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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옮긴이의 말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1장 런던에서 배운 공포의 기쁨 1. 청과상집 아들의 어린 시절, 1899~1913 2. 유쾌한 직장인, 1913~1921 3. 영화계 입문과 감독 데뷔, 1921~19254. 성공 가도에 오르다, 1925~1929 2장 히치콕 스타일의 전성기 5. 사운드, 히치콕의 새 장난감, 1929~1933 6. 영화 연출의 비밀을 아는 사나이, 1933~1937 7. 할리우드로 가는 험한 길, 1937~1939 3장 할리우드에서의 공포와 욕망 8. 새로운 출발, 1939~1941 9. 셀즈닉, 친애하는 원수, 1941~1944 10. 버그먼과 그랜트 그리고 <오명>, 1944~1947 4장 대서양을 넘나드는 꿈 11. 도전과 시련의 나날, 1947~1950 12. 도약의 발판을 다지다, 1950~1953 5장 파라마운드, 영광의 세월 13. 관음증 환자의 전성시대, 1953~1955 14. 아찔한 걸작 <현기증>, 1956~1958 15. 창조력의 절정 <사이코>, 1958~1960 6장 세계시민 16. 성공의 씁쓸한 뒷맛, 1960~1964 17. 거장, 비틀거리다, 1964~1970 18. 지지않는 열정, 1970~1980 코다, 그가 떠난 후 부록 필모그래피 텔레비전 크레디트 출처와 감사의 글 참고자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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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리메이크와 ‘히치콕 스타일’의 영화들이 가장 많이 행하는 역할은 아마도 그가 가고 없으며 그가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만든 필생의 작품은 절대로 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든 명인의 솜씨는 별개로 하더라도, 우리는 두드러진 삶을 살려고 끊임없는 분투를 벌인 인물에게, 청과상의 아들인 키작고 토실토실한 소년에서 영화의 진정한 기사로 스스로 탈바꿈하며 날아오른 거물에게 그런 영화들을 빚지고 있다.
--- p.1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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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영예 2가지를 누리기 전까지는 아니었다. 먼저, 1978년 10월에 미국영화협회는 서스펜스의 거장이 정평이 난 평생공로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973년에 제정된 후, 이때까지 존 포드, 제임스 캐그니, 오손 웰스, 헨리 폰다, 베티 데이비스, 윌리엄 와일러가 그 상을 받았다...그날 저녁의 공동사회자는 잉그리드 버그먼과 프랑수아 트뤼포였다. 주디스 앤더슨 부인, 테레사 라이트, 제인 와이먼, 존 포사이스, 베라 마일스, 재닛 리, 안소리 퍼킨스, 로드 테일러, 숀 코너리, 카렌 블랙, 티피 헤드렌 등 히치콕 영화에 출연했던 많은 베테랑들을 포함한 눈부신 사람들이 모였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로빈 윌리엄스, 스티브 마틴을 비롯한 할리우드 젊은 세대도 드문드문 있었다.
감독이 행사장에 들어서서 -그가 고집을 부렸던 것처럼- 부축을 받지 않고 테이블로 걸어갔을 때 모두가 기립해서 박수를 쳤다. (“그는 장대높이뛰기로 손쉽게 그의 길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프리먼은 회상했다.) “고통스러운 걸음걸이, 벌개져서 헐떡거리는 얼굴, 정면을 바라보는 그의 눈”을 스포트라이트가 커버했다고 프리먼은 말했다. --- pp.1279~1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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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 기사들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할리우드 리포터』는 런던의 소식통을 인용하면서, 히치콕이 '미국 언론이 그를 영국의 1급 감독으로 선전하는 대신 요리전문가로 선전한 것'에 '상당히 당혹스러워 하면서' 귀국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경험에서 배우기'는 히치콕의 모토이기도 했다. 조만간 그는 그의 외모와 성격에 대한 미국인들의 매혹을 활용하면서, 그런 매혹을 엄청난 직업적 이점으로 전환시켰다. 1937년에 미국 언론에 상냥한 호기심을 보인 이 개구쟁이는, 조만간, 역대 할리우드 감독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인터뷰를 한, 프로필이 가장 많이 소개된, 그에 대한 글이 가장 많이 씌어지고 분석된 감독이 됐다. --- p.3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