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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7
유령의 섬 45 약속을 지키다 79 죽은 자들의 숲 111 수상한 선물 141 뉴욕의 어느 비서가 겪은 기묘한 모험 165 |
Algernon Black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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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현관에 서 있을 때만 해도 주위는 환한 등불로 밝혀져 있었고, 여전히 인간 세상의 익숙하고도 안락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고, 달빛 아래 하얗게 펼쳐진 텅 빈 거리를 보는 순간, 그날 밤 자신이 맞서야 할 시험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았다.
---p.15 고요하고도 후텁지근한 밤이었다. 바람은 한 점도 불지 않았다. 호수의 물결도 잠잠했고, 나무들도 꼼짝하지 않았다. 무거운 구름이 하늘을 짓누르듯 드리워져 있어 마치 거대한 장막이 세상을 덮고 있는 듯했다. 어둠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밀려와 어느새 섬 전체를 삼켜버렸다. 해가 진 방향조차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마지막 빛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공기 속에는 폭풍이 닥치기 직전에 흔히 찾아오는 그 불길한 정적이 가득 차 있었다. 모든 것을 짓누르는 듯한, 불안하고 음산한 침묵이었다. ---p.53 무엇인가가 문득 들려 올려 졌다가 멀리 걷혀 나가는 듯했다. 단 한순간이었다. 과거와 미래는 사실 하나의 거대한 현재 속에 나란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현상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도 선명하게 깨달았다. ---p.120 문득 설명하기 어려운 전율이 온몸을 스치더니, ‘죽은 자들의 숲’의 소나무들이 눈앞에 거대한 검은 장벽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들의 꼭대기는 거대한 창끝처럼 치솟아 있었다. 내 뺨에는 바람 한 점 스치는 느낌도 없었지만, 밤바람이 수없이 많은 솔잎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바람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머리 위에서는 멀고도 낮은 웅성거림 같은 소리가 잠시 피어올랐다가 이내 다시 사라졌다. ---p.132 키 큰 사내의 모습이 사라지고 문이 닫혔다. 방금 전까지의 대화는 어떤 계시처럼 느껴졌다. 가비는 정상적인 감각과 판단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태도와 의도가 진심이라는 것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처음 한 시간 동안 품고 있던 의심은 햇빛 앞의 안개처럼 서서히 걷혀 가기 시작했다. ---p.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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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현대 호러와 위어드 픽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이름이 있다. 앨저넌 블랙우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전통적인 유령 이야기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와 세계를 탐색했던 작가들 가운데 그는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한 거장으로 꼽힌다. 블랙우드에게 공포란 무덤에서 돌아온 유령이나 눈앞에 나타난 괴물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우리가 익숙하다고 믿는 현실 바로 곁에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느낌, 평범한 일상의 이면에서 무언가 낯선 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이 그의 이야기에서 가장 깊은 공포를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에 누구보다 깊이 매료되었던 작가가 H. P. 러브크래프트였다. 러브크래프트는 『문학 속의 초자연적 공포』에서 블랙우드를 ‘기이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데 있어 절대적이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거장’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평범한 사물과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기이함을 포착하고 현실이 초자연적인 세계와 맞닿는 순간을 구축하는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블랙우드의 작품은 러브크래프트를 비롯한 후대 작가들이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존재와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데 중요한 문학적 선례가 되었다. 블랙우드가 활동하던 시기는 고스트 스토리의 모습이 달라지던 때이기도 했다. 오래된 성과 무덤, 원한을 품고 돌아온 망령에 의존하던 고딕소설의 공포가 점차 독자가 살아가는 현실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고 익숙한 세계를 어느 순간 낯설고 불안한 곳으로 바꾸는 새로운 공포가 등장한 것이다. 블랙우드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보여주는 공포’보다 ‘느끼게 하는 공포’를 자신만의 문학적 영역으로 발전시켰다.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의 침묵이 더 무섭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도 사람이 떠난 빈집, 평범한 하숙집, 시골 여관, 외딴 저택, 인적 드문 숲과 호수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장소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기척 하나,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난 행동, 희미한 소리와 불길한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균열은 조금씩 벌어지고, 마침내 인물들은 자신들이 믿어온 현실의 질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와 마주한다. 블랙우드는 그것의 정체를 성급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어둠 속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시선, 평범한 사람이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는 섬뜩함을 통해 독자가 먼저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감지하게 한다. 숲과 호수, 나무와 바람 역시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또 하나의 세계처럼 다가온다. 사건이 벌어진 순간보다 그 직전의 침묵이 더 무섭고, 눈앞에 나타난 것보다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블랙우드의 이야기가 낡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공포를 보여주는 대신 상상하게 하고,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현실의 경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가 열어놓은 이 문은 러브크래프트를 거쳐 현대 위어드 픽션과 호러문학으로 이어졌다. 『빈집, 보이지 않는 것들』은 그 문 너머에서 기다리는 기이하고 매혹적인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