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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예술총서를 발간하며 7
들어가는 말 - 특권층의 공간에서 대중의 휴식처로 돌아온 서울의 밤 9 1부_ 근대 서울의 밤문화 구한말~1930년대 한국적 향락의 메인 스테이지 '기생 문화' 17 요릿집 1호 명월관, 한국 밤 문화 새 페이지를 열다 37 1930년대 경성의 밤에 싹튼 카페문화, 그리고 모던 바람 47 1945년 광복 그 후 밤늦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37년의 세월 _ ‘야간통금 이전과 이후’ 58 1960년대 경제 개발과 함께 새롭게 변모한 서울의 밤 72 [인터뷰]‘삐어홀 오비스캐빈’의 고왔던 그 아가씨‘ _ 임영웅 76 1960~70년대 ‘카바레와 고고클럽’의 휘황찬란한 밤 80 고고클럽, 열병처럼 번진 젊음의 밤무대 88 [인터뷰] 선술집에서 카바레까지 휘젓고 다녔던 나의 20대 _ 정일성 96 1970년대 ‘삼류극장’ 그리고 추억의 ‘동네 공용 TV’ 100 한국 밤문화의 기형적 돌연변이 ‘사창가’ 122 [인터뷰] 1960~70년대 사창가의 체험적 회고담 _ 70대 어느 예술가의 고백 131 1부를 마치며 134 2부_ 현대 서울의 밤문화 서울 밤의 근경과 원경 서울의 근경 139 서울의 원경 144 밀실과 광장 밝디 밝은 서울의 밤거리 154 서울 밤의 밀실들 166 서울 밤의 술문화 182 ‘문화지구’에는 무엇이 있는가 190 [인터뷰] "1년에 365번쯤 술을 마십니다." _ 오달수 220 [인터뷰] "크리스마스에 쉬어본 적이 없어요." _ 김주원 222 광장의 밤 문화 ‘예술과 교양이 있는 서울의 밤’으로 224 천변 풍경 청계천의 연인들 혹은 시민들 234 2부를 마치며 250 찾아보기 254 사진 출처 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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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근대 서울의 밤문화
“종로의 밤은 활짝 필대로 피어버렸다. 공간을 메운 빛 빛의 바다에는 흘러나는 재즈 소리와 여인들의 두꺼운 화장이 풍기는 에로티시즘이 교차되어 숨 막힐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위의 글은 1930년대 서울의 밤 묘사다. 일제 강점기에도 경성에 불어 닥친 모던 바람은 당대 젊은이들의 날선 감각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지금의 강남강북을 방불케 하는 적막한 북촌에 비해 화려한 남촌 일대는 각종 카페와 빙수 가게, 그리고 음악을 틀어놓고 누구나 리듬에 취해 몸을 흔들어댄 촬스톤 바람 등 1부는 이처럼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의 시대를 잊은 유쾌한 밤풍경을 세밀화로 그려낸다. 덧붙여 한 시대를 풍미하며 예인으로 자리 잡았던 밤의 꽃 기생의 문화에 대해 잘 정리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최고의 요릿집 1호로 회자되는 명월관의 풍속도를 살피며 기생뿐만이 아니라 그곳을 들고나던 문인들, 언론인들, 독립운동가 등의 사람들은 어떠한 밤을 즐겼는지 보고하고 있다. 1930년대의 모던 풍경을 미시적인 관점으로 살핀 후에 본문은 1950년대 암흑기를 지나 광복 후, 점차 재건 준비로 분주했던 1960년대 밤문화를 조망한다. 미군정의 실시로 서양 술맛을 알리며 속속 태동한 삐어홀과 고단한 삶의 시름을 풀어줬던 소줏집의 단상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야간통금이 시행됐던 당시, 11시만 되면 벌어졌던 귀가 마라톤대회와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술을 들이켰던 변태 심야 술집도 들춰본다. 야간통금이 해제되면서 심야영화와 야경관광 등 밤의 통금이 풀린 새로운 밤풍경을 훑어가며 TV가 보급되면서 기존의 한정된 계층만이 향유했던 서민들에게도 소박한 밤문화가 자생한 사연을 소개하며, 1960 ? 70년대 서울의 밤문화를 즐겼던 문화계 인사들과의 솔직한 회고담 또한 싣고 있다. 마지막으로 밤 하면 빠질 수 없는 사창가 문화를 소개하며 오늘날 유곽의 유래와 실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100년 전의 날긋한 흑백 사진과 마치 정지된 과거의 기억 같은 자료들을 통해 1부는 향락과 소비 그리고 퇴폐의 밤문화의 미시사를 김명환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필체로 서술하고 있다. 2부 현대 서울의 밤문화 “야간[night]은 단순한 시간적 범위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숨결과 꿈과 욕망, 자본과 정보와 상품, 독특한 공간적 자위[nightscape]들이 존재하는 새로운 문화적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시간 활용을 연구하는 학자는 인류에게 마지막 미개척지는 밤이라고 역설한다. 현대의 밤은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했을 것들을 실재로 만들었다. 2부에서는 음주가무, 유흥과 소비로 연상되던 종래의 밤문화를 걷어내는 다양한 밤의 진화를 사회 ? 문화적 관점에 비춰 서술하고 있다. 익명의 공간에서 소박한 자유를 흥청거렸던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어 거리응원과 촛불시위 등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변화된 밤풍경을 살펴본다. 덧붙여 밤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대학로, 인사동 등의 문화지구와 신촌, 홍대 등의 젊음의 거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사업의 현황을 살펴보며, 어떻게 하면 밤 시간을 좀더 개척하고 다양하게 활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지 화두를 던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개폐와 복개와 복원을 거쳐 시민의 품으로 되돌아 온 서울의 폐 청계천을 산책하며 밤문화의 가치와 효용을 따져본다. 서울의 다양한 밤거리, 밤문화를 직접 발로 뛰고 기술한 사진들과 함께 감각적이고, 유려한 필체로 관조하는 현대 서울의 밤문화의 기록으로 역동적인 밤을 비춰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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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다른 새로운 밤 서울을 거닐다.
20세기 초, 경성의 밤엔 고유의 문화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서울의 밤문화』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밤 그리고 그 속의 문화에 대한 이같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그로부터 꼭 한 세기가 흘러 인구 1천만 명이 넘는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한 서울, 그 시공의 밤은 어떻게 개척되고, 진화했는지 오롯하게 ‘밤문화’의 도정을 쫓는다. 지난 세기 일제 강점 속에서 자유는 거세됐고, 생활은 궁핍했기에 생계형 문화만이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여 호젓하게 밤문화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성을 간과한 오만한 사치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칠흑 같은 공기 속에도 엄연히 밤 생활, 밤문화라는 것은 존속됐다. 특권층의 흥취를 돋운 밤의 꽃 기생부터, 야간통행금지가 존속되던 당시 자정께쯤 벌어지는 귀가마라톤대회, 통금이 풀려 생겨난 심야영화와 야경관광, 폭탄주, 파도타기 등으로 채색된 새로운 음주문화에 개인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각종 방들까지 서울 밤은 다채로운 만물상의 풍경이다. 책은 그간 공론화되지 않던 ‘밤’에 촉각을 세우고, 볼륨을 더하며 진화한 과거로부터 오늘에까지 이르는 근대와 현대의 서울의 밤문화를 얘기하고 있다. 근대의 밤이 술과 여자, 노래와 춤으로 제한된 낮으로부터의 일탈, 즉 향락에 초점을 맞췄고 현대의 밤은 문화 복지, 문화 민주주의를 표방해 밤의 문화를 더욱 개발하여 호모 나이트쿠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새롭게 창조된 밤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100여 년 전 관기(??의 사진부터 모던 바람이 분 경성의 야외 카페, 야간통금 단속에 걸린 웃지 못 할 모습 이 담긴 질박한 흑백 사진 수십 장과 당대의 밤풍경을 공감할 수 있는 현장성이 묻어난 현장사진들로 서울의 밤문화를 보고, 읽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을 조망하기 위해 김명환, 김중식 두 명의 기자가 근대와 현대 부분을 미시사적인 쉬운 접근과 재치 있는 해석으로 각각 집필했다. 두 기자는 제가끔 견고한 사유의 틀거지로 밤을 해석하고 서로 다른 필력으로 밤의 진풍경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자연과 역사문화재와 사람이 어우러져 그 속에 문화를 심은 서울의 밤, 때론 시퍼런 멍울이 맺혀 숨죽여야 했고, 때론 정도를 넘은 쾌락에 매몰돼 현란했으며, 때론 건전함과 교양이 촘촘히 새겨진 각종 문화의 중심, 서울의 밤문화를 완상해보자. 서울의 문화, 예술, 역사,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원을 정리?분석하는 것은 물론 서울문화예술의 원형을 발굴하는 어렵고도 긴 작업의 하나로 ‘서울문화예술총서’를 기획했다. 특히 그 첫 번째 시도로 기획한 ‘서울의 밤 문화’는 하루의 반을 차지하는 밤의 서울 모습을 문화사적으로 접근해보는 매우 일상적이면서도 독특한, 의미가 있는 테마라고 생각한다. 서울의 문화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하고, 본사(생각의 나무)가 진행한 『서울의 밤문화』는 서울문화예술의 원형을 발굴하는 서울문화재단 ‘서울문화예술총서’의 첫 번째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필두로 서울의 문화예술에 대한 담론은 이후에도 서울문화예술총서란 이름으로 꾸준히 출간될 것이다. 서울문화예술총서는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숨겨진 일상과 도시의 생명력과 꿈을 현실로 만든 예술가들과 순박한 시민들의 뜨거운 삶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고도한 미를 뿜어내는 예술적 산물들을 발견하여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쁨을 나눌 것이다. 밤[night], 칠흑 같은 어둠 - 환락과 축제의 성소 - 겹겹의 꿈이 생동하는 휴식의 시공 빛과 어둠의 대조로 미학적인 것은 바로 밤이다. 서로를 더 밝게 더 어둡게 하며 존재를 부각시키는 까닭이다. 더 어둡거나 혹은 더 밝은 공간에서 젖물 같은 달큼한 퇴폐와 향락이 넘실대는 욕망의 시간은 디오니소스가 지배하는 밤이다. “디오니소스의 술잔은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춤추기 시작한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출구가 없어 보이는 낮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아마 디오니소스적 충동과 열정이 활개 치는 밤을 찬미할 것이다. 때는 19세기 말, ‘라 벨 에포크[호시절]’로 불렸던 시기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던 파리의 밤은 술잔 밖으로 퍼져나가는 자유의 시간이었다. 당시 누구보다 현란한 밤을 사랑했고, 디오니소스의 밤을 체감하고 충실하게 즐겨낸 화가 로트레크는 파리의 달뜬 밤 환락을 찬양했다. 그곳에서 그는 숱한 밤 여인을 그려냈고, 밤 파리를 기록했으며, 파리의 호시절 밤문화를 개척해냈다. 밤은 고압적인 규제를 허물고, 누구나 나른해질 수 있는 여유를 담보하는 시간이다. 태양의 신 아폴로가 지배하는 낮 시간과는 별개로 디오니소스가 충동질하고 수금을 타는 밤은 겹겹의 꿈이 생동하는 점묘로 그려져 하나의 인상을 그려내는 한 폭 풍경화가 되는 것이다.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진 서울 밤은 진화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서울 밤의 풍광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어둠의 짝패인 빛이 불어났고, 그 아래서 황홀한 몸체를 드러내는 구조물이 증가했으며, 시간을 역동적으로 활용하는 시민들이 낮과 밤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하면서 밤의 기존 이미지와 효용은 한층 낯설어졌다. 서울은 그 어느 도시보다 바쁘고, 복잡하며, 고유의 이미지를 빠르게 뒤엎고, 변화하는 고정되지 않은 곳이다. 하여 서울에선 다양한 문화가 생겨나기 쉽고, 마찬가지로 소멸하기 쉽다. 이미 600년 도읍의 역사를 지닌 서울은 ‘이것이 한국의 문화다’라고 대변할 수 있는 많은 문화를 품었고, 또한 잊고 버렸다. 지난 100년 언감생심 서민들에겐 떫었을 꿈이었기에 밤문화의 빗장이 풀어지면서 밤은 낮처럼 밝고, 서민에게도 열려진 시공이 됐다. 매일같이 서울의 한낮 벌어지는 파시스트적인 속도의 일상, 사람들은 비로소 밤이 되면 낮 시간의 맹렬함을 잊고, 정신을 위무하고자 환락과 퇴폐의 근거가 될 술집으로, 노래방으로, 혹은 심야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심신 체위 향상을 위해 찜질방으로, 늦은 시각까지 불을 밝히는 대형마트 등 무수한 공간으로 스며든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이 서울의 밤풍경이라고 입은 모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습은 유흥과 소비에 국한된 반쪽짜리 밤이다. 어느 순간 서울의 밤이 총 천연색 풍경으로 변했다. 이유인즉, 도시의 공간구조가 변했고, 주5일 근무제 실시로 도시생활 전반이 변화된 까닭이다. 이제 서울시민들은 매주 짧게나마 휴가를 맞이하는 격이 되었으므로, 유흥과 소비로 한정된 자극적이고 일탈적인 밤문화에 에너지를 소진하기보다 지속적이고 여유로운 휴식의 밤문화를 선호하기 시작한다. 이에 발맞춰 서울시 공공기관 및 문화시설은 시민의 생활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며, 새로운 야간문화를 생산해내고 있다. 한 예로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빛의 예술, 야간 조명이 그것이다. 얼마 전 서울시는 도로와 건물로 끊겨진 부분을 제외한 서울 성곽 약 1.09km 구간에 야간경관 조명을 설치해 시민의 시선과 함께 발길을 되돌리겠다는 안을 발표했다. 덧붙여 남산타워를 n서울타워라고 개칭해 단조로운 서울의 야경에 새로운 랜드마크를 추가했다. 뿐만 아니라 시민의 발걸음이 잦은 선유도 공원, 노들섬, 서울광장 등지에 화려한 야간 조명을 설치함으로써 보는 것 자체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했다. 덧붙여 복개되고, 개발된 5.8km에 이르는 청계천의 밤 산책로와 개관 시간을 늘린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은 낮과 같은 밤 시간을 확대하고, 활용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밖에 닫힌 문화에서 열린 문화를 표방해 새롭게 개척된 서울 고유의 각종 축제(하이서울 페스티벌, 프린지 페스티벌, 드럼 페스티벌, 억새 축제, 불꽃 축제)는 자연과 서울 고유의 문화 속으로 사람을 흡입하는 효용을 발휘했다. 이제 서울은 서서히 고유의 밤을 만들어가고 있다. 북적거리는 술집 가득 모여 술잔에 빠진 개인의 꿈과 욕망이 건전한 교양과 의식의 재생을 가능케 하는 문화 속으로 흡수됐다. 거대도시 서울은 역동적인 밤을 꿈꾸고,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 24시간 유동하며 생동하는 문화의 불야성 시대, 이제 서울의 새로운 밤이 활짝 밝았다. [tip] 서울 밤에 불이 밝혀진 유래 (www.seoul.or.kr 참고) 1880년대 초반 서울에 와서 2년 동안 머물렀던 미국 선교사 조지 길모어는 손수 발품 팔아 돌아다닌 서울의 모습을 『서울에서 본 한국』이란 책에 자세히 기술했다. 그가 기록한 당시 서울의 밤풍경이란 특별할 것 없이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도시, 적막한 거리로 묘사됐다. 서울은 말 그대로 칠흑의 도심이었다. 때는 1885년 말, 드디어 서울 밤에 환하게 점등이 시작됐다. 미국 에디슨 상회에서 사들인 자가발전기 2대가 경복궁, 향원정 근처에 설치됐고, 1백 촉의 서치라이트 2대가 켜지면서 어슴푸레 밝은 밤이 된 것이다. 차츰 불빛은 도심의 심장부를 비롯해 더 넓은 지역으로 새어나가게 됐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던 환한 밤은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하여 80년대 후반까지 지루하고, 더딘 ‘밝음’을 좇게 된다. 정부는 가로등의 밝기를 파리와 뉴욕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 수준으로 조정해가며 유류 파동이 잠잠해질 때까지 숨죽인 밤을 유지했다. 1982년 드디어 37년간 존속되던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됨에 따라 자유롭게 활보하게 된 시민들의 치안 차원에서 야간 조명의 필요성이 급히 대두됐다. 연이어 아시안게임, 88올림픽 등의 대규모 국제행사와 맞물려 정부는 납죽 엎드려 있던 밤을 밝히기에 주력했다. 또한 1998년 밤도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밤문화의 개선을 절감하며, 새로운 야간경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밤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