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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
보내주는 사람 원 야간 경계 근무 Watcher 풋잠 낯익은 이방인 이야기의 이야기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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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풍문』으로부터 밤의 이야기꾼들의 취재 의뢰를 받은 게 일주일 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콧수염 편집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여름 밤, 연남동의 작고 조용한 일식집에서였다. “밤의 이야기꾼들 소문은 익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열리는데, 저희는 이번에 색다른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작가님께서 직접 참석하시고 이야기를 들은 후, 그걸 소설로 써주시면 어떻겠습니까?”
---p.8 “인간의 사망과 관련한 괴담이 많다는 건 다들 아실 거예요. 죽음에서 돌아온 망자, 뭐 이런 괴담 말이죠. 그런 괴담 중 태반은 누군가가 지어냈거나 아니면 착각에서 비롯되죠. 하지만…… 때로는 진짜 괴담도 있지 않을까요? 이 이야기는 한 호스피스에서 시작합니다.” 유령이 나온다는 장미 저택, 자정, 암흑 속에 둘러앉은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밤의 이야기꾼들이라는 비밀 모임……. 이런 것들이 주는 영향 때문일까, 여자가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머리털이 쭈뼛할 정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어둠은 한층 더 짙어졌고, 그 속에서 여자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p.18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오늘 그분이 오셨습니까?” 무당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묶인 개에게 다가갔다. 검은 개는 맹견의 위용을 잃어버린 듯 무당을 보자 꼬리를 가랑이 사이로 집어넣고 끙끙거리기만 했다. 그 순간이었다, 조수가 생고기 한 덩어리를 개 앞에 던진 것은. 검은 개는 침을 줄줄 흘리며 고깃덩어리를 보다가 다시 무당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아는 듯했다. 저걸 먹는 순간 자기에게 화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사흘을 굶은 개는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아니, 본능이 개를 움직인 것 같았다. 검은 개가 고기를 물어 씹기 시작한 것과 무당이 바투 다가선 건 거의 동시였다. 무당은 어느새 칼을 꺼내 들고 있었다. O는 다음 순간 벌어질 일이 훤히 그려져 움찔했지만 절대 눈을 감지는 않았다.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라는 것도 무당의 지시였으니까. ---p.76~77 “그럼 케이블을 철골에 맬 수는 있었다고 쳐. 그래도 여전히 말이 안 돼. 장 상병은 어떻게 목을 맨 거지? 딛고 올라갈 게 아무것도 없는데 천장에 거의 매달려 있었거든.” 내 말에 최승호는 다시 천장을 올려다봤다. 끼익. 끼익. 끼익. 철골은 계속 앓는 소리를 냈다. 저 케이블은 어떻게 흔들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알 수 없었다. 어디에서도 바람 같은 건 불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치 누가 매달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꾸만 그렇게 흔들렸다. ---p.148 웹페이지가 열리더니 영상이 흘러나왔어요. 왼쪽 위 모서리에는 ‘LIVE’라는 단어가 떠 있었죠. 제일 처음 보인 건 어떤 여자의 뒷모습이었어요.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죠. 뒷모습만으로는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었어요. 한데 질끈 묶은 머리카락이 꽤 길었는데 새치가 없는 거로 봐서 상당히 젊구나, 그렇게 생각만 했죠. 그런데 뭘 저리 열심히 하고 있을까? 그런 의문을 떠올리는 한편 이 모습은 누가 어디서 찍는지 그것도 궁금했어요. 분명 카메라로 찍는 것일 텐데 그 구도가 위에서 밑으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거였어요. CCTV인가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화질이 너무 좋았어요. 아무튼 전 그 여자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봤죠. 그게 제 일이었으니까요. ---p.165 “괴이는 그걸 나눌수록 더 구체화되고 생명력을 얻는 거야.”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는 이 이야기도 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야말로 상식으로는 해석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그야말로 괴담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굳이 이 이야기를 고른 건 솔직히 말하자면 내 두려움을 조금은 덜어내고 싶어서이다. 여러 사람에게 털어놓으면 그 이야기가 생명력을 가질지는 몰라도 확실히 무서움의 색채는 옅어진다. 나는 그걸 노리고 이 이야기를 가져왔다. 사설이 길었다. 내 이야기는 결코 만나서는 안 되는 어떤 인물과 만나면서부터 시작한다. ---p.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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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 위해 비밀을 유지해주시기 바랍니다.”
밤의 이야기꾼들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월 ·일 자정까지 아래의 장소로 오시면 됩니다. - XX시 XX구 장미 저택 - 『채록: 기이한 이야기』는 ‘밤의 이야기꾼들’ 취재 의뢰를 받은 ‘나’가 모임에 초대받아 장미 저택으로 향하는 「초대장」으로 시작한다. 장미 저택은 오컬트 마니아 사이에서 제법 유명한 흉가로, “성실한 화가가 지칠 때까지 몇 겹이나 어둠을 덧칠해놓은 것” 같은 곳이었다. 그저 어둠뿐인 공간이지만, 선명하게 느껴지는 존재들……. 사람인지 망자인지 모를 존재들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한다. 「보내주는 사람」은 한 호스피스를 배경으로 한다. 췌장암 말기의 아버지를 호스피스에 입원시킨 딸 ‘선영’은 이제나저제나 아빠가 죽길 바랄 뿐이다. 사채를 끌어다 인터넷 도박과 명품 쇼핑에 탕진한 결과, 사채업자가 집 앞까지 찾아와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빚 때문에 근심이 가득한 선영의 표정을 효심이라 오해한 사회복지사는 ‘보내주는 사람’을 소개하며 오래 힘들어하신 아버지를 편히 보내드리고 싶다면 연락해보라고 하는데……. “아, 안녕하세요? 혹시…… 뭐라고 할까, 그…… 보내주는 사람이 맞으신지…….” “맞아요. 제대로 걸었네요.” 주저하며 물은 게 민망할 정도로 노인은 순순히 인정했다. 순간 말문이 막힌 나는 가만히 휴대폰만 들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와서 우리 아빠 좀 죽여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돈이 얼마인지 그것부터 물어야 하나? 내 마음을 읽었는지 노인이 다시 말을 꺼냈다. “보내야 할 분이 있다면 절 쓰세요. 저는 전문가니까요.” _본문 중에서 「원」은 굴러들어온 돌에게 부장 승진을 빼앗긴 ‘O’가 라이벌을 저주하는 이야기다. 작가는 누군가를 저주하고,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는 감정이야말로 호러 장르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말한다. 주인공 ‘O’는 어떻게 보면 그리 큰일이 아님에도 누군가를 저주하려 한다. 그게 크나큰 대가를 치르는 일이라고 해도. 그 원한의 마음이 어디서 생겨나고, 또 그 종착지는 어디인지 생각해본다면, 한층 더 서늘한 공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당은 O를 보며 말했다. “원은 자연스레 풀리지 않아. 시간이 지난다고 해소되지도 않고. 누군가를 몹시 미워하는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면 마음의 병 같은 건 생기지도 않겠지. 그러니 원을 털어내려면 결국 피를 보는 수밖에 없어, 피.” 피. 피를 본다. 그때는 그게 그야말로 유일한 해결책처럼 들렸다. 그랬기에 홀린 듯 무당의 제안을 수락했다. 거금을 내고 날짜를 잡았으며 주의 사항과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 듣는 동안 서서히 현실감각이 돌아오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게 너무 늦은 후였다. _본문 중에서 “괴이는 그걸 나눌수록 더 구체화되고 생명력을 얻는 거야.” 섬뜩한,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살아 있는 이야기 「보내주는 사람」과 「원」 외에도 탄약고 천장에 목매달려 흔들리는 시신에 얽힌 군대 괴담 「야간 경계 근무」, 이웃의 살인 현장을 CCTV로 지켜봐야 하는 아르바이트와 얽힌 「Watcher」, 기이하면서도 끝내는 따뜻함이 남는 힐링 계열의 괴담 「풋잠」 그리고 밤의 이야기꾼들을 취재 나간 ‘나’가 혹시 ‘전건우’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메타픽션 「낯익은 이방인」까지. 살인적인 폭염을 물리칠 기이하고 괴상망측한, 그래서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조명을 낮춘 어두운 방에서 『채록: 기이한 이야기』 독서를 시작하자. 단, 방문은 조금 열어두어야 한다. 만약에 무언가가 당신에게 오고 싶어 한다면…… 그 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말이다. 작가의 말 이 작품 『채록: 기이한 이야기』는 십이 년 만에 나온 『밤의 이야기꾼들』의 공식 후속작이다. 제목을 달리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밤의 이야기꾼들 2』라고 하는 게 너무 멋없이 느껴졌기 때문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전작이 ‘이야기 꾼’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작품은 그걸 ‘듣고 모으는 이’에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제목은 달라졌어도 밤의 이야기꾼들의 규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반갑고, 아쉽게도(책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이해할 터) 월간 풍문도 또 등장한다. 콧수염 편집장도. 무려 십이 년 차를 두고 발표하게 되는 후속작을 쓰면서 나는 즐겁기도 했지만 씁쓸한 감정도 느꼈다. 작품 속 이야기는 그대로라 해도 나도 그만큼 나이가 들었고, 한 편씩 완성해나간 이야기에도 젊었던 날의 패기를 온전히 다 넣기란 쉽지 않았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늙은이 뱃살처럼 축 늘어진 힘없는 이야기라는 소리는 아니다. 『채록: 기이한 이야기』 속 작품은 모두 재미있고 어떤 의미로 신선하다. 그건 쓴 내가 자부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