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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서토니의 마임이스트
엔딩을 통과하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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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연찮게 건너 건너 전해 들은 비보였다. 대학 동문인 다울의 사망 소식이 내 귀까지 들어온 건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었다. 스물두 살, 다시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자퇴서를 내고 난 뒤 모령대에는 더 이상 연고가 없었으니까.
---「펑서토니의 마임이스트」중에서 “혹시 다울이 과 후배예요?” “네? 아, 네…” 남자는 당황한 듯 보였지만 습관처럼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모령대 영문과 나오셨구나. 이름이…?” “오선입니다, 장오선.” “전 한서이라고 해요. 마임이스트 알죠? 같은 동아리였어요.” 마임이스트는 모령대 마임 동호회의 이름이었다. 내 입으로 그 이름을 불러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펑서토니의 마임이스트」중에서 모령에서의 1년 반. 그나마도 서울과 모령을 오가며 보냈던 시간. 나는 지독하게 방황 중이었다. 과거의 내 보잘것없는 성취가 한심스럽고, 현재의 내 모습에 불만밖에 없었고, 미래의 나에 대해 의심만 가득했던 그때. 나는 내 인생 빼고는 단 한 명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펑서토니의 마임이스트」중에서 “뭐야, 언니. 여기서 자고 있었어요?” 아는 목소리가 나를 깨운다. 아직 꿈속인 게 분명해. 내가 아는 그 목소리라면 현실에서는 들을 수 없어야 했다. ---「펑서토니의 마임이스트」중에서 15년 전으로 돌아왔는데, 왜 나는 서른일곱 살의 모습 그대로인지. 젊어지지도 않았을뿐더러 장례식에서 바로 건너온 듯 옷차림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다울은 내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펑서토니의 마임이스트」중에서 나는 용기가 없었다. 애써 얻은 신망을 잃을 용기도, 나에 대한 몰이해를 감수할 용기도 없었다. 아니, 용기가 없었다는 건 핑계인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았을 뿐. 그래서 그냥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도 하지 않음으로써 다울을 놓아 버리고, 그렇게 영영 잃게 될 줄도 모르고서. ---「펑서토니의 마임이스트」중에서 우리는 함께 시곗바늘을 돌렸다. 시침이 움직이자 분침도 움직였다. 마침내 시간이 거꾸로 움직였다. 시간이 되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더 크게. “도망가자.” ---「펑서토니의 마임이스트」중에서 모령. 한 사람의 약점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배운 곳.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엔딩을 통과하는 중」중에서 지강과 나는 첫 만남 이후 급속도로 친해졌다. 서로 옆집에 사는 데다가 내가 지강의 학교로 전학을 가기까지 했으니 친해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지만 우리의 관계는 보통의 친구 사이보다 조금 더 은밀했다. ---「엔딩을 통과하는 중」중에서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서이 언니는 분명 이런저런 말들을 삼키고 있을 터였다. 내가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미리 생각해 두었던 거짓말을 하지 못했듯 언니는 금방이라도 쏟아져나올 것 같은 솔직한 말들을 눌러 내고 있었을 것이다. 한집에 사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길들이는 방법을 터득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약간의 세심함과 인내심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엔딩을 통과하는 중」중에서 - 그럼 시간을 되돌려 15년 전으로 타임 리프한다면... 캠퍼스 내 열기가 무르익었던 축제의 밤. 언니는 내 팔을 잡고 말했다. 떠나고 싶다면 떠날 수 있어. 도망쳐야 한다면 도망치는 거야. 원한다면 내가 도울게. - 만약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거야? ---「엔딩을 통과하는 중」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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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의 이야기-
어느 한 시절을 함께 찬란하게 보냈던 그곳 모령에서, 내가 읽지 못했던 너의 시간 「펑서토니의 마임이스트」 대학교 자퇴 후 모교에 발을 끊은 지 오래된 어느 날, 서이는 우연히 참여한 친목 파티에서 대학교 후배이자 마임 동아리 동기였던 다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복잡한 기분에 휩싸인 채 다울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서둘러 모령으로 향한다. 한때 서울과 모령을 오가며 방황했던 서이에게 다울은, 유난히 혹독한 모령의 겨울을 견디게 해준 사람이었다. 서이는 어째서 다울이 죽게 되었는지, 무엇도 알 수 없는 채로 얼어붙은 길을 힘겹게 지나 장례식장에 도착한다. 나는 모령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고 초라한 터미널은 그 규모에 맞지 않게 어수선한 행객으로 가득했고, 곳곳에서 불쾌한 냄새를 풍겼다. 다울을 기억하는 조문객들을 만나고 여러 생각에 잠겨 잠에 들었던 서이는 장례식장이 아닌 어느 벤치에서 눈을 뜨게 된다. 그런 서이의 눈앞에 영정 사진 속 얼굴이 아닌, 15년 전의 모습으로 다울이 서 있다. 서이는 아무 데서나 잠들지 말라는 다울의 핀잔을 기분 좋게 들으며, 지금의 상황이 꿈일 거라고 여기면서도 그동안 자신이 다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느낀다. 다울을 보느라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었지만 이미 내 몸의 오감이 일러주고 있었다. 15년 전이라고. 15년 전의 모령이라고. 신록의 한가운데, 4월의 캠퍼스. 가장 찬란하고 가장 암담했던 모순의 시절. 그때의 나날로 돌아왔다고. 서이는 다울이 살아 있었던 15년 전의 시간을 마주하면서, 홀로 모령을 떠나온 후 오랫동안 다울에 대해 품었던 죄책감과 후회를 떠올린다. 그 마음은 과거의 선택을 달리 바꾸어 다울을 살려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서이는 마치 한 조각이 빠진 미완성 퍼즐처럼, 다울이 말해주지 않는 속마음에 쉽게 가닿지 못한다. 당시 다울을 둘러싼 또 다른 인물 지강과 오선을 비롯해, 시간을 돌리지 않고서는 확인할 수 없는 일들까지. 서이는 자신과 다울이 애틋하게 나누었던 15년 전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기 위해 기꺼이 진실을 마주하려 한다. 다울의 이야기- 시간의 틈을 메꾸어 모든 가정법이 해피엔딩이 되기까지 「엔딩을 통과하는 중」 다울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챕터에서는 다울이 아닌 지강의 부고 메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울은 모령대 영문과를 오래전 자퇴했지만, 지강의 이름과 부고라는 단어를 본 순간 어떤 확신을 느끼고 장례식에 가기로 결심한다. 이때 15년 전의 모령과 마임 동아리, 그와 관련된 이들의 이야기가 여러 버전으로 전개되면서 서이의 관점에서 알 수 없었던 다울의 서사가 더욱 흥미롭게 펼쳐진다. 지강을 처음 만난 건 열네 살, 엄마를 따라 모령의 낡은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던 날이었다. (...) 그 어떤 희망도 내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때. 마치 어렴풋한 구원의 가능성을 흩뿌리듯 지강이 내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서로만이 서로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도 잠시 그들의 관계는 위태로운 방향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다울은 이기적으로 달라져 가는 지강의 곁에서 자신의 세계를 온전하게 지킬 수 없음을 알게 되지만 그에게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타임 루프가 작동되는,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에서 서이는 다울에게 다시 한번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모든 시간의 구멍을 메꿀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서로의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라고, 서이가 홀로 남았던 세계에서는 확인할 수 없던 다울과 관련된 진실이 선명해지면서, 서사는 한 차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제 서이는 어떤 누구보다 위로가 되는 존재였던 다울에게 더욱 솔직한 모습이 되길, 다울은 서이에게 건네지 못했던 약속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기꺼이 서로의 구멍에 빠지겠다는 마음,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간절했던 그 마음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남기게 될까? 허진희가 꾸려낸 섬세하고도 환상적인 지도를 따라가는 동안, 독자는 그 끝에서 자신만의 가정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만약, 으로 시작되는 세계가 어떻게 멈춰 있던 마음을 움직이는지, 기꺼이 『엔딩을 통과하는 중』의 첫 장을 펼쳐 경험해 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