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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범람과 은폐의 시대
프롤로그 | 인간, 지진을 만들다 1부 인류세, 시작되다 1장 인류세의 우연한 탄생?_새로운 시작 혹은 인류를 향한 경고 2장 거대한 가속_폭주 뒤에 만난 새로운 영토 3장 인류세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시각_① 플랜테이션과 ‘싸구려 자연’의 탄생 4장 인류세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시각_② 8,000년 전 시작된 ‘오래된 야만’ 2부 인간의 일, 지구의 일 5장 가장 외로운 나무가 들려주는 말_잃어버린 빙하기와 신생대 최대의 온난화 사건 6장 흙의 착취, 생명의 연결은 어떻게 끊겼는가_농업과 기후 위기의 치킨게임 7장 흑두루미 고난과 개척의 역사_생물 다양성 감소와 인수공통감염병 그리고 제6의 파국 3부 닭뼈와 플라스틱 8장 인류세 부결 사건의 전말_왜 지질학자들은 반대표를 던졌나? 9장 Fake Plastic Tree_범람의 시대에 사라지지 않는 것 10장 내일의 치킨 행성_대가속 생물종이 점령하다 4부 우리에게는 행성적 관점이 필요하다 11장 우주선 지구호와 바이오스피어2_유한함 위에서 무한히 살아가기 위해 12장 가이아와 공생자 행성_생물이 공생하는 인류세의 뉴노멀 13장 행성적 경계와 도넛 경제학_안전한 작동 영역에 머물려면 5부 인류라는 말로 퉁칠 수 없는 것 14장 너무나도 중요한 0.47퍼센트의 책임_‘기후 소송’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15장 국제 기후 정치와 죄수의 딜레마_모두의 문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게임 16장 우리는 지구를 길들일 수 있는가?_가이아 2.0에서 만난 윤리적 난관 17장 사물의 의회가 개원했습니다_비인간을 위한 민주주의 에필로그 | 미래는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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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적 사건 앞에서 우리는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일반적인 자연 재난은 그 우연성에 대해 우리가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는다. 그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연 재난의 커튼 뒤에서 무대를 움직인 인간의 활동을 뒤늦게 발견할 때, 우리는 분노를 운명에조차 돌릴 수 없어 당혹감에 빠진다. 심지어 지구온난화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방법으로 강구한 지열발전소조차도 지진의 원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인류세적 사건에 속하는 자연 재난엔 기후변화로 인한 태풍, 홍수, 폭염, 가뭄, 산불 등이 있다. 재난 상황 특유의 압도적 광경 때문에 일반적인 자연 재난의 장면처럼 보이지만, 실은 극장의 커튼 뒤에 선 인류가 기후 시스템의 균형을 깨뜨린 결과다. --- pp. 24~25 「프롤로그: 인간, 지진을 만들다」 중에서 지구 팀이 지금 환경 위기에 맞닥뜨린 인류라고 해 보자. 세계 권력을 잡고 있는 선진국 정부와 다국적기업이 감독과 코치진이 될 것이다. 9회 말 투아웃, 그때까지 낮잠을 자던 감독이 갑자기 일어나 ‘파이팅’을 외치며 꺼내든 단어가 바로 ‘인류세’ 아닐까? 산업혁명 이후 온실가스 폭증과 숲·바다 파괴, 생물 다양성 감소 등을 일으킨 핵심에는 거대 자본과 이를 뒷받침한 선진국 정부가 있다. 그런데 자기들은 아무 책임도 없는 것처럼 이제 와서는 우리 모두, 그러니까 인류의 책임이니 잘해 보자고 한다. 자신들의 과오를 ‘인류세’라는 말에 넣어 떠내려 보내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도전적인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류세는 더는 가치중립적인 지질학적 개념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 --- pp. 42~43 「1장: 인류세의 우연한 탄생?」 중에서 인류세의 시작점을 두고 여전히 학계에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1492년, 그리고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로 보는 입장이 있다. 심지어 신석기 혁명처럼 오랜 과거에서 찾는 학자도 있다. 학술적 논쟁은 차치하고 인류세 담론이 갖는 효과만 따져 본다면, 인류세가 오래전에 시작했다는 주장은 ‘현대 인류’의 책임을 면제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에 거대한 가속은 인류세가 ‘지금, 우리의 책임’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당장 고속 열차에서 내리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 pp. 55~56 「2장: 거대한 가속」 중에서 그렇다면 다음 빙기는 언제 시작할까? 학자들 사이에서 ‘10만 년 문제(100-kyr Problem)’라고 불리는 이 수수께끼는 미래의 지구 기후를 푸는 중요한 열쇠다. (…) 유럽의 기후 전문 연구 기관인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의 연구 팀은 2016년 이와 관련한 논문에서 인간으로 인해 빙기를 이미 놓쳤을 수 있다고 했다. (…) “우리는 지금 여름의 북반구가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시기(원일점)에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간빙기가 끝나고 새로운 빙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200년 전 이산화탄소 농도가 240ppm이었다면 빙기가 시작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보다 높은 농도인 280ppm을 기록했습니다.” (…) 지구는 과거에 빙기의 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빙기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지금도 이 문이 열릴 것이라는 아무런 징후가 없다. --- pp. 98~99 「5장: 가장 외로운 나무가 들려주는 말」 중에서 인류세는 1950년대라는 선을 긋고 출발한 육상 선수가 아니다. 그 이전에도 자연환경에 비가역적인 인간 영향은 존재해 왔다. 인류세가 ‘인간에 의해 발생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층서학적 흔적, 물리적·화학적 증거가 1950년대 들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4기층서소위원회의 과학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얀 잘라시에비치는 과학 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에서 이렇게 썼다. “지질학계가 그려 온 고요한 추상화를 (인류세 주창론자들이) 현대의 문제와 연관시킨 것에 대해 그들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새로운 과학적 지식은 언제나 과거의 오래된 관점을 흔들기 때문에 인류세가 저항에 부딪힌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pp. 149~150 「8장: 인류세 부결 사건의 전말」 중에서 현재 국제표준층서구역을 제안하기 위해 연구하는 곳 중에는 ‘쓰레기 매립장’은 없다. 일반적으로 지질학자들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퇴적층에서 표식을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욱현 박사의 생각은 다르다. 인류세에선 지층이 자연적으로 퇴적되는 경우가 예외가 여겨지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구에서 1년 동안 움직이는 퇴적물(흙, 모래, 암석 등)이 300억 톤이에요. 그 가운데 96퍼센트가 인간 활동에 의한 것입니다. 이곳 평택에서 공사하는 것처럼 덤프트럭 같은 걸로 옮기는 거예요. 우리가 과학 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바람에 흙이 날리고 긴 시간 동안 호수에 모래가 쌓여 퇴적층을 남기는 건 이제 예외적인 현상이 돼 버렸습니다.” --- p.155 「9장: Fake Plastic Tree」 중에서 1950년대 이후 반세기 만에 닭의 성장 속도는 네 배 빨라졌고, 먹는 사료는 두 배 가까이 줄었으며, 가슴살은 훨씬 커졌다. 형태학적 특성, 섭취하는 먹이, 유전자 등 모든 면에서 너무도 다른 새로운 종으로 재탄생했다. 인간은 고효율의 생산성을 달성했다. 연구 팀은 육계의 성장 및 효율성 증대의 85~90퍼센트는 유전적 개량에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1950년대 이후 끊임없는 ‘내일의 닭’ 만들기 덕분이라는 얘기다. 닭의 혁명은 닭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현대 닭은 절뚝거린다. 뼈 발달 속도가 근육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골격과 관절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비대한 가슴으로 무게중심을 잡지도 못한다. 몸을 지탱해 걸어 보려고 해도, 골격과 관절의 문제로 이어진다. --- p.177 「10장: 내일의 치킨 행성」 중에서 우주 탐사를 통한 ‘지구의 재발견’은 1970년대 환경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 지구를 바깥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우리 모두는 ‘우주선 지구호’라는 한 배에 탄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사람들 모두가 우주선의 선원처럼 지구의 미래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과 자연, 그리고 지구와 연결된 하나의 총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pp. 194~195 「11장: 우주선 지구호와 바이오스피어2」 중에서 우리는 지질시대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것일까? 인류세 논의가 ‘기후 위기에 관한 환경운동가의 경고’가 아니라 ‘측정 가능한 과학’이 되려면, 우리가 선 바로 이 지점을 지도에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길을 밝혀 주는 가로등과 절벽을 표시하는 위험 표지판 그리고 가드레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지도를 만든 사람이 스웨덴 출신의 환경과학자 요한 록스트룀(Johan Rockström)이다. 스톡홀름환경연구소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연구한 그는 우리가 인류세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했다. 그 결과 록스트룀이 창안한 것이 ‘행성적 경계(planetary boundary)’라는 개념이다. 행성적 경계는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말하는 빨간색 ‘정지(STOP)’ 경고판과 같다. --- pp. 210~211 「13장: 행성적 경계와 도넛 경제학」 중에서 인류세 담론에서도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있다. 인류세가 환경 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현명함과 지혜로 이 위기를 극복하리라는 관점이다. 이들 역시 미래의 기술 혁신에 기대고 있으며, 재생에너지와 기후공학 산업을 북돋는 등 시장주의적 해법을 선호한다. 반면, 이러한 주류의 관점에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x도 상승, 고로 x톤 감축’처럼 미래 투사에만 매몰되는 행위를 ‘기후 환원주의’라고 비판하는 학자들이 있다. 지금의 우리는 기후 모델링에서 미래로 내던져지기만 하는 주체가 아니라 과거의 사건과 역사의 뿌리에서 현재로 이어진 나뭇가지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주류의 관점과 달리 미래보다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의 삶을 중시한다. 기후공학 중심의 기술적 해결책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며, 오히려 자본주의 기업이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내세우는 장밋빛 전망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 pp. 259~270 「16장: 우리는 지구를 길들일 수 있는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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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괴적인 시대는 정확히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가?”
인간이 창조한 지질시대, 인류세의 기원을 찾아서 인류세는 언제 시작됐을까? 2000년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우리는 지금 홀로세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인류세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선언한 뒤, 학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경계를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런데 인류세의 시작점을 정하는 일은 단순히 지질연대에 선을 긋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지금의 지구를 이렇게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아프리카의 빈농과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를 똑같이 ‘인류’라 부를 수 있을까? 지구를 파괴한 주체를 뭉뚱그려 ‘인류’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정작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훌륭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책은 이 질문을 붙들고 인류세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 저자는 소비자본주의가 폭발적으로 팽창한 1950년대의 ‘거대한 가속’, 자본주의적 ‘화석경제’가 출발한 18세기 후반, ‘싸구려 자연’으로 행성적 비즈니스를 시작한 1610년의 ‘플렌테이션세’와 ‘자본세’, 더 멀게는 8,000년 전 농업혁명까지 인류세의 여러 기원설을 따라간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시점이 정답인가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 시작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그 시대를 움직인 역사적·정치적 맥락에 대한 해석이 바뀌고, 따라서 인류세 언명에 대한 정치적 효과도 달라진다. 1950년대를 인류세의 기점으로 삼는 ‘거대한 가속’은 인류세가 바로 ‘지금, 우리의 책임’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반면 인류세의 기원을 17~18세기 근대 자본주의나 산업자본주의의 태동기에서 찾는 시각은 ‘인류세 위기를 유발한 근본적 원인은 유럽 제국주의와 자본가 계급’이라는 점을 폭로한다. 또 이미 고대사회부터 인류가 지구의 물리적·화학적 시스템에 개입했다고 보는 ‘초기 인류세 가설’은 자연을 길들이고 환경을 바꾸어 온 인간의 오래된 역사까지 문제의 범위를 넓힌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서로 얽혀 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시각이지만, 이 주장은 ‘현대 인류’의 책임을 희석하는 효과가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기원설을 교차해 살펴봄으로써, 인류세라는 개념을 인간과 자연이 맺어 온 관계의 역사를 읽는 틀로 확장한다. 지진을 만들고, 빙하기의 문을 닫아 버린 인간! 인간-지구의 얽힘에 관한 행성적 탐구 인류세의 핵심은 인간이 하나의 ‘지질학적 힘’이 되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인간은 지진을 만들고, 빙하기의 문을 닫아 버렸다. 2017년 포항에서는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이 단층의 방아쇠를 당겨 규모 5.4의 지진을 촉발했고, 몇몇 기후 연구는 인간이 높여 놓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수만 년 동안 반복돼 온 빙기와 간빙기의 리듬마저 뒤흔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지질학적 기록으로 남기 시작한 것이다. 환경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러한 ‘인류세적 사건’의 흔적을 따라 현장으로 들어간다. 인류세 연구자들이 새로운 지질시대의 대표 화석으로 주목한 캠벨섬의 ‘랜펄리 나무’는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자연의 시간 속으로 침투했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남극해 외딴섬의 나이테에까지 핵실험의 방사성 낙진이 ‘밤 스파이크(bomb spike)’로 새겨졌다는 사실은, 인간의 역사가 이제 지구의 나이테와 지층에 기록되는 ‘행성의 사건’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탐사는 인류세 지층 깊숙이 이어진다. 저자는 경기도 평택의 옛 쓰레기 매립지를 시추해 지하 12미터에 묻힌 플라스틱을 직접 끄집어내고, 3,500여 년 전 닭 가축화의 흔적이 발견된 태국 반논왓까지 찾아가 오늘날 지구에서 가장 많은 새가 된 닭의 기원을 추적한다. 한때 하찮은 쓰레기와 인간이 길들인 평범한 가축에 불과했던 것들이 이제 지구의 시간을 기록하는 흔적이 되었다. 저자는 그 흔적을 따라가며 인간의 역사가 어느 순간부터 지구의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는지 펼쳐 보인다. “우리는 인류세라는 이름을 ‘지질학적으로’ 연기했다.” 2024년 인류세 공인안 부결의 전말 2024년, 지질학계는 인류세 공인안을 부결했다. 인류세 공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여겨지던 때였기에 뜻밖의 결론이었다. 이 책은 부결의 전말을 비중 있게 서술하며, ‘인류세’라는 이름이 파국을 맞은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부결 과정에서는 충분한 토론 없이 표결이 빠르게 진행되고, 인류세 논의를 이끌던 연구자들이 ‘이해 충돌’을 이유로 심의에서 제외되는 등 절차적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 이면의 더 근본적인 충돌이다. 인류세실무단은 오랜 논의 끝에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폭발하고 지구환경 지표가 급격히 치솟은 ‘거대한 가속’의 시기인 1950년대를 새로운 지질시대의 시작점으로 정해 공인을 추진했다. 그러나 수천 년에서 수백만 년의 시간을 다뤄 온 층서학자들에게 그로부터 불과 7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대를 하나의 새로운 지질시대로 선언하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72년은 너무 짧다’는 층서학의 오랜 ‘학문적 본능’과, 인간이 불과 수십 년 사이 지구 시스템을 질적으로 바꾸었다는 새로운 현실이 맞부딪힌 것이다. 이 책은 이를 지질학이 오랫동안 그려 온 ‘고요한 추상화’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충돌로 읽는다. 인간의 개입과 무관하게 장구한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자연을 관찰해 온 전통적인 지질학이, 이제 인간을 자연의 역사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는 시대와 마주했다는 것이다. “홀로세라는 옛 이름으로는 지금의 파국을 진단하고 대응할 수 없다.” 인류세 부결 이후, 다시 인류세를 생각하다 결국 ‘인류세’라는 이름은 학계에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인류세라는 개념을 훨씬 강하게 붙들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류세는 기후변화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지구 시스템의 복합적인 위기를 한눈에 바라보게 한다. “온실가스 농도라는 숫자를 넘어, 미세플라스틱의 확산, 종의 멸종, 화학적 오염 그리고 생명체 간의 연결망 붕괴라는 위기의 복잡성을 총체적으로 직시”하게 하는 이름이 바로 인류세인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질문의 방향도 달라진다. 인간이 지구를 얼마나 바꾸었는지를 입증하는 데서 나아가, 이미 생태적 한계에 다다른 행성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4부는 그 출발점으로 ‘행성적 관점’을 제시한다. 우주에서 바라본 ‘푸른 구슬’ 지구, 인간이 만든 폐쇄 생태계 실험 ‘바이오스피어2’, 지구를 생명과 환경이 서로 조절하는 시스템으로 보는 ‘가이아 이론’, 인류가 넘지 말아야 할 생태적 한계를 제시한 ‘행성적 경계’, 그 한계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모색하는 ‘도넛 경제학’을 차례로 살피며, 지구를 인간의 삶을 받쳐 주는 배경이 아니라 생명과 대기, 토양과 바다가 서로 의존하며 움직이는 유한한 시스템으로 다시 보게 한다. 이제 질문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행성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함께 번영할 것인가로 옮겨 간다. 그러나 지구를 하나의 공동 운명체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지막 5부는 다시 ‘인류’라는 말 속에 뭉뚱그려진 책임의 차이를 꺼내 놓는다. 누가 더 많이 파괴했고 누가 그 피해를 먼저 감당하는지,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동물·숲과 땅·바다 등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정치적 목소리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기후소송과 국제 기후정치, ‘사물의 의회’까지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 인류세는 환경 위기를 설명하는 과학적 개념에서 책임의 배분과 공동체의 범위를 다시 묻는 정치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위기의 증후를 포착하는 데 구심점이 되어 온 ‘인류세’는 이제 개인들의 철학과 윤리의 문제로까지 내려왔다. 저자의 표현대로 인류세는 “행성의 다수파인 비인간 동물과 생태 약자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실천적 경로를 묻는 정치적인 개념”이 될 수 있다. 파국의 시대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를 넘어,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 이 책은 바로 그 불편하고도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독자를 세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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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뼈와 플라스틱, 이 두 하찮은 사물이 어떻게 한 시대를 증언하는 지층의 표지가 되었는가.”
이 책은 그 물음에서 출발해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드러낸다. 1950년을 기점으로 한 거대한 가속을 통해 인류가 지구 시스템 전체를 뒤흔드는 존재가 되었음을 이 책은 촘촘히 추적한다. 비대해진 사육 닭의 뼈는 인류세 지층의 표지 화석이 되고, 플라스틱은 바다와 토양과 생명체 조직까지 스며든 문명의 잔해로 남았다. 성장은 그만큼의 자원과 에너지, 온실가스와 폐기물을 반드시 동반한다는 진실을 저자는 반복해서 환기시키며 우리 세대가 미래 세대의 몫을 앞당겨 쓰고 있다는 경고로 이어 간다. 지구의 내일을 걱정하는 모두가 반드시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 조천호 (대기과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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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라는 생물종과 지구라는 행성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저자는 시간과 공간,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긴 여정을 떠나며 인간과 지구,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값싼 낙관론이나 종말론적 비관 대신, 과학적 통찰과 철학의 깊이를 겸비한 시선으로 정책적 선언의 허와 실부터 풀뿌리 행동가들의 신념, 사라져 가는 동식물들의 이야기까지 두루 살핀다. 인류세 최고의 입문서이다. - 박범순 (KAIST 인류세연구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