대어, 때로 역설의 역설에 기대어 살려 하지만 이 논리적 비논리의 지대에 분명한 이정표가 있으랴?
이영광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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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껏 내가 가져보지 못한 것 중에
가장 찬란한 것은 허공이라네 갓난아기가 꼭 쥐고 놓지 않는 것 차마 먼저 돌아서지 못하는 어머니의 눈빛 같은 것 마지막 구호를 삼켜 버린 망루의 불꽃 같은 것 모든 신앙은 미신이지 주기도문도 허리를 분질러버리는 삼천배도 모두 허공에 대한 경배 아니던가 가장 나중까지 매달려 있는 이파리가 동틀 무렵 잠깐 증명하는 것을 나는 아직까지 갖지 못했네 바람이 지나가고 아무 형식도 없는 탄식이 낙오된 기러기처럼 뒹구는 허공, 어쩌면 끝내 내가 되지 못할 내 싸움이 지향했던 13월 같은 것 대신 끝나지 않는 책을 나는 허공이라 부르겠네 내 몸이 다 녹아 파도로 돌아가는 순간이 허공이라고 오직 저 나비의 귀에만 속삭이겠네 ―「허공」 전문 꽃 지니 잎사귀다 다른 시간은 이렇게 온다 천국은 지옥에서 피고 노래는 울음의 끝에서 시작되는 것 잎사귀 나오니 바람이고 바람 부니 다시 바람이다 ―「봄의 깊이」 전문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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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을 껴안고
세계의 토대를 탐색하는 황규관의 시는 혁명의 이미지를 그려가는 과정이다! 황규관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정오가 온다』가 나왔다. 전작인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에서 “태풍”으로 표상되는 새로운 시간의 이미지를 그리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간 점이 눈에 띈다. 시인은 그것을 “정오”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정오”는 현실에서 존재의 긍정적 상태가 최대화된 지점에 해당되는 듯하다. 황규관은 “정오”를 “우리의 얼음장”이라고 이미지화하기도 하고, “사랑 너머”라고 진술하기도 한다. 얼핏 보면 그것은 황규관의 인식이 가리키는 바를 더 모호하게 하는 것 같지만, 다른 시편들에서 보여 주듯이, 끊임없이 현실 세계에 천착해 있는 것을 고려하면 그다지 난해한 문제는 아니다. 황규관은 이번 시집에서도, 해고노동자들의 고공농성, 그리고 자살, 밀양, 강정, 세월호 등 우리 사회에 닥친 비극과 고통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다. 나아가 「불을 품은 섬」 「숲의 진화」 「바람의 말」 등에서는 역사 이전으로까지 시선이 거슬러 올라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의 질곡을 더 심층적으로 짚어보려는 의도로 읽힌다. 지난 시집과 다른 점은 지시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빈도수가 줄었다는 점이다. 이 지점이 황규관의 변화지점이겠는데 그것보다 본질적인 것은 이번 시집에서 황규관은 새로운 리얼리티에 대해 탐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새로움이 우리를 가두었다」라는 시에는 새로움에 대한 자본주의 문명의 강박이 모든 문명의 토대가 되는 어떤 것을 은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 시는 소극적으로는 ‘문학장’ 안을 겨누고도 있는 것 같다. 이번 시집은 시집 뒤에 통념적으로 따라 붙는 해설이나 발문을 버리고 시인이 쓴 산문이, 그러니까 시인의 문학론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산문을 시집 말미에 붙이는 일 자체가 그리 파격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색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이 산문에서 황규관이 생각하는 문학에 대한 원초적인 주장을 읽을 수 있다. 황규관은 문학 ‘작품’ 자체가 어떻게 작가들의 내면에서 시작되는지 인식론적으로 더듬는다. 그리고 그 결론은, 문학은 세계와 유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인은 인간의 내면 자체가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낙서장’이라고 주장한다. 독자들은 황규관의 이번 시집을 읽을 때 먼저 맨 뒤에 실린 산문을 읽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시어들이 지시적인 기능을 많이 누그러뜨린 관계로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시집에서도 황규관의 서정은 곳곳에 박혀서 빛나고 있다. 물론 그 서정은 시인이 경험했거나 혹은 인식한 사건이나 현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제일 앞에 실린 「허공」이라는 시에서는 “내 싸움이 지향했던 13월”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 “13월”은 현재에는 없는 시간의 영역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표현은 마지막에 배치된 불온한 제목을 가진 「봉기」의 의미와 연결된다. 엎어서 위아래를 바꾸자는 게 아니다 엎어서 평평하게 하자는 것도 아니다 엎고,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떠나자는 것이다 함께 앓으며 별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폐허 위에서, 입맞춤의 울림을 가득 피게 하자는 것이다 벌레의 몸이 된 나뭇잎을 뛰는 심장처럼 물들이자는 것이다 엎은 다음에 차지하지 말고 엎어서 나눠 갖지도 말고 엎고 엎어서, 엎고 엎은 다음에 대지가 되자는 것이다 엎고 엎고 계속 엎자는 말이다 우리를 옭아매는 굴종을 무기력과 좌절을 엎다가 죽자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도 사랑도 태양도 잠시 빌려 쓰고 제자리에 돌려놓자는 것이다 엎어서 바람이 되자는 말이다 엎어서 꽃이 피게 하자는 말이다 내일도 없이, 오늘 엎자는 것이다 ―「봉기」 전문 이 시를 두고 시인 이영광은 추천사에서 “어떤 ‘이행’의 정신, 요컨대 삶과 시의 영구혁명론”이라고 표현했다. 다르게 말하면 “영구혁명”을 이행해야 하는 시인의 운명 같은 것을 노래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에는 없는 “13월”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또 다르게는 「바람의 말」에서 보여주는 역설과 아이러니로 가득한 삶을 말하는지도. 황규관은 이번 시집에서도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리고 승리를 염원하지도 않는다. 바닥없는, 달리 말하면 애초에 주어진 토대 없는 삶을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노래의 거처」에서 “노래는 허공에다 불러야 하고/사랑은 자꾸 부서지는 파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를 두고 이영광이 “모든 걸 걸고 사정없이 패배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만히, 이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황규관의 이번 시집은 모종의 “생산적 혼란”(이영광)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